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서 1학년 1학기 동안 미팅을 평균 일주일에 3번 정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55회의 미팅을 하고 나서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연세대 법학과 출신이다. 당시 정외과에 다니던 친구들도 거기에서 만난다. 그중에 고(故) 기형도 시인이 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당시 대학생들이 의무적으로 학점을 따기 위해 군에 일정기간 입소했던 문무대에서였다. 기형도는 노래를 잘했다. 훈련을 마치고 휴식시간에 노래를 하면 노래하는 동안 휴식시간을 연장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기형도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기형도는 노래를 4절까지 불러서 훈련받던 학우들을 푹 쉬게 했다. 필자도 시운동 동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시절에 기형도의 노래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노래는 성악 창법으로 유장하게 좌중을 압도한다. 성석제는 2학기 때 복도에서 기형도와 마주쳐 이야기를 나눴다.
기형도는 그에게 연세대 문학동아리 가입을 권했다. 마침 1학기 때 미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그 통과의례를 마치고, 뭐 좀 재미있는 것 없나 하던 참이라 친구를 따라 문과대 수위실 맞은편에 있는 문학동아리를 찾았다.
동아리 방은 6·25전쟁 때 감옥으로 쓴 적이 있는 컴컴한 공간이었는데, 가운데 긴 탁자가 있었다. 마침 그 탁자에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성석제는 그래, 이제부터 여기에서 내기바둑을 둬서 점심을 해결하자는 생각에 가입했다고 한다. 문학동아리는 그에게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서로 쓴 시를 발표하고, 깨부수고, 끝나면 저녁 때 선배들이 술 사주고, 여기에서 그는 기형도, 권진희 등과 어울리면서 잘 놀았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앞에 한 시인이 찬란하게 나타난다. 무인도에 있다가 사람을 만난 격이었다. 교양국어 시간에 만난 신대철 선생이다. 신대철 선생은 강의를 무척 재미있게 했다고 한다. 재미난 이야기 덕분에 그가 좋아졌고, 선생의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읽고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릴케, 하이네의 시에서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신대철 선생의 시에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눈이 확 뜨인 것이다. ‘그래 이런 것이 시라면 나도 한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돈을 주고 산 첫 번째 시집이 바로 신대철 선생의 시집이라고 했다. 그분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달라고 하니 “대단히 치열하고 힘들게 사신 분”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만다. 필자 역시 그 시대의 시집 두 권을 꼽으라면 신대철의 ‘무인도를 위하여’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을 깨는가?’를 들겠다.
스승이자 인생 친구인 정현종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이듬해가 바로 1980년이다. 3월에 학교는 휴교를 한다. 시위와 전두환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우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에도 역시 치열하게 놀았다. 시골에 내려가 모내기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하지만 가까이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함구무언이다.
그는 판·검사가 되기 위해 법학과에 간 것이 아니었다. 법학과에 가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매력적인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 같이 신문방송학과에 가자고 한 약속을 어기고 법학과에 입학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재미가 없어 3학년 초에 군에 입대한다.
군대에 다녀오니 기형도가 교내 문학계를 평정하고 졸업을 한다. 이에 자극을 받아 쓴 시로 교내문학상에서 가작상을 받았다. 당시 당선작은 심종철의 작품. 이때 심사위원이 정현종 시인이다.
성석제는 스승 정현종 시인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그분을 이야기하자면 우선은 술을 많이 사주시는 어른이었다고 한다. 스승은 만나면 만날수록 ‘바닥이 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바닥이 없어, 솟아나는 샘처럼 항상 새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즉 반복이 없어 지겹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선생은 애인으로는 최상급일 겁니다.”
그리고 토를 단다.
“그런데 연세가 많으셔서 문제지요, 히히.”
제자는 지금도 스승을 한 달에 한두 번 찾아뵙는다. 20년 이상을 만났는데도 여전하시다. 그런 모습에 놀란다고 한다. 선생은 “총명하다”라는 표현을 잘 쓰는데, 정작 선생이 총명한 분 같다고도 했다.
성석제에게 정현종 시인은 대학 스승이면서 인생의 친구 같은 분이다.
“그동안 제가 쓴 시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일상적인 이야기 몇 마디 하고, 주로 산에 많이 가는데 여름날이면 ‘산도 덥구나’라든지, 같은 장소에 여러 번 찾아가서는,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다르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두 마디 나누는 겁니다. 그리고 산속의 나무를 지나치면서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상수리나무, 동백나무, 피나무, 소나무 등을 가리키면서 이 나무는 이러이러한 나무라는 식이지요.”
성석제는 스승의 인품을 선생이 오랫동안 신고 있는 등산화에 비유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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