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누구에게나 그런 잠수복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엘르 편집장으로 잘 나가던 그에게 뇌졸증이라는 잠수복을 입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운명의 신.  

" 나는 이 책을 나의 두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이 책을 쓸 수 있게 한 원천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습니다." 눈을 20만번이상 깜빡거리며 만든 이 필생의 역작. 나는 한 인간의 처절하고 치열한 삶의 철학과 인간의 무한한 감동을 배울 수 잇었다.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온몸중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곤 두 눈 이지만 그 한쪽 눈마져도 감긴채 이 써내려간 이 감동의 책을 나는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말이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투로 한 순간도 보내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을 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왕국 제1부 - 비밀의 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칠지도와 광개토대왕능비와 관련된 5권의 책이다. 관심있어 언젠가부터 읽으려고 뒤늦게 읽었는데 역시 어려운 책이다. 전작 "길없는 길"이나 "상도"등 전개가 흥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의 역사와 신궁,칠지도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렇게 자료수집을 한다는 게 보통 정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생하신 최인호 작가님께 감사드리고 2권은 천천히 읽어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출판사의 사장님은 “왜 우리가 회사라는 조직을 굳이 만들어 함께 일하는지” 그 본질을 여러번 술자리에서 털어놓곤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흘려듣다가 조금씩 그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때 들었던 그 이야기는 지금 내 삶에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그 분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회사라는 조직도 우선 모인 사람의 밥그릇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밥그릇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는 어떤 가치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우선 먼저 밥그릇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자기 몫의 밥그릇은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회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회사원 모두가 자기 몫 이상의 밥그릇을 위해 노력할 때 회사라는 조직은 밥그릇 이상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며칠 전에 우리 직원 몇 명과 함께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선생님은 여러 가지 삶에 유익한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구본형 선생님도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먼저 밥을 위해 산다. 그러나 인간이란 삶은 밥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밥, 그리고 내가 왜 지금 살고 있는지 내 삶의 존재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마음 속에 울림이 컸다. 그리고 구본형 선생님 얼굴 위에 내가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장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가슴을 뭉쿨하게 했다.
 
봄이다. 벌써 봄이 어깨 잔등을 넘어간다. 그러나 마음은 여기저기 흩어지는 꽃처럼 산란하다. 그래서 칼럼도 잘 써지지 않는다. 리더로서 가지는 고독과 외로움, 두려움은 언제나 계속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그것들을 사랑하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왜 나는 책을 만드는가?”
“나란 생명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팔로우가 해서는 안 되는 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리더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책임을 지고 있는 조직에 있어 놀라게 된다는 것은 창피를 당하는 것이며 보통은 공개적으로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다. 그 놀라움이 부정적인 내용일 때만이 아니라 매우 즐거운 것일 때도 마찬가지다. 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는 자신의 리더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그 위치에 올라온 것은 그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과소평가 받고 있음을 알게 된 리더는 당신을 매우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며, 리더에게 돌린 부족함은 곧 당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를 과대평가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리더로 하여금 아첨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386BIZ REVIEW followership 중에서
 

조직에서 가장 핵심을 차지하는 관계는 리더와 팔로우(따르는 사람)의 관계이다. 리더와 팔로우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부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등 성인들이 보여준 스승과 제자의 관계일 것이다. 그들은 상호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했고 평생 신뢰를 쌓아갔다. 리더와 팔로우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신뢰다. 그것도 상호신뢰다. 어느 한쪽의 전폭적인 신뢰는 결국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신뢰는 상호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리더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거나 직원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냉소적으로 보인다면 리더와 팔로우는 다음과 같이 각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한다.
 
'나는 리더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나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가?'
 
리더는 왜 존재하는가? 조직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은 왜 존재하는가? 사람이 존재하고 그 조직이 이루려는 목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팔로우가 있기 때문이다. 팔로우가 없으면 리더도 필요 없다. 그런 대표적인 것이 1인 기업이나 프리랜서라는 직업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더 치열하다. 자기 자신이 리더와 팔로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중에 치열하지 않은 사람이 프로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팔로우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있기 때문에 팔로우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관계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이다. 리더십의 정수는 팔로우를 최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팔로우의 목적도 리더가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리더든, 팔로우든 먼저 자신이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뢰가 없을 때 조직의 미래는 없다. 조직의 운명은 신뢰에서 시작되고 신뢰에서 끝난다. 그래서 신뢰에 관해서는 리더는 절체절명의 책임을 져야한다.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리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리더는 항상 고독하다. 그러나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고귀한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리더의 가치는 빛나는 것이다. 이런 리더가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일은 다음과 같다.
 
"리더가 해서는 안 되는 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하의 약점을 참아내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리더나 부하도 누구나 약점은 있다. 약점보다는 그 사람의 강점을 볼 수 있고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리더다. 두 번째는 부하의 미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리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시간이 남겨져 있다. 그들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할 때 그들은 그 평가만큼 성장한다. 때론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면 부하들의 가슴에 상처가 남고 또 부하들은 리더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최고를 만들 수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인 서정주와 소설가 김동리는 시와 소설에서 각각 양대 산맥을 형성한 평생 문우였다. 젊은 시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화는 문단에서 시와 소설의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된다. 두 사람이 어느 날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해진 김동리가 "어젯밤 잠이 아니 와서 지었다"하면서 자작시 한 편을 낭송했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고 읊자 서정주가 무릎을 탁 치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 내 이제야 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하겠네." 그러자 김동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다 이 사람아. 내는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라고 썼다."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서정주가 술상을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됐네 이 사람아." 
- 시인을 섬기는 사회 칼럼중에서(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책을 만드는 일은 시적 발상과 산문적 발상이 어우러진 종합예술과 같다. 그래서 책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책을 만드는 일에 있어 시적 발상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은 책의 콘셉트, 제목, 목차 구성, 표지글(1234), 디자인이고, 산문적 발상은 책의 콘텐츠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발상이다. 즉 책의 설계도는 대부분 시적 발상으로 완성해야 하며 그 내용은 산문적 발상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적 발상의 핵심은 내가 시적 발상을 진술했을 때 그 진술된 하나의 문장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문장은 대부분 상투적이거나 가짜다. 왜냐하면 나에게조차 말을 걸지 못하는데 누구한테(독자) 말을 걸겠는가? 쓰여진 문장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수백 번의 퇴고가 필요하다. 바로 이 퇴고의 과정이 새로운 느낌과 감정을 찾는 과정이다. 인간이 느낌과 감정은 수백만 가지이다. 거기에 딱 맞는 것을 찾으면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부분에 너무 약한 것 같다. 대충하다가 포기를 한다. 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도 말이다.
 
책의 설계도가 시적발상으로 독자들을 아무리 매혹시킨다 해도 산문적 발상이 요구되어지는 이유는 그 내용적 구성이 그런 매혹을 가져온 인과관계를 충실하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리의 '벙어리도 꼬집히면 운다'는 산문적 발상에서 서정주의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는 시적 발상이 나온 결과처럼 말이다.  만약에 책의 제목을 정한다면 당연히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적 구성은 “벙어리도 꼬집히면 운다. 그리고 벙어리도 꽃이 피면 마음이 아파 울기도 한다.”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가의 설계도를 읽을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집을 보거나 건축물을 보면 누구든지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 집에서 몇 개월 살아보면 그 가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책을 보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독자들도 책이란 완성품을 보면 책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런 완성품은 이미 제목, 디자인, 표지글에서 목차까지 독자들에게 살며시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말을 걸고 있는 제품이 독자들이 본 첫 인상처럼 산문적 발상으로 내용까지 잘 구성되어 있다면 그 책은 독자들에게 오래 사랑받는다. 그 책이 대중적인 책이든 교양적인 책이든 클래식한 책이든 이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책을 보는 계층은 다르지만 책의 완결성과 조화는 누구든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 출발점은 시적 발상을 갖는 것이다. 콘셉트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 제목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표지글(표1234)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목차들이 제각기 살아 말을 걸어올 때까지, 디자인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라! 아마 이백 번 정도 고치면 좋은 것이 한 개 튀어져 나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