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주와 소설가 김동리는 시와 소설에서 각각 양대 산맥을 형성한 평생 문우였다. 젊은 시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화는 문단에서 시와 소설의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된다. 두 사람이 어느 날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해진 김동리가 "어젯밤 잠이 아니 와서 지었다"하면서 자작시 한 편을 낭송했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고 읊자 서정주가 무릎을 탁 치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 내 이제야 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하겠네." 그러자 김동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다 이 사람아. 내는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라고 썼다."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서정주가 술상을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됐네 이 사람아." 
- 시인을 섬기는 사회 칼럼중에서(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책을 만드는 일은 시적 발상과 산문적 발상이 어우러진 종합예술과 같다. 그래서 책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책을 만드는 일에 있어 시적 발상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은 책의 콘셉트, 제목, 목차 구성, 표지글(1234), 디자인이고, 산문적 발상은 책의 콘텐츠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발상이다. 즉 책의 설계도는 대부분 시적 발상으로 완성해야 하며 그 내용은 산문적 발상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적 발상의 핵심은 내가 시적 발상을 진술했을 때 그 진술된 하나의 문장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문장은 대부분 상투적이거나 가짜다. 왜냐하면 나에게조차 말을 걸지 못하는데 누구한테(독자) 말을 걸겠는가? 쓰여진 문장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수백 번의 퇴고가 필요하다. 바로 이 퇴고의 과정이 새로운 느낌과 감정을 찾는 과정이다. 인간이 느낌과 감정은 수백만 가지이다. 거기에 딱 맞는 것을 찾으면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부분에 너무 약한 것 같다. 대충하다가 포기를 한다. 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도 말이다.
 
책의 설계도가 시적발상으로 독자들을 아무리 매혹시킨다 해도 산문적 발상이 요구되어지는 이유는 그 내용적 구성이 그런 매혹을 가져온 인과관계를 충실하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리의 '벙어리도 꼬집히면 운다'는 산문적 발상에서 서정주의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는 시적 발상이 나온 결과처럼 말이다.  만약에 책의 제목을 정한다면 당연히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적 구성은 “벙어리도 꼬집히면 운다. 그리고 벙어리도 꽃이 피면 마음이 아파 울기도 한다.”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가의 설계도를 읽을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집을 보거나 건축물을 보면 누구든지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 집에서 몇 개월 살아보면 그 가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책을 보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독자들도 책이란 완성품을 보면 책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런 완성품은 이미 제목, 디자인, 표지글에서 목차까지 독자들에게 살며시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말을 걸고 있는 제품이 독자들이 본 첫 인상처럼 산문적 발상으로 내용까지 잘 구성되어 있다면 그 책은 독자들에게 오래 사랑받는다. 그 책이 대중적인 책이든 교양적인 책이든 클래식한 책이든 이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책을 보는 계층은 다르지만 책의 완결성과 조화는 누구든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 출발점은 시적 발상을 갖는 것이다. 콘셉트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 제목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표지글(표1234)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목차들이 제각기 살아 말을 걸어올 때까지, 디자인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라! 아마 이백 번 정도 고치면 좋은 것이 한 개 튀어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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