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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사진작가 앙드레 빌레가 찍은 피카소의 작업 모습.
결코 끝낼 수 없는 일
미노타우루스와 함께 피카소가 매혹된 동물로 올빼미가 있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상처 입은 올빼미 한 마리를 누군가에게서 얻어 기른 적이 있다. 올빼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피카소는 올빼미의 눈, 모든 것에 초연한 철학자 같은 눈매에 빠져들었다. 피카소는 올빼미 외에도 비둘기를 좋아했는데, 특히 올빼미에게는 어떤 미신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답게 마법이나 미신 등에 대해 특별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피카소는 그리다 만 올빼미의 눈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을 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 위에 그 올빼미 그림을 겹쳐놓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카소의 눈은 바로 올빼미의 눈, 초연한 듯싶지만 실은 욕망에 이글거리는 올빼미의 눈과 똑같았던 것이다!
살기 위해 젊은 여자를 잡아먹는 미노타우루스,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처럼, 피카소의 예술혼은 누군가를 제물로 해야만 타오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불행을 헤아리기에 피카소는 너무 바빴다. 시시각각 엄습하는 영감을 좇아 하루에도 네다섯 점씩, 심지어 열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동경하는 이탈리아에 평생 한 번밖에 가지 않았으며, 미국에서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생트 빅투아르의 고성을 사들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지만, 정작 피카소 자신은 그 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70대가 된 피카소는 친구인 작가 엘렌 파르믈랭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화가의 작업이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거야.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까 내일은 휴일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은 화가의 생에 절대로 오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카소는 자신을 찾아다니는 기자들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은둔생활을 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그려진 대작 ‘게르니카’(높이 3.5m, 폭 7.8m의 이 벽화와 사전 작업인 45점의 스케치를 완성하는 데 단 6주 걸렸다)를 공산당에 입당한 그의 정치적 성향과 결부시키려는 세간의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카소에게 정치와 공산당 등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공산당 역시 대예술가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몰라 고심했다. 정작 모스크바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이 퇴폐화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에게 영원한 애정과 숭배의 대상은 오직 그림뿐이었다.
85세가 되던 해에 대대적인 개인전을 연 피카소는 남프랑스의 노트르담드비에 머물며 광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1970년 아비뇽의 교황궁에서 피카소 최후의 전시회가 열렸다. 마지막 전시에서 새로 확인된 경향은, 이 대가의 그림에서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색채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을 뜰 날이 머지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1973년 4월7일, 피카소는 저녁 늦게까지 흰색의 누드 작품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다 끝내지 못한 채, 피카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4월8일 오전, 아무 고통 없이 숨을 거두었다.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피카소다운 최후였다.
예술가로서 피카소를 정의하자면, 그는 자신의 화폭에 20세기 정신을 모두 아우르고 표현해낸 단 한 명의 화가다. 그러나 예술가 피카소를 정의하기 이전에 인간 피카소를 정의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욕망’이다. 피카소의 우주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오직 그림에 대한 무시무시한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때로 전대미문의 천재성이나 샘솟는 창작력으로, 또는 동물적인 욕정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곤 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이 야수 같은 욕망은 쉴 새 없이 새로운 제물을 필요로 했다. 여자들이 차례로 제단에 바쳐졌고, 마지막에는 피카소 그 자신마저 욕망의 제물이 되었다.
끝도 없이 지속된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92년의 긴 생애 중 그 무시무시한 욕망이 완전히 채워진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었을까? 노년의 피카소는 파르믈랭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당신은 시인의 삶을 살지만, 나는 죄수의 삶을 산다.” 그는 미노스의 지하 미궁, 천재성과 욕망의 혼합물질로 벽을 세운 미궁에 갇힌 불행한 괴물이 아니었을까.
▼ 파블로 피카소
●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
● 1901년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작업 청색시대 시작
● 1905년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만남
●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 완성
● 1911년 마르셀과 교제
● 1918년 올가 코흘로바와 결혼
● 1927년 마리 테레즈 발터와 교제
●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게르니카’ 전시
● 1943년 프랑수아즈 질로와 교제
● 1944년 공산당 입당
● 1961년 자클린 로크와 결혼
● 1967년 레종 도뇌르 훈장 거부
● 1963년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개관
● 1973년 92세로 사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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