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장군의 테두리
“단편이나 장편이나 소설은 장르에 관계없이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내부에서 웅성거리는 에너지가 느껴져야 된다고 믿습니다. 에너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글을 읽다 보면 억지스럽게 썼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아마 에너지가 부족해서, 힘이 달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맥주 같은 음료가 에너지가 웅성거리는 술이 아닐까? 성석제는 맥주를 좋아하는데, 땅콩은 먹지 않는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어서다. 차를 마시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술 이야기로 넘어간다. 맥주를 마시면서 요즘에는 맥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맥주에 대한 짧은 글을 준비한다고 했다. 발효시킨 보리음료인 맥주의 역사가 술 중에서는 아마도 제일 오래됐을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있었는데, 그때는 맥주를 액체 빵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음식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소풍’은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필자 또한 과거 음식에 관한 산문 연재를 그에게 제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일로 바빠, 필자가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한 권 먼저 써버린 적이 있다. 나중에 성석제의 책을 읽고 그 책 괜히 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성석제는 작가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작가는 자신이 읽고 좋아하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런 식으로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잘 읽은 소설가의 스타일을 닮을 수밖에 없다.”
성석제는 자신이 읽고 좋았던 소설로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와 베케트, 프랑스의 이오네스코와 사르트르와 같은 작가들의 단편을 들었다. 이 작가들은 짧고 간결하지만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충혈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 역시 그러하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했다. 처음에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설이란 표현의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과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죠. 즉 소설은 공감의 매체입니다. 글의 그릇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좀더 재미있는 말로 소설을 이야기해줄 것을 권했다. 아마 우리 둘 다 술이 취했을 것이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위해 쓰는 물건 중에 똥장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지을 때 전통적으로 쓰던 거름을 지고 나르는 물건인데, 인분을 져 나르기 때문에 이 통이 새면 낭패지요. 냄새가 얼마나 나겠어요. 그래서 나무통으로 만든 똥장군의 테두리는 잘 마른 대나무로 친친 감아놓습니다. 단단하게 밀착시키기 위해서지요. 내 어린 시절 활놀이할 때 쓰기에는 똥장군의 대나무 줄기만한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 테두리 잘 마른 대나무를 골라서 벗겨내어 활을 만들어 한겨울 잘 놀았지요. 이듬해 집에서 머슴이 내가 테두리를 몰래 빼낸 것을 모르고 그 똥장군에 거름을 담아 나르려고 들어 올리다가 그만 와르르 거름을 쏟아버리고 맙니다. 그때 머슴이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석제야 하고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 머슴이 왜 내 이름을 불렀을까? 소설이 뭐냐고요? 소설은 똥장군이고, 억울한 머슴이고, 똥장군 안에 담긴 똥오줌일 수도 있지요.”
‘바람의 전설’ 주인공이 바로 나
한바탕 웃고 났지만, 뭔가 가슴에 남는 게 있는 이야기다. 점점 더 취기는 오르고, 성석제는 시인으로서의 생활도 이야기했다. 시인으로서 살 때는 세상 물정을 몰랐지만, 시를 쓰던 시절에는 행복했다고 한다. 그 행복이 무엇일까? 소설을 쓰는 지금은 재미있다고 한다. 그 차이를 성석제는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죠.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만의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것은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증폭되는 힘이 있어요. 그것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예술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는 예술이겠지만, 물론 언어미학이 뛰어난 소설도 있기는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소설이란 대화의 한 방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 언어를 가지고 예술을 하고 싶었다면 아마도 나는 시를 썼을 겁니다.”
그의 경쾌함은 이런 면에서 빛을 발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성석제의 소설을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소설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작품이 의외로 그 함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성석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서의 소설, 그것은 가히 예술이라 할 만하다. 그의 소설 ‘소설 쓰는 남자’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바람의 전설’에는 한 예술가가 나온다. 무도 예술가다. 그는 그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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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 1961년 서울 출생
●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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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성석제가 무도 예술인이란 말인가? 아니, 그 반대의 경우였다. 그는 그 주인공들과 정반대의 경우로서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춤을 전혀 출 줄 모르는 예술가와 춤을 잘 추는 무도 예술가는 다르면서도 같다는 것이다. 그 소설의 모티브는 어느 날, 캬바레에 다녀온 후배가 막연히 퇴폐적으로만 보이던 그곳의 놀라운 세계를 전해주면서부터였다. 그곳은 정말 예술가들의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즉 학력, 외모, 재산으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춤 하나로만 결정하는 진짜 선수들의 세계를 본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당신 제비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을 향해 극중 주인공인 영화배우 이성재는 또박또박 말한다.
“나, 제비 아닙니다. 예술갑니다. 무도 예술가.”
그런 식으로 성석제도 예술가다. 세상을 무대로 비유한다면 그는 연극배우이고 춤꾼이면서, 자연으로 비유하면 그는 지루한 겨울을 깨우기 위해 남쪽에서 날아온 제비이고, 눈앞에 확 나타나는 어처구니이면서, 결국은 예술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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