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쏘주 한잔]
군대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힘들었던 건 새벽 경계근무다.
곤히 자다가 고참이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고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닌 나지막한 관등성명을 내고 일어나는 것이다.관등성명을 대지않고 일어나지 않으면 군기가 빠졌다고 아침 점호때 깨질 것이 분명하다.
훈련과 작업, 그리고 교육을 받는 군대생활에 잠이 주는 그 편한함은 하루 중 누구에게도 방해받지않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겨울날 고참들의 근무복을 챙겨주고 헐레벌떡 움직여 내무실을 나서면 한 겨울 칼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몸서리친다. 이 추운날 2시간을 견디는 것은 참음이 아니라 고통이다.
낯설은 부대, 이등병에게 밤하늘의 별과 칼바람은 혹독한 시련이다.
힘든 야간경계후 복장을 해제하고 지친몸을 침상에 뉘려 하는 데 같이 근무를 한 고참이 나를 부른다. 제대가 한달도 안남은 말년의 최고참이 베치카 옆에서 나를 부른다. 베치카 옆에서 라면이 보글보글 끌여지고 있었다. 나무 젓가락을 주면서 먹으라는데 한 입 먹으니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 먹어 보는 것 같다. 김치까지 송송 썰어넣어서 벌겋게 끓인 라면은 환상의 맛 그자체이다. 추위와 피로가 확 물러서는 기분이다.
고참이 옆의 수통에서 무언가 가득 한 컵을 따라준다. 마시라해서 한잔 마시니 쏘주 한잔이 아닌가?
쏘주가 그렇게 단줄은 난생 처음 알았을 것이다. 달다 달다 라는 말로도 표현 못할 천상의 맛 그자체이다.
라면과 쏘주 한잔... 그 새벽에 고참과 이등병도 없었고 환상의 시간속에서 나는 군생활을 당분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충전을 제대로 얻었다.
깊은 심연의 바닷속에서 두레박을 건져서 올린 그 라면과 쏘주 한잔은 군생활 중 나에게 최고의 감사한 충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