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오로지 암벽에만 빠져 있던 그녀가 빙벽 등반을 시작한 것은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한 이후였다.
“그 전에 빙벽 등반을 해본 적이 있어요. 고미영 언니와 함께 구곡폭에 갔었어요. 온몸이 덜덜 떨리니까 저런 걸 뭐 하러 하나 싶더군요. 하도 떨고 있으니까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한번 해보라고 해서 한 거예요. 5m쯤 올라가니까 몸에서 땀이 나더군요. 그 후 한동안 잊고 있다가 2003년 12월 가래비 빙벽이 처음이었어요. 할 만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째 빙벽 등반 때 토왕폭에 갔던 거예요.”
토왕폭은 하단 등반이었다. 톱로핑으로 올랐다. 이제 막 빙벽에 발을 디딘 초심자가 수직의 빙폭을 오르자니 쉬울 리 없었다. 손목걸이 없는 바일을 사용하자니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과 팔에 펌핑이 왔다.
“바일에 매달린 채 쥐가 난 팔을 털었어요. 인공암벽 등반하듯이 말이에요. 그랬더니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오래 하다 보니까 저런 자세가 나온다’며 치켜세워 주는 거예요. 영문도 모른 채 말이에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는 두어 차례 준우승이 고작이었다. 빙벽대회에서는 달랐다. 첫 대회는 2005년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열린 제1회 노스페이스배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이었다. 그런데 시합 전날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임신 7주째였는데 그런 사실도 모르고 참가했어요. 아무튼 밤새 꿈속에서 헤맸어요. 빙벽화가 없어졌지 뭐예요. 새벽에 일어날 때까지 신발 찾아 삼만 리는 돌아다닌 것 같아요. 그렇게 잠을 설쳤으니 잘 풀릴 리 있겠어요. 얼마 올라가지 못한 지점에서 피크를 박은 얼음이 터져나가면서 추락하고 말았어요. 꿈땜한 거죠.”
그러나 이후 참가한 청송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당시 국내 최고수로 등극한 신윤선씨와 결선에 이어 슈퍼파이널까지 경기를 펼쳤다.
“빨리 끝냈어요. 그래서 우승한 줄 알았어요. 다들 축하해주기도 했으니까요. 카메라 판독을 통해 출발 직후 발이 라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얼음 시작한 해에 준우승을 차지했으니까요.”
- ▲ 2009 코오롱스포츠배 청송 주왕산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결선에서 통나무 구간을 등반하고 있는 정운화씨(위)와 시상식 모습.
2004년 인공암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상국(37)씨와 결혼한 그녀는 이듬해 가을 첫 아들 주형(4)을 낳았다. 때문에 그해 겨울에 이어 이듬해 봄까지 산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6월 들어 날이 따뜻해지자 아기를 안고 응봉동 암벽공원을 찾아갔다.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그리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몸이 불어 있는 모습을 보곤 선배 한 분이 너 둘째 가졌냐 하시는 거예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군요. 그 다음날부터 다시 운동했어요. 경기 루트가 순수 빙벽에서 암벽이나 인공시설물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늦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드라이툴링(얼음과 바위가 뒤섞인 지역이나 바위지대를 피켈과 아이젠을 이용해 오르는 등반)에도 신경썼고요.”
한다고 했지만 2006~2007년 겨울 시즌 첫 대회인 전국선수권에서 겨우 6위에 머물면서 자존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빙벽에서 내려서니까 선배 한 분이 ‘너 인상 많이 쓰더라’ 하시는 거예요. 꽉 막혔을 때 웃어야 하는데 더 인상을 쓰다 보니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다음 대회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등반하자 차츰 달라졌다.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판대대회에서 3위에 오르고, 그 다음주에 열린 토왕폭대회에서도 4위에 입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8년 1월 매바위 인공빙벽에서 열린 전국등반선수권대회에 이어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열린 노스페이스배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청송대회 때는 시부모님까지 응원 나오셨어요. 남편 고향이 청송이거든요.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 며느리 이겨라, 이겨라’ 하시면서 엄청 소리치셨어요. 남편 응원은 물론이고요. 대회를 닷새 남겨놓은 설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 다음 영동빙장에 갔어요. 거기서 이틀 동안 남편은 아이 보느라 빙벽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때 몸을 제대로 푼 덕분에 청송대회에서 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정운화씨는 등반 경기에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긴장하고 경기에 집중하는 과정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 ▲ 경기가 열리지 않는 틈을 타서 아들 주형군과 함께 놀아주고 있는 정운화씨.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선 탈락했어도 마음이 편하면 그만이니까요. 대회 때마다 겉으론 멀쩡한 척하지요. 하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긴장하지 않으면 대회도 잘할 수 없어요. 그래야 집중도 되니까요. 한동안 못 본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도 좋아요. 일일이 산에서 만나려면 365일 가지고도 쉽지 않은데 대회 때면 한꺼번에 볼 수 있잖아요.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나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잘했으면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고, 못했으면 더욱 잘해야겠다며 분발하는 거죠. 후배들을 자극하고 이끌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겠지요.”
정운화씨는 2003년 외설악적십자구조대 대원에 위촉되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그녀는 새롭게 시작한 직장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등반해온 후배인 문철한한테 전화가 왔어요. 감자떡 부칠 사람이 필요하니까 양폭산장으로 빨리 와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막무가내였어요. 누나가 음식 잘한다고 여러 사람한테 소문냈다면서 말이에요. 고민하다 사장님한테 얘기했죠. 한 달쯤 다녀와야겠다고요. 그랬더니 ‘누가 말려, 산에 가겠다는데’ 하면서 다녀오라시지 뭐예요. 사장님이 제 선배인 친구를 통해 산꾼 심리를 잘 알고 계셨거든요.”
“첫눈 오름에 성공할 때의 기분은 환상적이에요”
양폭산장은 외설악적십자구조대에서 공단으로부터 임차 운영하는 대피소였다. 정운화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구조대원들이 타이틀만 가지고 있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대원들은 누가 발목이 삐었다는 연락만 받아도 설악동에서부터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무 대가 없는 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설악산에서 살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서 대원으로서 역할을 못해도 등반대회에 나가 구조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전서화 대장님한테 약속했어요. 구조대 활동요? 그러고 나서 아마 설악산에 일 년에 한두 번씩밖에 못 갔을 거예요.(웃음) 그래도 약속은 지켰잖아요. 올해 코리안 시리즈 종합우승으로 내년 초 월드컵 빙벽대회 자격을 얻었어요. 경비도 지원받고요. 내년엔 월드컵에서 세계 클라이머들에게 우리 구조대를 알릴 거예요.”
- ▲ 2003년 여름 설악산 장군봉에서 남편 이상국씨(맨왼쪽)와 백인 스님과 함께.
정운화씨는 지난해 7월부터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 내 인공암벽을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 이전까지 당고개 암벽에서 훈련을 쌓아왔던 그녀는 지난해 여름과 가을엔 이 암장에서 스포츠클라이밍 훈련을 하고 겨울에는 나무로 만든 홀드를 군데군데 박아놓고 아이스툴링 훈련을 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겨울철에는 집에서 가까운 실내암장에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실내인공암벽을 찾아요. 애 아빠와 실력이 엇비슷해요. 그래서 둘 사이에 은근히 경쟁심이 있어요. 그래도 대회 때는 애 아빠가 큰 힘이 돼줘요. 아들 담당으로요.”
정운화씨는 내년 1월에 열릴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맹훈련에 들어갔다. 웹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경기 동영상을 찾아내 알지 못했던 경기 루트나 등반 자세가 나오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벽에 매달린다.
“큰 벽이나 큰 산에 대한 꿈은 없어요. 그보다는 온사이트 클라이밍을 잘하고 싶어요. 첫눈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환상이에요. 재작년 추석 때 남편과 함께 포항 학장암에서 5.11에서 5.12b급 루트 네 개를 온사이트로 올랐어요. 가을 햇살 때문인지 더욱 기뻤어요. 지금은 월드컵 대회 준비가 최우선 과제예요. 지난해에는 월드컵에 나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꿈을 바꾸었어요. 월드컵에서 잘해 보는 거예요. 혹시 알아요? 우승할지.”
/ 글 한필석 차장 ps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