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밀린 숙제가 꿈에서까지 찾아와 나를 괴롭히진 않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라고, 도무지 마음에도 없었던 소리를 내뱉게 되는 것이 북플앱을 깔고부터의 일이다. 지남철에 이끌린 손가락은 또 하나의 지남철이 된다.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 엿가락이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고 늘어지는 나날을 연명하고 있다. 뭐 좋다. 오늘은 12시가 되기전에 반드시 취침하고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 곧 11시가 되었을 때 단호하게 떨치고 나가야 한다. 이 모든 어수선함을 말끔히 정리하고 곧바로 책을 집어드는 것. 그건 명백히 하나의 행위에 다름 아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 취침전 점호. 가장 효과적인 절차상 의례.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한 권의 책이 어느 러시아 작가이자 연극배우(?)인 무슨무슨스키의 <배우수업>인데 매력적인 목차는 확인했고 이제 남은 건 미리보기 뷰어창으로 몇쪽을 읽어보자는 것이다. 아마 금방 졸음이 쏟아질 것이다.
하루만에 그러니까 아주 순식간에 다시 말하면 아주 창졸지간에 물이 들었다. 베란다 앞 도로에 서있는 느티나무가 노랗게 아니 이건 단순히 그냥 노랗다고만 할 수 없는 오묘한 색이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어둑어둑한 거실이 어딘가 환한 느낌이 들어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이렇게 호랑이한테 쫓기는 와중인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메모를 남기고야 마는 이유가 되겠다.
에이스 벤츄라, 에일리언, 베트맨,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등의 영화에도 이 곡이 쓰였다고도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 하겠다. 몇 개의 매듭으로 묶여져 있고 그 매듭을 툭 건드리면 스르륵 풀어지면서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방식. 메인 멜로디가 저마다 독자적으로 의미를 다하면서 제 갈길을 가는데 지루할 틈을 안준다. 상승과 하강. 가파르게 질주하다가 완만하게 숨을 고르다가 다시 휙 돌아앉으며 나 잡아보라고 한다. 이게 아닌가 의심하는 순간, 어느새 자신 없으면 없는대로 아님 말고식으로 도망치는 고삐풀린 연인을 붙잡아 세우기란 쉽지 않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하더니 다시 끊어지는 형식의 반복 속에 어느덧 인생은 끝이 난다. 지휘자는 박수소리에 몸 둘바를 모르는 것처럼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허리를 숙이지만 다른 연주자들의 검은 복사뼈에 입맞춤 하는 방법은 모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5월에 딴 개복숭아 엑기스를 시음 중이라 달달하고 따뜻하긴 한데 배송비 3만원의 위력을 자랑하는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은 상태라 비가 좀더 내려주기를 내 심장을 쐬라를 집어든 순간 다른 일은 다 집어치우고 다리 꼬고 정자세로 앉아 스모키라든가 래드제플린이라는 풍성한 곱슬을 스프링처럼 눕히고 시간이 기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를
아 오늘 같은 날 왁스의 노래, 화장을 고치고도 좋지만 슬픈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을 듣게 된다면, 아마 많이들 신청해서 여기저기 라디오 같은데서 한두번은 틀어줄 것 같으니 그렇게 어쩌다 우연으로, 그러나 더 완벽한 우연이 작동되는 거리의 스피커에서 듣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한편의 영화나 뮤비 그 이상의 감동으로, 두고두고 잊지못할 한 개인의 평생의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헥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