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묵은 산삼 난 자리에서 샘솟는 약수




한국인에게 물은 물리적 위상이 아닌 정신과 감정을 지배하는 정서적 위상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민간에서는 물을 신앙시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민간신앙은 약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약수터 발견에 대한 산신령 전설이나 약수터 주변의 돌탑과 제단 등에서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기린면 방동리 비탈길 옆 계곡 300년 묵은 엄나무 아래 반석을 쌓은 암석 속에서 솟아오르는 방동약수에도 산신령 전설이 전한다.






▲ (위) 주억봉 정상에서 적가리골의 조망을 즐기는 등산객들. (아래) 수백 년 묵은 산삼을 캔 자리에서 샘솟는다는 방동약수.



조선 현종 때인 1670년의 일이다. 한 심마니가 산삼을 캐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산속을 헤맸지만 매번 허탕만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는 “나는 산신령이다. 정직한 너에게 산삼을 캐게 하고 또 약물도 주겠다.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라” 하고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심마니는 그 길로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한 동자가 나타나 손짓하는 곳에 이끌려 가 보았더니 동자는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수백 년 묵은 산삼이 있었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자 그 자리에서 약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방동약수는 탄산·철·불소·망간 등이 주성분으로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톡 쏘는 맛이 좋다. 약수터 주변에는 수객들의 염원을 담은 돌탑이 즐비하다.





▲ 방태산 개념도.



방태산 산행 가이드

방동약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산은 방태산이다. 방태산은 주봉이라 할 수 있는 주억봉(1,444m)을 중심으로 동쪽의 구룡덕봉(1,388m), 서쪽의 깃대봉(1,436m)으로 이루어진 산역 전체를 말한다.

산행은 휴양림~구룡덕봉~주억봉~휴양림 원점회귀 코스가 일반적이다. 총 10.2km 거리로 6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산길은 제법 가파른 편이다. 그러나 추락 위험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걷기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생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만약 너무 오래 걷는 게 부담스러우면 휴양림에서 곧장 주억봉으로 올랐다가 구룡덕봉을 들르지 않고 내려올 수도 있다. 4시간 소요.
*방태산자연휴양림 033-463-8590 





▲ 방동약수 위치도.




여·행·정·보
  
>>자가운전

서울→6번 국도→구리→양평→44번 국도→홍천→인제→31번 국도(현리 방면)→현리교(건너기 직전 좌회전)→418번 지방도→8km→방동교(우회전)→500m→방동약수 (수도권 기준 3시간30분 소요) 


>>숙식





▲ 진동산채가의 산채비빔밥.



방태산자연휴양림(www.huyang.go.kr, 033-463-8590)을 이용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이용요금 5인실(29㎡) 비수기·주중/주말·성수기 4만 원/7만 원. 6인실(39m2) 5만 원/8만5,000원. 야영데크 4,000원, 야영장 2,000원. 입장료 성인 1,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중소형 3,000원, 대형 5,000원.

방태산자연휴양림 근처의 갈터마을에 있는 진동산채가(033-463-8484)는 산채 요리 전문점이다. 산채비빔밥 1인분 6,000원, 산골정식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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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탄산약수




내린천 상류 개인산(1,341m) 기슭에 있는 개인약수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해발 약 1,000m 지점에서 샘솟는 탄산약수다. 약수는 상탕과 하탕 두 곳이다. 상탕이 원탕인데, 수량은 하탕이 많다. 개인약수는 약한 철분 냄새와 단맛이 입안에 감도는 청수(淸水)로서 당뇨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개인약수는 1891년 함경북도 출신의 지덕삼이라는 포수가 백두대간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중에 발견했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현재의 약수 위에 원래 ‘장군약수’라는 약수가 있었는데, 그 약수는 양쪽 겨드랑이 밑에 용비늘이 세 개씩 붙어 있는 아기장수가 혼자 마시고는 큰 바위로 덮어버려 아무도 찾지 못했다. 이 아기장수는 후에 제 자식이 역적이 되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두려워한 부모의 손에 살해당했다.


약수터 둘레에는 수객들이 무병장수를 빌며 쌓아놓은 돌탑이 늘어서 있다. 또 심마니들이 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남아 있는데, 이는 약수 앞으로 흐르는 맑은 계류와 어울려 무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이 약수를 정화수로 올려놓고 기도하면 신이 잘 내리기 때문에 무속인들이 여기에서 신을 많이 받아간다고 한다. 웬만하면 3일 만에 신이 내리는데, 이는 약수터 뒤로 에두른 산줄기가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정기가 흘러들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 배달은석에서 바라본 방태산 능선. 개인약수로 이어지는 코스는 계곡으로 내려서는 산길이 희미하니 조심해야 한다.






▲ 1 당뇨병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개인약수. 2 한 수객이 소망을 담아 쌓은 개인약수의 돌탑.



또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약수터 위쪽에 ‘용궁사’라는 자그마한 절집이 있었고, 그 절의 산신당에는 약수로 병을 고친 수객들이 남긴 현판이 여러 개 붙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100명쯤의 환자들이 상주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올라올 때는 업혀왔지만 내려갈 땐 두 발로 내려가는 이들도 많았다고 전해온다.



방태산 깃대봉 산행 가이드


개인약수는 이름의 연관성으로만 본다면 바로 맞은편에 있는 개인산과 연계하면 좋겠지만, 개인약수는 개인산 서쪽에 솟은 방태산 중턱에 있다. 따라서 개인약수와 연계한 산행은 방태산을 오르는 게 낫다. 방태산의 여러 코스 중에서도 방태산 서쪽에 솟은 깃대봉(1,436m)을 경유하면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데 조금 편리하다. 그렇지만 이 코스는 산길의 흔적이 희미하므로 산행 경험자와 동행을 하는 게 좋다.


미산리(승두촌)~용늪골~깃대봉~배달은석~능선 삼거리~개인약수~약수산장~미산리(승두촌) 원점회귀가 5시간 소요. 산행 중 깃대봉에서 남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능선 갈림길에서 개인약수로 내려서는 오른쪽 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행정보



자가운전


서울→6번 국도→구리→양평→44번 국도→홍천→철정삼거리(우회전)→451번 지방도→내촌→상남(우회전)→446번 지방도→12km→미산리(남전동)→다리(좌회전)→용늪골 입구→대개인동(약수산장) <수도권 기준 3시간 30분 소요> 남전동에서 대개인동 가는 도로는 사륜차만 운행 가능하다.








숙식


개인약수 입구에 개인산장(033-463-1700) 등 숙박시설이 있다. 개인산장에서 산채비빔밥·막걸리 등을 맛볼 수 있다. 내린천 미산리에는 황토민박(033-463-7225), 미산민박(033-461-684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칠전동의 물새소리(033-463-7789)는 강 풍광이 아름다운 펜션이다. 홍천 내면 율전리의 살둔산장(033-435-5928)도 인기 있는 목조 주택이다.


/ 글·사진 민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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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청정미의 절골과 수려함의 극치 주방천을 한방에 둘러본다

“주왕산은 산 전체가 명품입니다. 버릴 코스가 없어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절골을 권합니다. 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맛이 있는 곳이죠. 절골은 지리산이나 설악산보다 더 깨끗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만큼 좋아요.”

관리공단 주왕산사무소에서 11년을 근무한 설정욱 팀장은 주왕산 명품 산행코스로 절골을 권한다. 화려함으로 따지면 주방천이 한 수 위지만 걷는 맛으로 치면 절골이 더 낫다는 것이다. 주방천은 데크 위로 길이 나 있어 바라보는 맛이지만 절골은 체험하는 맛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너구동 코스는 좀 밋밋한 편이고 주왕계곡은 좋지만 계곡에 들어갈 수 없으니 트레킹의 맛이 덜하죠. 그에 비해 절골은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주왕산의 전기 없는 마을 내원동에서 17년을 살다 몇 년 전 대전사 입구로 내려온 주왕산 시인 이준상씨. 그는 빼놓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메봉과 큰골을 꼽는다.

“경치는 가메봉을 빼놓을 수가 없지. 한나절을 머물러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볼 게 많아. 큰골 내원동은 살던 곳이라 그런지 돌멩이 하나도 다 예쁘게 보여. 말로는 설명 못해, 가 봐야지.”

절골은 청정계곡 속을 걸을 수 있어 좋고, 가메봉은 정규등산로상 최고봉다운 시원한 조망이 일품이며, 큰골 내원동은 협곡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주방천은 바위와 계곡이 보여줄 수 있는 수려함의 절정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사에서 보이는 기암은 눈도장을 마무리하는 대표 절경이다. ‘명산명품 산행’에 딱 맞아떨어지는 산, 주왕산이다.


산사람 이야기 | "주왕산이 우는 소리가 그립다"

내원동에서 나온 전 내원산방 주인장 이상해씨








“나는 죽어도 못 나간다. 내원동에 뼈를 묻을 거다”라며 이상해(49세)씨는 2년 전 내원동이 철거될 때 마지막까지 버텼다. 주왕산에서 16년을 전기 없이 살았기에 그에게 내원동은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립공원법 위반으로 두 번이나 구속을 당했다.

“마지막에는 마음을 비웠어요. 국가의 힘 앞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주를 하더라도 다 같이 내려가 마을을 만들자고 했는데 결국 보상금 문제가 엮이면서 2007년 가을에 다 나가고 혼자 남았다가 저도 내려왔지요. 돌이켜보면 허망해요.”

이상해ㆍ김희숙 부부는 산을 떠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대전사 입구에서 내원산장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주왕산에서 처음 만난 부부는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다. 김희숙씨는 내원산방을 운영할 때처럼 산 속에서나 밖에서나 흔들림 없이 안주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상해씨는 요즘 들어 산이 더 그립다.

“산에서는 몸으로 살았는데, 여기서는 머리로 살아야 하니 살 수가 없어요. 주왕산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와 내원동에서 퍼지면서 나무가 흔들릴 때 휘이잉 하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게 꼭 산이 살아서 우는 소리처럼 들려요. 그 소리가 듣고 싶어요.”





▲ 대전사에서 본 기암. 기암은 부드럽고 귀품이 있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산행 길잡이

14km 하루 꽉 찬 당일산행.
노약자는 주방천이나 큰골로 되돌아 나오는 게 알맞아

아직 주왕산을 가보지 않았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껴둔 꿀떡처럼 달콤한 비경을 남겨두었으므로. 이미 가보았다 해도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일상이 갑갑할 때면 언제든 기억 속 비경을 되살려 미소 지을 수 있으므로. 달디단 비경을 품은 산, 주왕산이다.

주왕산 명품 코스는 절골~대문다리~가메봉~큰골~주방천으로 이어진 길이다. 자세히 보면 약간 불편한 구석이 있다. 대문다리에서 힘겹게 주능선 안부에 올라 가메봉에 갔다 다시 안부로 되돌아온다. 가메봉에서 후리메기로 바로 내려서는 것이 합리적인 코스지만 주왕산 속의 딴 세상인 내원동과 큰골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길을 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안부에서 가메봉 정상을 버리고 바로 큰골로 내려서진 말길. 10분만 땀 흘리면 순수한 초록의 산천지가 펼쳐지니 말이다.내원동을 지나면 폭포들이 늘어선 주방천이다. 나무 데크로 정비된 평탄한 길이라 관광지에 가깝다. 학소대를 지나서는 왼쪽 계단길로 가야 망월대와 주왕굴을 볼 수 있다. 위험한 코스는 없으며 대문다리에서 주능선 안부로 이어진 능선 오름길이 힘든 편이며 그 외에는 숨이 찰 정도의 코스는 없다. 다만 절골은 인적 드문 계곡길이라 희미한 편이며 폭우시에는 피해야 한다. 총 산행거리는 14.3km로 긴 편이며 7~8시간 정도 걸린다.





▲ 주왕 김헌창이 숨어 있다 죽었다는 주왕굴.



노약자와 아이를 대동했을 경우에는 대전사에서 큰골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거나 절골에서 대문다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가 좋다. 주산지는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임도를 걸으면 닿는다. 주산지 명물인 왕버들이 물에 잠겨 있는 장면은 우기가 끝나는 시기에 찾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 교통

절골은 교통이 불편하다. 해결책은 차량 2대를 이용해, 한 대는 대전사 입구에 세워두는 방법이 있다. 더 좋은 것은 운전기사를 두는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산객은 차량 한 대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에 버스 시간에 맞추거나 대전사 입구에 차를 세워 두고 택시를 타고 절골로 들어와야 한다.

주왕산에서 절골 가까이 가는 이전행 버스는 1일 7회(08:10, 09:40, 12:10, 13:00, 14:10, 16:20, 17:45) 운행한다. 이 중 08:10, 09:40 버스는 주산지까지 가며 나머지는 이전리까지만 간다. 절골은 이전리에서 2.5km 떨어져 있다. 절골로 가려면 주산지행 버스를 타고 절골 입구에서 내려야 한다. 요금은 1,300원이며 20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는 1일 6회(06:20, 08:40, 10:20, 11:40, 15:00, 16:30) 있으며 4시간 반 소요에 2만3,200원이다. 주왕산에서 동서울행은 08:20, 10:30, 13:00, 14:08, 15:48, 17:05에 있다.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는 1일 2회(07:40 13:20) 운행하며 3시간40분 소요에 1만8,900원이다. 대구동부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는 1일 3회(07:40, 10:40, 13:45) 운행하며 1만5,500원이다. 안동터미널에서는 1일 6회(09:30, 11:45, 13:27, 15:03, 18:16, 19:35) 운행하며 1시간 반 소요에 7,300원이다.






▲ 내원산장의 한방토종백숙.



>> 숙식 (지역번호 054)

절골 앞은 여느 관광지와 달리 조용하다. 띄엄띄엄 인가가 있으며 원룸형민박(874-4702), 절골휴가의집(010-3131-6914), 주산지민박1(874-7773), 주산지민박2(873-4093), 절골주산지민박(873-4108) 등 숙소가 있으며 식당은 이전리까지 나가야 있다. 대전사 입구에는 식당과 숙소가 많다. 그 중에서도 내원동에서 전기 없이 16년을 산 이상해ㆍ김희숙 부부가 운영하는 내원산장식당(873-3798)이 권할 만하다. 한방토종백숙(3만5,000원), 한방오리백숙(4만원), 안동간고등어정식(1만2,000원), 쇠고기버섯전골(1만2,000원) 등 음식이 정성스럽게 나온다. 산들바람식당(872-3798), 신토불이식당(873-2988), 삼보여관식당(873-2905), 부산식당(873-9947), 보문장여관(872-4940), 주왕산장여관(873-5511), 24시민박(874-2114), 고향민박(873-3207), 영목이네민박(873-4182) 등이 있다.

>>명소

주산지

녹음 가득한 고요의 호수다. 1721년 조선 경종 때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이지만 300여 년이 흐른 지금, 너무도 자연스런 비경이 되었다. 버드나무 중에서도 가장 기품 있는 왕버들이 물에 잠긴 모습은 관광 인파를 끌어들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다만 평소에는 수량이 적어 나무 뿌리가 땅에 드러나 있으며 우기가 막 끝났을 때 타이밍을 잘 맞춰 가야 사진에서 본 비경을 볼 수 있다.





▲ 녹음 가득한 고요의 호수 주산지.



주방천 세 개의 폭포

주방천에 세 개의 폭포가 있다. 저마다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1폭포는 학소대를 지나 깎아지른 협곡 속에 자리하여 탄성이 절로 나게 만드는 폭포다. 2폭포는 사창골 방면으로 5분쯤 들어가면 나온다. 규모는 가장 작은 편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3폭포는 주방천 가장 안쪽에 있으며 수심도 가장 깊은 편이다. 폭포는 모두 이중 폭포 구조이며 원래는 비룡폭포, 절구폭포, 외용추, 내용추, 관음폭포, 쌍용폭포, 용연폭포, 선녀폭포 등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1~3폭포로 바뀌었다고 한다.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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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왕산에 간다면 나는 말릴 것이다. 주왕산엔 가지 마라. 그곳이 <월간山> ‘명산명품 산행로’ 코너에 소개된 산이라 해도 가지 마라. 명산이 뭐고 명품이 뭐냐. 산에 어디 순위가 있다더냐. 돈 냄새 풍기는 명품이란 게 산에 비할 바 된다더냐. 매스컴에 나오는 주왕산의 기품 있는 기암과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주산지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주왕산엔 가지 마라. 그곳에 한번 가면 못 돌아온다. 그래도 행여 간다면 은밀한 계곡, 절골이나 협곡 속의 딴 세상 내원동만은 가지 마라.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가지 마라. 주왕산에 가면 당신, 다시는 못 돌아온다.

-이성복의 시 <동곡엔 가지 마라>를 주왕산에 빗대었음.





▲ 주방천 3폭포 하단. 주왕산은 물과 바위, 신록이 어울려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새벽 6시, 주산지가 시끄럽다. 아침을 부르는 새소리로 시끄럽다. 작은 지저귐이 이토록 크게 울리는 건 그만큼 고요하다는 뜻. 이건 수면이 아닌 거울인가. 물 안에 숲이 있다. 물속의 숲에서 스물스물 물안개가 피어난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몽환적인 그림 속을 걷는다. 수염을 축 늘어뜨린 호숫가의 왕버들은 나무 중에서도 산신령 정도는 될 듯한 풍모다. 느리게 거니는 물고기는 무척 편안해 보인다. 올망졸망한 다람쥐는 앙증맞아 확 잡아 얼굴에 부비고 싶다. 조화로운 그들만의 세상에 온 게다. 터벅터벅 걸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들처럼 느릿느릿 디뎌 본다. 왠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다. 새벽의 주산지에서는…….

가게도 없고, 인적도 없는 절골 입구에서 사람을 맞는 건 개 두 마리. 어찌나 싹싹한지 낯선 사람에게도 반갑다며 꼬리 흔들고 난리다. 개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산하는 이는 이상해씨와 위한일씨다. 이씨는 내원동에서 16년을 살다 나온 주왕산의 산증인이며, 위씨는 5대째 청송에서 살며 사과밭을 일구는 토박이다.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입이 벌어진다. 숨어 있던 높다란 협곡이 나타났다. ‘뫼 산(山)자’를 닮은 기암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초록과 잘 어울리는 갈색 바위는 세월에 닳은 모양새가 품위 있다. 곱게 늙어간다고 할까. 어떤 편견이나 고집, 과시욕 없이 비와 바람에 제 몸을 맡겨 현명하게 닳아 있다. 주왕의 바위들은 그러하다.





▲ 절골은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순수한 매력이 있다. 국립공원임에도 처녀지를 탐험하는 듯한 분위기다.


산행 시작부터 이래도 되는 건가. 신록은 한없이 싱그럽고 계곡은 때묻지 않은 청아함을 지녔다. 인공적인 나무 데크나 길을 만들지 않아 발걸음 딛는 곳이 길이다. 깨끗하고 간지러운 물소리, 속에서 노니는 어름치, 그늘을 내주며 유혹하는 서어나무, 물개암나무……. 산행이 싫어진다. 텐트 치고 한 며칠 눌러앉고 싶어진다.

가야 할 길이 먼데 걸음이 처진다. 물과 바위와 더불어 숲이 만들어내는 환상교향곡에 흠뻑 빠진 탓이다. 더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고 싶다는 욕심이 머리를 타고 내려와 근육을 조종한다. 아름답다고 해 버리면 그 말 속에 절골이 가진 매력이 한정돼 버릴까 봐 그리 말하지 못하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라 여운을 남겨둔다.

오를수록 수종이 다양하다. 아카시, 박달, 들메, 굴참, 느릅, 느티나무 등의 향과 색이 어울려 피톤치드의 즐거운 하모니를 뿜어낸다. 그래서일까. 사람의 기분도 초록색 향에 맞춰 붕붕 떠다닌다.

절골이 끝나는 대문다리에서 슬쩍 망설인다. 절골 상류인 갈전골이 저만치서 자꾸 끌어당긴다. 그 앞엔 줄이 쳐 있고 ‘탐방로 아님’ 하고 더 가보고 싶게 만드는 표지판이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데도 갈전골 입구는 어둑어둑하다. 저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나올 것만 같다는 야릇한 유혹을 털어내고 가메봉으로 간다.





▲ 절골다리. 절골은 주방천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수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맛이 있다.


절골이 밝은 느낌의 계곡이라면 가메봉으로 이어진 골짜기는 숲이 짙고 좁아 서늘한 분위기의 골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숫처녀 산을 탐험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간간이 만나는 이정표가 반갑다. 어디가 길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제대로 왔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지능선에 붙어 오른다. 인내의 시간을 꾸역꾸역 삼키길 한참, 주능선 안부를 지나 가메봉 정상이다. 또 이놈들이 반긴다. 놀랍고 반갑다. 절골 입구에서 봤던 개들이다. 어찌 올라왔을까 궁금하면서도 나름 녀석들의 생존 방식이 이해된다.

절골을 거쳐 올라온 가메봉은 다른 세상의 정점이다. 시원한 ‘산국(山國)’ 한가운데다. 겹겹이 늘어선 산의 둥글둥글한 굴곡, 신록까지 더해 순하고 정이 가는 풍경이다. 절골, 신술골, 갈전골의 패임까지 훤하다. 그 많던 바위를 다 덮어 버린 신록의 왕국이 주왕 김헌창의 봉우리 아래 엎드려 있다.

주왕 전설이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건 1000년 전이다. 1034년 석름봉(가메봉) 서쪽 사창암에서 출토된 주왕사적이 그것이며 이는 920년 낭공대사가 기록한 것으로 제자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나올 때를 기다려 다섯 번을 전할 때까지, 즉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개봉하지 못하도록 한 문서다.





▲ 절골의 나무 데크. 협곡은 위협적이지 않으며 단아함에 가깝다.



주왕사적 속 전설의 줄거리는 대강 “신라 말 당나라 주도라는 자가 반란에 실패하고 신라의 주왕산에 숨어 들어왔다. 주도는 이곳에 은거하며 세력을 키워 나가다 신라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1034년 이후 이 이야기는 주왕산에 얽힌 전설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1997년 청송의 향토사학자 김규봉씨가 새로운 설을 제기하면서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주왕사적을 면밀히 보면 구체적 장소와 연대까지 모두 나열하고 있어 전설보다 실제 기록에 가깝다. 줄거리에 김헌창을 대입할 경우 우연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며, 주왕산의 지형, 유적과도 일치한다. 게다가 주왕사적을 기록한 낭공대사는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의 수제자였다. 반란자의 역사는 왜곡되고 발설할 수 없도록 억압받게 마련이기에 낭공대사는 김헌창을 당나라 주도라는 인물로 바꾸어 기록했으며, 세월이 지난 후 개봉토록 했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김춘추의 6대손)에게서 유래하며 김주원, 김헌창, 김범문 3대에 이르는 반란의 한이 맺힌 산인 셈이다.






▲ 내원동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각시소. 멀리서 보면 나뭇잎에 투영돼 수면에 반사된 빛깔이 금빛이다.



연분홍 철쭉 연달래가 깔린 길을 밟아 큰골로 내려선다. 절골과 달리 수량이 많다. 얼마 안 가 매혹적인 소(沼)와 마주친다. 각시소다.  오후의 햇살이 소를 둘러싼 나뭇잎을 투영해 물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일렁이는 물결이 뛰어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4~5m 깊이라 마음만 던져 놓고 발길을 옮긴다.

볕이 잘 드는 협곡 속의 별천지 내원동, 이상해씨가 이곳저곳 살피며 담긴 추억을 얘기한다. 손길에 애정이 묻어난다. 눈빛은 세월을 넘은 추억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무를 쓰다듬는다. 전기 없는 불편함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들이 이곳에 살고 싶어했던 까닭을 잠깐이나마 이해할 듯도 하다. “아름답다”는 독백이 쌓여 “살고 싶다”고 말하게 만들어 버리는 주왕산 아니던가.

물이 적어 우기 때의 위용에 미칠 바 못되지만 그럼에도 3폭포는 여전히 멋스럽다.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는 법을 알며, 바위는 필요 이상 가지지 않고 비우는 법을 알기에 폭포가 멋있는 것이다. 2폭포는 아기자기하나 터 자체가 가진 아늑함이 있고, 1폭포는 그 자체로 자연이 빚은 예술이며 전설이다. 다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비룡이니 용연이니 선녀폭이니 하는 본 이름이 있었는데 이 기막힌 작품의 제목이 현재에 이르러 1, 2, 3으로 불린다니 실로 사무적인 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안타까운 발상이다.





▲ 주능선에서 사창골로 내려서는 갈림길 근처의 조망터. 능선에서 보면 주왕산 특유의 기암이 신록에 다 묻혀 육산의 모양새다.



망월대에 서자 시루봉과 학소대, 급수대 같은 기암 거인들이 일제히 우릴 쳐다본다. 그 시선이 너무 커 입이 떡 벌어진다. 저토록 든든하니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산에 기대고 싶어진다. 너무 많은 말보다는 침묵이 더 진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는 법.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좁은 협곡 속에 숨은 주왕굴은 주왕이 숨어 살다 죽은 곳이라 한다. 세상과 싸우다 실패하여 산에 숨어든 거칠 것 없었던 사내, 이제는 전설이 되어 스스로 산이 되었다.

주왕산을 떠나는 길. 서울까지 갈 길이 먼데, 산이 자꾸 같이 살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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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오로지 암벽에만 빠져 있던 그녀가 빙벽 등반을 시작한 것은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한 이후였다.


“그 전에 빙벽 등반을 해본 적이 있어요. 고미영 언니와 함께 구곡폭에 갔었어요. 온몸이 덜덜 떨리니까 저런 걸 뭐 하러 하나 싶더군요. 하도 떨고 있으니까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한번 해보라고 해서 한 거예요. 5m쯤 올라가니까 몸에서 땀이 나더군요. 그 후 한동안 잊고 있다가 2003년 12월 가래비 빙벽이 처음이었어요. 할 만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째 빙벽 등반 때 토왕폭에 갔던 거예요.”


토왕폭은 하단 등반이었다. 톱로핑으로 올랐다. 이제 막 빙벽에 발을 디딘 초심자가 수직의 빙폭을 오르자니 쉬울 리 없었다. 손목걸이 없는 바일을 사용하자니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과 팔에 펌핑이 왔다.


“바일에 매달린 채 쥐가 난 팔을 털었어요. 인공암벽 등반하듯이 말이에요. 그랬더니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오래 하다 보니까 저런 자세가 나온다’며 치켜세워 주는 거예요. 영문도 모른 채 말이에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는 두어 차례 준우승이 고작이었다. 빙벽대회에서는 달랐다. 첫 대회는 2005년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열린 제1회 노스페이스배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이었다. 그런데 시합 전날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임신 7주째였는데 그런 사실도 모르고 참가했어요. 아무튼 밤새 꿈속에서 헤맸어요. 빙벽화가 없어졌지 뭐예요. 새벽에 일어날 때까지 신발 찾아 삼만 리는 돌아다닌 것 같아요. 그렇게 잠을 설쳤으니 잘 풀릴 리 있겠어요. 얼마 올라가지 못한 지점에서 피크를 박은 얼음이 터져나가면서 추락하고 말았어요. 꿈땜한 거죠.”


그러나 이후 참가한 청송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당시 국내 최고수로 등극한 신윤선씨와 결선에 이어 슈퍼파이널까지 경기를 펼쳤다.


“빨리 끝냈어요. 그래서 우승한 줄 알았어요. 다들 축하해주기도 했으니까요. 카메라 판독을 통해 출발 직후 발이 라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얼음 시작한 해에 준우승을 차지했으니까요.”





▲ 2009 코오롱스포츠배 청송 주왕산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결선에서 통나무 구간을 등반하고 있는 정운화씨(위)와 시상식 모습.



2004년 인공암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상국(37)씨와 결혼한 그녀는 이듬해 가을 첫 아들 주형(4)을 낳았다. 때문에 그해 겨울에 이어 이듬해 봄까지 산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6월 들어 날이 따뜻해지자 아기를 안고 응봉동 암벽공원을 찾아갔다.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그리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몸이 불어 있는 모습을 보곤 선배 한 분이 너 둘째 가졌냐 하시는 거예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군요. 그 다음날부터 다시 운동했어요. 경기 루트가 순수 빙벽에서 암벽이나 인공시설물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늦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드라이툴링(얼음과 바위가 뒤섞인 지역이나 바위지대를 피켈과 아이젠을 이용해 오르는 등반)에도 신경썼고요.”


한다고 했지만 2006~2007년 겨울 시즌 첫 대회인 전국선수권에서 겨우 6위에 머물면서 자존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빙벽에서 내려서니까 선배 한 분이 ‘너 인상 많이 쓰더라’ 하시는 거예요. 꽉 막혔을 때 웃어야 하는데 더 인상을 쓰다 보니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다음 대회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등반하자 차츰 달라졌다.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판대대회에서 3위에 오르고, 그 다음주에 열린 토왕폭대회에서도 4위에 입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8년 1월 매바위 인공빙벽에서 열린 전국등반선수권대회에 이어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열린 노스페이스배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청송대회 때는 시부모님까지 응원 나오셨어요. 남편 고향이 청송이거든요.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 며느리 이겨라, 이겨라’ 하시면서 엄청 소리치셨어요. 남편 응원은 물론이고요. 대회를 닷새 남겨놓은 설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 다음 영동빙장에 갔어요. 거기서 이틀 동안 남편은 아이 보느라 빙벽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때 몸을 제대로 푼 덕분에 청송대회에서 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정운화씨는 등반 경기에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긴장하고 경기에 집중하는 과정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 경기가 열리지 않는 틈을 타서 아들 주형군과 함께 놀아주고 있는 정운화씨.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선 탈락했어도 마음이 편하면 그만이니까요. 대회 때마다 겉으론 멀쩡한 척하지요. 하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긴장하지 않으면 대회도 잘할 수 없어요. 그래야 집중도 되니까요. 한동안 못 본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도 좋아요. 일일이 산에서 만나려면 365일 가지고도 쉽지 않은데 대회 때면 한꺼번에 볼 수 있잖아요.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나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잘했으면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고, 못했으면 더욱 잘해야겠다며 분발하는 거죠. 후배들을 자극하고 이끌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겠지요.”


정운화씨는 2003년 외설악적십자구조대 대원에 위촉되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그녀는 새롭게 시작한 직장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등반해온 후배인 문철한한테 전화가 왔어요. 감자떡 부칠 사람이 필요하니까 양폭산장으로 빨리 와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막무가내였어요. 누나가 음식 잘한다고 여러 사람한테 소문냈다면서 말이에요. 고민하다 사장님한테 얘기했죠. 한 달쯤 다녀와야겠다고요. 그랬더니 ‘누가 말려, 산에 가겠다는데’ 하면서 다녀오라시지 뭐예요. 사장님이 제 선배인 친구를 통해 산꾼 심리를 잘 알고 계셨거든요.”


“첫눈 오름에 성공할 때의 기분은 환상적이에요”


양폭산장은 외설악적십자구조대에서 공단으로부터 임차 운영하는 대피소였다. 정운화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구조대원들이 타이틀만 가지고 있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대원들은 누가 발목이 삐었다는 연락만 받아도 설악동에서부터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무 대가 없는 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설악산에서 살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서 대원으로서 역할을 못해도 등반대회에 나가 구조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전서화 대장님한테 약속했어요. 구조대 활동요? 그러고 나서 아마 설악산에 일 년에 한두 번씩밖에 못 갔을 거예요.(웃음) 그래도 약속은 지켰잖아요. 올해 코리안 시리즈 종합우승으로 내년 초 월드컵 빙벽대회 자격을 얻었어요. 경비도 지원받고요. 내년엔 월드컵에서 세계 클라이머들에게 우리 구조대를 알릴 거예요.”





▲ 2003년 여름 설악산 장군봉에서 남편 이상국씨(맨왼쪽)와 백인 스님과 함께.



정운화씨는 지난해 7월부터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 내 인공암벽을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 이전까지 당고개 암벽에서 훈련을 쌓아왔던 그녀는 지난해 여름과 가을엔 이 암장에서 스포츠클라이밍 훈련을 하고 겨울에는 나무로 만든 홀드를 군데군데 박아놓고 아이스툴링 훈련을 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겨울철에는 집에서 가까운 실내암장에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실내인공암벽을 찾아요. 애 아빠와 실력이 엇비슷해요. 그래서 둘 사이에 은근히 경쟁심이 있어요. 그래도 대회 때는 애 아빠가 큰 힘이 돼줘요. 아들 담당으로요.”


정운화씨는 내년 1월에 열릴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맹훈련에 들어갔다. 웹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경기 동영상을 찾아내 알지 못했던 경기 루트나 등반 자세가 나오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벽에 매달린다.


“큰 벽이나 큰 산에 대한 꿈은 없어요. 그보다는 온사이트 클라이밍을 잘하고 싶어요. 첫눈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환상이에요. 재작년 추석 때 남편과 함께 포항 학장암에서 5.11에서 5.12b급 루트 네 개를 온사이트로 올랐어요. 가을 햇살 때문인지 더욱 기뻤어요. 지금은 월드컵 대회 준비가 최우선 과제예요. 지난해에는 월드컵에 나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꿈을 바꾸었어요. 월드컵에서 잘해 보는 거예요. 혹시 알아요? 우승할지.”


/ 글 한필석 차장 ps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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