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기, 표현하기, 고쳐쓰기

‘계획하기’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글쓰기의 수사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독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어떤 내용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탐구 과정을 바탕으로 어떤 내용을 쓸 것인가(내용 중심)와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시행 중심)의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직관의 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글쓰기의 목표를 가능한 한 조작 가능한 구체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동료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아이디어 생성하기’ 단계에서는 목표 지향적으로 주제와 관련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확산적으로 끄집어내는 데 주목한다. 브레인스토밍이나 마인드 맵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생성된 아이디어를 자기의 말로 다시 정리해 보기도 하고 좀더 체계를 세워서 심층적으로 주제를 탐색하기도 한다. 이 아이디어 생성하기 단계에서는 푹 쉬면서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 조직하기’ 단계에서는 생성된 아이디어를 수렴해서 질서정연한 체계로 정련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아이디어 생성하기 단계에서 확산적으로 끄집어낸 아이디어들의 목록을 가지치기(clustering)해 가는 방법을 통해 수렴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의 요지를 드러내는 핵심 어휘를 확정하기도 하고, 정리된 아이디어를 자기 말로 요약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기도 하고, 개념 구조도나 개요 작성을 통해 논리를 구체화하기도 한다.
‘표현하기’ 단계에서는 독자의 반응을 예상하면서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독자 중심의 글 구조를 개발하도록 한다. 표현하기 단계에서는 글의 띄어쓰기, 맞춤법, 문법 등의 형식적 특질보다는 내용에 주목해서 ‘얼른쓰기’ 기법 등을 활용해 일단 초고를 작성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필자 중심의 글을 독자 중심의 글로 전환하는 데 주력한다.
‘고쳐쓰기’ 단계에서는 완성된 초고를 중심으로 글과 글쓰기 목적을 재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서 진단하고 교정하는 데 주력한다. 이 고쳐쓰기 단계에서는 글의 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형식적 측면의 문제점들을 글의 효용성 차원에서 점검하고 명확한 글이 되도록 문장을 다듬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 고쳐 쓰기 과정에서 유용하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장 구성 원리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장은 되도록 짧게 써라.
-주어를 갖춰서 쓰도록 하라.
-수동형 문장은 피하고 능동형 문장으로 쓰도록 하라.
-불필요한 단어는 과감하게 삭제하라.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는지 확인하라.
-문장에서 꼭 필요한 성분이 빠져 있지 않은지 확인하라.
-조사를 정확하게 사용하라.
-문장 간의 연관성에 주목하라.
-문장 간의 연결 장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라.
-모호한 문장은 피하라.
-단락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하라.

사실 이러한 문장구성원리 중심의 글쓰기 지도는 글의 효용성 측면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글쓰기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주는 응급 처방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글쓰기란 어려움이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임에 틀림없지만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들만 익힐 수 있다면 누구나 정복할 수 있는 산과 같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사고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글쓰기 작업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데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내 학생들에게 힘을 갖게 할 것인가. 작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맛보는 즐거운 고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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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즐겨하는 능숙한 필자들은 영감에 의존한다거나 처음부터 완벽한 초고를 쓰려고 하기보다는 글쓰기 자체를 일련의 목표 지향적인 사고 과정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작업구상 단계부터 나름대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글의 핵심적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고의 흐름을 전개해 나간다. 이들은 이렇게 일단 글쓰기의 주제와 방향이 잡히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일찌감치 글쓰기 과정에 착수하여 계획하기 단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능숙한 필자들은 자신의 머리를 믿기보다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 도서관이나 서점의 자료를 뒤지고, 손품을 팔면서 인터넷의 자료들을 찾아 모으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주제와 관련된 충분한 자료를 전략적으로 찾아서 읽고 이를 바탕으로 틈틈이 메모를 한다.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사고를 자료를 찾아서 읽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하는 것이다.
능숙한 필자는 미숙한 필자와 달리 계획하기 단계에서 수사적 상황을 철저히 고려한다는 점에서도 차별성을 보인다. 과제를 내준 담당 교수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글을 읽게 될 독자가 기대하는 바는 뭘까, 이 글을 쓰는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등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의 가닥을 잡아 나간다.
능숙한 필자들은 바로 글쓰기에 돌입하기보다는 브레인스토밍이나 마인드맵 등의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디어 생성에 주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소 도전적이지만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설계도면으로서의 개요를 작성한다.
능숙한 필자들은 앉은자리에서 한번에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식의 완벽한 초고쓰기 전략에 의지하지 않는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고쳐쓰기 단계를 염두에 두고 글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일단 초고 형태로 글을 쓴다. 초고는 그야말로 초고일 뿐이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 글의 표현적인 부분에 신경쓰지 않고 내용의 흐름에 주목한다. 초고쓰기 단계에서도 미리 마련된 글의 개요와 메모에 의지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좀처럼 글이 원래 목표했던 중심 생각에서 벗어나 엉뚱한 곁길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드물다.
능숙한 필자들은 계획하기 단계에 못지않게 고쳐쓰기 단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띄어쓰기, 맞춤법 등의 기계적인 문제에서부터 낱말이 적절한지, 문장이 어법에 맞는지, 단락을 중심으로 사고를 제대로 전개해 나갔는지, 글의 내용적 통일성이 주제 구성과 관련되어 충분히 확보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교정한다.
여기서 문제해결 전략을 중심으로 작문을 지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능숙한 필자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들을 전략화하여 가르친다는 의미이다. 진지한 사유의 결과물인 자신의 생각을 자기화된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능숙한 필자와 같이 글쓰기를 일련의 문제 해결과정으로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해결적 접근 방법의 핵심은 학습자로 하여금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을 점검하고, 능숙한 필자들이 사용하는 보다 효율적인 글쓰기 방법들을 전략화하여 실제 글쓰기 국면에 적용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문제해결 과정 중심의 작문지도에서 무엇보다 선행해야 할 것은 학습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글을 쓰는지, 글쓰기 과정에서 특별히 어떤 점에 어려움을 겪는지, 자신이 사용하는 글쓰기 전략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글쓰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더욱 효율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인식하게 되면, 일련의 문제해결 과정으로써 글쓰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고 과정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은 쉽지 않다.
학습자들이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숙한 필자와 능숙한 필자가 각기 어떤 방식으로 글쓰기에 임하는지, 또 어떤 점에서 서로 차별성을 보이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미숙한 필자와 능숙한 필자의 글쓰기 과정이나 전략 면에서 나타나는 차별성을 이해하면, 이에 기대어 학습자 자신의 글쓰기 과정이나 방법에 대한 메타적 인식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적 접근 방법에서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글쓰기 과정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것 못지않게, 능숙한 필자들이 사용하는 글쓰기의 문제해결 전략목록을 익혀서 실제 글쓰기 국면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전략들을 쓰기 단계별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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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필력과 영감은 잊어라

사람들이 흔히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통념 몇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의 문제이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통념은 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세간에서 문명(文名)을 날리는 사람들이나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분명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또 다른 통념은 글쓰기를 영감(靈感)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훌륭한 글이란 어느 날 갑자기 뮤즈의 여신으로부터 한 줄기 섬광 같은 영감을 선물로 받았을 때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렇게 글쓰기를 타고난 재능이나 영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글쓰기에 관한 이런 통념들은 재주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들거나, 작문교육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정서법이나 가르치고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나 고쳐 쓰게 하는 것에 머물게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글 잘 쓰는 사람의 대부분은 글쓰기 능력을 타고났다기보다 적절한 교육과 훈련 과정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다. 또 우리가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글쓰기의 수준이 전문적인 작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사 소통적 글쓰기 능력을 갖게 해 주기 위해서임을 감안하면 이런 통념은 별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영감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운이 좋아서 뮤즈의 여신으로부터 선사받은 것이라기보다는 필자가 어떤 문제에 늘 골몰해서 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언뜻 떠오르는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영감이 떠오르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글쓰기란 재능이나 영감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사고하는 과정 내지는 일련의 목표 지향적인 문제해결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글쓰기를 사고하는 과정이나 목표 지향적인 문제해결 과정이라고 보는 문제해결적 접근방법에서는 글을 쓸 때 접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 ‘효율적인 방법’이 있으며, 이런 방법들을 익혀서 적절히 활용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글쓰기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매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을 갖게 해 준다. 그렇다면 과연 능숙한 필자와 미숙한 필자의 글쓰기 방법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한번 이들의 글쓰기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미숙한 필자
대개 글쓰기를 싫어하는 미숙한 필자들은 계획하기 단계에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쓰기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다거나 글의 내용을 구상하여 개요를 작성하기보다 막연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면서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는 그 시점까지 글쓰기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글에 대한 수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은 누구인지, 독자는 이 글에서 어떤 내용을 기대할 것인지, 이 글을 쓰는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지, 내가 이 글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에 대한 수사적 문제에 대해 고려하기보다는 막연한 생각의 단편만을 자기 중심적으로 쏟아낼 뿐이다.
글쓰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이 되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하는 미숙한 필자는 일단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첫 문장부터 어려움을 겪는데 낱말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서 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행착오 전략에 의지해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그런가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처음부터 대번에 완벽한 초고를 써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 자료 수집이나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메모 없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자주 사고의 흐름이 끊기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에만 의존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대개 계획하기 단계의 개요작성 작업을 거치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자주 엉뚱한 곁길로 빠지곤 한다.
미숙한 필자들은 글쓰기를 일련의 과정과 절차에 따라 수행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데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서 앉은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중심으로 분량 채우기 전략이나 짜깁기 전략에 의지해 글을 완성한다. 항상 시간에 쫓겨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글을 꼼꼼히 고쳐 쓰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대개 초고가 그대로 제출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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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전략


미숙한 필자는 막연하게 영감을 기다리거나 한번에 완벽한 문장을 쓰려고 허둥댄다. 반면 능숙한 필자는 쓰기 과정을 일련의 목표 지향적 사고 과정으로 파악해 계획하고 고쳐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오늘날과 같은 지식기반 정보사회에서 글쓰기 능력이 갖는 의미는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의미 구성 행위를 본질로 하는 글쓰기 능력은 단순히 의미를 문자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새롭게 창출해 내는 지식생산 능력의 의미까지 함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터넷이 도입되어 모든 직장 업무나 의사소통이 기존의 ‘면 대 면(face to face)’ 방식에서 전자우편(이메일), 인터넷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글쓰기 방식으로 변화되면서, 글쓰기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경쟁력으로 대두되었다.
직장의 상급 관리자일수록 업무 시간의 50% 이상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보낸다는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글쓰기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은 현대사회에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자 경쟁력이기도 하다.
글쓰기 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언어로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일 뿐만 아니라 사고를 언어로 옮겨서 표현해 내는 고등정신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고차원적인 문제해결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쓰기 능력은 문자 언어로 표현할 때의 유창성, 내용 생성의 유창성, 글쓰기의 일반적인 규칙과 관습에 대한 통달, 글을 쓰는 상황을 적절히 고려할 수 있는 사회적 인지 능력, 우수한 글을 판단할 수 있는 감상력과 비판력, 통합적 사고력과 통찰력 등의 하위 기능으로 구성된다. 현대사회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까닭은 글쓰기 능력이 바로 의사소통 능력이고 고도의 사고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제해결 능력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은 막막하고, 몇 줄 쓰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네 가지 언어활동 가운데 쓰기를 제일 어려워한다. 쓰기 과정에서는 표현할 내용을 직접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다시 언어로 변형해야 한다. 듣기나 읽기보다 쓰기가 어려운 까닭은 표현 과정에서 내용을 직접 생성하고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머릿속이 막막해서 아예 글쓰기 자체를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 일단 글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몇 줄만 쓰고 나면 이내 머릿속 생각이 고갈되어 버리는 경우, 종종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지만 이내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경우, 분명히 뭘 써야 하는지 알기는 알겠는데 그걸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 글을 써 나가다 보면 원래 의도했던 것과 달리 엉뚱하게 곁길로 빠져 버리는 경우, 2~3쪽 이상 분량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자기는 쓴다고 썼는데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경우, 글을 쓰면서도 도무지 자신이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한 경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글쓰기의 어려움들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어려움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실 ‘뭘 어떻게 쓸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뭘 쓰지?’의 문제는 쓰고자 해도 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글의 중간 부분보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그래서 가능한 한 펜과 종이를 멀리하면서 막연히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리기도 하고, 컴퓨터 자판 앞에서 커서만 깜박이는 모니터를 하염없이 노려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쓰지?’의 문제 역시 만만찮다. 분명히 머릿속에는 뭘 써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한다.
과연 이러한 글쓰기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문제해결적 접근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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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오해와 존경의 대상



“김대중은 지나친 오해와 의심 또는 지나친 존경의 대상이었다.”

한 기자의 분석대로 그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을 오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추앙도 있었고, 단지 DJ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그는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권위적이고 전투적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로 인식된 채 일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그가 대통령이 된 게 너무나 다행스럽다. 적어도 지독한 편견이나 맹목적 추앙에서 벗어나 비교적 공정하게 ‘인간 김대중’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형성되는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기꺼운 마음으로 ‘인간 김대중’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중매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에 대한 부풀림이나 편견이 작동하지만 일단 결혼을 해서 살기 시작하면 각자의 느낌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필자는 두 인물을 분석하면서 분석의 물리적인 양을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민수를 분석한 분량보다 김대중 대통령을 분석한 분량이 다소 적었을지 모른다. 어떤 모임에서 두 사람을 소개할 때,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생면부지인 경우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자료의 신빙성(?) 문제다. 차고 넘칠 만큼 많은 그에 관한 자료는 정치인답게 정교하고 세련되게 포장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취사선택이나 해석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의 카리스마에 대한 관찰에는 최민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그래서 일정부분은 편파적일 수도 있는) 시각이 많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DJ는 83년에 담배를 끊었다. 그전까지는 하루에 세 갑을 피우다가 아예 파이프 담배로 바꾼 스모커였다. 미국 망명 중 흡연자에 대해 사회적 규제가 심한 것을 보고 ‘마음놓고 피우지 못하면 안 피우겠다’는 생각에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대중은 자신의 금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피워 온 담배를 끊은 용기는 뻔히 감옥에 갈 줄 알면서도 ‘나 잡아가시오’ 하는 식으로 긴급조치를 위반하며 박정희에게 저항하던 용기에 못지않은 것이라며 우쭐해 한다.

최민수가 아들을 키우는 일에 애국애족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담배 끊은 일을 독재자에 대항한 용기로 환치시켜 놓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남자의 비장함(?)에서는 일종의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대중 앞에서 징징 울 줄 아는 남자


그가 엄청난 책벌레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의 많은 부분은 책에서 비롯한 것인지 모른다. 토인비나 니체의 사상을 즐겨 읽으면서 동시에 ‘토지’에 등장하는 용이와 월선이의 애절한 사랑에 목이 메어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다. 그는 이발을 할 동안에도 마땅히 읽을 만한 것이 없으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후후 불어가며 여성잡지를 뒤적인다고 한다.

‘뜨거운 얼음’처럼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둘의 통합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 그게 김대중이란 인물이다. 그러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의 카리스마가 정치개혁 등 그의 직무수행에는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이전의 정치 패러다임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한 비교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말솜씨를 보여주는 무대를 만든 게 고작이었다. 그 특유의 자화자찬 병은 여전했고 모든 게 구태의연했다.”

최근 시국에 대한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진단에 99% 동의한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다만 변화가 있을 때에 변화하지 않고 구태의연을 고집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물론 그건 바로 인간 김대중의 한계이며, 이건 비판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강교수의 말에 이의를 달아야겠다. ‘정치인 김대중’의 한계라고 했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인간 김대중’의 한계라는 대목은 수긍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 중에 김대중만큼 유연한 인물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이나 감성적인 측면이 지적 능력이나 냉철한 의사결정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대통령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지나칠 만큼 충분히 지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감성적 카리스마’는 무한의 파괴력을 가진다.

필자는 DJ가 평생의 민주화 동지인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아들 문성근씨의 손을 잡고 우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 94년 1월19일자 신문에 게재된 사진인데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스크랩해놓은 것이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의 우는 모습이었다. 늘 취재진과 카메라가 뒤따르는 사람이었음에도 남의 눈이나 체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성인남자가 자기 안방이 아닌 곳에서 그처럼 ‘징징’거리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일거수 일투족이 어쩔 수 없이 국민에 노출되는 보스 중의 보스가 울다니. 울고 싶어도 어금니 한번 꽉 깨물고는 참아야지. 그럼에도 그는 문 목사의 죽음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징징’ 울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출가한 딸들이 다 모였다. 딸 중에 가장 섧게 우는 이는 제일 고생스럽게 사는 딸일 가능성이 많다. 초상집에서는 자기 설움에 우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94년 1월이라면 김대중 당시 총재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 지 1년이 된 시점이다. 일생의 꿈을 접고 야인으로 살던 그에게 평생 동지의 죽음은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설움에 울었을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렇다손치더라도 여전히 그의 울음은 아름답다. 자기 부모가 돌아가셔도 남 앞에서는 목놓아 울지 않는 남자들의 겉치레적인 남자다움에 견주어보면 그 유연함은 더 빛난다.



진화된 감성에서 나오는 유머


솔직하게 말하면 그 이전까지 필자에게 ‘김 총재’는 권위적이고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가였을 뿐이다. 그의 눈물을 본 후에 필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재미난 경험을 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가 아니라 남자로서는 흔치않은 감성의 소유자다. 대통령이 된 후에야 알게 된 뛰어난 유머감각도 바로 그의 진화된 감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97년 대선 때 TV토론 덕을 가장 많이 보았다는 김대중 대통령. 그의 지적 사고능력과 당차원의 전략적 치밀함이 밑거름이 되었겠지만 필자는 그의 진화된 감성이 조미료와 같은 핵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논리적인 정견 발표와 같은 언어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말하는 이의 얼굴표정, 눈빛,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90% 이상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은 논리가 아닌 감성이라는 말도 된다. 그의 논리에 가미된 감성적 힘은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꼼짝없이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게 했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는 사진이 대통령 재임중의 모습이었더라도 신문에 공개되었을까. 대통령의 권위에 먹칠을 한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등의 국가차원(?)의 전략적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참모가 있다면, 그는 김대통령의 진짜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느낌이 없는 남자를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남자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의 카리스마란 근본적으로 느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고3의 카리스마’를 진화시켜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는 배우 최민수를 볼 수는 없을까. 9시 뉴스를 통해서 부드럽게 웃을 수 있는 ‘감성적 카리스마’가 내면화된 매력적인 대통령을 가질 수는 없을까.

대통령 김대중의 카리스마는 우리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배우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정서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유로 대통령과 스타배우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동시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두 사람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요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정신과 의사의 또 다른 사회적 소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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