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중경삼림>의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두 번째보다 첫 번째가 더 낫지 않나 싶은 쪽으로 생각의 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두 개의 이야기 모두 매력적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고.

 


경찰 663(양조위 분)과 페이(왕정문 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아마 이야기가 반쯤 덜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럴 정도로 페이는 이 노래에 미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3년 앞둔 1994,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홍콩의 밤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아마 그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 정권과의 기묘한 방식의 동거가 결국에 가서는 강력한 억압과 족쇄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항상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말이다.

 


페이는 사촌오빠의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새로운 점원이다. 그녀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하지무와 잠시 대면하고 곧바로 주변을 순찰하는 경찰 663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경찰 223663의 공통점은 바로 둘 다 경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에 실연했다는 점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사장은 영업 신장을 위해 맨날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샐러드만 사다 주는 663에게 생선튀김도 한 번 사다 주라고 권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피자도 권했던가. 이게 사단이 되어, 무더울 여름날 하이네켄 맥주를 즐겨 마시던 스튜어디스 애인을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가 버렸다. 이런 경우엔 사장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음식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는데 사랑은 아마 말할 필요도 없었겠지. 663의 여자친구는 바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편지 한 통과 집열쇠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남겨둔 채.

 

가게 점원들은 사장을 필두로 해서 모두 편지를 뜯어서 본다. 그리고 페이에게 그 내용을 전달할 임무를 맡긴다. 663은 편지를 잠시 맡아 달라고 말한다. 그 다음부터 우리가 잘 아는 페이의 663 집의 유쾌한 침투작전이 시작된다. 그 시절에는 재밌게 보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모두 범죄였다! 놀랍지 않은가. 우선 타인의 편지를 훔쳐보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페이가 663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거다. 이건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

 

<중경삼림>에는 왕정문(혹은 왕비)이 부른 <몽중인>(Dream Lover)이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663의 집에 페이가 무단침입하던 중에 한 번 그리고 엔딩 컷에서 한 번. 음악을 들으면서 약간 전율했다고나 할까. 이제는 지나가 버린 오래전 청춘의 기억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663과 사랑에 빠진 페이는 열쇠로 그의 집을 무시로 드나들면서 재밌는 행각을 벌인다. 그러니까 전 애인인 스튜어디스 주가령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를 만들었지만, 페이는 스스로 갈라테아가 되고자 한 걸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결국 663의 집에 맘대로 드나들던 페이는 결국 그에게 꼬리가 밟히고 만다.

 

삼십대 초반의 그윽한 눈빛의 양조위가 맡은 경관 663은 정말 사람 좋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들이대는 페이의 무거운 짐을 들어 주기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전 애인이 다시 돌아왔을 거라는 직감에 느닷없이 자신의 집으로 들이닥친 663은 집에 숨어 있던 페이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건 좀 억지스러웠는데. 어쨌든 재밌긴 하더라.

 

자신만 바라보던 페이의 감정을 드디어 알게 된 이 남자는 페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어느날 밤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고. 그리고 페이는 캘리포니아 바가 아니라 스튜어디스가 되어 진짜 캘리포니아로 날아간다. 사촌오빠인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사장에게 663에게 편지를 한 장 건네주라고 했던가.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 이전의 촌스런 단발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변신해서 등장한 페이. 아마 경찰을 때려치우고, 페이의 사촌오빠에게 가게를 인수 받아 새로운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만나고, 다시 한 번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이 흐르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처음 이 영화를 볼 적에는 그저 캘리포니아가 이상향으로 제시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캘리포니아는 고독하고 불안한 청춘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얼른 홍콩에서 탈출해서 사시사철 태양이 내리쪼이는 곳으로 튀라고. 나중에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 어서 자유롭게 살 길을 모색하라고 WKW가 영화 속에 숨겨둔 지령이었던 것이다.

 

페이가 663의 집에 가져다 들이 붓는 금붕어 역시, 홍콩이라는 시공간에 갇힌 그네들의 다른 상징으로 읽힌다. 페이가 663의 전 애인인 주가령의 흔적을 지우려는 부단한 노력도 애절하기만 하다. 돋보기를 듣고 침대 위에서 긴 머리카락을 찾아낸 페이는 633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의 머리를 들춰 보기도 한다. 이 정도면 편집증 아닌가? 한편으로는 우스워 보이는 장면들도 심리학적 분석의 틀에 넣어 보면, 좀 그렇다.

 


세월이 그렇게 오래 흘러도 663 역을 맡은 양조위의 눈빛 연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의 전율을 일으키는 기타 사운드는 최고였다. 동경의 대상이던 공간이 홍콩이 예전 같은 모습을 잃어버린 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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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4-08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영화라 레삭매냐님 리뷰 읽으니 다시 또 보고싶어지네요!

아~~주거침입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죠ㅋ 그것도 감히 경찰의 집을ㅋㅋㅋ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고무장갑을 끼었던가요? 😆

왕정문의 크랜베리스와 닮은 듯 다른 가창력과 노래 때문에 더 좋았고 양조위 이 영화에서 젤루 눈빛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레삭매냐 2022-04-08 19:37   좋아요 2 | URL
이건 뭐 봐도봐도 질리지도
않고 또 새로운 것들이 보이니
과연 걸작이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니깐요. 그 시절에는 걍
일할라고 고무장갑을 꼈나
싶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치
밀한 플랜!이었네요 그래.

크랜베리즈의 원곡인 <드림
즈>와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의 <몽중인> 참
으로 좋아했던 기억입니다.
오리지날 CD를 심지어 홍콩
HMV에 직접 가서 공수해 왔
던 것으로... 그러합니다 넵.
 


예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달궁에서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이제는 잘 읽지 않는다는 소세키 작가의 책이 한국에서는 이래 인기가 있나 하고 말이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보니 밀란 쿤데라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마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 그의 전집이 나온 경우가 있었던가 싶다.


어쨌든 최근 북플에 소세키 작가의 책들을 열심히 읽는 분들이 계셔서 나도 숟가락을 얹어 본다.

 

문제는 책만 사들이고 읽는 건 소홀하다는 것이다.



어제 인근 헌책방에 가보니 모두 다섯 권의 소세키 작가 책들이 오롯하게 책선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다 사들일까 하다가... 아 참 내가 <도련님>은 그전에 이미 읽었었지. 컬렉션이라고 하면서도 왠지 예전에 읽은 책은 안 살라고 하는 마음이란 참.

 

어쨌든 그래서 두 권을 땡겨왔다. 램프의 요정이 제공하는 적립금을 모두 다 땡기니 만원 안짝으로 두 권을 데려올 수가 있었다.



 

지난주에 사들인 발터 벤야민의 책주인과 겹치는 이가 아닌가 싶다. 책을 비닐로 싼 실력이 거의 유사하다. 그러니까 두 책들의 주인은 같은 사람이라는 합리적 결론에 도달한다.

 

<우미인초>는 생각보다 두툼했다. 아 예전에 현암사에 일하던 지인이 도서정가제 실시 이전에 지인 찬스로 소세키 시리즈를 싸게 살 수 있다고 했을 적에 모두 질렀어야 했나 싶다. 그리고 보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렇게 해서 한 개 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인지 송라인도.


어쨌든 어제 사서 <갱부>는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근데 초반부가 약간 모호해 보이는데. 오후에는 좀 읽을 수 있을까. 요즘 이책저책 마구 사들이는데, 읽는 속도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좀 더 덧붙여야지 일단 밥은 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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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5 2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암사 소세키 전작 모으는데 반갑군요 ㅋ 왠지 중고로 모으고 싶어서 열심히 찾는데 잘 안나타나는 작품들이 있더라구요 😅 저도 갱부 초반만 읽었는데 약간 웃긴 분위기더라구요 ㅋ

레삭매냐 2022-04-08 17:06   좋아요 0 | URL
나름 책읽기 슬럼프라 완독을
못하고 이책저책 집적거리고만
있네요.

그래도 소세키 선생의 <갱부>
는 꾸역꾸역 읽고 있답니다.

어려울수록 책사냥 하는 재미
가 있지 않을까요? ㅋㅋㅋ

mini74 2022-04-05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책은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거 같아요. 색감도 예쁘고 ㅠㅠ 사놓고 왜 읽지를 못하니! 이건 제 맘의 소리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4-08 17:0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현암사 소세키 작가
책은 컬렉팅하는 맛이 나더라구요.

저에게 하시는 말쌈이신 줄요!!!
왜 사서 읽지는 않고 뻐팅기냣!

라로 2022-04-06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책을 일본에서는 잘 읽지 않는다니 좀 서운한데요.^^;;(내가 왜? 벌써 팬심이;;;)
저 고양이... 다 읽었어요,,, 참 좋았습니다. 특히 세 남자가 수다떠는 거 읽으면서는 저런 남자들이 귀엽구나 싶으면서 쪼잔하고나 싶고요,,^^;; 하지만, 소세키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게 참 쪼잔하게 매력적이라고 할까요?? 책 읽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품 같기도 하고,,은근 매력적이더라구요. 저는 왜 그런 쪼잔한 남자들에게 끌리는지??ㅠㅠ
암튼 다음에 사 논 마음이랑 다 읽어보려고요. 근데 사놓고 읽지 못하는 일등은 저에요.ㅠㅠ

레삭매냐 2022-04-08 17:14   좋아요 1 | URL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현대 니혼진들의 성향을 봤을
때, 심심한 소세키 작가의 책들
이 인기가 - 뭐 그렇습니다.

전 아직 <마음>은 수배하지
못했네요. 동네 책방에 있긴
한데 다른 책들을 집어 왔네요.
아직도 있더라구요.

전 지금 <갱부>를 읽고 있답
니다. 놉, 제가 단연코 1위일
겁니다 확신합니다.
 


 

네 번째 보는 영화 그래도 재밌기만 하다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존 파워스가 저술한 <왕가위>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좀 보다가 빌렸다. 내가 처음 왕가위의 영화인 <중경삼림>을 볼 때까지만 해도 스타일리스트 감독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거장이 된 모양이다. 이십여 년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나는 <중경삼림>을 극장과 시네마테크에서만 세 번을 봤다. 아마 그 뒤에도 비디오로 다시 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부정확한 기억에 따라 나는 이번에 네 번째로 <중경삼림>을 봤다. 오래 전, 브리티시 홍콩 시절에 청킹 맨션의 어느 허름한 숙소에서 방글라데시 아저씨들하고 단돈 8,000원에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당일치기로 마카오 여행도 했다. 밤길에 만난 한국 아가씨를 데리고, 청킹 맨션에 데려 와서 잘곳이 없어 소파에서 자리를 만들어주는 오지라퍼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땐 그랬지.

 

1994년 그러니까 <중경삼림>이 발표된 해이다. 그로부터 무려 28년이라는 세월이 무시로 흘러가 버렸다. 경찰 223(금성무 분)이자 하지무는 오늘도 홍콩의 거리에서 범죄자들을 잡는 경찰로 활약 중이다. 그의 나이는 24. 하지만 5년을 만난 애인 메이가 떠나 버렸다. 자신의 생일인 51일까지의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깡통을 먹으면 떠난 애인이 돌아오기라도 하듯, 그렇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파인애플 깡통을 사 모은다. 어느 편의점 직원은 그가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며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깡통을 떠넘긴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는가라는 아주 고전적인 질문의 출발점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페이저, 그러니까 삐삐 사서함의 비번이 영원한 사랑이었다나 뭐라나.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영원한 사랑도 상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즐겨 찾는 야간 레스토랑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새로운 직원 이름도 메이다. 주인장 아저씨는 실연에 시달리는 하지무를 위해 새로운 메이(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말을 덧붙이며)를 만나 보는 건 어떠냐며 슬쩍 떠본다. 아 그전에 노랑머리(임청하 분)하고 잠시 0.5cm인가를 조우하는 장면도 나오던가 어쩐가. 기억은 참 불친절하다.

 

영화 촬영 당시 금성무보다 20살 가까이 나이가 많던 임청하의 외모는 실연에 빠진 이십대 청년이 새로운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방부제 같은 미모를 과시한다. 해가 뜨는 날에도 레인코트를 입고, 밤에도 썬글래스를 착장한 노랑머리 임청하는 마약밀매상이다. 6인조 인도 사람들을 고용해서, 옷과 신발 그리고 아이 인형 등에 마약을 숨겨 밀반출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들의 여권까지 압수했지만 항상 딴짓을 하던 인도 사람들은 노랑머리가 공항 카운터에 간 사이 종적을 감춘다.

 


자 이제부터 노랑머리의 그들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다. 빡친 그녀는 지하철 수하물센터에 보관된 권총으로 무장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기세로 봐서는 무슨 일이라도 당장 벌어질 것 같은 그런 태세다. 역시나 아열대 지역이 홍콩의 무더위를 보여 주는 장면 중의 하나는 노랑머리가 냉장고 문을 열고 열기를 식히면서 유에스 100달러짜리를 척척 세서 인도인들에게 나눠 주는 장면이다. 인도인 패거리들에게 쫓기던 노랑머리는 다섯발의 총탄으로 침사초이의 어수선한 거리에서 3명의 인도 사람들을 죽이고 가까스로 지하철에 탑승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아마 그들에게 잡혔더라면 어떻게 될지 모를 그런 순간이었다.

 


최종적으로 연인 메이에게 차인 사실을 확인한 하지무는 어느 바에 들어가 처음 들어온 여인과 사랑에 빠지겠노라는 요상한 구상을 하고 있다. , 그전에 실연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는 여사친들에게 일본어와 광둥어 그리고 베이징어를 섞어 가며 전화질을 해보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사실 감정에 휩싸여 가장 하면 안되는 행동을 이십대 청년은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왕칼 아니 왕가위의 설정대로 하지무가 진치고 있는 바에 노랑머리가 들어와 쿨하게 위스키를 주문한다. 그렇지 바에서는 맥주보다는 위스키가 제격이지. 그리고 자신의 결심대로 그녀에게 들이대기 시작하는 청년. 노랑머리는 자신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라며, 대화 상대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우리의 하지무가 그렇게 쉽게 물러설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결국 쉬어야 한다는 노랑머리의 말에 어느 호텔 방으로 가지만, 술과 총격전의 피로에 쩐 노랑머리는 썬글래스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뻗는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경찰 223은 두 편의 광둥어 영화와 다섯 그릇의 샐러드를 먹는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채로 자면 발이 붓는다면서 아주 친절하게도 노랑머리의 하이힐을 벗겨 자신의 넥타이로 씩씩하게도 닦아준다. 오래 전에도 그랬지만, 다시 봐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당장 3명의 사람을 죽이고 정처 없이 유랑하는 노랑머리를 순간적으로나마 사랑하게 된 경찰 223. 그 둘의 관계란 정말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 사실을 223이 알았더라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체포하기 위해 노랑머리에게 수갑을 채웠을까 과연. 그렇게 진실이란 상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걸 왕가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에 도달하기 전까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하지무는 눈물을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해 비가 줄줄 오는 새벽 558분에 운동장을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삐삐마저 운동장에 두고 떠나려 하는 순간, 삐삐가 울린다. 702호실 친구가 보낸 해피 벌쓰데이라는 짧은 메시지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 우리네 삶은 그런 법이다. 가장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우리의 임청하 누님의 이야기도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서양인 바텐더를 찾아가 가차 없이 총격을 가한다. 그리고 내내 쓰고 있던 노랑머리 가발을 내던지고 흑발로 돌아서는 장면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된다.

 

처음으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볼 적에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중국 반환을 앞둔 청춘들의 불안한 심리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중국의 국가적 수치의 상장이었던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임청하가 노랑머리 가발을 벗어 던지고 다시 흑발로 돌아가는 시퀀스는 미래에 대한 예언적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이 통치하던 시절보다 과연 홍콩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식민지 시절보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한다면,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 싶다. 한 때 싱가폴과 함께 영국이 품은 동양의 두 개의 진주라고까지 불렸던 홍콩은 동남아시아 금융 허브이자 무역 거점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치적 자유가 후퇴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번영 역시 퇴조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으로 활발한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입장에서 투자처로서의 홍콩의 매력은 브리티시 홍콩 시절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 그런데 사반세기도 전에도 이런 홍콩의 어두운 미래를 예언한 이런 수작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제는 그런 영화를 볼 수가 없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중국의 광전총국이 선전영화로 영화판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자국 영화에 출연시, 외국인이라는 표기를 명시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지 않은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긴 하지만, 영화나 음악 혹은 문학 같은 소프트파워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는 그네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네 삶을 결정짓는 정치로 귀결되기 마련인가 보다. 왕칼 아니 왕가위의 영화 스타일 넘치는 삼삼한 연애 스토리 <중경삼림>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중국/홍콩 영화의 우울한 오늘날까지 말하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뱀다리] 모두가 다 알겠지만 2편의 주제가처럼 등장하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과는 결을 달리하는 멜랑콜리하면서도 비내리는 홍콩 거리를 연상시키는 그런 블루지한 사운드트랙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주크박스도 주목할 만하다. 휴대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된 시절에 돈을 넣어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크박스는 이제 시대의 유물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밀레니엄에 주크박스는 자본주의 총아 같은 존재였다. 뭐 궁극적으로 보면 지금도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완전 자본주의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후불제가 아닌 선불제로. 내가 가진 자본과 선호하는 음악에 대한 등가성이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은 핸드헬드 카메라만큼이나 음악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왕가위 스타일의 흘려찍기(?)는 아마추어 같다는 비판을 받았다. 어쩌면 한물간 누벨바그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왕가위에 대한 의도적 폄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거장의 재기 넘치는 실험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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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04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왕가위 넘 반갑네요. 우리 나라에서도 짝퉁영화가 만들어진거 기억납니다 ㅠㅠ 암울한 홍콩 분위기와 배우들 참 멋있었는데 말이죠. 양조위 그 헤어스타일 넘 좋아서, 남편에게 그 스타일 해보라고 했다가 ㅠㅠ 남편은 그냥 동네 이발소아저씨더군요 ㅠㅠ

레삭매냐 2022-04-04 19:16   좋아요 3 | URL
부군님의 썰, 왤케 재미집니까 기래 ~
빵빵 터졌습니다.

WKW를 읽으면서 오래 전 기억들
이 퐁퐁 샘솟아서 저주 받은 걸작
이라는 <아비정전> 등을 하나하나
구해서 보려고 합니다.

울나라에서 맹근 짝퉁영화의 제목
은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mini74 2022-04-04 19:23   좋아요 3 | URL
홀리데이인 서울 이었어요. 보고나서 다들 화내며 나왔던 기억나요 ㅎㅎ모텔 선인장도 그랬지요 ㅠㅠ
 


너 자신의 사유하지 않음을 경계하라

 

어떤 책들은 읽었는데 리뷰를 쓰지 못한 그런 책들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읽은 한나 아렌트 작가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랬다. 리뷰로 남기지 않은 책들은 왠지 읽지 않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틀 전에 우연히 너튜브로 김지윤 박사가 진행하는 지식플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게 됐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메모를 해두었다. 그 메모를 바탕으로 그 유명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단상을 적어 보려고 한다.

 

1960511, 이스라엘 비밀첩보부인 모사드는 10일 전에 위치와 신원을 파악한 전직 SS요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밀리에 체포했다. 아이히만은 프라하의 도살자 혹은 금발의 짐승이라 불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휘하에서 최종해결책으로 명명된 유대인 절멸계획을 실행에 옮긴 전범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나치 전범들은 전범재판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과 로마에서 친나치주의자들이 계획한 이른바 오데사 프로젝트로 신원을 감추고 비밀리에 프랑코가 통치하는 스페인의 종교시설이나 라틴 아메리카로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바티칸의 오스트리아 출신 알로이스 후달 주교는 이런 나치 전범들을 옹호한 인물로 유명하다.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해서 저널리스트 활동을 하고 유대인 한나 아렌트에게 <뉴요커>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아이히만 재판을 현지에서 보고해 줄 것을 의뢰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출신의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제자로 철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기의 재판이 열리는 예루살렘으로 간 한나 아렌트는 꼼꼼하게 재판을 기록했고,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난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렸다.

 

알다시피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들이 악당이 되는 이유는 바로 사유를 하지 않아서다.

 

15개 죄목으로 기소된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두 가지 이유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나는 재판 절차상의 적법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은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일을 했다는 이유였다.

 

사실 모사드 체포조의 아이히만 납치는 국제법상 주권국가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도밍고 페론은 그동안 나치 전범들을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해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이히만이 무국적자이고, 열혈 청년들이 애국심에 그를 체포했노라는 변명을 내놓기도 했다. 페론이 통치하던 아르헨티나에는 야세노바츠 수용소 지휘관 출신의 딘코 사키치, 1943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서 민간인 355명을 학살한 에리히 프리프케 그리고 아우슈비츠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린 요제프 멩겔레 등이 숨어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모사드는 요제프 멩겔레가 아르헨티나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얻고 그도 세트로 잡아 들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신중한 성격의 멩겔레가 모사드의 포위망을 벗어나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아이히만 재판에서는 사법 시스템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불소급의 원칙 문제가 대두되었다. 나치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은 1950년 제정되었는데,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들은 모두 1945년 종전 전에 벌어졌다. 동시에 재판관할권(jurisdiction)도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1948514일 세워지지 않았던가. 뉘른베르크 법정도 마찬가지였지만, 승자의 법정이라는 취약점이 지적되었다. 나치 전범들이 처벌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쟁 기간 도중 미영이 주도한 무자비한 전략폭격으로 무고하게 죽은 독일 시민들에 대한 전쟁범죄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졌던가?

 

이런 첨예한 주장들에 더불어, 카를 야스퍼스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유대인에 대한 범죄가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국제 재판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칸트의 정언명령 타령을 하면서 자신은 그저 상부에서 내린 지시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요설을 펼쳤다. 철학 박사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칸트의 정언 명령인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률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치 시대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률은 오로지 총통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충성 뿐이었다. 타인 그러니까 유대인의 존엄성은 부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존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핵심 키워드로 잡은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thoughless 그러니까 사유하지 않음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패전과 대공황으로 발생한 상상을 초월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영토 상실과 무장해제라는 치욕적인 국가적 상황에서 독일 시민들은 국가사회주의당의 아돌프 히틀러라는 기괴한 인물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추대했다. 그는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존재로 독일 시민들에게 전쟁으로 일시적인 환각 효과를 제공했으나 궁극적으로는 파멸의 길로 인도했다.

 

엉터리 지도자와 국가사회주의자들의 기만과 선전선동에 넘어간 다수 독일 시민들은 정당한 방식의 사유하기를 포기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떠들던 나치주의자들은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라고 시민들에게 강제했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이 나치 학살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의 일원이 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양민들과 유대인을 일선에서 학살했다.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에 멀쩡한 양식의 독일 시민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은 아이히만의 주장대로 그야말로 톱니바퀴처럼 거대하고 조직적인 학살 시스템에 종사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아이히만의 재판 경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감없이 그대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사실 이스라엘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법무부 장관 기드온 하우스너의 지휘 아래 진행된 아이히만 재판은 처음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유대주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정치적 효과를 이스라엘 정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재판을 통해 얻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시종일관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다루게 되면서 한나 아렌트는 지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됐다. 저명한 유대인 학자이자 히브리 대학의 교수였던 게르솜 숄렘은 편지로 아렌트가 유대인 부역자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 부분, 자신이라면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사랑(love of the Jews)이라는 개념이 부족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한나 아렌트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숱한 비난과 외면 그리고 협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생존 혹은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이유로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는 시절에 다시 한 번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당연히 우리는 특별한 악에 대해서는 생리적 거부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스멀스멀 파고 들어오는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넘겨 버리는 것 같다. 그런 평범한 악이 권력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옥죄어오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저항을 하게 될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가서 사유하지 않음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음을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역사는 우리에게 말없이 알려주지 않고 있는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딱 그만큼의 무게로 3월의 나에게 다가섰다. 이 책은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다. 내가 준수해야할 보편적 도덕법칙의 본질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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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4-02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저번주부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고 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외롭게 가는 그 길을 레삭매냐님이 비춰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2-04-03 09:10   좋아요 0 | URL
고전이 달래 고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네요.

단발머리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빠이팅.
 


한 달을 마구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월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도 벌써 1/3이 지나가 버렸다는 말인가. 한 시간은 참 긴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한달이 금방이다.

 

이달에는 독서 슬럼프였다. 도통 책이 손에 잡혀지지 않더라.

그냥 너튜브나 보면서 하세월한 그런 느낌. 그리고 보니 너튜브 보면 시간 참 잘 가더라.

하나의 낙이 되었다. 책은 점점 더 멀리하게 되고. 뭐 다 그런 거지.

 

여튼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서 이달에는 총 7권의 책들을 만났다. 월초에는 예전에 한 번씩 읽었던 타리크 알리의 책들을 다시 읽었다. 모던 클래식이라 할 만한 그런 책들이다. 왜 그의 다른 책들이 번역이 되지 않는지 나는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예전 같으면 열 권 채울라고 분발했을텐데, 그게 무슨 의미냐 싶어 그만 둬버렸다.

 

<석류나무 그늘 아래>가 특히 좋았다.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지만... 어쨌든 많은 독서가들이 만났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중고책으로 만난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도 죽음과 소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그런 책들이다.

 

캘린더에는 나오지 않지만, 박시백 화백의 <고려사>도 재밌게 읽었다. 아 그리고 보니 굽니시스트의 <임오군란>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어야 하는데...

 


어제는 몇 달 동안 파란색으로 되어 있던 잡주가 떡상을 해서 5퍼 남짓한 수익을 냈다. 그러니까 주식으로 책값을 벌었다는 거다. 다른 퍼렁이 녀석들은 어쩔... 어쨌든 간에 마침 중고서점에 발터 벤야민의 책들이 왕창 나와서, 바로 달려가서 세 권을 사들였다. 이달에는 책도 많이 산 모양이다. 안 읽거나 두 번 읽지 않을 책들 그리고 소장각이 아닌 책들을 정리한다면서 책을 계속해서 사들이다니... 뭐 그래도 주식으로 돈 벌었으니까라며 위안을 삼아본다.


예전 주인이 비닐로 잘 포장해 두어서 책이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도 한책 싸는데, 나보다 기술이 더 좋으신 것 같다. 근데 무슨 이유로 발터 벤야민의 이 책들을 모두 팔아 버린 걸까? 이 책들 말고도 다른 책들이 잔뜩 나와 있더라. 길 출판사에서 나온 벤야민의 책들은 중고서점에서 잘 만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사두면 언젠가는 읽겠지 싶은 마음이다.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말이지. 사실 당장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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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31 1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슬럼프여도 레삭매냐님은 가볍게 7권 이시군요 ㅋ <어떻게 지내요> 중고로 얻어가셨군요 부럽습니다~!!

가끔 중고에 희귀템 풀리면 좋더라구요. 무조건 바로 안사면 품절되더라는 😅

얄라알라 2022-03-31 12:09   좋아요 4 | URL
그니까요...˝가볍게˝가 뽀인트 ㅋㅋ

레삭매냐 2022-03-31 13:20   좋아요 3 | URL
그니깐요 ~!

중고서점에 책이 나오면 바로
사야 한다며 위로하렵니다 ㅋㅋ

특히 저희 동네에는 저랑 책취
향이 비슷하신 계셔서 빨랑 사
지 않으면 그분이 낚아채간답
니다. 빨랑 사야 해요 더더욱.

청아 2022-03-31 12: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틈틈히 너튜브 즐겨봐요.
특정 검색어를 눌러 관련자료들을 바로 둘러볼 수 있는게 좋더라구요.

레삭매냐님! 수익나신거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2-03-31 13:26   좋아요 4 | URL
너튜브를 즐겨 보신다면
제가 최근에 맛들인 너덜트
컨텐츠를 추천해 드립니다.

아주 재미집니다.

그니깐요, 어제 책값 벌어
서 룰루랄라 ~~~

단발머리 2022-03-31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떻게 지내요> 찜했습니다. 주식 수익으로 책 사신다니.... 너무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2-03-31 13:27   좋아요 2 | URL
순전히 운빨이었습니다.

몇달 동안 파란둥이였던 녀석
이 갑자기 떡상을 해서 책값
을 물어다 주네요.

그간의 경험으로 구조대가 올
적에 주저하지 말고 팔아라!
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슬프고 애잔
하고 뭐 막 그랬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얄라알라 2022-03-31 1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씀드려서....

레삭매냐님 (물론 디지털 세계에서이지만) 모르시는 분이 이 페이퍼 읽으시면, ‘이렇게 많이 읽고, 또 계속 읽을 계획 세우는 분이 독서 슬럼프?? 슬러어엄프라고 하심?‘

심지어는 달력에 담기지 않은 <고려사>도 읽으셨는데, 스ㄹ스ㄹ 럼프이심?^^

저도 실은 3월 초 많이 못 읽었어요. 하지만 월말에 열심 만회 중입니다

레삭매냐 2022-03-31 13:35   좋아요 3 | URL
예전에 한창 달리딘 시절
에는 마구잡이로 스무권씩
도 읽던 닝겡이라...

되돌아 보면 그 시절에는
권수 채우려고 막 읽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던지요 ㅋㅋㅋ

삼월은 이래저래 버거운
시절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2-03-31 13: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교 1등이 시험 망쳤다고 해서 몇 등이냐고 했더니
응, 성적 내려갔어
전교 2등이야~~
그 느낌으로 7권이나 읽으셨군요 ㅎㅎ
그래도 주식으로 수익 내시고 책도 구입하시니 항상 상쇄 가능한 삶을 살고 계셔서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석류 나무 그늘 아래~~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2-03-31 13:40   좋아요 4 | URL
램프의 요정 바닥 책쟁이로
그래도 왠지 한 달에 열권
정도는 닐거 주어야... ...

구조대가 와서 다행이었습
니다. 만날 파랑둥이들이랑
만 놀다가 간만에 빨강둥이
가 찾아와서 급반색했지요.

<석류나무 그늘 아래> 너어
무~ 좋은 책이랍니다. 강추
하는 바입니다.

가필드 2022-03-31 2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저도 살라딘 책 샀어요 ^^
저도 이번엔 일이 많아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다른 달보단 부진한 달이였네요

레삭매냐 2022-04-01 08:54   좋아요 3 | URL
살라딘이 중고책만 있을 텐데 -
잘 수배하셨네요 ^^

새이달에는 열심히 같이 달려
BoA요.

mini74 2022-04-01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책 팔아서 구멍을 메꿔야 하는 ㅠㅠㅠ 제 주식의 바닥은 어디인지 두번 다시 나는 주식하지 않으리 결심했습니다 ㅎㅎㅎ 큰 돈은 아니지만 매번 내려갈때마다 책 몇 권이 사라졌군. 이러고 있어요. 알차게 읽으신거 같아요. 전 3월은 딴 짓을 더 많이 한 거 같아요. 봄엔 봄바람 한 번 놔줘야 해서 또 ㅠㅠ 머리에 꽃 달고 언년이 하고 싶은 날입니다 *^^*

레삭매냐 2022-04-01 17:34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ㅋㅋㅋ
저의 수익은 기냥 빙산의 일각이라는.

뭐 크게 먹지는 못하고 걍 소소한 투
자로 가려구요.

날이 좋으니 저도 바로 뛰쳐 나가고
싶네요 꺄오~

라로 2022-04-01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주식 안 하는데 이제 매냐님 때문에는 아니지만 직장에서도 하라고 하고도 아니지만 해야할듯요,,, 저는 사실 책 값도 못 버는데요,,, 저도 3월 정리를 하겠지만, 쉬운 책을 몇 권 읽어서 확인 하진 않았지만 10권은 읽은 것 같아요. 알라딘 닝겐으로 할 일을 할 건가 싶고요,,, 아무튼, 이제 겨우 3월이 지나갔지만, 덕분에 알라딘 생활이 즐겁다는 중간 1/4분기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레삭매냐 2022-04-01 17:42   좋아요 0 | URL
그러합니다. 울희 알라딘 닝겡들
은 모름지기 한 달에 책 열권은
닐거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창하는 바입니다 땅땅땅 !!!

지난 한달간 충실하게 읽으신
라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덕분에 즐거운 알라딘 생활
을 하고 있답니다. 뭐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