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가는 길.

 

남자는 모름지기 밝고 떳떳하여야 한다. 그래야 사나 죽으나 값이 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돼 강요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세상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가족일 수도 있고 일 일 수도 있고 삶의 열정일 수도 있다.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 것을 성취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남자는 자고로 자신의 신념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한겨울 얼음속 차가운 물 속에서도 열을 낼 수 있는 뜨거운 심장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면 물, 불을 가리지않는 무모함도 있어야 한다.

남자는 인생에 몇번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때가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이기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나이 가는 길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난 진정 어떤 사나이인가를 말이다...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곰곰히 생각해보고 성찰하여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살아갈 날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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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이 답" 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일에 대해서 세이노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공통된 부분들이 참 많더군요.
그래서 공통된 부분들을 한번 모아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어느 경지에 오른 분들께서는 진리는 하나 라는것이 몸에 베이시나 봅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
(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모처럼 얻은 일이 자신이 원래부터 싶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쉽게 그만두는 것이다.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격려를 받지만

그러한 일은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때론 그런 격려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세상에 나에게 맞는 천직이 처음부터
눈앞에 기적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가 없다.

 

천직이나 적성은 눈앞의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찾는 것이다.



 


즉 사전(事: 일 사 前: 앞 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사후(事: 일 사 後: 뒤 후)적인 것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백만장자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하게 된 일"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그 일을 사랑하고 즐김으로써 "능력과 적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머리 속에서 꿈꾸고 원하여 온 일”을 그 일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동일시하거나 “자기가 능력을 갖고 있는 일”,“ 자기 적성에 맞는 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믿는다. 그러나 능력이니 적성이니 하는 것들은 관련 분야의 지식을 갖춘 뒤 실제로 일을 경험하여 보기 전 까지는 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생리용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목모 시멘트판이라고

불리는 흡음효과가 큰 건축자재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업계였기에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건축 자재와 같은 중간 상품으로는 자신만의 회사 브랜드를

갖는 것이 어려웠고, 또 가격을 재량껏 정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건축 자재는 내가 추구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초조함에

항상 쫓기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목모시멘트판 회사에 내 인생의 전부를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전 인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어떤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며

언제나 엉덩이에 불이 붙은 기분으로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건축 자재업을 하는 동안은 열정을 다해 일했다.

종업원과 하나가 되어 50킬로그램의 시멘트 부대를 1톤 트럭으로 운반하기도 했다.

손톱 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늘 시멘트때가 끼어 있었고, 또 콧구멍과 귓구멍까지

톱밥이 들어갔다.

 

 (나는 돈을 꽤 모은 뒤에도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면 작업복을 입고 밑바닥 일을 하곤 했다.
그래야 일 전체를 구석구석 빈틈 없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허드레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당신이, 허드레 일은 당신보다 못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으로 믿는 당신이, 사업이나 장사를 하겠다고? 돈을 벌고 싶다고? 꿈 깨라. )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하는 사이에 생리용품이라는 천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즉 나는 천직을 지금 내가 있는 곳 보다 더 나은 곳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멘트 현장에서 땀범벅이 되거나
먼지 투성이가 될 정도로 죽기 살기로 일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찾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직이라는 것은 "사후적으로 만나게 되는 일" 이라고 할 수 있다.

걷고 있는 전방에 이미 있는 길이 아니라,

 

 

걸으면서 돌아봤을 때, "아,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었구나"

사후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천직이고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걷기 전에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걷고 있는 사이에 자연히 다가서는 것이다.
(사업에 대한 안목이 아니라 일 잘하는 법 부터 배워야 함.
사업 안목은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
일을 잘하려면 세심하여야 함.)

 

그래서 젊은이들이 일하기 전부터 자신에게 맞는 일이 없다고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또 아무리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봐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돈이 되는 일이건 아니건 반드시 해내고 만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면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기보다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편이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궤변 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자신의 적성에 막는

직업을 고르기 보다 일에 맞게 적성을 키워가는 편이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얻는 것이 많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그저 좋아하는 것 이상의 것은 손에 넣기 힘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즐김으로써 스트레스는 풀리지만
나의 능력이 커지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싫어하는 일을 참고 계속하다 보면
더욱 큰 대가를 얻게 되고 인생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편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은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꾸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노력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지는

일단 제쳐두고, 좋다 싫다는 말 없이 지금 있는 그 장소에서 해야 할 일에 전력투구해 보라

 

3시간도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면 기를 쓰고 어떻게든 3일을 견뎌보라.

3일 견디다가 3주를 버터보라.

3주 버텄다면 3개월

3개월이면 3년

 

그렇게 하루하루의 일 속에서 괴로움이나 무력함을 느끼고

또 넘기 힘든 높은 벽에 부딪히는 사이에 점차 일의 재미와 즐거움을 알게 되어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100퍼센트 맞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단 일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지 말고

일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후에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천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나의 천직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도 아깝지 않을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바로

내일 만날지도 모른다.

 

일흔을 넘긴 지금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하는 것 그 자체는 영원한 자기 발견의 과정이며

일을 하는 것은 일생동안 자신의 가능성을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

 

 

일을 시켜서 한다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 업무를 좋아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업무를 좋아하게 되면 그냥 내버려두어도 힘이 생기며

성과도 오른다.

 (나는 10가지 이상의 많은 분야에서 일을 하였다. 그 일들 중에서 내가 사전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일은 단 하나, 음향기기 분야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쩌다 보니 발을 내 밀게 된 일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발을 내 밀던 간에 나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그 분야에서 귀신이 되고자 노력을 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무슨 일에 뛰어 들던지 간에 모든 관련 지식을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였다. 나는 그런 책들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낀 적이 없다. 하지만 낮에는 일 때문에 책을 볼 시간이 없으므로 자연히 저녁시간과 휴일을 이용하여야 했다. 시간을 아껴야 했기에 출퇴근 거리는 무조건 짧아야 하였고 차 타는 시간도 아껴야 하였기에 기사를 일찍부터 두었다.)


 

결국 일을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재능인 것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그 일을 좋아하라

그 일에서 일등이 되고 싶으면 그 일을 누구보다도 제일 좋아하라.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이 된 사람은 주방에서 감자 하나 깎는 것도 머리를 짜내어 했다는데
아마도 그런 독자들은 감자 깎는 것에서는 미래가 안보여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일을 대할땐 연애 감정을 가지고 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일이 고되어서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거나

아니면 재미있는 일이라면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격상의 문제나 기술적 분야가 아닌 이상 어느 한 분야의 일에서 새는 바가지는
다른 분야의 일터에서도 새기 마련이며
, 어느 한 분야에서 귀신이 되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중복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귀신이 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일을 재미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완전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런 생각은 지극히 유치하고 미성숙한 직업관이다.


 (세상은 그런 조루증 환자들로 넘쳐 납니다.
거기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단말입니까. 쯧쯧... )

 

그것은 일이 가진 진정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그 즐거움은 괴로움 속에 섞여 있다가 서서히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눈을 딱 감고서 눈앞에 닥친 일에 죽을둥 살둥 몰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일에 자신을 내던지면 점차 괴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일하는 것은 생활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노동을 하는 가운데 맛볼 수 있는 " 쓴맛 속의 단맛"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많은 부자들은 일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한다. 재미있게 즐긴다는 뜻이다. 토마스 J. 스탠리는 '백만장자 마인드'에서 미국의 백만장자 733명을 표본 조사하여 얻은 자료들을 보여주는데 미국의 백만장자들 중 86%는 "나의 성공은 내 일과 직업을 사랑한 결과이다"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투자를 잘해야 부자가 된다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 일이 우선이고 투자는 나중이다, 이 바보들아.) 그리고 81%는 "나의 일은 내 능력과 적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괴롭기만 하고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좋아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괴롭다고 불평만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닐까? 

 

오해하지 말라.“한 우물만을 계속 파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애당초부터 가까이 가서는 안될 우물도 있다("이런 일은 하지 말아라"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처음부터 가까이 가서는 안될 우물이 아니라면 어느 우물이건 그 우물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즉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엿 같이 생각되어도 그 구조체와 흐름을 완전히 파악하여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스폰지처럼 흡수해 나가야 한다.

>>직원이 10명 이하인 아주 소규모의 제조업체

'학교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다니고,부자가 되고 싶다면 장사하는법
과 일잘하는 법에대한 책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며,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면 직원이 10명 이하인 아주 소규모의 제조업체에
들어 가는 것이 현명합니다.'라는 짧은 글의 답변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주소규모의 업체는 일을 전체적으로 배울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봅니다. 마치 히딩크감독이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벤치나 지키며 세월보내는 유명팀이 아니라 팀이 좀 떨어지더라도
자주출전할 수 있는 팀을 골라 입단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볼수
있겠네요^^
( 어느 회원분의 글입니다.)

자. 이제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는 잊어버려라.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어라.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 맞는 일 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여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 몸값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의 종자돈이 된다. 동료들의 야유와 시기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콩쥐를 시기하는 팥쥐는 언제나 있는 법이므로 철저하게 무시하라.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사항; 1.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대가를 더 받기 힘든 일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2. 일하는 능력 보다는 아부가 더 우선인 집단들도 많다
                  ( 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게 보이는 곳들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예술가들처럼 LIVING에 속하는 일을 자신의 LIFE로 생각하며 살아 온 사람들이다. 일은 일상에서 그들이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일하는 것을 그 어떤 가치 보다 우선시하며 즐겨왔다. 하지만 일 자체를 평생의 의무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평생 일만 하여야 하는 일개미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하곤 했다. 천국이나 유토피아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향은 기본적으로 무노동의 세계이다. 평생을 일만 하다가 일벌레로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죽을 때, 일을 더하고 싶다고 말하며 죽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일,일,일” 하며 살았느냐고? 일을 효율적으로 남들 보다 더 잘 하게 되면 세상에서 받는 대가가 커진다. 그 받는 대가가 쌓여 부자가 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일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즉 LIVING 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LIFE 가 가능하게 된다. 반대로, 젊어서 LIFE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면 중년 이후에는 LIVING 때문에 쩔쩔 매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우선은 LIVING 에 최선을 다하면서 30대가 끝나기 전에 LIVING 영역에서 뭔가 이룩해 놓고자 하였다. 즉 철저하게 우선 순위를 LIVING 에 두었다. LIVING 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바빠진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문득 회의감이 찾아 올 것이다. LIFE와의 균형 문제로 인하여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아마도 누구나 “돈도 많다”는 말을 듣고자 할 것이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것은 , 부자가 되어가는 단계에서 만큼은 LIVING과 LIFE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완벽하게 잡으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일단은 LIVING 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라(이것을 나는 일용할 양식부터 먼저 구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야 뿌리가 깊고 굵게 박히며 비바람이 쳐도 열매가 맺는다. 자신이 원하는 LIFE 를 갖고자 한다면 우선은 LIVING 에 충실하면서 돈부터 모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어가는 단계에서 LIFE 를 모조리 무시하지는 말아라. 최소한도는 해라. 기혼자라면 이를테면 배우자의 생일, 처음 만난 날, 결혼 기념일 만큼은 카드도 준비하고 꽃도 사고 촛불도 켜라.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애들이 아니라면 멀리 해라. 그래서 친구들이 핀잔을 주고 따돌림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 하지 말아라.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함을 결코 잊지 마라. 어차피 당신 친구들 대다수는 평생 돈 걱정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라.

하지만 아무리 돈을 모으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도 비가 오면 때로는 비도 맞아 보고 맨발로 잔디를 밟기도 하여라.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삶도 종종 살펴 보아라. 자신이 왜 부자가 되려는지를 정확히 되새기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것을 하라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하라 - 에스파냐 격언 -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므로 5년후, 10년후에도 이러저러할 것이기에 희망이 없다고? 너무 계산이 빠른 것 아닌가?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스스로 투시하고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절대,절대,절대 안된다.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트레인스포팅 게임처럼 우리에게 달려오는 삶의 번호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논두렁에서 군사를 일으켜 일약 군왕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시장 거리에서 춤추던 무희가 하루 아침에 황후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지 않은가.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주인공 에바 페론 역시 술집 종업원에서 아르젠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내가 부자로 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흔히 이야기 하듯 사람 팔자 시간 문제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절대로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는 따위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 그것 역시 미래 방정식에 현재의 시간을 대입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며, 패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뭘 배우던지 간에, 뭘 하던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그렇게 할 때 미래는 그 암흑의 빗장을 서서히 열어주기 시작할 것이며 조만간 그 빗장 너머에서 비쳐지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몇 년째 살아 왔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그저 삶의 번호를 잘못 찍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다. 그 잘못된 길에서 절망하지 말고 빨리 깜박이를 키고 길을 바꾸어라. 내 말을 믿어라. 거기서 새 삶이 무섭도록 빠르게 달려온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
(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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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삶의 일부분이어야 한다. 

읽기는 필수이고 쓰기는 일상이어야 한다. 요즘 책중에 관심이 많이 가는 책들이 있다. 사업을 핑계로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하였다. 

읽기와 쓰기는 숨쉬는 공기와 같고 마시는 생수와 같으며 먹는 식사와 같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읽기와 쓰기는 멈춤이 있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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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사진작가 앙드레 빌레가 찍은 피카소의 작업 모습.

결코 끝낼 수 없는 일
미노타우루스와 함께 피카소가 매혹된 동물로 올빼미가 있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상처 입은 올빼미 한 마리를 누군가에게서 얻어 기른 적이 있다. 올빼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피카소는 올빼미의 눈, 모든 것에 초연한 철학자 같은 눈매에 빠져들었다. 피카소는 올빼미 외에도 비둘기를 좋아했는데, 특히 올빼미에게는 어떤 미신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답게 마법이나 미신 등에 대해 특별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피카소는 그리다 만 올빼미의 눈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을 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 위에 그 올빼미 그림을 겹쳐놓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카소의 눈은 바로 올빼미의 눈, 초연한 듯싶지만 실은 욕망에 이글거리는 올빼미의 눈과 똑같았던 것이다!
살기 위해 젊은 여자를 잡아먹는 미노타우루스,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처럼, 피카소의 예술혼은 누군가를 제물로 해야만 타오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불행을 헤아리기에 피카소는 너무 바빴다. 시시각각 엄습하는 영감을 좇아 하루에도 네다섯 점씩, 심지어 열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동경하는 이탈리아에 평생 한 번밖에 가지 않았으며, 미국에서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생트 빅투아르의 고성을 사들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지만, 정작 피카소 자신은 그 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70대가 된 피카소는 친구인 작가 엘렌 파르믈랭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화가의 작업이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거야.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까 내일은 휴일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은 화가의 생에 절대로 오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카소는 자신을 찾아다니는 기자들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은둔생활을 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그려진 대작 ‘게르니카’(높이 3.5m, 폭 7.8m의 이 벽화와 사전 작업인 45점의 스케치를 완성하는 데 단 6주 걸렸다)를 공산당에 입당한 그의 정치적 성향과 결부시키려는 세간의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카소에게 정치와 공산당 등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공산당 역시 대예술가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몰라 고심했다. 정작 모스크바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이 퇴폐화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에게 영원한 애정과 숭배의 대상은 오직 그림뿐이었다.
85세가 되던 해에 대대적인 개인전을 연 피카소는 남프랑스의 노트르담드비에 머물며 광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1970년 아비뇽의 교황궁에서 피카소 최후의 전시회가 열렸다. 마지막 전시에서 새로 확인된 경향은, 이 대가의 그림에서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색채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을 뜰 날이 머지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1973년 4월7일, 피카소는 저녁 늦게까지 흰색의 누드 작품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다 끝내지 못한 채, 피카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4월8일 오전, 아무 고통 없이 숨을 거두었다.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피카소다운 최후였다.
예술가로서 피카소를 정의하자면, 그는 자신의 화폭에 20세기 정신을 모두 아우르고 표현해낸 단 한 명의 화가다. 그러나 예술가 피카소를 정의하기 이전에 인간 피카소를 정의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욕망’이다. 피카소의 우주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오직 그림에 대한 무시무시한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때로 전대미문의 천재성이나 샘솟는 창작력으로, 또는 동물적인 욕정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곤 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이 야수 같은 욕망은 쉴 새 없이 새로운 제물을 필요로 했다. 여자들이 차례로 제단에 바쳐졌고, 마지막에는 피카소 그 자신마저 욕망의 제물이 되었다.
끝도 없이 지속된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92년의 긴 생애 중 그 무시무시한 욕망이 완전히 채워진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었을까? 노년의 피카소는 파르믈랭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당신은 시인의 삶을 살지만, 나는 죄수의 삶을 산다.” 그는 미노스의 지하 미궁, 천재성과 욕망의 혼합물질로 벽을 세운 미궁에 갇힌 불행한 괴물이 아니었을까.

▼ 파블로 피카소
●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
● 1901년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작업 청색시대 시작
● 1905년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만남
●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 완성
● 1911년 마르셀과 교제
● 1918년 올가 코흘로바와 결혼
● 1927년 마리 테레즈 발터와 교제
●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게르니카’ 전시
● 1943년 프랑수아즈 질로와 교제
● 1944년 공산당 입당
● 1961년 자클린 로크와 결혼
● 1967년 레종 도뇌르 훈장 거부
● 1963년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개관
● 1973년 92세로 사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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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루스의 심장, 올빼미의 눈으로 신화가 된 남자

 
 




‘울고 있는 여인’

피카소의 두 번째 여자는 ‘에바’라고 불렸던 마르셀이다. 성공에도, 페르낭드에게도 권태를 느끼던 서른한 살의 피카소는 에바를 만나 열렬하게 연애를 하며, 다시금 그림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피카소는 스페인 국적이라 징집 대상이 아니었으나, 친구들 대부분이 전장으로 끌려갔다. 설상가상 에바가 1915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에바의 죽음은 숱하게 연애한 피카소가 유일하게 겪은 가슴 아픈 이별이었다. 피카소는 결국 에바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몽파르나스를 떠나 파리 근교로 이사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피카소가 에바의 투병생활을 그다지 괴로워하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피카소는 에바의 병세가 깊어지자 그녀를 곧 요양소로 보내버렸다). 1917년, 피카소는 장 콕토를 통해 디아길레프의 발레단 ‘발레 뤼스’(한때 니진스키가 활동했던 전설적인 러시아 발레단)의 새 작품 ‘퍼레이드’의 무대미술을 맡아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 작업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간 피카소는 발레단원인 올가 코흘로바와 사랑에 빠진다. 발레 자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피카소는 러시아 귀족다운 우아함과 세련미가 몸에 배어있는 올가에게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올가는 상류사회의 귀부인 생활을 원했고, 피카소는 그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보헤미안 생활을 청산하고 1918년 7월12일 파리의 러시아 정교회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피카소는 올가에게 고전적인 필치의 초상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올가와 결혼한 후 피카소의 생활은 또 달라졌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모자를 썼으며 줄을 빳빳하게 세운 바지를 입었다. 올가는 새 아파트를 귀족 취향으로 호사스럽게 꾸몄다. 친구들의 놀람과 질시에도 이후 7년간 피카소는 완전한 상류 사회 일원으로 살았다. 1921년에 아들 파울로가 태어난 것도 피카소의 이 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올가의 세련된 마나님이자 권위적인 안주인 스타일과 피카소의 예술혼은 궁극적으로 화합할 수 없었다. 피카소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초현실주의에 이끌리며, 다시 열일곱 살의 아름다운 처녀 마리 테레즈 발터를 만나 자유분방한 생활로 되돌아간다.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에게 비밀리에 집을 마련해주고,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울고 있는 여인’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유명한 화가인지 모를 정도로 순진한 처녀였다. 이 여자를 통해 피카소는 자신의 천재성을 되찾고 억눌러왔던 창작욕을 발산했다. 그는 사교계에 발을 끊고 초현실주의에 투신했으며, 100여 점에 달하는 판화 ‘볼라르 연작’과 테레즈를 모델로 한 조각들을 제작했다. 동시에 한쪽에는 부인 올가와 아들 파울로가, 다른 쪽에는 정부(情婦) 마리 테레즈와 딸 마이야가 있는 복잡한 생활을 했다. ‘피카소의 아내’라는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올가는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거액을 들여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했지만, 어떤 변호사도 이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후에도 피카소의 곁에는 여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사진작가 도라 마르, 젊은 여인 프랑수아즈 질로가 그의 곁에 있었으며, 1954년에는 일흔넷의 나이에 자클린 로크와 마지막 연애를 시작했다. 끝까지 그의 아내로 남았던 올가는 1955년 암으로 사망했다. 1961년, 여든이 넘은 피카소는 서른 살의 자클린 로크와 비밀리에 결혼했다. 자클린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왜 피카소는 한 여자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여자를 찾아다녔을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의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치부해버리기엔 아쉬움이 남지 않은가? 피카소가 갈망했던 것은 아내와 함께하는 안락한 생활이 아닌, 아찔하도록 거칠고 위험한 연애, 그리고 예술혼을 자극하는 젊은 애인이었다. 올가는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아내였지만, 그녀가 아내로서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서 애정을 주고받으려 하는 것을 피카소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철저히 이기적이었다. 한번 마음이 식으면 다시는 그 여자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피카소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는 동안, 피카소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인생은 비슷비슷하게 파멸했다. 피카소를 만나기 전 촉망받는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는 피카소와 결별한 후 정신병자가 되었다. 1937년 도라를 모델로 그 유명한 ‘울고 있는 여인’을 그린 피카소는 자신 때문에 굴절된 도라의 삶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라가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함께 남프랑스의 별장에 머무르며 지중해의 풍광을 즐겼다. 마리 테레즈와 자클린은 각각 1977년과 1986년에 자살했다. 생전의 피카소를 엑상프로방스의 보브나르그성에 가두다시피 했던 두 번째 아내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은 후 집의 모든 창에 검은 커튼을 치는 등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이 들수록 강해지는 창작력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는 “피카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는 늘 젊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천재적이었다”고 평한다. 피카소처럼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친 예술가가 죽을 때까지 그 천재성을 유지한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천재들은 어린 시절 반짝거리다 성년이 되면서 그 광휘를 잃어가든지, 아니면 막 중년이 되는 시점에 죽어버려 영원한 전설로 남는다. 그러나 피카소는 한 세기 가까운 삶을 누리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기차게 명예와 부를 유지했다.
언제나 빛바래지 않고 늘 새것처럼 작품들에서 반짝거린 천재성 덕분이었다. 그는 여든아홉 살이 될 때까지 새로운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회를 열었으며, 해가 거듭될수록 그의 신작들에 대한 찬사는 늘어만 갔다. 아흔 살에도 그는 그림과 판화, 조각, 시(詩)와 희곡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막론하고 왕성하게 창작했다. 60년 동안 회사원이나 아버지로 사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60년 동안 천재로 산 사람이 피카소 외에 또 있을까!
그가 평생 젊은이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연애사건,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관계 덕분이 아니었을까. 피카소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보면, 여자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작품 경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 애인을 만날 때마다 그의 창조성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브라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카소에게 여자란 ‘광대가 불을 뿜기 위해 들이마시는 석유’나 다름없었다.
피카소가 긴 생애에서 천착했던 주제로 여자 외에 미노타우루스와 황소, 올빼미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루스는 미노스 왕의 아들로 반인반수(半人半獸)는 괴물이라 미노스 왕궁 지하의 미궁에 갇혀 공물로 바쳐지는 젊은이들을 먹고 살았다. 어느 날 영웅 테세우스가 이 괴물을 해치우러 미궁에 들어온다. 그는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실타래를 들고 와, 미노타우루스를 해치우고 실타래에서 풀린 실을 따라 미궁을 탈출한다.
피카소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몸은 황소인 미노타우루스에게 본질적으로 끌렸다. 왕자인 동시에 야수, 사람인 동시에 황소인 이 괴물은 왕궁의 지하에 갇혀 살며 사람고기를 먹는다. 피카소는 미노타우루스의 처지에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미노타우루스의 모습은 그의 그림에서 때로 심각하게, 때로 희화적으로 변화하며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만년으로 갈수록, 그림 속 미노타우루스는 피카소의 모습과 흡사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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