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왕산에 간다면 나는 말릴 것이다. 주왕산엔 가지 마라. 그곳이 <월간山> ‘명산명품 산행로’ 코너에 소개된 산이라 해도 가지 마라. 명산이 뭐고 명품이 뭐냐. 산에 어디 순위가 있다더냐. 돈 냄새 풍기는 명품이란 게 산에 비할 바 된다더냐. 매스컴에 나오는 주왕산의 기품 있는 기암과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주산지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주왕산엔 가지 마라. 그곳에 한번 가면 못 돌아온다. 그래도 행여 간다면 은밀한 계곡, 절골이나 협곡 속의 딴 세상 내원동만은 가지 마라.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가지 마라. 주왕산에 가면 당신, 다시는 못 돌아온다.

-이성복의 시 <동곡엔 가지 마라>를 주왕산에 빗대었음.





▲ 주방천 3폭포 하단. 주왕산은 물과 바위, 신록이 어울려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새벽 6시, 주산지가 시끄럽다. 아침을 부르는 새소리로 시끄럽다. 작은 지저귐이 이토록 크게 울리는 건 그만큼 고요하다는 뜻. 이건 수면이 아닌 거울인가. 물 안에 숲이 있다. 물속의 숲에서 스물스물 물안개가 피어난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몽환적인 그림 속을 걷는다. 수염을 축 늘어뜨린 호숫가의 왕버들은 나무 중에서도 산신령 정도는 될 듯한 풍모다. 느리게 거니는 물고기는 무척 편안해 보인다. 올망졸망한 다람쥐는 앙증맞아 확 잡아 얼굴에 부비고 싶다. 조화로운 그들만의 세상에 온 게다. 터벅터벅 걸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들처럼 느릿느릿 디뎌 본다. 왠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다. 새벽의 주산지에서는…….

가게도 없고, 인적도 없는 절골 입구에서 사람을 맞는 건 개 두 마리. 어찌나 싹싹한지 낯선 사람에게도 반갑다며 꼬리 흔들고 난리다. 개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산하는 이는 이상해씨와 위한일씨다. 이씨는 내원동에서 16년을 살다 나온 주왕산의 산증인이며, 위씨는 5대째 청송에서 살며 사과밭을 일구는 토박이다.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입이 벌어진다. 숨어 있던 높다란 협곡이 나타났다. ‘뫼 산(山)자’를 닮은 기암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초록과 잘 어울리는 갈색 바위는 세월에 닳은 모양새가 품위 있다. 곱게 늙어간다고 할까. 어떤 편견이나 고집, 과시욕 없이 비와 바람에 제 몸을 맡겨 현명하게 닳아 있다. 주왕의 바위들은 그러하다.





▲ 절골은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순수한 매력이 있다. 국립공원임에도 처녀지를 탐험하는 듯한 분위기다.


산행 시작부터 이래도 되는 건가. 신록은 한없이 싱그럽고 계곡은 때묻지 않은 청아함을 지녔다. 인공적인 나무 데크나 길을 만들지 않아 발걸음 딛는 곳이 길이다. 깨끗하고 간지러운 물소리, 속에서 노니는 어름치, 그늘을 내주며 유혹하는 서어나무, 물개암나무……. 산행이 싫어진다. 텐트 치고 한 며칠 눌러앉고 싶어진다.

가야 할 길이 먼데 걸음이 처진다. 물과 바위와 더불어 숲이 만들어내는 환상교향곡에 흠뻑 빠진 탓이다. 더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고 싶다는 욕심이 머리를 타고 내려와 근육을 조종한다. 아름답다고 해 버리면 그 말 속에 절골이 가진 매력이 한정돼 버릴까 봐 그리 말하지 못하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라 여운을 남겨둔다.

오를수록 수종이 다양하다. 아카시, 박달, 들메, 굴참, 느릅, 느티나무 등의 향과 색이 어울려 피톤치드의 즐거운 하모니를 뿜어낸다. 그래서일까. 사람의 기분도 초록색 향에 맞춰 붕붕 떠다닌다.

절골이 끝나는 대문다리에서 슬쩍 망설인다. 절골 상류인 갈전골이 저만치서 자꾸 끌어당긴다. 그 앞엔 줄이 쳐 있고 ‘탐방로 아님’ 하고 더 가보고 싶게 만드는 표지판이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데도 갈전골 입구는 어둑어둑하다. 저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나올 것만 같다는 야릇한 유혹을 털어내고 가메봉으로 간다.





▲ 절골다리. 절골은 주방천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수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맛이 있다.


절골이 밝은 느낌의 계곡이라면 가메봉으로 이어진 골짜기는 숲이 짙고 좁아 서늘한 분위기의 골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숫처녀 산을 탐험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간간이 만나는 이정표가 반갑다. 어디가 길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제대로 왔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지능선에 붙어 오른다. 인내의 시간을 꾸역꾸역 삼키길 한참, 주능선 안부를 지나 가메봉 정상이다. 또 이놈들이 반긴다. 놀랍고 반갑다. 절골 입구에서 봤던 개들이다. 어찌 올라왔을까 궁금하면서도 나름 녀석들의 생존 방식이 이해된다.

절골을 거쳐 올라온 가메봉은 다른 세상의 정점이다. 시원한 ‘산국(山國)’ 한가운데다. 겹겹이 늘어선 산의 둥글둥글한 굴곡, 신록까지 더해 순하고 정이 가는 풍경이다. 절골, 신술골, 갈전골의 패임까지 훤하다. 그 많던 바위를 다 덮어 버린 신록의 왕국이 주왕 김헌창의 봉우리 아래 엎드려 있다.

주왕 전설이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건 1000년 전이다. 1034년 석름봉(가메봉) 서쪽 사창암에서 출토된 주왕사적이 그것이며 이는 920년 낭공대사가 기록한 것으로 제자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나올 때를 기다려 다섯 번을 전할 때까지, 즉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개봉하지 못하도록 한 문서다.





▲ 절골의 나무 데크. 협곡은 위협적이지 않으며 단아함에 가깝다.



주왕사적 속 전설의 줄거리는 대강 “신라 말 당나라 주도라는 자가 반란에 실패하고 신라의 주왕산에 숨어 들어왔다. 주도는 이곳에 은거하며 세력을 키워 나가다 신라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1034년 이후 이 이야기는 주왕산에 얽힌 전설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1997년 청송의 향토사학자 김규봉씨가 새로운 설을 제기하면서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주왕사적을 면밀히 보면 구체적 장소와 연대까지 모두 나열하고 있어 전설보다 실제 기록에 가깝다. 줄거리에 김헌창을 대입할 경우 우연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며, 주왕산의 지형, 유적과도 일치한다. 게다가 주왕사적을 기록한 낭공대사는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의 수제자였다. 반란자의 역사는 왜곡되고 발설할 수 없도록 억압받게 마련이기에 낭공대사는 김헌창을 당나라 주도라는 인물로 바꾸어 기록했으며, 세월이 지난 후 개봉토록 했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김춘추의 6대손)에게서 유래하며 김주원, 김헌창, 김범문 3대에 이르는 반란의 한이 맺힌 산인 셈이다.






▲ 내원동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각시소. 멀리서 보면 나뭇잎에 투영돼 수면에 반사된 빛깔이 금빛이다.



연분홍 철쭉 연달래가 깔린 길을 밟아 큰골로 내려선다. 절골과 달리 수량이 많다. 얼마 안 가 매혹적인 소(沼)와 마주친다. 각시소다.  오후의 햇살이 소를 둘러싼 나뭇잎을 투영해 물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일렁이는 물결이 뛰어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4~5m 깊이라 마음만 던져 놓고 발길을 옮긴다.

볕이 잘 드는 협곡 속의 별천지 내원동, 이상해씨가 이곳저곳 살피며 담긴 추억을 얘기한다. 손길에 애정이 묻어난다. 눈빛은 세월을 넘은 추억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무를 쓰다듬는다. 전기 없는 불편함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들이 이곳에 살고 싶어했던 까닭을 잠깐이나마 이해할 듯도 하다. “아름답다”는 독백이 쌓여 “살고 싶다”고 말하게 만들어 버리는 주왕산 아니던가.

물이 적어 우기 때의 위용에 미칠 바 못되지만 그럼에도 3폭포는 여전히 멋스럽다.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는 법을 알며, 바위는 필요 이상 가지지 않고 비우는 법을 알기에 폭포가 멋있는 것이다. 2폭포는 아기자기하나 터 자체가 가진 아늑함이 있고, 1폭포는 그 자체로 자연이 빚은 예술이며 전설이다. 다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비룡이니 용연이니 선녀폭이니 하는 본 이름이 있었는데 이 기막힌 작품의 제목이 현재에 이르러 1, 2, 3으로 불린다니 실로 사무적인 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안타까운 발상이다.





▲ 주능선에서 사창골로 내려서는 갈림길 근처의 조망터. 능선에서 보면 주왕산 특유의 기암이 신록에 다 묻혀 육산의 모양새다.



망월대에 서자 시루봉과 학소대, 급수대 같은 기암 거인들이 일제히 우릴 쳐다본다. 그 시선이 너무 커 입이 떡 벌어진다. 저토록 든든하니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산에 기대고 싶어진다. 너무 많은 말보다는 침묵이 더 진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는 법.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좁은 협곡 속에 숨은 주왕굴은 주왕이 숨어 살다 죽은 곳이라 한다. 세상과 싸우다 실패하여 산에 숨어든 거칠 것 없었던 사내, 이제는 전설이 되어 스스로 산이 되었다.

주왕산을 떠나는 길. 서울까지 갈 길이 먼데, 산이 자꾸 같이 살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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