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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의 사유하지 않음을 경계하라
어떤 책들은 읽었는데 리뷰를 쓰지 못한 그런 책들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읽은 한나 아렌트 작가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랬다. 리뷰로 남기지 않은 책들은 왠지 읽지 않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틀 전에 우연히 너튜브로 김지윤 박사가 진행하는 지식플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게 됐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메모를 해두었다. 그 메모를 바탕으로 그 유명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단상을 적어 보려고 한다.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비밀첩보부인 모사드는 10일 전에 위치와 신원을 파악한 전직 SS요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밀리에 체포했다. 아이히만은 프라하의 도살자 혹은 금발의 짐승이라 불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휘하에서 최종해결책으로 명명된 유대인 절멸계획을 실행에 옮긴 전범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나치 전범들은 전범재판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과 로마에서 친나치주의자들이 계획한 이른바 오데사 프로젝트로 신원을 감추고 비밀리에 프랑코가 통치하는 스페인의 종교시설이나 라틴 아메리카로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바티칸의 오스트리아 출신 알로이스 후달 주교는 이런 나치 전범들을 옹호한 인물로 유명하다.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해서 저널리스트 활동을 하고 유대인 한나 아렌트에게 <뉴요커>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아이히만 재판을 현지에서 보고해 줄 것을 의뢰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출신의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제자로 철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기의 재판이 열리는 예루살렘으로 간 한나 아렌트는 꼼꼼하게 재판을 기록했고,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난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렸다.
알다시피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들이 악당이 되는 이유는 바로 사유를 하지 않아서다.
총 15개 죄목으로 기소된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두 가지 이유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나는 재판 절차상의 적법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은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일을 했다는 이유였다.
사실 모사드 체포조의 아이히만 납치는 국제법상 주권국가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도밍고 페론은 그동안 나치 전범들을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해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이히만이 무국적자이고, 열혈 청년들이 애국심에 그를 체포했노라는 변명을 내놓기도 했다. 페론이 통치하던 아르헨티나에는 야세노바츠 수용소 지휘관 출신의 딘코 사키치, 1943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서 민간인 355명을 학살한 에리히 프리프케 그리고 아우슈비츠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린 요제프 멩겔레 등이 숨어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모사드는 요제프 멩겔레가 아르헨티나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얻고 그도 세트로 잡아 들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신중한 성격의 멩겔레가 모사드의 포위망을 벗어나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아이히만 재판에서는 사법 시스템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불소급의 원칙 문제가 대두되었다. 나치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은 1950년 제정되었는데,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들은 모두 1945년 종전 전에 벌어졌다. 동시에 재판관할권(jurisdiction)도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1948년 5월 14일 세워지지 않았던가. 뉘른베르크 법정도 마찬가지였지만, 승자의 법정이라는 취약점이 지적되었다. 나치 전범들이 처벌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쟁 기간 도중 미영이 주도한 무자비한 전략폭격으로 무고하게 죽은 독일 시민들에 대한 전쟁범죄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졌던가?
이런 첨예한 주장들에 더불어, 카를 야스퍼스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유대인에 대한 범죄가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국제 재판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칸트의 정언명령 타령을 하면서 자신은 그저 상부에서 내린 지시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요설을 펼쳤다. 철학 박사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칸트의 정언 명령인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률”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치 시대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률은 오로지 총통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충성 뿐이었다. 타인 그러니까 유대인의 존엄성은 부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존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핵심 키워드로 잡은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thoughless 그러니까 사유하지 않음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패전과 대공황으로 발생한 상상을 초월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영토 상실과 무장해제라는 치욕적인 국가적 상황에서 독일 시민들은 국가사회주의당의 아돌프 히틀러라는 기괴한 인물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추대했다. 그는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존재로 독일 시민들에게 전쟁으로 일시적인 환각 효과를 제공했으나 궁극적으로는 파멸의 길로 인도했다.
엉터리 지도자와 국가사회주의자들의 기만과 선전선동에 넘어간 다수 독일 시민들은 정당한 방식의 사유하기를 포기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떠들던 나치주의자들은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라고 시민들에게 강제했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이 나치 학살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의 일원이 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양민들과 유대인을 일선에서 학살했다.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에 멀쩡한 양식의 독일 시민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은 아이히만의 주장대로 그야말로 톱니바퀴처럼 거대하고 조직적인 학살 시스템에 종사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아이히만의 재판 경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감없이 그대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사실 이스라엘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법무부 장관 기드온 하우스너의 지휘 아래 진행된 아이히만 재판은 처음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유대주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정치적 효과를 이스라엘 정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재판을 통해 얻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시종일관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다루게 되면서 한나 아렌트는 지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됐다. 저명한 유대인 학자이자 히브리 대학의 교수였던 게르솜 숄렘은 편지로 아렌트가 유대인 부역자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 부분, 자신이라면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사랑(love of the Jews)이라는 개념이 부족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한나 아렌트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숱한 비난과 외면 그리고 협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생존 혹은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이유로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는 시절에 다시 한 번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당연히 우리는 특별한 악에 대해서는 생리적 거부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스멀스멀 파고 들어오는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넘겨 버리는 것 같다. 그런 평범한 악이 권력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옥죄어오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저항을 하게 될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가서 사유하지 않음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음을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역사는 우리에게 말없이 알려주지 않고 있는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딱 그만큼의 무게로 3월의 나에게 다가섰다. 이 책은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다. 내가 준수해야할 보편적 도덕법칙의 본질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