#1. 고만고만하게
이번 주는 이렇게 더위는 시작되는 거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하루건너 빨래 돌리고 널고 걷었더니 또 주말이다. 주부들에겐 반갑지 않은 아이들 방학도 시작되었다. 지난주부터 여기저기 캠프를 알아보고 방학특강 소식에 귀를 쫑긋거렸다. 언제부턴가 캠프도 다양해져서 영어, 체험학습, 역사탐방은 진부해진지 오래고 요즘은 멘토들과 함께하는 자기주도 학습이나 리더쉽, 선행학습, 논술캠프 같은 애매모호한 자아성취형 캠프가 유행이다. 들어가는 돈만해도 두세 밤 잤다하면 기본이 오십이고 일주일 넘겼다 하면 칠팔십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고 학원을 다니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학원방학인 7월말에서 8월초가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물놀이라도 한번 다녀올 것 같으면 또 그때를 넘기면 시간에 좇긴다.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들 같은 시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전국의 고속도로가 미친듯이 막히는 것이다. 그 기간엔 유치원도 방학을 한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영화관, 동네 은행마저도 엄마를 대동한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물론, 사는 게 고만고만한 우리들 이야기다.
돈 좀 있는 집은 당연히 해외로 애들을 빼돌리고(?) 자기들은 휴가를 가거나 아니면 아이들과 럭셔리한 리조트형 여름휴가를 떠난다. 우린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시간이 맞으면 동네가 멀고 동네가 근처면 시간이 안되고 다 되면 너무 비싸고, 돈도 적당하면 과목이 맘에 안들고...이런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다니던 영어학원외엔 암것도 하지 않기로. 그대신 집 앞에(정확히는 집 뒤에)있는 도서관에 출근하기로. 별스런 대안이 아니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선 큰 결정이었다.
도서관에 가선 보고 싶은 책을 읽고, 일정시간 선행학습을 하기로 했다.
몇 가지 확인할 책도 있고 아이 문제집도 사줄겸 서점엘 갔다. 방학 때 풀겠다고 두 권이나 샀는데 다 풀 수 있을까. 그래도 문제집 살땐 기분이 좋다. 서점에 가면 온라인 서점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눈에 띄는 건 한 달 사이 김제동의 책이 많이 팔린 모양인지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 휴가철 권장도서코너에 황석영, 박범신, 최인호의 소설이 나란히 전시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2. 편안편안하게
어제 박범신 작가님이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내 리뷰를 읽어주셨다. 트윗에 끙끙거리며 힘들게 리뷰올렸다고 앙탈(?)을 부렸더니 확인 차 그렇게 해주신 것이다. 내가 무거운 소설, 힘겨운 소설을 홀로 저항하듯 읽는다고 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상처받고 떠나와 있는 내 심정을 들킨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혼자서 한잔 해야겠다는 넋두리도 ㅠ.ㅠ) 소설 읽고 리뷰를 많이 써왔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내 리뷰를 읽고 직접 답을 해준 건 처음이었다.(읽어주실 줄 알았으면 더 공을 들일 껄 그랬나 싶기도 했다 ㅋ) 누가 쓰라고 해서 누가 보겠다고 해서 혹은 어떤 마감이 있어서 쓴 리뷰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은 이런 소설을 잘 읽을 것 같지 않아서 오기부리듯 작성한 리뷰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내 글을 읽고서 답을 해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더랬다. 시인은 자기 시를 외우는 독자가 평생 한명이라도 행복하다더니 어젯밤은 내가 리뷰로 얻어낸 그 어떤 성과보다 기쁘고 가슴이 벅찼다. 바보같이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웃겨 보일 것 같아서 꾹 참고 있다가 결국 이렇게 여기서 떠들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책이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서점가면 제값내고 꼭 한두권 씩 책을 사게 되는데 오늘은 이 책이 걸렸다.
1.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박진, 김남혁, 장성규 / 자음과 모음
이 책에는 문학이 문화산업의 일부가 되고 독서에 미치는 마케팅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에 대한 걱정과 비판도 담겨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떤 소설을 선택해야 하는지, 바로 지금 좋은 소설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매번 다시 묻고 고민해야만 했다. 문학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들은 이렇듯 별로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 소설이 이끌어 내는 다양한 생각들과 진지한 고민들이 여전히 우리에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그래도’와 ‘그래서’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처음이 1Q84에 대한 토론인데 평론가들은 이런 평가를 내리는구나를 엿보면서 선채로 열페이지 정도 빠져들었다. 대놓고 문학동네의 상업주의 마케팅을 거론해서 흥미로왔다. 그러니까 평론가들끼리의 좀 자유로운 방식의 수다(그러나 기록을 전제로한)로 느껴졌다. 다른 소설을 말하는 방식도 솔깃하다. 주말을 견디는 확실한 준비 하나.
이웃분 중 한분이 내게 서평쓸 때 평론가의 글을 많이 읽으시냐 물어보았다. 난 평론가의 글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도통 내가 뭔 말하는지 모르기만 하라는 식의 현학적인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세계)의 차별화된 특권이거나 공부많이 한 자 특유의 습관인 것 같다. (그렇게 배워왔고 써왔으니) 하지만 독자로서 가장 맘에 안드는 건 빈번한 수동태형 문장과 이중 삼중 부정형의 문장들이다. 조지 오웰이 (같은 서평자로서) 대놓고 아주 잘못된 글쓰기 방식이라고 지적한 방법들에 속한다. 특히 평론가로서 등단한지 얼마 안되는 분들의 글이 더욱 그렇다. 가끔 계간지에도 그런 평론이 많은데 무슨 자기들 박사논문 읽는 기분이 들어서 사정없이 덮어버린다. 대신 좀 오래된 평론가의 글들은 자기문체가 확립되어 있어 산문으로서도 유려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되어 부러 외면하지는 않는다.(물론 부러 택하지도 않지만 ㅋ) 지난주에 평론가 김주연의 <문학, 영상을 만나다>라는 책을 우연히 접했는데 이분 글이 쉬우면서 현학적인 내공을 편안하게 전달하는 것 같아 맘에 들었던 문장을 옮겨본다.
2. <문학, 영상을 만나다>, 김주연/ 돌베게
로고스 중심주의란 로고스를 진리로 삼는 태도인데, 언어,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를 중시하는 하이데거의 담론에 데리다가 근접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데리다는 이의를 나타냄으로써 경계의 초월/위반문제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 견해란 우리가 보통 ‘지금’이라고 부르는 ‘현존’presence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우리의 ‘앎’, 곧 지식의 기반을 흔듦으로써 실증주의의 견고함은 물론, 현상학의 섬세함에 모두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언어라는 질서는 극도로 불안해지며, 언어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의 문체가 지닌 고유성도 흔들린다. 의미와 문체가 모두 동요한다. 언어의 역할과 기능에 관심을 가진 데리다였으니 결과적으로 언어의 내부를 교란시킨 것이다.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서술을 통해 서술할수 없는 것을 암시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그것과 바로 상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그 연원으로서 계몽주의를 극복한다는 역사적 당위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이성의 맞은 편에 그 와해 이외의 뚜렷한 표상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파악한다.
데리다의 ‘해체적 글쓰기’를 비평한 글인데, 한숨을 쉬며 궁극적으로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지난달 평가단 미션이 <데리다 평전>이었는데 이 글을 보고 이와 어렴풋하게 비스무리한 생각을 하긴 했으나 이상한 방향으로 결론을 낸 내 자신이 퍽이나 한심스러웠다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득을 한다는 것.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야 가능한.
그런가하면 중견 평론가들 중에 편안한(하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는 남진우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같은 수준(?)이면 소설가의 산문읽듯 부담안가지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이 책이 나를 이끄는 이유는 결론을 내는 방식인데 대부분 객관적인 이론이나 철학자, 혹은 누구의 무엇을 잣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렇게 하기까지 물론 엄청난 공부를 했을 터이지만.
3.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남진우 / 문학동네
우파가 됐든 좌파가 됐든 이 나라에선 사적인 것을 희생하고 공적인 대의를 위해 이바지 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왔고 소속원들에게 그것을 강요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행진하는 방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고종석의 소설은 우리에게 길들어진 사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사물이나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느슨하고 평이한 듯하면서도 읽어나가다 보면 묵직한 감동과 함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고종석의 이번 소설집은 최근 우리 문학이 거둔 중요한 수확이라 말한다.
고종석의 <제망매>에 대한 결론을 내는 방식이다. 역시 어려운 단어, 이해 안가는 합성어, 부담스런 수동태는 찾아 볼수가 없다. 고종석 작가는 현재 연재소설을 쓰고 있는데 가끔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늘 그래왔듯이) 올려주신다. 그걸 '발상의 전환'이라고 정의내린 남진우 평론가도 근사하고.
#3. 시원시원하게
<퀵> - 출연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고창석 / 감독 조범구
별 생각없이 별 기대없이 본 영화가 역시 대박이다.
화끈, 시원, 쾌속, 폭발 !!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입을 벌린 채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 두 명의 주연배우들을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해운대>의 바캉스 커플이었다. 강예원은 <하모니>의 슬픈 역보다 코미디가 몸에 맞는 배우같았고 형사로 분한 고창석은 날로 비중이 높아지는 듯하다. 거의 주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인권도 매번 웃겨서 죽을뻔 하는 배우중 한명이다. 두어 번 박장대소를 책임져 준다.
난 책의 경우엔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데 영화는 대충 넘어간다. 재밌게 봤으면 몇군데 의아해도 그러려니 한다. 연기력, 연출력, 시나리오 등등 분석해가며 별점 주는 건 내 몫은 아닌 것 같다.(그럴 실력도 안되고 ㅋ) 이 영화도 흠잡고 싶지 않다. 이 정도면 대만족 케이스에 속한다. 왕추천 이올시다, 라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돈 만원도 안들이고 두어 시간 이처럼 스트레스 날려버릴 꺼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해리포터 안보길 정말 잘했고 딸아이와 하이파이브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예전엔 자주색 세피아같은 한물간 자동차만 폭파하더니 우리도 사정이 많이 좋아졌는지 불타는 자동차 종류도 다양해졌다. 스턴트맨들 고생이 많았겠다. 예고편으로 7광구를 보여주던데 분위기가 괴물분위기였다. 8월이 기다려진다(너무 기대하면 실망인데 ㅋ)
이번 주말도 꽤 알찬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야 휴가를 가건 캠프를 보내건 우리는 이렇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