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숙직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그걸 들은 지구대 직원들이 몰려들어왔고, 그때부터 난리가 났죠. 당시 모든 경찰의 수사력이 집중돼 있던 서울지역 부유층 연쇄살인범이 지구대에 잡혀온 거니까요. 지구대에서 바로 마포경찰서 윗선에 보고했어요. 조금 있으니까 Y 형사의 부름을 받은 서울경찰청 소속 기수대 형사들도 몰려왔고요. 제 기억으로 분명히 양쪽이 유영철을 두고 서로 밀고 당기고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마포서에서 누구인가 계급 높은 분이 의경들을 데리고 들어와 유영철과 저희를 마구 때렸습니다. 기수대 형사들도 일부 맞았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러더니 강대원 기수대장이 와서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고 지구대에 인수증을 써준 후 유영철과 우리를 싹 다 데리고 갔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건 영화에는 기수대장이 경찰 정복을 입고 왔는데 실제는 사복을 입고 오셨죠. 강 대장님이 그중 제일 계급이 높았어요.”
‘살인백서’
강대원 전 기수대장은 이에 대해 “도착하기 전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인수증을 써주고 유영철과 제보자들을 데리고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며 “당시 유영철을 붙잡은 지구대 김 경장과 기수대 Y 형사가 공평하게 모두 1계급 특진을 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Y 형사는 분명 제보자들에게 공식 감사패를 주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잡을 땐 연쇄살인범인지 모르고 납치범인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후에 연쇄살인 수사에 참여하지 않은 지구대 김 경장은 어떻게 특진을 한 것일까. 하지만 강 전 대장은 “검거경위야 어떻게 됐든 간에 연쇄살인 사건은 나와 Y 형사 등 기수대가 수사해서 밝힌 것만은 분명하다”고 몇 번씩 강조했다.
유영철은 지구대에서 기수대로 옮겨지면서 정씨에게 “내가 다 불면 니들이 다 감당이나 할 수 있겠느냐”며 거드름을 피웠다고 한다. 정씨가 아직 경찰관인 줄 안 것이다. 유영철과 동갑인 정씨가 “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린다”고 하자 유영철은 “모두 28명을 죽인 게 맞다”고 거듭 밝혔다. 기수대로 옮겨진 유영철은 정씨가 형사가 아닌 것을 알자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영철은 기수대에 도착하자 제일 높은 사람이 오면 말하겠다고 했어요. 강 대장님이 직접 심문에 참여해 자백을 이끌어내고 노인 살해사건 현장검증을 갔는데 실제 범인만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해서 범인이란 확신을 주더니, 마지막엔 다시 번복하고 그런 식이었죠. 예를 들면 범행 내용을 쭉 설명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더라고요’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까무러치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현장검증에서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이 TV를 보고 재연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후 기수대 내부에서조차 연쇄살인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간부가 생겨났죠. 살인범이 확실하다는 강 대장님을 비웃었어요. 그런데 그 비웃던 간부가 잘못해서 중간에 유영철이 탈출했어요. 화장실에서 그 간부를 밀치고 빠져나간 겁니다. 저는 그때 유영철이 예전에 절도로 붙잡혔을 때 도주 경력이 있는 만큼 ‘각별히 조심하라’고 직원들에게 충고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별’을 많이 달아봐서 척 보면 알죠.”
▼ 유영철이 기수대에서 탈주한 동안 엄마와 여동생을 만났다는 게 사실입니까.
“예. 저는 (유영철에게) 그렇게 들었어요. 엄마와 여동생이 자기가 사는 오피스텔에 가서 함께 살인에 쓰인 온갖 연장을 다 가져다 버리고 목욕탕 청소도 깨끗이 했답니다. 다른 것도 증거가 될 만한 건 버릴 것 버리고 했다는 거죠.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걸 알고서 증거를 훼손할 수 있을까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유영철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때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 살인백서를 만들어놓은 게 있는데 그것도 내다 버렸대요. 거기엔 자기가 지금껏 어떻게 죽였고 피해자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기록돼 있다는 거예요.”
▼ 살인백서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시죠.
“유영철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하면, 처음에 노인들을 죽일 때에는 아무 이유도 순서도 없이 죽였지만 핏자국이 찍힌 버팔로 운동화 자국과 CCTV에 나온 자신의 뒷모습이 발견되고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 같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인할 결심을 했다는 거죠. 100명을 죽이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노트에 살인 계획을 적고 그대로 실행한 뒤 그에 대한 소감을 써 넣었답니다. 길게는 2개월, 짧게는 수일간 업소 아가씨를 손님으로 만나서 한 번에 수백만원씩 줘가며 환심을 산 후에 그 아가씨가 가족이 없거나 없어져도 찾을 사람이 없다고 확인되면 그때 죽였다는 거죠. 거기엔 살해방법, 해부법도 쓰여 있고, 장기(臟器) 등을 먹는 방법이나 시체를 유기하는 시간대, 장소를 자세히 기록해놓았답니다. 유영철이는 ‘이게 세상에 밝혀지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너희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비웃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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