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보는 영화 그래도 재밌기만 하다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존 파워스가 저술한 <왕가위>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좀 보다가 빌렸다. 내가 처음 왕가위의 영화인 <중경삼림>을 볼 때까지만 해도 스타일리스트 감독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거장이 된 모양이다. 이십여 년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나는 <중경삼림>을 극장과 시네마테크에서만 세 번을 봤다. 아마 그 뒤에도 비디오로 다시 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부정확한 기억에 따라 나는 이번에 네 번째로 <중경삼림>을 봤다. 오래 전, 브리티시 홍콩 시절에 청킹 맨션의 어느 허름한 숙소에서 방글라데시 아저씨들하고 단돈 8,000원에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당일치기로 마카오 여행도 했다. 밤길에 만난 한국 아가씨를 데리고, 청킹 맨션에 데려 와서 잘곳이 없어 소파에서 자리를 만들어주는 오지라퍼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땐 그랬지.

 

1994년 그러니까 <중경삼림>이 발표된 해이다. 그로부터 무려 28년이라는 세월이 무시로 흘러가 버렸다. 경찰 223(금성무 분)이자 하지무는 오늘도 홍콩의 거리에서 범죄자들을 잡는 경찰로 활약 중이다. 그의 나이는 24. 하지만 5년을 만난 애인 메이가 떠나 버렸다. 자신의 생일인 51일까지의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깡통을 먹으면 떠난 애인이 돌아오기라도 하듯, 그렇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파인애플 깡통을 사 모은다. 어느 편의점 직원은 그가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며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깡통을 떠넘긴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는가라는 아주 고전적인 질문의 출발점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페이저, 그러니까 삐삐 사서함의 비번이 영원한 사랑이었다나 뭐라나.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영원한 사랑도 상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즐겨 찾는 야간 레스토랑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새로운 직원 이름도 메이다. 주인장 아저씨는 실연에 시달리는 하지무를 위해 새로운 메이(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말을 덧붙이며)를 만나 보는 건 어떠냐며 슬쩍 떠본다. 아 그전에 노랑머리(임청하 분)하고 잠시 0.5cm인가를 조우하는 장면도 나오던가 어쩐가. 기억은 참 불친절하다.

 

영화 촬영 당시 금성무보다 20살 가까이 나이가 많던 임청하의 외모는 실연에 빠진 이십대 청년이 새로운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방부제 같은 미모를 과시한다. 해가 뜨는 날에도 레인코트를 입고, 밤에도 썬글래스를 착장한 노랑머리 임청하는 마약밀매상이다. 6인조 인도 사람들을 고용해서, 옷과 신발 그리고 아이 인형 등에 마약을 숨겨 밀반출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들의 여권까지 압수했지만 항상 딴짓을 하던 인도 사람들은 노랑머리가 공항 카운터에 간 사이 종적을 감춘다.

 


자 이제부터 노랑머리의 그들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다. 빡친 그녀는 지하철 수하물센터에 보관된 권총으로 무장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기세로 봐서는 무슨 일이라도 당장 벌어질 것 같은 그런 태세다. 역시나 아열대 지역이 홍콩의 무더위를 보여 주는 장면 중의 하나는 노랑머리가 냉장고 문을 열고 열기를 식히면서 유에스 100달러짜리를 척척 세서 인도인들에게 나눠 주는 장면이다. 인도인 패거리들에게 쫓기던 노랑머리는 다섯발의 총탄으로 침사초이의 어수선한 거리에서 3명의 인도 사람들을 죽이고 가까스로 지하철에 탑승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아마 그들에게 잡혔더라면 어떻게 될지 모를 그런 순간이었다.

 


최종적으로 연인 메이에게 차인 사실을 확인한 하지무는 어느 바에 들어가 처음 들어온 여인과 사랑에 빠지겠노라는 요상한 구상을 하고 있다. , 그전에 실연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는 여사친들에게 일본어와 광둥어 그리고 베이징어를 섞어 가며 전화질을 해보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사실 감정에 휩싸여 가장 하면 안되는 행동을 이십대 청년은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왕칼 아니 왕가위의 설정대로 하지무가 진치고 있는 바에 노랑머리가 들어와 쿨하게 위스키를 주문한다. 그렇지 바에서는 맥주보다는 위스키가 제격이지. 그리고 자신의 결심대로 그녀에게 들이대기 시작하는 청년. 노랑머리는 자신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라며, 대화 상대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우리의 하지무가 그렇게 쉽게 물러설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결국 쉬어야 한다는 노랑머리의 말에 어느 호텔 방으로 가지만, 술과 총격전의 피로에 쩐 노랑머리는 썬글래스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뻗는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경찰 223은 두 편의 광둥어 영화와 다섯 그릇의 샐러드를 먹는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채로 자면 발이 붓는다면서 아주 친절하게도 노랑머리의 하이힐을 벗겨 자신의 넥타이로 씩씩하게도 닦아준다. 오래 전에도 그랬지만, 다시 봐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당장 3명의 사람을 죽이고 정처 없이 유랑하는 노랑머리를 순간적으로나마 사랑하게 된 경찰 223. 그 둘의 관계란 정말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 사실을 223이 알았더라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체포하기 위해 노랑머리에게 수갑을 채웠을까 과연. 그렇게 진실이란 상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걸 왕가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에 도달하기 전까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하지무는 눈물을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해 비가 줄줄 오는 새벽 558분에 운동장을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삐삐마저 운동장에 두고 떠나려 하는 순간, 삐삐가 울린다. 702호실 친구가 보낸 해피 벌쓰데이라는 짧은 메시지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 우리네 삶은 그런 법이다. 가장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우리의 임청하 누님의 이야기도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서양인 바텐더를 찾아가 가차 없이 총격을 가한다. 그리고 내내 쓰고 있던 노랑머리 가발을 내던지고 흑발로 돌아서는 장면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된다.

 

처음으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볼 적에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중국 반환을 앞둔 청춘들의 불안한 심리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중국의 국가적 수치의 상장이었던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임청하가 노랑머리 가발을 벗어 던지고 다시 흑발로 돌아가는 시퀀스는 미래에 대한 예언적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이 통치하던 시절보다 과연 홍콩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식민지 시절보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한다면,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 싶다. 한 때 싱가폴과 함께 영국이 품은 동양의 두 개의 진주라고까지 불렸던 홍콩은 동남아시아 금융 허브이자 무역 거점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치적 자유가 후퇴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번영 역시 퇴조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으로 활발한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입장에서 투자처로서의 홍콩의 매력은 브리티시 홍콩 시절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 그런데 사반세기도 전에도 이런 홍콩의 어두운 미래를 예언한 이런 수작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제는 그런 영화를 볼 수가 없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중국의 광전총국이 선전영화로 영화판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자국 영화에 출연시, 외국인이라는 표기를 명시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지 않은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긴 하지만, 영화나 음악 혹은 문학 같은 소프트파워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는 그네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네 삶을 결정짓는 정치로 귀결되기 마련인가 보다. 왕칼 아니 왕가위의 영화 스타일 넘치는 삼삼한 연애 스토리 <중경삼림>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중국/홍콩 영화의 우울한 오늘날까지 말하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뱀다리] 모두가 다 알겠지만 2편의 주제가처럼 등장하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과는 결을 달리하는 멜랑콜리하면서도 비내리는 홍콩 거리를 연상시키는 그런 블루지한 사운드트랙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주크박스도 주목할 만하다. 휴대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된 시절에 돈을 넣어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크박스는 이제 시대의 유물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밀레니엄에 주크박스는 자본주의 총아 같은 존재였다. 뭐 궁극적으로 보면 지금도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완전 자본주의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후불제가 아닌 선불제로. 내가 가진 자본과 선호하는 음악에 대한 등가성이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은 핸드헬드 카메라만큼이나 음악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왕가위 스타일의 흘려찍기(?)는 아마추어 같다는 비판을 받았다. 어쩌면 한물간 누벨바그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왕가위에 대한 의도적 폄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거장의 재기 넘치는 실험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말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ni74 2022-04-04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왕가위 넘 반갑네요. 우리 나라에서도 짝퉁영화가 만들어진거 기억납니다 ㅠㅠ 암울한 홍콩 분위기와 배우들 참 멋있었는데 말이죠. 양조위 그 헤어스타일 넘 좋아서, 남편에게 그 스타일 해보라고 했다가 ㅠㅠ 남편은 그냥 동네 이발소아저씨더군요 ㅠㅠ

레삭매냐 2022-04-04 19:16   좋아요 3 | URL
부군님의 썰, 왤케 재미집니까 기래 ~
빵빵 터졌습니다.

WKW를 읽으면서 오래 전 기억들
이 퐁퐁 샘솟아서 저주 받은 걸작
이라는 <아비정전> 등을 하나하나
구해서 보려고 합니다.

울나라에서 맹근 짝퉁영화의 제목
은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mini74 2022-04-04 19:23   좋아요 3 | URL
홀리데이인 서울 이었어요. 보고나서 다들 화내며 나왔던 기억나요 ㅎㅎ모텔 선인장도 그랬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