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0) - 안젤리나 졸리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Voight)
“사랑은 금방 잊혀지는 작은 입맞춤이나 미소를 안겨주는 자비, 친절한 시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Love is made up of minute fractions―the little soon forgotten charities of a kiss or smile, a kind look, a heartfelt compliments and the countless infinitesimals of pleasurable and genial feeling.


Destiny words : 사랑은 작은 입맞춤, 자비, 친절한 시선,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별 5개짜리 최고급 할리우드 호텔과 최소한의 편의 시설조차 없는 난민촌을 오가는 여인.’

웬만한 남성쯤은 단번에 제압할 듯한 거친 헤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이 안젤리나 졸리이다. 악역 전문 배우 존 보이트와 역시 배우 출신 마셀리니 베르뜨랑 사이에서 태어난 안젤리나 졸리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정신 요양원에 수감된 10대 소녀 리사 역을 열연, 다음해 아카데미 조연 여우상을 따낸다.

“아카데미 수상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반추해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일이 흥미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성장과정을 겪었지만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장소나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기 외에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입증하려는 듯이 그녀는 풍토병을 염려해 아프리카 기아 난민촌 방문을 꺼려 하는 여타 할리우드 배우들과는 달리 스케줄이 허용하는 한 수시로 방문해 극빈자 퇴치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태국·미얀마 등 전쟁으로 고아가 된 동남아시아 국경지대 난민 캠프도 적극 찾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 자선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졸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아시아·아프리카 소년 소녀들을 양자로 입양해서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고운 심성을 자랑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어요.
하지만 유엔 친선 대사로 캄보디아의 한 고아원을 방문해서 지금 키우고 있는 수양아들 매덕스를 만나게 됐죠. 전 그 아이가 저를 보고 방끗 웃는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죠. 생후 7개월 때 정식 입양을 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매덕스를 키우면서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뭇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그녀는 <툼 레이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 등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거칠고 무자비함도 감추지 않고 있는 여성으로 등장했다.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이런 배역을 선호해서 그런지 그녀는 한때 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엽기적인 애정을 과시했던 빌리 밥 손튼과는 “남편과 손을 맞잡고 유유자적하게 영화나 보러 다닐
여유가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고 결국 두 사람은 파경을 맞게 된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고는 보지 않아요.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사랑을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남모르게 눈물짓는 모습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가족은 부모의 이기심이 아닌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해서 얻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난민 구호에 뛰어든 것도 알고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금방 잊혀지는 작은 입맞춤이나 미소를 안겨주는 자비, 친절한 시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촬영장 틈틈이 읽었던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의 에세이 『프렌드』에서 읽은 이 명구는 그녀가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촌을 방문해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애정의 손길을 보내는 데 결정적 자극이 됐다. 졸리는 캄보디아 지뢰밭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폭발물로 인해서 신체 불구가 되고, 아프리카에서 어린 생명들이 굶주림에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세상을 너무 좁게 살아 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배우로서 부와 명예의 성(城)에 안주하면서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그녀가 왜 이토록 힘든 일에 온 정열을 쏟고 있을까? 비행청소년 시절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한 책에서 ‘살아 있는 것이 고맙다고 느낀다면 그대의 희망을 나누어 주어라!’라는 구절를 접했다.

“희망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내는 일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 바깥세상을 둘러보면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면 그들은 내가 유명 배우인지 모릅니다. 단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봉사활동을 하는 유용한 여자로 취급당합니다. 이런 것이 저에게는 아카데미 트로피보다 더 소중합니다. 인간끼리 진심을 소통하는 이런 체험에 아주 만족합니다.”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Voight)

굶주린 난민촌에 사랑의 의미를 전파하고 있는 은막의 헤로인.
1975년 캘리포니아 주 LA 태생. 아카데미 수상 배우인 존 보이트의 딸.
부친이 갖고 있는 성격 배우의 기질을 모두 물려받아 웬만한 남성 서너 명은 간단히 제압하는 강한 여성 역할을 단골로 맡고 있다. 뉴욕에 있는 명문 연기학교 리 스트라스버그 극단 출신. 늘씬한 체구를 내세워 런던, 뉴욕, LA 등지에서 패션모델 활동을 했고 팝 가수 ‘미트로프Meatloaf’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안토넬로 벤디티Antonello Venditi’‘레몬헤즈The Lemonheads’ 등의 뮤직 비디오 모델로도 출연했다.
정신병동에 수감된 20대 여성 심리를 연기한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로 연기력을 인정을 받는다. 게임을 극화한 <툼 레이더Lara Croft : Tomb Raider, 2001> 시리즈를 비롯해 <알렉산더Alexander,
2004>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 등에서 남성들의 완고한 성역을 개혁하려는 여전사의 이미지를 보여주어 갈채를 얻어내고 있다.남성 잡지 「FHM」을 비롯해 「피플」 등에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00’에 단골로 추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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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1) - 알파치노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알 파치노(Alfredo James Pacino)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한 치도 예외 없이 그것을 끝까지 해냈지. 그리고 그보다 더 가치 있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Destiny words : 더 가치 있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맡은 배역마다 천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알 파치노. 그는 배우로서 부와 명성을 얻고 난 후 지독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칫 영화계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뻔한 위기의 순간을 겪기도 했다.

<대부>에서 뉴욕 마피아 거물 집단 꼬를레오네 가문의 2대 수장 돈 마이클 꼬를레오네 역을 맡아 냉혹한 암흑가 조직을 통솔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반면 <여인의 향기>에서는 군복무중 중상을 당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퇴역 장교 역을 맡아 “성숙한 여인을 유혹하는 법을 보여주겠다”며 흥겨운 라틴 리듬에 맞추어 멋들어진 탱고 춤의 세계를 펼쳐주는 팔색조 같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뉴욕의 허름한 지하 월세방에서 세면대를 싱크대로 이용해 요기를 하면서 배고픈 무명 시절을 보낸 알 파치노는 셰익스피어 연극에 빠져 ‘리처드
3세’,‘햄릿’등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결국 꿈에 그리던 할리우드로 진출해 개성파 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대부> 시리즈를 필두로 해서 <개 같은 날의 오후Dog Day Afternoon, 1975> <저스티스And Justice for All, 1979> <스카페이스Scarface, 1983> 등으로 흥행 독주를 하던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혁명Revolution, 1985>이 예상을 깨고 흥행 참패를 기록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5년 이상 은퇴 상태에 빠진다. 그는 이때부터 폭음과 마약을 손에 대기 시작해 중증 환자로 전락하게 된다. 주위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이 밝으면 거의 습관적으로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라이온스 헤드 카페’에서 대낮부터 레몬을 얹은 독주를 마셔댄다.

그때 무명 시절 자기와 함께 살을 에는 듯한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맨하탄 다리 위에서 셰익스피어 원문을 낭독하면서 대배우의 꿈을 꾸었던 찰리는 “술을 입안으로 흘려보내면서 의자에서 몸을 흔들어대는 이가 바로 너구나. 지금 너는 그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는 것이지!”라며 매우 단호한 어조로 질책을 보낸다. 찰리의 은근한 독설은 계속됐다.
“원한다면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라. 모두 네 맘이니까!”단호했지만 한편에서는 친구의 방탕한 일상에 연민을 느낀 찰리의 애절한 표정을 바라본 알 파치노. “12월 한파가 몰아치는 날 얼음물로 세수를 하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라는 것이 알 파치노의 회고이다. 그날 이후 술과 마약은 그의 곁에서 서서히 떠나가게 된다.

1987년 카네기 홀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는 가사를 담고 있는 ‘My way’를 열창하고 있었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한 치도 예외 없이 그것을 끝까지 해냈지. 그리고 그보다 더 가치 있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알 파치노는 이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새삼 ‘배우로서 새로운 승부를 걸어보자, 그리고 후회는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용기백배한 그는 뉴욕에서 벌어진 강력 사건을 수사하는 민완 형사 프랭크 켈러 역을 맡은 <사랑의 파도Sea of Love, 1989>로 5년여 동안의 공백을 딛고 멋지게
재기한다. 그 후 프로 연기자의 진면목을 보여준 <칼리토, 1993>를 필두로 해서 <히트Heat, 1995> <도니 브래스코Donnie Brasco, 1997>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1997> <인사이더The Insider, 1999> <인썸니아Insomnia, 2002> 등이 관객들의 환대를 받아낸다.



알 파치노(Alfredo James Pacino)

메소드 연기의 대가
1940년 뉴욕 주 사우스 브롱크스 출생. 이태리 이민자 출신.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이라는 ‘One of the greatest actors in all of film history’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연기학자 리 스트라스버그가 창안한 “배우는 맡은 배역에 자신을 올인해서 완벽한 프로 연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의 완벽한 이수자 중 한 사람. 이혼 남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프랭키 앤 쟈니Frankie and Johnny, 1991> 암흑가 조직 간의 알력으로 희생되는 갱스터 칼리토 역을 맡은 <칼리토 Carlito's Way, 1993> 유태인 수전노 샤일록 역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2004> 등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임을 입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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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8) - 존 트라볼타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존 트라볼타(John Joseph Travolta)

“희망은 이를 추구하는 비참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Hope never leaves a wretched man that seeks her.


Destiny words : 희망은 이를 추구하는 비참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등을 히트시키면서 단번에 디스코 황제로 부상했던 존 트라볼타는 갑자기 얻게 된 부와 명예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약 중독에 빠져 6년 이상 은퇴 상태에 빠지는 극과 극의 체험을 한 재능꾼이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그가 일순간의 방탕으로 나락에 떨어졌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모든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가치관이 큰 힘이 됐다.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당신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어때?라는 말은 지독한 모멸감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있고 박자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발레리나가 될 소질이 있다는 말은 숨어 있는 재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격려의 말이 될 수 있죠.”

폭넓은 연기생활을 하는 와중에 독서로 삶의 풍족함을 깨우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 좌우명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체득했다고 한다.

그가 잠언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존 플레처의 『선장』이라는 책에 명기된 구절이다.‘희망은 이를 추구하는 비참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존 트라볼타는 대다수 평범한 이들도 최소한의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나 성향에 맞는 일을 찾게 된다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포부를 갖고 전력을 쏟아 승부를 걸어 보라고 권유한다.

“가난하다는 등 외부 환경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고 용기를 잃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봅니다. 유리잔에 들어 있는 반잔의 물을 보고‘반이나 남아 있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곧바로 연기자의 길을 선택한 그는 짧은 무명 시절을 거쳐 <토요일 밤의 열기>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독립심이 강한 모친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연극 교사로 일하고 있는 모친 덕분에 어려서부터 독서와 구연동화 연습을 한 것이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부침을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는 할리우드 최고 연기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겸손한 태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암에 걸린 소녀가 죽기 전에 존 트라볼타를 꼭 만나보길 원한다는 전갈을 받게 된다. 흔쾌히 병실을 방문한 존은 시한부 생명이라는 판정을 받고 의료진도 포기한 7살짜리 어린 소녀에게 “넌 꼭 완치 될거야! 약속하지?”라는 격려의 말을 던진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2년 뒤, LA 공항에서 늘씬한 미모의 여성이 그에게 다가와 ‘저를 기억하시겠어요?’라는 말을 건넨다.그녀는 바로 암 판정을 받았던 7살짜리 소녀였다.

“멋진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난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죠. 이런 신념이 병마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는 배우라는 직업이 단순히 은막에 나와 연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역경에 처한 이들이 삶의 용기를 자극받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직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존 트라볼타


배우로서 최고의 명예와 마약으로 인생의 나락을 동시에 맛본 디스코 황제
1954년 뉴저지 주 잉글우드 태생.
1970년대 디스코 열풍을 주도한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로 춤과 노래, 연기를 겸비한 최고의 스타로 부상한다. 이어 <그리스Grease, 1978>
<도시의 카우보이Urban Cowboy, 1980> 등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갑자기 찾아온 부와 명성을 주체하지 못해 마약과 술에 빠져 급격한 인기 하락을 겪게 된다.

은퇴 상태에 빠졌다가 미혼모를 돌보는 택시 운전사 역을 맡은 <마이키
이야기Look Who's Talking, 1989>로 멋지게 컴백하는데 성공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에서는 인간미를 갖고 있는 킬러 역을 맡아 여성 팬들의 심장 박동 소리를 높인다.
상업성만을 쫓는 할리우드의 속성을 꼬집은 <쿨Be Cool, 2005>에서 제작업자 칠리 팔머 역을 맡아 멋들어진 춤 솜씨를 다시 한 번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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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21) - 탐 크루즈(Tom Cruise)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1994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제리 맥과이어'로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할 당시의 모습

탐 크루즈(Tom Cruise)

“아들아, 너의 몫(운명)을 즐겨라!”
My Son, enjoy your own lot!

- 탐 크루즈 Tom Cruise

Destiny words : 너의 몫(운명)을 즐겨라!

‘황금의 미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쓸쓸한 기억.’
편당 2000만 달러(약 210억 원)의 고액을 받고 있는 탐 크루즈. 부와 명성을 공유하고 있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비록 미미 로저스, 니콜 키드만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 때때로 스캔들메이커가 되고 있지만 늘 ‘가정의 행복을 갈망하고 있는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에게도 시련의 세월은 존재했다. 어린 시절 부친의 가출로 인한 이혼, 초등학교 시절부터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지독한 가난, 난독증으로 글자를 읽지 못했던 학창 시절. 하지만 불운한 환경은 그에게 역설적으로 낙천적이고 열성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자극을 제공했다.

“아들아, 너의 몫(운명)을 즐겨라!”

이것은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모친 메리 리 여사가 어린 탐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준 인생 지표였다.

‘어려서부터 상점에 나가 돈을 버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는 탐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거야!’라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런 훈련은 배우가 된 탐이 뭇 여성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100만 달러짜리 미소가 된다.

일부에서는 사이비 종교라고 비난을 하고 있지만 탐은 현재 신흥 종교의 하나인 사이언톨로지의 열성적 교인이다. 종교의 목적은‘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탐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바쁜 배우생활 와중에도 양로원과 고아원 등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역대 출연작 중 탐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훔쳐보는 것도 그를 아끼는 관객들에게는 색다른 흥밋거리다.
각양각색인 인간의 군상들을 보여준 <매그놀리아>에서 탐은 남성 정력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세일즈맨으로 출연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명곡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박력
있는 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연단으로 등장한 그는 설득력 있는 논리로 구매자들의 환심을 불러일으키는 판매원 역할을 맡았다. 이 배역은 당연히 그가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에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부인에게 이혼 통고를 받지만 외계인의 공격을 받으면서 새삼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분투하는 아버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런 배역은 ‘어린 시절 이혼으로 부친의 정을 갈망해 왔던 그가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그 같은 고통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스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난독증 때문에 그의 학창 시절은 매우 불운했다. 글을 잘 읽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통로가 원천 봉쇄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장애가 왜 나에게 생겼는가? 라는 반발심이 생겼었죠.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러저러하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해결책을 찾는 것은 오직 나 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독법을 익히고 독서 전문 지도자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서서히 이런 신체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한 그는 그라운드에서 성화를 치켜들면서 가장 많은 환대를 받아냈다.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그라운드로 걸어 나와 탐과 반갑게
어깨동무하면서 격려하는 이가 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모친 메리 리
여사였다.


탐 크루즈(Tom Cruise)

수줍은 말더듬이, 살인 미소의 섹시 스타로 인생 역전
1962년 뉴욕 주 시러큐스 태생.

목사 지망생이었던 토마스 크루즈 마포더 4세는 이제 탐
크루즈라는 이름으로 ‘영화사상 최고의 배우 100’리스트에 랭크될 정도로
확고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연기에 관심을 갖으면서 목회자의 꿈을 버렸다. 18살 때 뉴욕으로 건너가 영화판에서 전전한다. 이어 <엔드리스 러브Endless Love, 1981>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여성 관객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해맑은 미소, 깔끔한 외모 등 섹시 가이로 성장할 수 있는 천부적 외모를 갖고 있던 그는 1980년대 들어서 <탑 건Top Gun, 1986>을 필두로 해서 <칼라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 1986> <레인 맨Rain Man, 1988>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 1989> 등의 연속 히트에 힘입어 할리우드 초고액 출연료를 받는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서도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1996>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 1996> 등으로 흥행 지수를 높여 간다. 2006년 5월 전세계 극장가에서 제작과 주연을 겸한 <미션 임파서블 3>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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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조종하되, 내가 남에게 조종받으면 안된다"


손자는 B.C. 4세기 중국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엽 오(吳)나라의 장군이며 유명한 군사전략가이다. 그는 원래 제나라 사람으로서 동향인 오자서(伍子胥)의 추천으로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섬기면서 그의 패업(覇業)에 공헌했던 장군이다.

손자는 전투현장의 일선지휘관으로서 보다 불후의 군사전략 명저,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저서외 그의 사람 됨됨이라든가 활약상을 확실히 전해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손자병법 연구자들이 소개하는 손자의 인물평은 간단하다.


군령이 곧 군의 생명임을 강조

그의 본명은 손무(孫武)로서 제(齊)나라 출신이다. 오나라는 오늘의 소주(蘇州)근처에 도읍을 정했고 제나라는 산동성 근방을 가르킨다. 그는 병법에 통달했는데 오왕 합려가 그의 저서를 통독한후 그를 불러 병법의 몇가지 실제를 물어본다음 그를 군 지휘관으로서 임명했다. 합려가 손무에게 면접삼아 군지휘요령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궁중의 미녀 180명을 차출해 이들을 2개대(隊)로 나눠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손무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하기 위한 도끼를 들고 전원이 알아듣도록 구령을 했다. 그는 북을 치면서 전후좌우 동작을 요구하는 구령을 몇번씩 되풀이했는데도 궁녀들은 킬킬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손무는 이런 동작에 대한 구령을 되풀이했는데도 궁녀들이 계속 말을 듣지않자 왕의 제지를 무시하고 대장 두사람을 훈련장에서 처벌하고 새로이 대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때 손무는 "이부대의 장수는 신(臣)이며 장수가 군을 지휘할때는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는수도 있아옵니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이 훈련에서 군령이 곧 군의 생명이라는 교훈을 깊이 심어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후 궁녀들은 구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기침소리 하나 없이 군사훈련을충성스럽게 해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때 합려는 손무가 빼어난 용병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현장 확인하고 그를 휘하 장군으로 썼다. 오나라는 그후 강국인 초(楚)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晉)나라를 제압했는데 이는 모두 손무의 공으로 이룩된 업적이었다.


최고의 병서로 인정받는 '손자병법'

그후 오나라가 손자의 군사전략으로 강대국으로 비약하자 오왕 합려는 마침내 교만해지고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국정이 날로 문란해졌다. 손자는 이에 실망한나머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흰구름과 들의 학을 벗삼아 여생을 유유자적했다고 한다. 손자병법은 특히 대적(對敵)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중요시 하면서 여러 가지 속임수와 적 내부갈등조장, 적군 동맹국간의 이간질등을 많이 열거하고 있으나 이것은 병법일뿐 그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고고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저서명인 동시 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子)라고 하는 것은 옛날 동양에서는 남자에 대한 미칭(美稱)으로서 고인의 글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창작에 의해 일가를 이루면 그 글을 ‘자서(子書)’라고 불렀다. 예컨데 장자(莊子), 노자(老子), 순자(筍子), 한비자(韓非子)등과 같은 것이며 성인(聖人)의 저서는 경서(經書)라고 부른다.

손자는 전략전술을 담은 병서(兵書)인 동시에 국가 및 기업경영과 처세수양(處世修養)을 위한 기본 독본이기도 하다. 근자 우리나라를 비릇해서 일본, 미국, 유럽등지에서 손자병법이 정치, 경제, 외교에 있어서도 하나의 비법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손자병법을 군사전략의 성경(聖經)이라고 칭찬하고 일본인들은 세계 제1의 병서이며 동방병학(兵學)의 비조(鼻祖)로 받들고 있다. 2차대전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승리, 천하통일에 성공한 마오저둥도 정보심리전과 게릴라전을 위해 손자병법에 탐익했고 통일 베트남의 국부(國父)호치민(胡志明)과 베트남 게릴라전의 영웅 보구엔지압장군, 나폴레옹등이 모두 이 손자병법을 활용했다.

6·25때 의용군으로 참전한 중공(中共)군의 전투행태를 봐도 마오저둥을 비릇 중공군 지휘관들이 손자병법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낮에는 쉬고 밤만 되면 인해전술로 북과 징, 꾕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면서 돌진하는 전투행태가 모두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술이다.

손자병법을 이용하는 북한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 이순신장군등이 이 병서의 전략전술을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손자병법의 전략전술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측은 북한이다. 처음에는 김일성, 그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등이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대남적화전략목표 달성을 위해 이 손자병법에 주로 의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손자는 적이 강하고 아군이 약할때 쉬면서 적과 담판하고 적이 약하고 아군이 강할 때 공격하며 몰아부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적이 강할때는 군사력동원보다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극대화해서 적내부에 갈등을 조장하며 분열을 일으키로 적과 적의 동맹국을 이간질해 적내부의 힘을 분산, 무력화 하도록 손자병법은 기술하고 있다.

북한측이 근자에 마침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간, 북미간 마찰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때‘우리민족끼리 통일’구호아래 ‘민족자주’, ‘민족공조’를 날마다 내돌리며 극력 선전하는 것도 손자병법에 따른 우리 내부분열과 갈등조장용이며 한미동맹의 이간질용이다.

북한이 작년 느닷없이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를 통보하고 대규모 미녀군단을 응원단으로 파견하고 인공기가 한국텔레비전을 통해 전국방방곡곡에 방영되도록 한것도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북한을 미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남정보심리전인 것이다.

미국도 육군사관학교 교과목으로 손자병법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금 이라크전쟁 준비과정에서 사담 후세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대 이라크 정보심리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미국 정부 최고위당국의 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무장해제 요구와 이라크 주변지역에 대한 미군병력과 항공모함파견, 부시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도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파월 국무장관등의 일일발언등이 모두 후세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대 이라크 입체 정보심리전의 하나다. 최근 후세인의 망명설이 잇따라 흘러나오는 것도 미국이 손자의 최상책인 부전승(不戰勝)을 거두려는 전략전술에 다름 아니다.

손자병법은 전부 13편 2만5천자로 돼 있다. 중국에 여러 가지 병법저서가 있지만 첨단과학이 발달된 오늘까지 여전히 실용성있는 이론적 병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손자병법은 전쟁계획과 전투방법을 기술한 가장 오래된 명저이기도 하다. 손자는 극히 단순명쾌한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럼에도 몇천년 전쟁사에서 교전국들은 이런 단순한 기본병법 원리조차 번번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다.

그 전략전술 이론의 두가지 교리는 어떤 침공도 격퇴할 수 있도록 적합한 방위태세를 갖출것과 적을 패망시킬수 있는 전략전술을 개발, 준비하라는 것이다. 적을 패배시키고 승리하는 방법 즉 전략전술은 쉽지않다.

손자는 적을 이기는 전략전술은 적과 실제 전투를 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손자는 무력사용은 최하책이며 무력은 오직 최후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정보심리전과 간첩활용을 통해 무혈 부전승을 거두도록 충고하고 있다.

손자는 능숙한 전략가들은 적과 교전하지 않고 적의 항복을 받아내고 적국의 도시들을 포위하지 않고 점령하며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국을 전복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이 모두가 손자병법 13편 간용(間用)편에서 강조하는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뜻이다.

손자는 간첩전과 정보심리전을 위해서는 천문학적 경비가 들어도 반드시 지출해야 한다고 말할정도로 이 전법의 긴요성을 역설했다. 북한의 최근 대남행태에 비춰, 그들의 전략전술도 핵(核)협박 벼랑끝전술에다 정보심리전과 흑색선전, 간첩전을 배합, 부전승을 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손자는 무력을 사용하기전 먼저 반드시 딴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적국내에서 흑색소문을 광범하게 퍼뜨리고 뒤흔들어 혼란에 빠뜨리며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또 적국의 고위관료들을 될 수있는대로 많이 매수해서 자기편으로 포섭함으로써 평소 적내부를 손바닥 들여보듯 훤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월맹의 보구엔지압도 이런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구사,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즉, 70년대초 사이공 독립궁에서 고위전략회의가 끝난직후 회의내용 전부가 곧바로 하노이 수뇌부에 전달돼 월맹군은 월남군의 뒷통수를 망치로 치듯 역공을 하곤했다.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의 중요성이 여기서도 극명하게 실증되었다.

요컨데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고 승산 없는 전쟁은 절대 않는다고 했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모공편· 謀攻篇). 손자는 전쟁을 할 때에는 " 남을 조종하되 내가 남에게 조종받으면 안된다(치인이불치여인·致人而不致於人-虛實篇)"고 했다. 즉 주도권을 잡지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상대방 병력을 분산시켜 수세에 몰아넣은 다음 실(實)한 것을 피하고 허(虛)한 것을 공격하는 전략전술을 권고했다.

또 적의 무방비한 곳을 공격하고 적이 미쳐 대처하지 못한 곳을 노리라고 했다.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것이다. 96년 98년 두차례 북한의 동해 무장 잠수함침투와 작년 서해교전등도 바로 이런류의 속임수 전술이다. 그는 궤도편(詭道篇)에서 전쟁은 속임수라고 했다. 즉 위장평화나 지키지 않을 허위협정과 합의로 상대 적군을 방심케 해놓고 기습공격, 적을 제압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속전속결로 하고 지구전은 어리석은 우책(愚策)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이 모두 손자병법의 이런 속임수와 속전속결로 짜여있다.

손자병법이 나온지 2,4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속에 담긴 국가경영 및 처세술등 기본적 도(道)와 전략전술은 핵과 미사일등 첨단무기가 최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녹슬지 않고 유효한 전략전술로 살아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무턱대고 많이 축적하고 비싼 첨단 무기만 사잰다고 적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손자병법을 배우고 익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때다. 핵심은 전체 국민들의 민감하고도 철처한 안보국방의식과 정부의 빈틈없는 경계와 방위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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