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청(殺靑)’의 작가 성석제
“시 쓰던 시절 행복했죠, 소설 쓰는 지금? 재미있죠”


 





그리고 형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다. 그가 동네에서 아이들과 장기 두는 모습을 보던 형이 “유치하게 무슨 장기냐”면서 바둑판을 펼친다. 처음에 25점을 깔고 두었다. 처음 두니 자기 집에 자기 돌을 두어 잡아먹히는 수준이다. 형은 그런 동생의 바둑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이 묵묵히 완전박살을 내버린다.
어린아이는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해서 다음 방학 때 형이 내려오면 박살을 낼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형과는 단 한 판만을 두게 된다. 당시 형의 실력은 9급 정도였는데, 다음 방학 때 동생이 두는 것을 보더니 13급 정도라는 판정을 내려준다. 그래서 자신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9급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둑에서 5급 이하는 별 의미 없다는 부연설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성석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인 1973년에 형이 병으로 요절한 것이다. 형은 보통 아들이 아니었다. 그 슬픔을 겪은 부모의 심경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노모에게 형에 대한 아픔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바둑 맞수 담임선생님
그 일을 겪은 후 가족은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한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이 먼저 가고 성석제는 1년을 그 큰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낸다. 처음에는 서러웠는데, 살아보니 몹시 좋았다고 한다. 집이 넓어서 집안에 들어온 고등학교 자취생과 어울려 놀면서 잘 보낸다. 읍내 만화가게의 모든 만화를 독파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서울로 전학을 온다.
서울에 와서 기원을 찾는다. 거기에서 또래가 7급 정도 둔다고 해 돌을 잡았는데 무참히 깨졌고, 그 아이를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신이 성장한 만큼 그 아이도 성장해서 결국 한 번도 못 이겼다고 고백한다. 성석제는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바둑 50%, 만화 25%의 생’이었다고 한다. 약은 약사에게 주문하듯이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신고등학교에서 바둑을 좋아하는 국어선생을 담임으로 만난다. 그가 문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시절 때부터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신입생들의 학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보는 시험에서 국어를 75점 받아 반에서 1등을 했다. 평균이 15점 정도였으니 담임선생의 눈에는 그가 보석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전까지 객관식 문제에 익숙했다. 처음으로 모든 문제가 주관식으로 나와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무협지와 만화로 단련된 성석제의 ‘논술’ 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담임선생은 그를 곧바로 문예반에 넣어서 창립 90주년 교지를 만드는 일을 시킨다. 편집 일은 그가 특별히 좋아했다기보다 구속받기 싫어하는 그의 성품에 어울리는 일이었다. 교지 편집을 핑계로 수업도 빼먹고, 교지를 만들면서 편집일도 배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이 문예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교지 일이 끝나자 문예반을 나오고 싶었지만, 깡패 기질이 있는 선배들이 문예반을 나가려거든 ‘빠따’를 맞아야 한다며 몽둥이를 드는 바람에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국어선생님은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수업시간에 종이에 연필로 바둑판을 그려 몰래 바둑을 두는데, 선생에게 걸렸다. 선생이 너 몇 급이냐고 물었고, 1급이라고 대답한다. 선생은 아마도 ‘요 녀석 봐라’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선생과 제자는 숙직실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선생과 성석제는 실력이 비슷했다.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은 금방 친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스승의 눈에 바둑 잘 두고 국어 잘하는 성석제가 얼마나 귀여웠을 것인가. 여기서 그의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한다. 그는 현재 아마 5단으로 문단 고수 중 하나다. 김성동, 송영 같은 고수들이 있지만, 아마도 그를 가볍게 여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집으로 제자를 데려가곤 했다. 사모님이 선생님과 한참 나이차가 나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그분의 말씀이 몇 년에 한 번씩 제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선생의 집에서는 주로 바둑을 뒀는데, 그 사실을 간파한 친구들이 성석제에게 자신들이 빼앗긴 ‘보물’들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선생 집에는 아이들이 보다가 빼앗긴 무협지와 ‘빨간책(포르노 잡지)’들이 쌓여 있었다. 바둑을 두고 나서 그 압수품들을 좀 가져가도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물건을 돌려주고 빵 얻어먹으며 재미나게 살았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석제의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는 세상을 재미나게 ‘보는’ 사람이다.

기형도와 신대철
최근에 낸 그의 산문집을 보면 그러한 면이 잘 드러난다.
“나는 잘 웃는다. 대학 시절 어떤 자리에서 크게 소리 내어 웃다가 스승으로부터 ‘별일 아닌 것 가지고 뭐가 좋다고 그렇게 혼자 웃느냐’고 지엄한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울상을 지으며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서는 실컷 웃고 다시 들어갔다. 그러고도 웃을 일이 자꾸 생겨서 귓구멍이 아프도록 후비며 웃음을 참으려고 했던 기억도 있다. 자주 웃고, 웃을 만한 기미에 민감해지다 보니 흥미로운 것, 재미있는 것에는 쉽게 빠진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설가이면서 짧고 재미난 산문을 맛깔스럽게 써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경신고는 미션 스쿨이어서 수시로 보는 예배 때문에 상당한 속박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교복의 속박감에서 벗어나 대학에 들어간 성석제는 드디어 자유를 만끽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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