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어려웠던 형


그는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짓는 집안이었는데, 성석제의 증조부가 ‘이재에 밝은 분’이어서 상당한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준다. 시골의 대농으로 20~30마지기의 논과 10마지기 정도의 밭을 소유한다. 그의 부친은 시골에서는 드물게 대학을 나온 분이었다. 충남대 50학번으로 농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신 분이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혼자서는 그 넓은 논밭을 관리하기 힘들어 장남을 불러내린 것이다.
성석제는 노모가 불편해하실까봐 그의 큰형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문학에서 큰형의 위치는 상당하다. 성석제와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 큰형은 고등학교 시절에 동네에서 어른 대접을 받았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공손한 학생이었다. 그러면서 동생들에게는 모범을 보이는 의젓한 형이어서 말 그대로 집안에서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 이 무섭고 어려운 형에게 성석제는 글을 배운다.
성석제는 바둑, 당구와 같은 잡기에 능하지만 지금도 낚시만은 하지 않는다. 어린 그가 보기에 무서웠던 형이 가장 즐기는 것이 낚시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생이 어찌 그럴까 싶을 정도로 형은 낚시에 몰두했다고 한다. 마치 칠순의 강태공처럼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마을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밥을 날라다주면 미동도 없이 찌만 바라보는 형의 모습이 그의 머리에 각인돼 있다. 그런 엄한 형과 성석제에게 어떤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가 일곱 살 무렵, 김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형이 방학이 되어 집으로 내려왔을 때 작은 사건이 터진다. 당시 시골에서는 빨랫비누를 만들어 쓰곤 했다. 양잿물을 섞어 만든 비누를 덩어리지어 마당에 널어놓았는데, 어린 석제의 눈에는 마치 소똥처럼 보였다.
그 모양이 우스워서 덩어리진 것을 다 뭉쳐놓았다. 그걸 본 어머니가 화가 나서 석제를 잡아 혼을 내려고 했지만, 다람쥐 같은 아이는 도대체 잡히질 않고 마당을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도 동안인 성석제의 어린 얼굴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침 대문을 열고 들어오던 형이 그 광경을 보았다. 형은 일단 가방을 차분하게 내려놓고, 학생모를 벗어 기둥에 걸고는 지겟작대기를 들었다. 그러곤 “거기 서!” 라는 명령과 함께 어린 동생에게 달려오는 형. 그때 성석제는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부지깽이도 아니고 지겟작대기라니,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더욱더 빠른 속도로 도망을 친다.
‘이리 와라,’ ‘네가 왜 가냐’는 식으로 마당을 몇 바퀴 돌다가, 뒷마당에 닭들이 드나드는 작은 개구멍 속으로 쏙 기어들어가서는 뒷산으로 올라가 다른 동네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컴컴해져서 집으로 들어가니 형이 보이질 않았다. 누나들과 고모들이 모여서는 수군대다가 어린 석제에게 어서 형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사죄하라고 했다. 동생의 버릇을 바로잡지 못한 형이 집에 걸어놓았던 소주 대병을 마시고 취해서 골방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어린 석제는 할 수 없이 골방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 형이 일어나 앉으면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어린아이가 “비누를 그렇게 해서…”라고 하자 형이 말한다.
“그게 아니다. 첫째로 너는 어머니가 오라고 하는데도 오지 않고 도망을 쳤다. 어머니가 오라고 하면 와야지. 둘째는 형이 오라고 했는데도 안 온 것이다. 그 잘못을 알겠느냐.”
그가 알았다고 하자, 형이 “잘못을 알았으면 됐다”고 하면서 자신의 손을 잡는데 확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마치 교회에서 성령을 받는 사람의 느낌처럼 형의 손은 뜨거웠다.

무협지 편력


형은 연세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몸에 병이 생겨 휴학하고 시골집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였다. 형은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형은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는 특수 독서대를 제작해 책을 보았다.
그런 형을 위해 중학교에 다니는 누나가 도서관에서 ‘혈무문’이라는 무협지를 가져왔는데, 형은 몇 장을 보더니 흥미 없어하는 것이 아닌가. 대신 손가락이 길어 손재주가 많은 형은 뜨개질을 해서 벙어리장갑이 아닌 손가락장갑을 떠서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자상한 성품이다.
당시 성석제는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익혀 신문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혈무문’을 읽어보았는데, 별천지였다. 무협지는 단숨에 그를 매료시켰다. 형을 위해 빌려온 무협지들은 열 살 성석제의 독차지가 됐고, 이때부터 무협지 편력은 시작된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무협지의 황당하고도 광활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마침 부친의 친구 분이 서점을 겸한 도서대여점을 하고 있었다. 참고서와 교양도서는 서가의 한 줄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무협지로 채워진 보물창고였다. 그걸 다 읽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빠른 독법이 저절로 몸에 익은 것 같다. 자신은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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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청(殺靑)’의 작가 성석제
“시 쓰던 시절 행복했죠, 소설 쓰는 지금? 재미있죠”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성석제의 소설은 지루하지 않고 경쾌하다. 또한 푸른 기운을 잘 뽑아낸 찻잎처럼 떫지 않으면서도 푸르고 싱싱하다. 무엇보다 성석제는 세상을 ‘재미있게’ 본다. 여기에 그의 문학적 매력이 있다.





‘살청(殺靑)’이라는 말이 있다. 죽일 ‘살’자에 푸를 ‘청’자. 푸른 것을 죽인다는 뜻인데, 대나무를 불에 쬐어 대나무의 푸른빛을 빼는 일을 살청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의미로는 사서나 기록, 또 서적을 이렇게도 부른다고 ‘이희승 국어사전’에서는 설명한다.
이 단어는 의미가 무척 풍부하다. 다인(茶人)들은 찻잎을 덖어서 잎의 푸른 기운을 뽑아내는 작업을 일컬을 때 쓰기도 한다. 푸른빛을 빼내는 것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젊은이들도 방자한 그 푸른빛을 뽑아내야 어른이 되고, 청바지도 색이 좀 바래야 더 멋이 난다. 우리 일상에도 살청은 군데군데 숨어 있다. 여름의 녹엽도 언젠가는 태양빛에 살청되어 아름다운 탈색의 과정을 밟는다. 그때 찬란한 단풍빛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살청은 예사로운 말이 아닌 것 같다.
뭔가를 써서 기록하는 것도 살청이다. 종이에 글을 쓰기 이전에 대나무를 잘라 거기에 글을 남겼는데, 그때 대나무의 푸른 기운을 죽이는 것도 살청이다. 시나 소설을 쓰는 것도 일종의 살청 같다. 그런데 이 푸른 기운이 유독 남아도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성석제(成碩濟·47)다. 그의 글이 덖지 않은 찻잎처럼 떫다는 게 아니다. 아주 잘 덖어 좋은 차를 우려내는 데도, 사람만은 푸르고 싱싱하다는 이야기다. 살아서 꿈틀거려 분명 깊은 살청의 세계를 거쳤을 그의 글들은 푸르게 빛나고 있다.

“매이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해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 어린 시절의 성석제를 상상했다. 그는 무척 개구쟁이였을 것이다. 똑똑했을 것이다. 그리고 잘 웃었을 것이다.
그는 커피를 주문하고, 휴대전화로 뭔가를 똑딱거리면서 “야 세상 참 좋아졌네” 라는 말을 한다. 신기한 세상, 놀라운 세상이라는 말을 하면서 오늘 처음 휴대전화로 송금을 했다고 했다. 2007년 6월26일 오후 4시경, 그는 휴대전화로 처음 송금했다는 것이다. 모바일폰 뒤에 칩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운로드해서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다가 문득 “왜 작가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다. 뭐든 하나만 물어보면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모바일폰과 노트북의 뚜껑을 닫고서는 말했다. 예상대로 나는 줄곧 듣기만 했고, 그는 재미나게 이야기했다.
“체질적으로 매이는 걸 싫어해요. 속박당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우리들은 보통 성장기에 꽁꽁 묶여 있잖아요. 그걸 벗어나고 싶어 방황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다 자라서도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은 자유로우니까.”
그는 소위 안정된 직장에서 안정되는 게 두려워 직장을 나온 사람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안정이 그에게는 속박이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두렵다니, 그것은 편안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탐험가처럼 세상이라는 거친 산정을 향해 암벽 등반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직장을 관두는 데도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사표를 내자 동료들이 한번 다시 생각하라면서 술을 사주는 것이었다. 재미있게 술을 마시고 다시 근무하다 또 사표를 내니까 또 술을 사줬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근무하다 또 사표를 내니까 그때는 모두들 그만두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그가 해준 이야기다.
굳이 작가가 되려고 사표를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단 퇴직금으로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다음 문제는 그때 생각하자는 식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아내와 약속한 월급 수준의 돈은 매달 통장에 입금했다. 아니, 직급이 올라가듯이 그 액수도 조금씩 많아졌으니 금상첨화다. 생활이 곤궁하게 되어 누추해졌다면 아마 다른 일을 재미있게 했을 것이다.
성석제는 1986년 문학사상에 시 ‘유리 닦는 사람’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처구니가 산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까지 그는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노래’, 장편소설 ‘아름다운 날들’ ‘순정’ ‘인간의 힘’, 산문집 ‘소풍’ 등 다수의 책으로 확실한 고정 독자를 확보한 전업 작가다. 그가 최근에 낸 책은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라는 산문집이다.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소설가로서 성석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짧은 글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성석제 소설의 흐름은 지루하지 않다. 우선 자신이 재미없는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의 장편소설 역시 자잘한 이야기들이 모여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식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홍명희의 ‘임꺽정’식이랄까, 처음부터 거대한 흐름의 지도를 그리는 대작과는 거리가 먼 작법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이랄지, 채만식의 ‘삼대’처럼 오래 묵어 깊은 작품이 주는 어떤 의미의 ‘지루함’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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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말은 이러했다.

결혼 생활 15년이 다 되어가는 데 나의 현재위치가 무언지 모르겠다. 두아이 곧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아침부터 밥 해먹이고 준비물 챙겨주고 전쟁같이 아침을 보내고 나면 쌓이는 것은 설겆이 거리요. 보이는 것은 거실과 방의 치울 것들 뿐이라. (어느집인들 안그럴까 마는) 커피 한잔 마실 시간없이 오전에 빨래며 집안청소에 보내다 애들 학교에서는 무언 청소며 오라는 것은 많은지. 학교 다녀온 아이들 뒷치닥거리하랴. 내 강사 시간 보내랴. 오후는 어떻게 가는 지 또 저녁은 어떻게 뭘 먹어야 하는 지 하는 일 없이 또 소중한 하루가 또 간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이다. (반박을 하고 싶었다. 어느 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들이 어디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들어 주었다.)  하루가 너무 빨리가고 난 표시나지도 않은 이 집안일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지친다는 말이었다. 아니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일인데 그런것도 못참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려한다는 말이냐. 여자의 역활이라는 것이 그런게 아니면 무어라는 말이냐?    아내는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당신이 요즘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참된 웃음이 아니고 힘든 몸부림이었다는 것에 정말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 당신에게 아내와 엄마라는 큰 짐을 지게 하고 같이 나누지를 못했네. 내 입장만 생각하고 내 방식으로만 당신을 이해하려 했어. 알량한 그 생활비 벌어다 준다는 핑계로 당신의 힘듬과 고통을 나누지 못함을 내 진정 사과할게. 내 오늘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당신에게 해야 할지를 알았어."

나는 비로소 느꼈다.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가? 남편과 아빠의 자리를 어떻게 해 왔는가? 내가 잘 했다고 자부하고 해온 지난일들 중 다시금 반성과 해나갈 날에 맑은 공기가 뇌리를 스쳐갔다. 아내와 2시간 가까이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 말들에 때로는 긍정을 해주고 때로는 반론과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도 전문의를 알아볼 몇일을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몇일후 아내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 나  이제 다 낳은 것 같아. 우울증이네. 여러 머리 아팠던 일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 당신하고 그 날 몇시간 이야기 한 이후로 아무렇지도 않아! "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말이었다. 내심 나는 얼마나 근심하고 마음이 안좋았는데. 얼마나 반성하고 자책도 했는데..   그랬다. 아내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진정 필료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랬다. 아내는 진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내모습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진심으로 원했던 거다. 나는 그 사람이 되어준 것이고 그리하여 아내의 힘들었던 마음의 병이 경청과 배려의 대화로 치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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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심각하게 내게 말을 건네왔다.  상담을 받고 싶다고 치료도 받을 수 있으면 받고 싶다고...  순간 나는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이런 일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싶다는 말이 나에게도 상당히 충격이었나보다...    

그랬다. 아내는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고 싶다는 말이었다. 어디 상상이나 할 법의 이야기인가? 내가 아내에게 못한 것이 무엇이었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려 노력한 시간들이였고 사랑과 애교,부부간의 최대의 관심과 배려도 내가 더 했다고 보는 데 정신과 상담이라니...  몇분간의 대화가 단절된 채 장고를 하다가 숨을 크게 쉬면서 단 한마디만 했다.  

" 그래! 좋다. 당신이 상담과 치료를 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당신같이 깊은 생각과 판단을 지닌 사람이 말하면 그 만한 이유가 있겠지. 대신 몇일만 시간을 다오. 내가 그 분야의 최고의 실력과 능력을 갖춘 의사를 알아볼 시간을 주었으면 해. 대신 이유가 왜 인줄 나에게 자세히 설명을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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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 사부님!

 

기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2009년이 시작하면서 먼저 사부님께 새해인사를 드리고 또 글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항상 저에게 빛과 소금으로 때로는 질책과 삶의 나침판으로 다가오는 사부님이십니다.

올해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가족분들의 소중한 건강과 평안하심이 함께하시길 기원 또 기원합니다.

 

2008년은 정말 저에게 값지고 행복한 땀의 결실을 이룬 해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후회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았기에 후뭇합니다.

2009년의 도약의 해로 삼겠습니다. 2008년에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이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서 비상의 꿈에 조금씩 다가갈 것입니다.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다 하겠습니다. 배려하고 은인자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갈 것을 다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분에게 이렇게 글을 드림은 저의 영혼에 맑은 샘물을 마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오늘도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이 아침 멋지게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양에서 그랜드슬램을 꿈꾸는 젊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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