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제3권 - 헝클어진 천하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이 삼국지 읽는 재미에 푹 빠진 것 같다.  4권읽는 데 그 재미와 흐름에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3권은 여포와 조조에 대하여 흐름이 맞여져있다. 여포가 우유부단하고 주관이 없지만 힘이 장사이고 무예실력이 뛰어남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조조의 사람을 쓰고 내치는 잔인함과 계락에는 혀를 내둘른다. 또 아들을 죽이면서 탈출하는 내용에서는 잔혹함과 냉정함이 있다. 자식을 버리고 자신은 산다.  유비는 아직까지 잠룡이다.  

3권까지는 전개의 서막에 불과하다. 4권부터 시작하는 관우의 조조와의 인연,5관문을 넘으며 6장수와의 싸움...  제갈량의 등장등이 정말 기대 기대 된다.. 

왜 삼국지인가를 이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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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심리의 기술 트릭
안세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웬지 외국인들이 쓴 협상의 책은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지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사업도, 살아가는 자체가 영업이고 협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사고 팔게 한다는 것은 기술이자 실력이다. 

 클린 트릭  오세영이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읽은 만은 한데 크게 감동이 들지는 않는다. 감동이 들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의 이야기가 많아야 하는데 비껴댄 듯한 책의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솔직히 더 썼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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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었던 무술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턱걸이가 아니라 배꼽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로 쳐라. 스피드도 중요하다. 아주 추운 날 정권치기를 할 때 주먹이 지나간 선을 따라 하얀 선이 생겨날 만큼의 속도로 쳐라. 그 주먹으로 치면 소는 죽는다!”

17세의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뒤 도쿄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에서 우승하고, 극진가라테라는 실전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해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전부 꺾는 등 초인적인 일화를 남겼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바람의 파이터’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최배달 무술의 근원을 아들 최광범(30) 씨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최강의 훈련을 거친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30,000회의 연습을 강조할 정도였죠. 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주 꺼려하셨습니다. 혹여 일이 잘못 돼도 빠져나갈 변명의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항상 송두리째 ‘목숨’을 걸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최씨는 얼마 전 동생 광수(28), 광화(22)씨와 함께 최근 아버지 최배달의 삶과 무술 세계를 담은 평전 ‘This is 최배달’(찬우물 刊)을 펴냈다. 8월 12일에는 그가 자문을 맡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감독 양윤호ㆍ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도 개봉한다.

-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
평전이 생전 최배달의 무술 이론과 철학 세계를 충실하게 고찰하고 있다면, 영화는 최배달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강한 외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최씨는 특히 배우 양동근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영화 개봉 후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최배달의 인상을 고스란히 실제 최배달의 느낌으로 연결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배우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 최씨는 후한 점수를 준다. “아버지 무술 세계를 적어도 7,8할은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한다. “촬영도중 배우 양동근에게서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봤어요. 경기 후 허탈해 하던 인간적인 갈등까지… 생전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최배달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벽돌 격파를 하면서 거들먹거리곤 하던 어느 무술가와의 자리에서 벽돌을 두 손에 쥐고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술집에서 시비를 걸던 건달 앞에서는 뚝배기를 귀를 엄지와 검지로만 차례로 뜯어냈다고 하는 ‘무한’의 힘이 화제의 핵이다.
“중 3때 생일날 아버지께서 180cm에 90kg짜리 샌드백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신이 나서 날마다 이마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도록 치고, 또 쳤죠.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텅텅’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도록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다. 멋은 있지만…’하며 질책하시더군요.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죠. 아버지가 짧은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그 육중한 샌드백이 ‘퍽’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혀버린 겁니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일흔에 가까웠어요.” 그때 아들은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버지의 저런 ‘괴력’이 그를 전설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흔히 무廈된??만화에서는 무예 고수들이 죽기 전엔 그의 후계자에게 평생 갈고 닦은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래서 그도 생전 아버지에게 최고의 고수가 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아들을 타일렀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한 건 비법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는데 올곧게 정진했기 때문이다.”

- 마음에 칼을 품고 올곧게 정진하신 분
세인들은 종종 그런 아버지를 시라소니, 김두한 등과 비교한다. “최배달과 시라소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이 같은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두지 않지만, 때로 은근히 부아가 치민 적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모두 당대를 빛낸 뛰어난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무술인으로서 심신을 수련하며 ‘칼끝에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의 무예 고수들과 100여 차례 겨뤄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파이터로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 최배달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라는 무게가 더욱 크다.
“어린 세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길 좋아하셨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얼굴은 천장 쪽을 향하게 해서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스레 머리를 감겨주곤 하셨어요.”
94년, 험난한 무술인의 길을 원치 않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시험을 준비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난 뒤, 3주 만이었다. 말기 폐암이었던 아버지는 90여 kg의 몸무게가 마지막 순간에 60kg이 될 정도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내 자식들에게는 “소를 때려잡던 강인한 아버지로 남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산을 잃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무술과 철학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 출처 : 주간한국


출처블로그 : 한국자기개발원




"최선만으로 안된다, 목숨을 걸어라"

"아버지 무패의 비결은 자기수양과 정진이었어요"… 아들, 최배달 일대기 엮어 책·영화화

“아버님은 의외로 약한 분이었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였긴 했지만 말년엔 몸 이곳 저곳이 안좋아 자주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습니다. 특히 관절이 좋지 않으셨어요. 손목이나 무릎 같은 곳이 심했습니다. 손목을 뒤로 젖히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아버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040세대에겐 ‘고우영, 대야망’으로, 2030세대에겐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씨.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39년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 도쿄 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서 우승한 뒤, 미국·남미·중국 등을 돌며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적 인물. 그가 창시한 ‘극진(極眞) 가라테’는 오늘날 일본 공수도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러시아·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100여개국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배달의 장남 최광범(30)씨는 강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풀어내는 ‘기억’엔 의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이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젊었을 때 워낙 심하게 몸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계속 단련을 하셨으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아버님은 생전에 약 100번에 걸쳐 황소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47마리의 뿔을 꺾고, 4마리는 즉사시켰죠. 그때 쓰러지는 소에 무릎이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00㎏도 넘는 황소가 무릎을 덮쳤으니…. 제 생각으로는 당시 미세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퇴행성 관절염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쏘는 듯한 눈빛에 다부진 체격

부친을 닮아 그럴까? 최광범씨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탱글탱글하니 쏘는 듯한 눈빛에 프로레슬러 같은 체구, 활기 넘치는 다부진 몸집이 사진으로 본 ‘최배달’을 쏙 빼닮았다. ‘한 가락’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하. 저희 3형제가 다 그래요. 저는 174㎝에 92㎏, 둘째는 175㎝에 95㎏, 막내는 181㎝에 95㎏입니다. 모두들 운동을 좋아하죠. 저는 킥복싱과 헬스를 했고요, 둘째(최광수·29)는 체육대를 나와 킥복싱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막내(최광화·23)는 아직 학생인데 검도를 익혀 서울 검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최광범씨는 만화가 방학기씨가 스포츠신문에 ‘바람의 파이터’를 연재(1989~1993년)할 때, 작가 앞에서 실전 자세를 시연해 이해를 도왔던 무술 모델. 그런 그가 왜 ‘극진 가라테’가 아닌 킥복싱을 배웠을까?

“우리나라엔 가라테 도장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권도와의 마찰을 우려, 고국에는 극진 가라테를 들여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물론 가라테를 배우고 싶었었죠. 어렸을 때 아버님께 ‘좋은 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뜻밖의 대답을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도장’이란 겁니다. ‘매일같이 갈 수 있고, 틈 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 거지요.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킥복싱 도장이었습니다.”

 

‘배달’은 자식들에게 “기본부터 착실히 다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항상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겨뤄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비결은 결코 화려한 공중돌기나 발차기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오직 ‘정권치기’ 하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발차기가 화려할수록 위력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미국 프로레슬러 톰 라이슨과 붙었을 때 얘깁니다. 만화에선 공중에 붕 떠서, 링 3면을 돌아가면서 발로 차,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톰 라이슨을 가격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와 다릅니다. 상대도 평생을 갈고 닦은 고수 아닙니까? 그런 상대의 빈틈은 눈 깜빡하는 순간, 0.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벽을 세 번씩이나 차면서 빙빙 돌면,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때도 아버님의 무기는 단 한 방, 상대가 ‘깜빡’하는 그 틈을 파고든 정권치기였다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역설

최광범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버님을 보면 늘 ‘칼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자신을 다듬으며 정진하셨거든요. 집에서도 좌선을 하시고, 천천히 산책하며 차를 마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에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그 말을 몹시 싫어하셨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아니냐’는 거죠. ‘자기 상황에 따라 단지 성실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이뤄지는 것이 적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달’에게 최광범씨는 늦둥이다.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늦둥이도 이만저만한 늦둥이가 아니다. 무예를 위해 결혼마저도 뒤로 미뤘던 것일까?

“어머님이 일본서 유학할 때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24세, 아버님은 45세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을 만나기 전,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이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을 데려오자 집안 어른들이 비로소 인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었으니까요. 1974년에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귀국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에게도 사생활은 있었을 터. 부부싸움이나 자녀 교육문제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배달’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어요. 소리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은 제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트러블이 생길 것 같으면 어머님은 아무말도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요. 그럼 그냥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최광범씨는 ‘최배달’의 아들로서 “고교시절 동급생들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대편 얼굴이 부서지다시피 했거든요. 의사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들이 ‘최배달 아들이 싸운다’며 우루루 몰려 나와 에워싼 채 구경하려 몰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진 겁니다.”

10여년 전 치료비로 400만원이 나왔을 정도라니, 집에서 엄청 혼났을 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술은 너 자신을 닦는 거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러셨다더군요. ‘그래도 맞고 들어온 것 보단 낫다’라고요.”

 

‘최배달=일본인’ 일본 만화는 왜곡

최광범씨는 바쁘다. 8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제작 자문을 맡았고, 부친의 일대기를 엮은 책 ‘This is 최배달’(찬우물)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생활 아시잖아요? 병원 일을 보면서 인터뷰도 하고 하려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휴가를 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최배달을 다룬 한 일본 만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 만화에는 최배달이 ‘가미카제’ 조종사로 묘사됐고 일본이 패망하자 ‘허망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도장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귀화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배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일본인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최씨는 “시정조치가 없을 때엔 극진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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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오늘 뿐이다.

 

요즘 내가 내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다.

단 오늘 뿐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살자는 결의와 다짐이다. 어쩌면 나의 독한 의지의 결집이면서 내 자신을 경계하는 겸손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 방황의 아픔과 고통을 알고 있다. 지나온 날들과 생각이 나를 만들었다.
요즘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세월동안 지나온 돈과의 싸움에서 조금 이긴듯 하다.

 

2009년 1월 한달 수입이 1900만원을 넘었다. 1900만원 매출이 아니고 순수입이다.

정말 처절하게 노력한 댓가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1년 연봉이 될 수도 있다. 이 큰 돈을 내가 1달 만에 벌었다니 정말 감사 감사 할 뿐이다. 그 몇 수년 돈 벌어 볼려고 발버둥쳐도 그리 안되고 힘들더니 말이다...몇년에 벌어야 할 돈을 단 4개월 만에 벌었다.
1인 기업, 정말 1인 기업이었다. 나 혼자 스스로 영업하고 판매하고 설치하고 as까지 팔방미인처럼 뛰어다녔다.

 

내가 선택한 직종은 집에 꼭 필요한 제품판매 및 영업 일이다.
벌써 2년차가 다 되어간다. 요 근래 크리스마스,신정 할 거 없이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0-11시까지 일한 댓가다.
쉬어본 것은 가족들과 같이 한 화천 산천어 축제를 제외하고 4개월 사이 한 차례도 쉬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쉬고도 싶고, 놀고도 싶고, 책도 보고 싶고, 잠도 실컷 자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지금 쉴 때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단 하루도 허투로 살수가 없다.

 

돈은 역시 사람이 벌어 준다. 즉 고객이 벌어준다는 말이다. 그 고객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어떻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가? 내 자신을 먼저 최고의 프로로 만들어 제대로 된 서비스와 어드바이스를 주어여 한다. 서비스는 무엇인가? 서비스는 순간 순간 발휘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진정한 태도다. 세일즈를 위한 태도가 아닌 삶의 진정한 태도, 진정 사람을 겸손히 포근하게 살갑게 처음 봤지만 오랜 세월 같이한 지인처럼 진심어린 마음으로 고객을 대한 다면 그 고객은 나를 선택한다. 나를 초이스한다. 나를 초이스한다는 것은 나를 믿고 사줄 만한 신뢰와 인성, 그 모든 것에 고객의 마음의 빗장을 해제했다는 게다. 나는 이것이 영업이고 세일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열린 마음으로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화려한 말발과 제품의 장단점, 가격의 메리트도 중요하겠지만 고객을 대하는 진정어린 마음과 태도. 나는 이것이 첫째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영업했다. 정말 참기 힘든 순간고 웃음과 내안의 인내와 배려로 참았다. 다른 곳 한번 비교해보시라고 아니 인터넷을 비교하시려면 그 곳에서 사지 나를  왜 불렀느냐고 한마디 하고 나오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참고 또 참는다. 그러면 나만 손해지. 일단 구매하는 것이 내가 살 길이지. 베짱을 부릴 때가 아니지. 계약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참는다. 어차피 치루는 싸움이라면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 아니지 않은가?

 그 이후로 돈은 정말 내 뒤에서 서서히 꼬리를 치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 꼬리의 종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갑으로 옮겨 담았을 뿐이다. 이걸 알기 위해서 지난 십수년을 고생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내 자신에게 경계했던 것은 단 한가지였다.

오늘 50만원 벌었건 100만원 벌었건 그 것은 내가 운이 좋아서이다. 내일이라고 그리 잘 되라는 법은 없다. 단 오늘 뿐이다. 단 오늘 뿐이다. 단 오늘 하루만 더 열심히 하자. 이제까지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분들을 만나서 잘 된 것이니 겸손하게 단 오늘만 더 열심히 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 오늘만 최선의 몇배를 다하자... 이 마음으로 살아온 4개월이다.

다행히 손님의 다른 손님의 소개,소개로 많은 분들을 계약하였고 밤새워 붙인 현수막과 명함, 인터넷 소개글로 전화기는 불이 났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김밥2줄로 배를 채워도 행복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상담과 설치를 마치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오는 데 창밖의 바람이 너무도 시원했다. 엄동설한인데 너무도 시원했다. 그래도 잊지않은 것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말자. 감사하다..감사하다... 내일 하루만 더 최선을 다하자. 그 마음, 그 마음 뿐이었다...

 
프로페셔날, 나는 1인기업임을 잊지않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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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深星逾輝 (야심성유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사람들에 따라서 이 구절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신영복 교수의 삶 처럼, 시련이나 위기속에서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밝게 빛난다. 또는 시련과 위기 속에서 진정으로 세상을 긍정과 희망으로 보는 자가 더 두드러진다. 이 글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해석은?

 

지남철 이야기

지남철은 그 바늘 끝이 떨고 있을 때만 믿을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타성에 젖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라 해석하고 싶다. 그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고, 전율과 흥분과 열정으로 떨림이 있어야 살아있는 삶이다. 그렇지 않고 안주하는 순간 퇴보만이 있을 뿐이다. 여러분들의 해석은 어떠한가?

 

나이테 이야기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며, 겨울의 나이테가 밀도가 훨씬 더 높다 우리가 진정 성장하는 것은 시련과 위기 속에서 임을 알 수 있다. 겉보기에 화려한 성장이 실은 빈 쭉정이 뿐임을 느낄 때가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실 있게 성장하는 삶이 더 실속 있으며, 다음을 위한 도약의 밑거름이 된다.

 

나비 이야기

나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에겐 꿈이 있다. 저 넓은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는 나비에 대한 꿈, 우리는 어떤가? 애벌레는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릴 줄 안다. 그러한 인고의 세월 속에서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한 성장을 거듭한다. 이는 시련과 위기 속에서 성장을 택하는 긍정자의 자세요. 뜻 한 바를 이루기 위해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참된 구도자의 자세요. 마음을 비우고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지혜자의 자세다. 애벌레는 또한 번데기의 옷을 버릴 줄 안다. 이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을 위해 변화를 꾀하는 삶의 표상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나비는 그래서 한 없이 존경스럽다.

 

가을의 심판

여름 내내 푸르던 나무들도 가을이 되어서야 각자 구별됩니다. 바람이 눕는 풀과 곧은 풀을 나누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가을은 그가 거느린 추상으로 나무를 나누는 심판의 계절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을 것이다. 모든 것이 좋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다 좋은 사람인 것 처럼 보인다. 시련과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사람이 가진 성품과 사람됨, 그리고 진심이 드러나는 것 같다.

 

목수가 그린 집 그림

목수는 우리와 반대로 집을 그린다. 주춧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실천없는 앎으로 입만 벌리기 좋아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로 제대로 실천하고, 그것들을 통해서 이론들을 재정립하는 자와, 머리에 잔뜩 지식을 넣기에 바쁜 행함이 없는 지식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가장 먼 여행

‘The longest journey for anyone of us is from head to heart. Another longest one is from heart to feet’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끼기 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고 실천하기 까지는 더 오래인 것 같다.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단박에 이해하고, 단박에 느끼고, 단박에 실천할 수는 없는가?’

 

높이 나는 새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린다. 심지어 뼈 속까지 비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이 비우고 버려야 한다. 신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도 나의 아집과 에고를 버려야 하며, 자기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속도에 대하여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미터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하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된다

본인이 늘 이야기 하듯이 우리의 인생의 참 모습은 바로 이 순간이요. 현재이다. 현재에서 최선, 최대를 이끌어 내는 사람은 진실로 영원을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철저하게 즐길 줄 알아야겠다. 우리의 인생의 본질의 목적의 달성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自由

자유는 自己의 理由로 걸어가는 것이다

공감하는 문구이다. 자기 스스로의 삶에 대한 목적과 가치와 이유를 알고,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만이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본질 (신을 통해서 내려오는) 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겠다.

 

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 한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말이 없는 것 같다. 깨달음의 경지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장님에게 나무를 있는 사실 그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은 사람의 준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본인이 의도하든지 의도하지 않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이나마 밝아지고 풍요로워 질 수 있다면, 잘 사는, 잘 관계 맺는 삶이 아닐까?

 

시냇물

시냇물이 모여 담() 을 이룰 때 비로소 소리가 사라진다

사람도 이와 같은 것 같다. 침묵을 통해서 스스로의 내면을 관찰하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것 같다. 설익지 않는 말들은 늘 시끄러운 법이다.

 

바다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바다라 부른다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님의 이 글을 통해서, 느끼는 바가 많다. 더 낮은 곳으로 임하기 위해서 더 많이 비우고, 버려야 겠다. 도덕경에서도 진정한 도는 물과 같다고 했다. 깊이 새겨볼 일이다.

 

높은 곳과 낮은 곳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서 글씨를 쓸 때, 잘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교만과 허영심에 들뜨기 보다는, 늘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될 것이다. 특히 사회의 지도층이나 리더들이 깊이 새겨야 할 문구일 것이다.

 

여름 징역살이

교도소에서 지내기에는 겨울 징역살이가 훨씬 낫다. 여름에 옆 사람은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모두 신을 닮은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고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의적인 소행이 아닌, 단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다른 이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합니다

알고는 있으되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느끼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몰라서 안 했다면, 추후의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충분히 알고, 충분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기만이다.

 

새해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 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이며,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용기이다.’

시련과 위기와 고통으로 슬퍼하기 보다는 훌훌 털어버릴 줄 아는 사람은 진정 현명한 사람이다. 늘 본인이 이야기했듯이 자극에 대한 반응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련과 위기를 단지 잊어버리는 것으로 끝내는 것은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시련과 위기를 통해서 더 크게 성장하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단련시키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자가 진정 용기있는 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항심과 항산

항심이 먼저인가? 항산이 먼저인가?’

IMF 이후 우리들은 항산(恒産) 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항산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산이 전혀 없다면 현대사회에서 행복의 추구에 분명히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문화는 너무나도 항산에만 맞추어져 있다. 항심과 항산의 조화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성공과 실패

성공에 의해서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 그 사람의 내면이 커진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우리는 시련과 위기 속에서 훨씬 더 실속 있는 성장을 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감사의 마음가짐, 자기성찰을 통해 발전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성공의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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