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기업에서 주5일 근무제 시행이 일반화될 무렵, 직장인들이야 덤으로 굴러온 토요일 하루(사실은 한 나절이지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구상하는 등 마음이 설을지도 모르지만, 회사를 책임 맡고 있는 경영인에게 그것은 ‘빼앗긴 반 공일’이었다. 일주일에 4시간을 싹둑 잘라내고도 변함없는 경영성과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특히 시간이 돈이나 마찬가지인 제조업 분야의 경영 책임자들에게 더 심했을 것이다.






 
▲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주) 대표이사



내가 맡고 있는 회사는 정보통신 부문 장비 제조회사인데,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던 그 무렵이 바로 새로운 광전송 장비의 연구개발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나는 속이 탔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꽃놀이’ 계획을 세우고 있는 터에 연구원들에게 주말 근무를 강요할 염치가 없었다. 개발하고 있던 장비는 통신장비 업계에서 진입장벽이 두껍기로 정평이 난 까다로운 제품인데다, 이미 경쟁업체에서 많은 연구원을 투입해서 유일하게 국산화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 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한다면 회사 전체의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우리 회사도 시류를 거스를 수 없어 일단 주5일 근무제를 공식적으로 시행했다. 그런데, 휴무일인 토요일에 회사에 나갔다가 나는 작지 않은 감동을 맛봤다. 자신이 맡은 일의 스케줄이 미진하다고 판단한 연구원들이 주말인데도 회사에 나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발적인 근무는 일요일까지 이어졌고, 그들의 열의 덕분에 우리는 소수의 인원으로 광전송 장비의 자체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각종 연구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했고, 급여도 넉넉한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원인을 나름대로 추론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보상을 위해 일하는 열 사람보다 재미에 빠져 일하는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다.’고. 우리 회사가 그 이전에도 3G(세대) 중계기와 최근 휴대인터넷 중계기 개발을 경쟁사에 앞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자발적 참여 덕분이었다.

‘동기 유발’이라는 말은 교육현장뿐 아니라 기업 일선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에 작용해야 유발되는 그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경영책임자나 관리자들이 쉽게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니다. 일에 대한 대가를 넉넉히 받고, 내가 맡은 업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승진, 칭찬, 특별휴가 등 이런 것이 동기 유발에 영향을 주는 일차적인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단순하고 행동유발적인 요인만으로 진정한 동기가 유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 거친 말을 사례로 들자면 위에 열거한 외부조건이 넉넉하다 해도 구성원들이 퇴근 후 술자리에서 “에이,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는 불만을 무시로 쏟아놓는 회사라면 직원들을 조직 안에 붙들어 두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업무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야 하며, 무엇보다 맡은 일에 대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야 진정한 내적 동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나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답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강물을 마시느냐 마느냐는 말(馬)이 알아서 할 일이지 마부가 억지로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구성원 각자의 동기 유발을 저해하는 요인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관료주의나 번거로운 형식주의, 감독자와의 충돌과 갈등, 교육훈련의 부재로 인한 업무미숙, 직무수행을 위한 자원과 시간의 부족, 최종 기한에 대한 압박과 불안, 경직된 조직체계로부터 받는 위협 혹은 두려움, 직원들의 기여를 평가하지 않는 감독(관리)자…. 적어도 이런 요인들을 말끔히 걷어낸 그 지점이 바로 스스로 동기유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울신문(구.대한매일) 2004년 11월 22일 ( 31면, 오피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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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30에 이립(以立) ,40에는 불혹(不惑)하고, 50에는 지천명(知天命)하며, 60에는 이순(耳順)한다고 하였다.
‘60’이 되어서야 우리는 인생의 참 뜻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숙한 경지에 접어든다고 한다.
그러한 원숙한 시점이 되어야 비로서 세상 사물의 이치가 귀에 잘 들어온다고 하여 공자는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따라서 60의 의미가 남다른 만큼 그 60의 생일을 기념하는 방법도 대개는 보통 때와는 다르게 마련이다.
서두칠 사장은 그 60이 되는 아침에도 보통때와 같이 06시에 출근하여 06시30분에 총무회의를 참관하고 09시30분에는 생산회의를 주재하였다.
60평생을 살아온 인생의 모토가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은 소가 디뎌도 무너지지 않는 회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회사의 간부와 노조의 임원 몇 사람이 모여 조촐한 60회 생일 축하(회갑축하)를 가졌다.
작은 자리이지만 보다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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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즉 노동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일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일을 통해서 살 수있는 양식을 얻게 되므로 일은 곧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은 경제적, 생명적, 사회적, 종교적 차원의 의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의미에서의 일이란 생계유지의 기본수단이다.
직업이란 생계유지를 위한 계속적인 경제적 활동이며 일이란 활동을 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경제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흔히 일을 일컬어 생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사도 바울은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
둘째로 생명적 의미에서의 일은 우리의 몸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일한 다음에 쉬고, 쉬고 난 다음에 다시 일을 한다. 이것은 활동과 휴식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근복적인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활과 존재의 리듬이 생명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 몸도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일은 사회적 역할이요 사회적 기여이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다양한 분업의 체계를 이룬다. 다종다양한 사회적 분업을 서로 분담하지 않으면 사회는 발전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람은 일을 통해서 가족, 이웃, 사회에 봉사한다는 점도 일의 커다란 사회적 의미라 할 수 잇다. 각자가 자기 일에 대하여 강한 사명감과 성실한 태도와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직책의식을 가질 때에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의미에서의 일은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이고 하늘이 부여한 천직이다. 그러므로 일은 우리 인간에게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 건강하고 기쁨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활동할 수 있으므로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존재의 확인이다.
“일하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의 근본이다.”라고 말한 에디슨이나 “행복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먼저 일하라”던 칼힐티,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라던 고리끼 등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모두가 일과 삶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마즈시다 전기를 창업하고 동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마즈시다 고노스게(1894∼1988)는 “올바른 인생관을 갖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어떻게 일하고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라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과 확고한 신념, 즉 훌륭한 인생관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삶에서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어떠한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목표가 달라지게 된다.
물건에 값이 정해져 있듯이 사람에게도 값어치가 있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예외없이 한 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번 살수도, 지난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남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 줄 수도 없다. 인생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고 땀흘려 인생을 건설할 때 비로소 보람있는 인생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는 원동력이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늘 생각을 새롭게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은 그대로 행동과 직결되어 어떤 일을 하든 그 만큼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쁘면 ‘운명이라고 생각하자’라며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운명을 도피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100%는 아니더라도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낙관적인 사고, 협조적인 사고, 주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므로 이러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설사 실패가 따르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신감을 쉽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스티븐 코비는 주도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성공의 첫째 조건으로 꼽고 있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남이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한다거나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즐기고 땀흘리는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일을 찾아서 하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 그런 창의적인 자세를 가질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은 저마다 자기의 직분과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창조의 일터고 일은 각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이다. 그러므로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자연히 사회로부터 도태될 수 밖에 없으며 사회로부터 도태된다는 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같다.
물론 성격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이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과는 달리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은 서툴더라도 남이 시키기에 앞서 스스로 일을 찾아 하며 자신의 가치와 보람을 높일 줄 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듯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밝고 희망차 보이는 얼굴이 있고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냐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의 차이이다.

이제 세계는 초국적, 무국경시대가 되었다. 최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가 된 것이다. 너나 없이 모두가 적극적인 생각과 주도적인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이것만이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사주란 네 기둥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네 기둥이 튼튼해야 하듯 마찬가지로 사람도 사주가 좋아야 잘 산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운명의 길흉을 점칠 때 자료로 삼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주란 '타고난 것' '운명적인 것'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얘기하는 사주는 모두가 개개인의 노력으로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실한 기둥이 되게도 할 수가 있다.
나는 건강과 일, 가정, 그리고 가치관을 내 나름의 네 기둥(四柱)으로 본다.
사주의 첫째는 ‘건강’이라는 기둥이다.
건강해야 사람 구실을 하고 남편 노릇을 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 구실이나 노릇이란 바로 역할을 의미한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확실히 해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일’이라는 기둥이다.
누구든 일이 있어야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남에게 신세지지 아니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은 일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경제적 자립은 확실한 삶을 보장하며, 또 좋은 회사만이 많은 일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는 ‘가정’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의 최소단위이고 사회생활의 기본질서와 도덕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가정이 화목(家和)해야 세상일이 다 잘 된다(萬事成)는 말은 다소 진부하게 들리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는 더 이상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나는 경영일선에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을 강조하는데,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자세는 바로 가정에서 길러진다.

넷째는 ‘가치관’이라는 기둥이다.
가치관이란 난해하고 추상적인 어휘가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이 세상을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 행위 속에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관)를 상실한 행위란 곧 본능적(동물적) 몸놀림에 불과하다.

사주가 좋아야 인생살이가 좋아진다. 달리 말해서, 훗날 인생을 결산할 때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주를 끊임없이 긍정적인 것, 신나는 것, 적극적인 것으로 가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주가 좋은 사람끼리 모여서 함께 일하는 일터라면, 그 기업의 사주 역시 최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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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칠 사장은 1968년에 결혼한 부인 최인숙 여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아들 태흔(69년생)씨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99년 11월에 서두칠 사장에게 손자를 안겨주었다.
딸 영모(71년생)씨는 국회의원 회관에 근무하고 있고, 막내 태영(76년생)씨는 ON-LINE 교육전문가(교수설계자)로 활동하고 있다.
97년 말 서울 대치동의 아파트로부터 가방하나 들고 구미로 내려가서 그 길로 수도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서두칠 사장에 대해 부인 최인숙 여사는 늘 걱정스런 마음이다.
회의에 참석한다고 서울까지 왔다가 그냥 바로 구미로 내려가 버리는 서 사장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번이라도 집에 들를 때면 그동안 마련 해 둔 주먹 된장을 비닐에 싸서 챙겨드리는 것이 가장 큰 낙이다.
서두칠 사장의 요리솜씨도 사실 부인의 주먹 된장 맛인 셈이다.
남편의 바쁜 사회생활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정을 이끌어 가는 부인의 내조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어머니상의 표본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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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사관리의 유형을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공기업이나 관료적 성격이 짙은 조직에서 이미 관행으로 굳어버린 전제적인 관리형태이다.

둘째는 전제적 관리의 상대개념으로서, 지나친 온정주의가 판을 치는 관리형태다.
나는 이것을 가부장적인 관리라고 지칭한다.

셋째는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노와 사가 함께 하는 민주적인 관리이다.

한국전기초자의 경우는 가부장적인 관리체제였다. 노사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기본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사전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만한 처리방법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없는 관리는 결국 장기파업사태를 야기 시켰고 회사의 경영주가 바뀌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노사관계라는 것이 소속인원과 그 책임자 사이의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관리자 스스로가 그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노사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노사문제는 관리자와 종업원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노사문제에 대해 방관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는 상태다. 노동관계 3법이 무엇인지, 부당노동행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일선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상황을 방치한 채 일선을 장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관리감독이라는 위계질서가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다.
많은 관리자들이 인사 및 노무 문제는 전적으로 인사,노무 부서의 관할이지 근무일선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렇듯 인사 노무관리 업무와 고유업무가 밀착되지 못하는 데에 현장 노무관리의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노사문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경영자가 용단을 내려 결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이르는 과정은 노사간의 이해가 함께 하는 협력적인 관계인데 반해, 성과를 임금으로 배분하는 과정은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대립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협력관계와 대립관계는 순환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즉, 협력과 대립 그리고 타협의 과정이 순환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순환의 바퀴를 잘 돌리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노사관계는 "이해가 상반된 사람들이 색안경을 골라 쓰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때문에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안경색깔을 같게 하거나 적어도 비슷하게 해 나가는 노력인 것이다.
이 일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공사를 하고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야 하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대화하는 훈련'이 바로 그 작업이다.
대화란 "서로 마주 대하여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서로 마주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똑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는 대화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말한 것이고,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는 일을 잘 일러 주어야 한다는 대화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란 결코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면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가 생각한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는 전적으로 윗사람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야기'는 남이 모르는 말을 들려주는 것일 때 재미가 있다. 즉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은 상대를 짜증스럽게 하고 귀를 저절로 닫히게 한다. 그러므로 좋은 대화를 하려면 많은 정보와 새로운 자료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상대방의 사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긍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들은 다 변하고 있는데 나만 자기중심사고로 편향되면 날이 갈수록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서로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다. 노사간의 대화는 서로 주고 받는 말의 양과 질이 엇비슷해야 잘 이어진다. 그 내용과 어휘도 서로 쉽게 이해되는 공통된 것으로 해야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격언을 두고 영국인과 미국인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돌이 이리저리 굴러서야 어떻게 귀중한 이끼가 낄 수 있겠는가 하는 해석이고, 미국 사람들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찾아서 굴러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귀중한 옥돌도 한 곳에 박혀 있으면 이끼밖에 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사간에도 평소 사물을 대하는 입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시각을 근접시켜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대화할 때 먼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 옳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소비 논리와 함께 부위 올바른 분배를 일깨우는 일, 근로의 귀함을 알게 하고 일을 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 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노사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직급의 관리자가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 직원의 업무배정이나 작업관리 같은 노무관리업무는 기본적으로 소속장의 책임이며 노사문제는 모든 개별 부문장의 공동소관 사항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때 바람직한 관리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서 요구되는 것이 있다.
첫째, 가치인식에 있어 정의로운 판단기준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생각과 언행에 체계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는 지도력의 유지를 위한 자기 노력과 직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실제로 관리자가 종업원들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 대화의 소재는 반드시 깊이와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에 대한 공동의 답을 구해 나가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이지만 동시에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일이 내 삶이고 삶이 곧 내 일이라고 하는 설득을 통해, 일에 미치고 그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 종사하는 모든 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성취욕을 충족하려 함은 당연한 것이므로 모두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이에 대한 성과의 평가도 공평하도록 해야 한다.
또 관리자가 직원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1대1의 대화를 통해 먼저 솔선하여 모범을 보이면서 직원들을 순화시키고 훌륭한 직장인으로 만들어 개인의 성장을 지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직원들에게 관리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리자가 되기까지 쌓은 경험과 경륜을 체계화하여 대화를 이끌어내고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발전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사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근무일선에서의 주도력과 관리자로서의 프로정신을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부서장은 개별 노사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인사노무부서장은 인사관리와 업무가 잘 되도록 제도를 보완하여 의사결정기관에서 그 집행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건의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강성 노조집행부의 명분만을 위한 무리한 요구조건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종업원을 상대로 한 기반조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전 종업원이 노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논리도 연구해야 한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노조가 요구하기 이전에 종업원이 고통스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아서 챙겨주어서 종업원들의 마음속에 '사장이 노조위원장이 됐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단결, 투쟁, 쟁취라는 구호 대신 노조가 이해, 타협, 화합, 공정분배라고 하는 목표를 내세우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해서 운영해야 한다.
당연히 노조도 혁신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시대와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탄력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 남보다 앞서는 노력이 요구된다. 사(使)가 요구하기 이전에 오히려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이미 떨어졌는데 상황타개를 위한 단기적인 노동 강도 강화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노동조합의 반응은 사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과거에 누리던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현실에 대응하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혁신에는 아픔이 따르고 그 아픔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존립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확한 진단을 하고 위기극복에 함께 나서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고 제품의 질을 향상시켜 더 많은 이윤창출을 한 뒤 그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제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관리자가 변화하는 세계 흐름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국전기초자의 경우 연4년째 단 한 차례의 교섭으로 임금과 단체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국내 최장기 파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기업이지만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분명하게 인식시켜 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변했다. 앞으로의 세계는 정보와 창조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여기에 대응할 수 잇는 전략은 우리의 지식과 두뇌뿐이다. 모두가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고 개혁과 변화의 선두에 서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업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투쟁으로 얻어내는 눈앞의 꿀 한 숟가락이 아닌, 오직 고객만족의 경영과 생산성의 향상에서 얻어지는 경쟁력만이 항구적으로 일터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일터를 가지고 있음이 곧 축복이라는 자각, 따라서 그 일터를 소중하게 가꿔가야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일터를 잃지 않는다는 평범하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를 모두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속의 모범 우량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힘없이 도산되는 운명을 맞이하느냐 하는 문제는 현재 기업에 몸담고 있는 최고경영진, 일선 관리자, 종업원 개개인 모두의 역량과 의지 그리고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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