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시작했다. 다니는 gym membership에 포함되어 있는 이런 저런 class 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요가는 일주일에 새벽 6시가 3번, 오전 10:30이 3번 (2번은 주말)이라서 한 주에 대충 3번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간 weight training과 running/spin을 계속 해왔는데, 뭔가 부족한 것도 있고, 좀더 다른 형태로 힘을 쓰는 운동을 하고 싶기도 했고, 또 반생을 살아오면서 생긴 몸의 여러 가지 imbalance도 고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혹하게 하는 건 시력강화인데, 기공이나 요가를 오래 한 사람들 중에서 시력이나 장기강화에 큰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접한 기억이 있다. 아무튼 새벽에 일찍 일어나 gym에 가서 잠깐 spin을 해서 몸을 덥히고 한 시간동안 요가를 한 것이 오늘 아침이다. 기분도 상쾌했고 전에 느껴보지 못한 다른 밝은 안정감으로 충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물론 사무실에 들어와서 요즘 정부방침으로 인해 케이스에 발생하는 일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탈탈 털린 기분이지만, 그래도 계획했던 몇 가지 업무처리에 진전이 있었기에 월요일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모든 건 트럼프 때문이다. 이명박을 뽑았던 한국인들의 실수를 그대로 50배 정도 튀겨낸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인데, 무식하면 답이 없다고 부자가 아닌 비교적 가난한 축에 속하는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트럼프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꽤 많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배우고 또 배우고 성찰하고 생각하고, 이걸 멈춘다면 '민중은 개돼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양'으로 상징되는 것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랬던 한 우익루저가 만주로 간다. 거기서 어떤 경로였는지 모르지만 양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고 이후 그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2차대전 말기의 혼란속에서도 한밑천을 두둑히 챙겨 일본으로 돌아왔고 그 자금과 GHQ의 비호하에 전후 일본의 흑막으로 군림한다.
전쟁이 끝난지도 어언 20년이 넘은 "현재". 이 흑막의 인사는 죽어가는데, 그건 양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믿어지고 있다). 광고업을 하는 화자는 어떤 이유였는지 그에게 선택되어 '양'을 다시 찾아와야 하는 임무를 맡고 홋카이도로 떠난다.
결론적으로 '양'은 '쥐'에게 들어왔고, 이를 거부할 수 없었던 '쥐'라는 화자의 친구는 '양'을 속에 품은채 세상을 등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양'을 봉인해버린다.
'양'은 무엇일까. 그건 야심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인가 생명은 근원에 기생하면서 생명을 갉아먹어가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이윽고 숙주의 끝이 다가올 무렵에는 새로운 숙주로, 아니 새로운 시대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런 메타포를 생각면 이런 저런 추론이 가능해지는데, '쥐'가 죽은 건 결국 나름 순수했던 한 시절을 그대로 지켜내는, 욕망이나 세속적인 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라진 젊은 세대의 일부의 상징이 아닐까? 두 번재 읽었고 뭔가 잡힐 듯 말듯, 보이는 건지 아닌지...
레마르크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특정사건을 피해자의 시선에서 보기도 하고, 가해자의 관점으로 보는 묘사가 아닌가 싶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를 비롯한 일단의 작품들은 유대인이나 반체제 refugee가 주인공이지만, 다양한 작품에서 그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 선 사람의 눈으로 사건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그런 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나 아렌트가 훗날 목격하고 정립시간 '악의 평범성'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친구, 주인공은 결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급우출신의 SS대원이 베푸는 끝없는 호의와 함께 'it is what it is'라는 투로 체제하에서 벌어진, 그리고 SS가 벌인 잔인한 일들을 퉁쳐버리는 사고, 하지만 주인공만큼은 도우려 하는 그의 친절함, 그와 함께 자기를 퇴학시킨 선생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버린 잔혹함 등 여러 면이 이 '평범한' 사람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개선문'을 다시 읽고, 이후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다시 보면 어떨까 싶다.
오크와 판타지세계의 다른 괴물들과 인간, 엘프, 노옴의 대결구도가 아닌 판타지는 처음 보는 것 같다. 하나의 세계관에서 마치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불미스러운 일로 검술사범자리에서 퇴직당한 후 변방의 deputy sheriff로 살고 있는 주인공, 그의 보스인 보안관은 무려 오크. 가장 친한 친구는 werewolf인데 평소에는 은팔찌를 차는 것으로 그 변신과 살상욕구를 마법적으로 봉인하고 있다. 소소한 에피소드도 있고, 마법이야기도 나오고, 한국판타지의 시작을 알렸던 이영도의 작품인데, 서구작품들의 모사에 가까웠던 초기작들보다 훨씬 다 자주적으고 주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판타지의 명작들은 더 모아보고 싶은데 워낙 절판된 것들도 많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 꽤 걸작으로 꼽은 '하얀 로냐프강'도 그래서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보다도 훨씬 먼 존재로 남아 있다. 간만에 다른 세상에서 놀다 올 수 있었다. 그것도 식상함이 전혀 없는 처음 본 세계에서 말이다.
월요일부터 시달린 탓에 수요일인 오늘 몸으로 느껴지는 데미지는 목요일 오후의 그것과도 같다. 내일은 진짜 목요일이니, 오후가 되면 술생각이 간절해질 것 같다. 요가를 생각하면서 참아내야지. 열심히 하면 좋은 운동루틴이 더해지는 것이다. Yoga Fire~~하고 불이라도 토해낼 수 있게 되면 진짜 즐거울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