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주말이 다가 옵니다. 남부지방엔 비가 내린다죠. 비가 오려는지 어깨가 쑤신다던 어머니가 생각나요. 저는 벌써부터 비소식에 마음이 다 쑤십니다. 일기예보가 이쑤시개처럼 그곳만을 쿡쿡 찌르고 가는 것 같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제부터 금요일에 아예 대놓고 청승을 떨어 볼까 생각중입니다.
저는 며칠 전 어느 지인으로부터 ‘진정성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처음엔 농담처럼 웃어 넘길 수 있었는데 글쎄 진.정.성.이라는 세 글자가 자고나도 영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사연인즉슨, 저는 최근에 자주 방문하던 카페에 제가 올린 글들을 모조리 삭제를 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삭제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1. 진.정.성.
유일하게 온라인상에서 (그래도 활발하게)활동하던 카페였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갔었고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몇 명 사귀었죠. 그곳에서 저는 리뷰는 물론, 제 개인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고 저는 그것에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지 않아왔습니다. 사적으로 써내려간 제 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지(얼굴보고 만나면 안그런데 글로만 만나면 울컥증이 도져서요) 알게 모르게 일 년 사이 제 글을 좋아라 해주시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누군가가 저의 리뷰를, 저의 일상과 생각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요. 지금도 누구신지는 물증은 없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글도 그 범위에 포함될 성 싶지만요) 가만 생각해보니 운좋게도 리뷰대회에 잇달아 선정되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점이후 부터였던 것 같아요. 카페를 방문하는 분들은 대부분 온라인 서점에서 서재활동을 하거나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어요. 늘 하는 이야기지만 ‘책 좀 읽고 글 좀 쓰는’. 우연히 카페에서 제 글을 보고 온라인 서점에서 그들끼리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누구라고 콕 집지는 않았지만 저는 (앞뒤 정황상) 자격지심에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 적도 있구요. 사람의 심리가 간사한 것이 좋은 이야기는 당연해 보이고 나쁜 이야기는 가슴에 박히더군요. 그 중에서도 ‘기를 쓰고 리뷰대회 일등을 하려고 악착같이 구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혼자 잘나서 다른 사람의 글을 무시하는 사람’, ‘출판사에서 편애하는 사람’, ‘표절했다고 신고하는 사람’등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았을 땐 제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 지 방향을 정해야 했습니다. 암튼,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저는 최초에 제가 뭐라고 떠든 말과 글이 어떻든 원인이 되어 흘러 흘러 각색되고 재구성된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상하게도 옛날에 올린 글들이 조회수가 늘어난) 1년간 카페에 올린 글들을 눈물을 머금고 사정없이 지워버렸어요. 가슴에 축구공만한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가더군요..그러나, 포스트를 삭제했다고 제가 그 카페를 탈퇴할 생각은 없었기에 저는 닉네임을 바꾸고 그냥 참여없이 한달 동안 짝사랑만 했습니다.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았더니 저를 공격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바뀐 닉네임으로 두어 개 덧글을 달았는데....저를 알고 있던 카페분이 그 닉으로 단 덧글에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예전으로 돌아오라고 충고와 위로를 해주셨어요. 그말을 듣자 바보처럼 눈물이 나더군요. 그분은 제가 닉네임을 바꾸고 조용히 지내던 이유를 조금은 짐작하고 계시던 분이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고마운 마음에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더라구요.
진정성. 진정성. 며칠째 입안에서 맴돌던 단어를 읊어 봅니다.
저는 궁극에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는 생각때문은 아닙니다. 책 많이 읽는 분에 비하면 저는 독서량도 많지가 않습니다. 일차적인 건 세상에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본능이구요. 세상이 그런 나를 좀 알아주었으면 싶어서입니다.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기왕 읽은 책 리뷰쓰면서 글공부나 해보자는 속셈이 반 이상이었어요. 만약 리뷰써야 하는 책이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면 그래, 이번엔 ‘담배’에 대해 공부해보고 ‘담배’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다 써보자, 뭐 이런 식이었어요. 그렇게 써낸 리뷰니 비록 수상은 못하더라도 나중엔 (따로 하기 힘든)담배공부는 했다는 소중한 기록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 방법이 떡밥에 걸리는 확률이 많아지자 저 친구는 무슨 각종 리뷰대회만 좇아 다니는가보다, 싶었나 봐요. 어떤 분은 저에게 이제 제발 리뷰 그만 쓰고 당신의 글을 쓰라고, 손잡고 충고하신 분도 있어요. 눈물이 핑 돌 정도로요. 할 수 있다고요.
#2. 복.수.심
리뷰대회 참가를 의식적으로 줄이고 소설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나이에 그걸 어딜 가서 합니까. 소설이 쓰고 싶다고 앉은 자리에서 술술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막상 무언가 해보려 하니 덜컥 두려워지더군요. 작법이나 테크닉보다는 마음가짐을 다지고 싶었는데 그런 제 맘을 알았는지 좋은 책을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은 소설 창작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를 말하는 책입니다. 총 분량도 175p이기에 저는 숨가쁘게 갈증을 풀듯 앉은 자리에서 벌컥 벌컥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그냥 좀 서러운 마음에 그 마음 잘 안다는 선생님이 호호 해주시는 것 같은 책입니다. 내용도 쉽고 예로 들어주신 문장들도 하나같이 뇌리에 쏙쏙 박히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승우 작가는 <깊은 밤, 기린의 말>을 통해 사실 가장 어렵고 지루한(?) 소설을 쓰시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가르치시는 건 달랐어요.
글의 요지는 작가라는 사람들이 타고난 유전자로 천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신들린 듯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고쳤기 때문에 소설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이라는 말씀이었어요. 재능 이전에 소설을 쓰고 싶고 쓸 수 밖에 없는 글감, 사연과 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원래 문학에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쪽에 속했고, 개인적으로 사연이 많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저에겐 천금같은 소식이었죠.
그 많은 조언중에서도 제 심장을 강타한 문장은 ‘지상에 견고한 집이 있는 사람은 상상속에 허구의 집을 지을 필요가 없’고 ‘불만과 의혹, 욕망과 의도가 말을 만들고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라며 이청준 작가는 그것을 ‘복수심’이라고 칭했다는 말씀이었어요. 언젠가 박완서 작가가 세상에 복수하려고 글을 썼다는 인터뷰가 퍼뜩 기억이 났습니다.
“ 현실의 질서에는 자신이 굴복하고 실패 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번에는 그 세계가 거꾸로 자신에게 굴복해올 수 밖에 없도록, 그 세계 자체를 아예 자기식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을 어떤 새로운 질서를 음모하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좀 더 문학적인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자기 삶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종의 복수심이지요.”
이청준, 「지배와 해방-언어 사회학 서설3」, 『자서전들 쓰십시다』, 2000, 열림원
-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中에서 , 이승우 38 p
맞습니다. 복수심. 복수심. 복수심. 진정성처럼 눈물이 핑 돌았지요.
그리고 저는 소설의 종착지로 어울리는 책, 2011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지영작가의 글을 꾹꾹 눌러서 읽어 보려구요. 작년에 박민규 작가가 수상할땐 벌써 1월달 부터 읽어 놓고선 이번엔 좀 늦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상문학상은 여느 문학상보다 형식이나 기법이 독특한 작품들이 대상으로 수상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문학적 사건, 실험적 도전에 더 의미를 두는 상인 듯해요. 이번 작품도 기법이 독특했거든요
청승맞지만 저는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와 작가의 자선작인 <진지한 남자> 를 지나 ‘나를 울게 만든 수많은 독자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는 수상소감을 읽고는 결국 울어버렸습니다. ‘나를 울게 만든 수많은 독자’ 그 부분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더군요. 공지영 그녀야말로 지난 시절 숱하게 저를 울게 한 작가였습니다. 저도 그 중 한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틀림없이 저도 그중 한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치 수상을 제가 한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특이한 건 이 작품의 화자는 바로 공지영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소설을 보지 못했어요. 이런 소설을 자전소설이 아니라 사소설이라고 하더군요. 수상작들 중에서 대놓고 자기 이야기인 소설은 기억 나지 않아요. 소설 내용에 자기 작품과 실제 경험이 버젓이 등장하는 소설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왔습니다. 화자와 주인공, 작가가 일체하는 소설. 제가 느끼기에 문단을 향한 일종의 자존심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누가 뭐래도 난 내 방식대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뭐 이런식의) 공지영 작가는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동안 사실 문단에서 (비슷한 연배인 신경숙, 은희경 작가보다)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속된 말로 문단이 원하는 바 대로 가지 않았지요. 그런대 이번에 오히려 그 독자적인 길의 끄트머리에, 맨발로 글목을 돌게 된 그 막바지에 그간의 성취를 인정해주는 것이니 본인은 얼마나 기쁘면서 또 서러웠을까...싶었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공지영은 친구에게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라는 문장을 문자 메시지로 보냅니다. 마치 제가 문자를 띵똥하고 받은 것 처럼 심장이 저릿했습니다. 작가 친구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래, 그런 친구가 없다면 내가 되어줄까, 뭐 이런 기특한 생각도 해보구요. 대충 제목도 글목을 도는 것이 아니라 길목을 도는 것이라 보았었건만, ‘글목’은 ‘글이 모퉁이를 도는 길목’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만든 언어입니다. (완전, 맨발로 돌았다는 거 아닙니까.) 저도 언젠가 이렇게 맨발로 나신인 채로 내가 쓴 글이 모퉁이를 돌아 가는 길목에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그 작가의 삶의 총체다’라는 이승우 작가의 말을 그대로 실현한 작품입니다.
초심을 알려주는 책과 그것의 완성도 높은 결정판을 확인하는 책을 가만히 껴안습니다. 어쩐지 그 중간은 제몫일 듯하네요. 그 중간을 열심히 채워 나가는 것 만이 진정성과 복수심을 해결하는 길인 것 같아요.
이번 주말은 진정성과 복수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사랑해'말하고 나면 더욱 사랑하게 되듯이 이렇게 적고나니,
진정으로 복수하고 싶습니다...언젠가는 말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