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았다.


다음은 에밀리 블란트와 컨디션의 대화.


야, 너, 거기, 잠시만.

왜.. 왜..?


날 언제까지 이렇게 둘래?

뭐를?


다 알아. 너 나 쳐다볼 때마다 기분 나빠하는 거.

아...


어제는 놀랬지? 내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네 마네 하는 영화에 나왔다는 거 알았을 때.

어, 좀 놀랬지. 그 코 풀던 맹한 여비서.


놀랄 만도 해. 그때 난 20대 초반의 신참이었고 주연으로 성장하기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인 거 인정.

그래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내가 드디어 정점을 찍기까지 어떤 세상을 통과해 왔는지 넌 모를 거야.

어, 완전히 모르진 않지. 음, 이를테면.. 성형?


.....(설마 동그랗게 눈을 치뜨고 양손 올리면서 으쓱 어깨짓을? 제발 좀 하지마..)

그렇구나..그럴 거야.


좋을대로 생각하셔. 성형은 배우에게 기본이야. 그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 그걸 봐야 해.

그렇구만.. 뭐 그렇겠지.


그나저나 내 사진 언제까지 걸어둘 거야?

생각 중이야. 교체 타이밍 자꾸 놓치는데 나도 참 이해가 안돼.


왜 그래? 혹시 나 말고 마땅한 게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럼 왜 그러는데. 니 말마따나 세상에 여배우가 쎄고 쎘다면서 왜 그러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


아, 몰라몰라. 나 갈래.

간다고?


너처럼 밍기적거리는 인간 딱 질색이야.

응, 잘가.



에밀리 블란트는 휙 나가버리고 컨디션 혼자 남는다. 컨디션의 얼굴에 슬몃 미소가 번진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기분좋은 미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인생 곡선이 지금 어느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싶은 요즘, 아마도 이건 분명해 보인다. 수준급의 스트레스가 압도적 스케일로 점점 몸을 불려가는 와중에도 이렇게 조용히 엎드려 잠복해 있을 수 있다는 것. 바야흐로 독서에 집중하기 좋은 계절인가. 그러하다. 매우 그러하다. 겨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겨울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의 몸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독서는 결코 내 인생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아니 더 똑바로 말한다면, 돌파구 자체가 없다. 비상계단 정도는 있으려나 하지만 애초의 설계도를 보면 그런 건 있지도 않았다. 꼼짝없이 갇힌 것이다. 눈발이 날리고 있다. 아니 있었다. 눈발이 조금 나부끼길래 읽던 책을 덮었고 잡스런 상념이 흐르는 동안에 다시 밖을 내다 보니 희끗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잠시 독서를 방해 받았고 잠깐의 선물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걸 보았다. 이제 책을 읽어야겠다. 조용히 엎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바친다. 당장 죽는다 해도 억울해 할 이유를 잠시 잊게 만드는, 여실한 감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눈길을 따라 두 사람이 걸었고 간간이 말이 오갔다. 바람은 잔잔했고 손도 시렵지 않았다. 눈이 잘 안뭉쳐지는 눈이네. 그러게요. 가루만 차갑게 날려요. 대출을 위해 반납이 필요한 것인지 반납을 하고 보니 대출이 따라 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반납과 대출, 대출과 반납 사이, 해명도 안되고 규정지을 수도 없는 것들의 애매함을 떠올리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갑작스런 눈덩이가 날아들었다. 나한테 왜 이래? 그러는 당신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눈물을 글썽이며 따질 만도 한데 잠자코 눈길을 걸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01-21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긴 눈이 조금 더 많이 내려요.
컨디션님 주말 잘 보내세요.

컨디션 2017-01-21 17:34   좋아요 2 | URL
엇, 동시에 댓글들을 쓰고 있었네요.ㅎ
여긴 눈이 그쳤어요. 낮엔 심지어 쌓인 눈도 녹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서니데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컨디션 2017-01-21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난잡한 페이퍼를 그냥 두지 않았을 텐데 이젠 뭐 그러려니 한다. 내 일 아니라는 듯이.
대출도서를 이렇게 떡 올리고 나니 불길한 예감이 바짝 쫓아 붙는다. 도지는구나. 또 지병이 도지는구나. 2권은 너무 부담스런 두께(질적으로도)이고, 나머지 3권은 만만하긴 한데,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책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내가.

2017-01-21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31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1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뷰가 뭐라고. 이제 이말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 무르익었나? 개뿔이나. 하지만 난 좀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리뷰에 함몰되지 말자 다짐했건만, 모처럼 고인 이슬처럼 영롱한 이 헛된 다짐도 역시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주둥이는 파국을 맞도록 되어있다. 덧붙이고 덧붙이다가 인생 끝난다. 덕지덕지 내 마음에 창호지를 바르고 나면 그 안온한 방구석에 꼬마인형처럼은 아니고 꿰매다만 입술이 있겠지. 리뷰는 이래서 문제다. 책을 읽자고 덤벼든 리뷰가 책을 잡아먹는다. 나도 끌려가 같이 잡아 먹힌다. 표현이 과하지만 이대로 둔다. 냅둬야 반성을 한다. 길거리에 발가벗겨 내쫓기는 그 악몽만 악몽이 아니다. 표현이 과하다. 냅둬라, 표현. 갈 때까지 가다가 죽거나 말거나 하겠지. 


다시 돌아와 리뷰가 뭐라고, 망가진 거울을 보듯 나를 본다. 살만한 나날인가, 요즘? 끄덕이고 싶다. 긍정에 긍정을 다하여 이 한 몸 내달리고 싶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그곳의 밀림을 달리다 찢긴 발가락을 주무른다. 좀처럼 각질은 낫질 않는다. 새로운 각질은 날로날로 성장한다. 그만두라고 외치지만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난 발가락을 주무르며 리뷰 생각에 몸을 떤다. 변태 아줌마가 여기 있다. 아 재수없구만요, 이 맛에 나는 산다. 이 말에 힘을 얻는다. 다시 달려갈 힘. 사방이 가시이고 가식이고 간에 변태 아줌마만 믿고 달려간다. 흐흐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올해는 페이퍼를 의도적으로 멀리할 생각이다. 그동안 사생활 노출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기분 좋으면 기분 좋다고 말하고,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났다고 말하고, 남편이 예를 들어 나를 뿅가게 했다고 치면 그걸 또 소상히 일러(?)바치는 식으로 말하고, 이런 식의 말하기를 무던히도 했더니 이젠 나도 지친다. 그래서 앞으로는 당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닌 이상, 예를 들어 아이들의 전교 1등 소식이라든가, 학교에서 오줌이 급해 교복에 오줌을 지렸다든가, 하는 대단한 이슈가 아니고는 당최, 말을 않기로 한다. 굳은 결심이다. 뭐 일부 알라디너께옵선 이런 마음부터 들거다. 작심삼일을 아주 대놓고 하시는군요. 그 입방정 좀 그만하시죠. 말이 말이면 말인줄 아시오. (아니) 아시오? 컨디션의 이 결심인지 뭔지가 먼지처럼 풀풀 물거품처럼 푱푱 사라질 거라는 데 10원 겁니다. 100원도 아까워요. 


그렇습니다. 그러합니다. 일단 저부터 제 말을 못믿어요.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내일 아침 영하 16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은 간담이 서늘하네요. 내일은 제가 새벽에 일어나기로 한 날이거든요.

왜냐면, 그 이른 시간을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며칠 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겨울 새벽의 공기는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딛고 선 이 땅의 기운이 시궁창 냄새일망정 난 한번도 그 실체와 마주한 적이 없으니 이거 참 부끄러운 일 아니더냐. 자의식 따위 집어치우라고 했을 때조차 집어치울 자의식이라도 있는지 물었어야 했다. 그걸 놓쳤더니 그 시간을 물 쓰듯 흘려보냈더니 이 모양 이 꼴인 거라고.(또 시작이구나)


아무튼, 페이퍼를 자제하고 당분간 리뷰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러자면 일단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속도감 있게 읽으려면 책읽는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아니 습관이기 이전에 능력의 문제겠구나. 천성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여기에 또 있구나. 방법은 쉬운 책 위주로 하는 수밖에. 질을 떠나 양으로 가는 쪽이 나에겐 최선의 처방인 것 같다. 무엇보다 리뷰에 함몰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고 리뷰가 아니면 입을 닫겠다는 각오로 임하자. 하고 싶은 딴 얘기가 생겨서 입이 근질거리면 노트에 적도록 하자. 이제 나의 서재는 리뷰에 죽을둥 살둥 하면서 또 연명을 시작해 나갈 것이다. 그게 언제까지가 될 지, 그 유효기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1-14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7-01-14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리뷰로 만나면 되겠군요?
기다리겠습니다.
대신 책 많이 읽으셔요^^
저처럼 만화책으로다가!!!
요즘 만화책이 좋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얼른 전교 1등을 했음 좋겠어요ㅋㅋ

춥긴 추운가봐요?
금방 일어났는데 밖이 뭔가 좀 심상치 않아요?
그곳의 새벽공기는 어떠한가요?

컨디션 2017-01-14 16:54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럼요, 그렇구말구요~~~
그동안 알라딘 취지(?)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며 난리굿을 떨었다는 생각이 어제, 아니 얼마전부터 물밀듯이 몰려오더라구요. 무엇보다 점점 딸리는 독서력에 대한 저의 비관이 이젠 바닥을 치고 보니 저 자신에게도 좀 짜증과 넌더리가 나더군요.
만화책 추천, 달게(?) 받아들이긴 하겠습니다만.. 예전에 최규석의 송곳을 읽었는데,(장장 며칠이 걸렸어요) 리뷰를 못쓰겠는 거예요. 만화책도 만화책 나름이구나, 그때 느꼈죠.ㅠㅠ
아이들 전교 1등은, 음, 제가 한 헛소리 중에 가장 재미없는 거리서..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ㅋㅋㅋ

오늘 새벽에 못일어나서, 새벽공기가 어땠는지는, 지금 감지도 않은 머리만 긁적이고 있으니, 책읽는나무님의 저 낭랑하고 초롱한 목소리에 응답을 할 수 없답니다. 흑.

yureka01 2017-01-14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든 페이퍼든 부담스럽지 않아야죠...그럼요..누가 강요하거나 이걸 밥벌이로 하면 얼마나 고약한 일이겠습니까요. 다 알라신의 뜻대로.^^.

컨디션 2017-01-14 16:59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다 알라신의 뜻이 이끄는대로 가렵니다.^^
유레카님의 좔좔 흐르는 시냇물 같은 글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밥벌이로부터 자유로운 호방한 쾌남처럼 제가 될 순 없지만, 자유롭고 호방하게 살고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않나, 뭐 그렇습니다.ㅎㅎ

pek0501 2017-01-1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만약 이곳 알라딘 서재가 사적인 글을 쓰는 페이퍼가 없고 책 리뷰만 있다면 저에겐 매력없는 곳이에요.
사람 사는 얘기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시시해보일 글일지라도 말이죠
저는 그런 글을 읽는 게 흥미롭습니다. 책 리뷰보다 더요.
우리 자신 자체가 시시한 존재들이 아니던가요?
ㅡ페크 드림
(폰으로 쓰느라 로그인 생략함)

컨디션 2017-01-14 17:06   좋아요 0 | URL
오, 페크님. 안녕하시죠? ^^
저도 그래요. 사적인 글을 쓰는 페이퍼를 저도 훨씬 재밌어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읽을만한 가치도 충분히 느끼구요. 한번도 시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구요. 있다면 오히려, 리뷰 쪽인데, 책을 너무 많이 인용하는데 그친다거나, 무미건조한 책정보나 소개 위주로만 해서, 자신의 신분(?)에 대해 철저히 노출을 꺼린듯한 리뷰는 정말 읽고싶지도 않죠. 우리 모두 시시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페크님처럼 의미를 뽑아내고 다른 분들에게 감동도 전하시는 분들을 누가 시시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7-01-15 00:03   좋아요 0 | URL
호호~~
저도 답글 감사드립니다.

hnine 2017-01-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개 정 많고 감정 풍부하고 마음 따뜻한 분들이 종종 이런 결심을 하시는 것 같아요 ^^
웬만한 건 일기장에 쓰자고 일기장을 마련해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일기장에 잘 안쓰게 되더라고요. 하루에 몇번씩 일기장을 펼치던 때는 이제 지났나보다,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컨디션 2017-01-15 14:42   좋아요 1 | URL
어, 이거 제가 정많고 감정풍부하고 따뜻한 사람에 속하는 건가요? ^^
hnine님도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시는, 아니 이미 하셨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실듯요. 정말이지 일기장이란 게 참, 그 위력(?)이 그런 건가 싶어요.ㅠㅠ 저는 이제 시작하는 마음이니 한번 시도는 해보려구요.^^

2017-01-16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8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9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