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단은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니 뭔가 조금씩 진행을 하게 된다. 바깥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기는 한데 요즘같은 분위기에서는 계속 늘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차피 빌딩이 텅텅 빈 상태라서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사실상 격리상태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넉넉하게 마음을 먹고 천천히 하나씩 일을 하면서 적당히 게으름을 부리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온다. 


나와서 있는 덕분에 짧으면 2주, 길어지면 3주,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지금의 Shelter-in-Place 중에도 원래의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화요일 새벽 12시부터 효력이 발생했던 이 시행령 때문에 부랴부랴 월요일에는 gym으로 가서 달리기를 했고 화요일 하루, 잠깐 사무실에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갔었는데, 결론적으로 생활이 자꾸 엉망이 되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어제부터는 9-5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냥 이대로 매일 사무실에 나와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다른 책이 최근에 나온 것 같은데 아직 주문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듯한 선생의 신간. 한국의 현대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깔끔하고 과감하게 잘 정리했다고 본다. 덕분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흥미도 덩달아 다시 갖게 되었는데, 이병주, 이청준 작가의 전집은 그 무시무시한 양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얼른 주문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비평적인 읽기에 아주 약한 내 관점으로 보면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세밀한 시대적인 분석이 눈에 쏙 들어온다.  언급된 배경을 보건데, 단순히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지점을 넘어서 작품이 쓰여진 시기, 연대, 당시의 시대상, 주요사건, 여기에 작가 개인의 배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분석이 있어야 이런 정도의 비평적인 읽기가 가능한 것 같다.  이문열에 대한 평가는 특히 냉정한데 그가 성공한 지점이 결국 그가 망한(?) 지점으로 보여 흥미롭다.  비단 그 뿐이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그들을 흥하게 한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기 보다는 다른 길로 빠진 탓에 연재소설로 탄생한 여러 권수를 자랑하는 소설시리즈가 아닌 깔끔한 장편으로의 도약이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국문학의 한계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갖고 있던 부분이라서 더욱 많이 공감했다.  즉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장편소설을 쓴 작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단편에서 중편에 머무는 것이 한국문학의 모습인데, 활자가 두 배로 커지고 단락의 간격이 넓어진 덕분에 예전의 단편분량이면 지금은 중편 혹은 그 이상이 나오기 때문에 기실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해도 그 양을 보면 중편 이상은 나오지 못하는 것이 한국문단이 가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본소설에서 전전에서 전후세대를 묘사할 때 종종 보는 불편함은 그들이 주장하는 '남자다움'이나 '정정당당히 싸웠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는 그야말로 반성도 후회도 없이 미화된 과거로의 회상만 남은 그들의 전후인식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은 상당히 괜찮은데 유독 이런 면이 눈에 거슬린다.  앞으로 일어난, 정확히는 이미 다른 작품의 prequel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설정된 할아범이 딱 그런 모양새다. 그런 면을 빼고 생각하면 소설의 재미는 괜찮다.  안락의자탐정을 그대로 차용한 휠체어탐정에 가까운 할아범이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는 마지막으로 가면 미사키 요스케 선생의 등장으로 단숨에 RPM이 올라가면서 끝을 맺는다.  사회파의 형식으로,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나름 어느 한 시절 일본의 사회문제를 보여준다.















초한지를 스팀펑크의 세계관으로 가져온 듯한 이야기. 켄 리우의 스토리텔링도 훌륭하고 비록 고전을 차용한 것이지만 적절한 부분에서 twist를 주는 실력도 좋다.  읽으면서 금방 초한지를 모티브로 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약간 자랑하자면 역자의 글에서 읽은 바, 역자가 알아차린 부분부다 훨씬 전이다 (데헷~~).  내가 초한지를 처음 읽은 것은 정비석선생의 소설초한지를 통해서였는데 1985/1986년 정도에 구한 것으로 기억하는 예전의 책을 아직도 갖고 있다. 전에 한번 말했지만 이때 고려원의 소설책 한 권이 대략 1500원 정도였으니 지금은 딱 열 배가 오른 것 같다.  우리가 버는 건 열 배가 오른 것 같지 않고 부동산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올랐으니 사람들이 사는 것이 팍팍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실 초한지의 주요 부분인 초한쟁패는 오히려 식상하다면 식상한 평이한 영웅담이다. 그러나 한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후의 이야기는 대략 유방의 치세, 공신제거, 이후 여태후의 전횡으로 비교적 간략하게 묘사되는 바, 이 지점에 켄 리우가 노린 창작의 한 수가 들어있을 것 같다.  어떻게 펼쳐질지, 척비와는 달리 척비를 차용한 인물은 조금 더 센 수를 보여줄 수 있을지, 허무하게 당한 한신보다는 한신을 차용해 만든 명장은 다른 길을 택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하다. 


이 두 권은 빌려온 것으로 둘 다 잘 읽었다. '클래식 오디세이'의 경우 QR코드가 첨부되어 다뤄지는 음악을 바로 찾아볼 수 있게 한 점이 괜찮았고, '나는 언제나 옳다'는 작가에게 새삼 흥미를 갖고 갑자기 여러 권의 책을 주문하게 했으니 책의 숲에 일단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계속 숲속을 헤매이다 말다를 반복할 뿐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물론 다른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그 끝없음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책속에 과연 길이 있기는 한건지 문득 의문이 든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아주 빠르게 그렇게 읽어갈 뿐이다. 은퇴하면 읽겠다고 책을 모아드리는 건 안 그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어리석게 생각된다. 지금 읽지 않던 걸, 은퇴하면 읽으리라는 보장이 없이 때문이고 독서란 일종의 acquired taste인 면이 있어서 입문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은퇴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프로젝트는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의 시간을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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