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슨 살인사건 밀리언셀러 클럽 17
S. S. 반 다인 지음, 김재윤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고전 추리소설의 탐정들은 원래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인종들이다. 먹다 남긴 호빵처럼 생긴 주제에 자신의 우아함과 자신의 회색의 뇌세포의 뛰어남을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하는 포와로,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듯 타인의 시시콜콜한 흔적들을 염탐하여 별 쓸데없어 보이는 '내 말이 맞지?'놀이를 하는 홈즈, 자신의 뛰어남을 널리 알리고자 탈옥 내기까지 거는 도젠 교수... 마치 자랑할 수 있는 능력과 거리낌 없이 자랑이 가능한 얼굴두께가 탐정의 제1요소인 듯, 그들은 하나같이 경찰과 조수 역할을 자청해 주는 친구와 범인들 머리 위에 자신의 전능함을 뽐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뻔뻔한 자화자찬을 찜쪄먹고도 남을 인물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 위대하신 탐정 파일로 밴스다.

어찌나 잘난척이 심하신지, 이 파일로 밴스의 자화자찬을 견뎌낼 수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시리즈의 호오가 나뉠 정도이다. 포와로는 그저 귀엽고, 홈즈는 그냥 신기하고, 도젠은 심심할 뿐이다. 끝없이 미학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며, 아울러 무슨 미술품을 사러 간다 등의 말로 넘치는 부를 자랑까지 하며, 범죄수사에 있어 실무자들을 특유의 장광설로 슬슬 놀려먹는 밴스에 대항할 자는 읽는자를 주화입마에 빠지에 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탐정 노리즈미 정도 밖에는 없다. 허나 노리즈미는 밴스의 '나는 다 아는데~메롱~'스킬까지는 갖추지 못했으니, 과연 밴스야 말로 최강이라 하겠다. 하긴 밴스의 창조자 반 다인이 추리소설을 쓰게된 계기가 '다들 나가 있어! 제대로 된 걸 내 보여주지~'였다니, 밴스의 장광설에 묻어나는 잘난척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법 하다.

그나마 반 다인의 첫 작품이자 밴스의 첫 등장작품인 '벤슨 살인사건'은 그 장광설이 덜한 편이다. 적어도 사건의 핵심을 더욱 흐려놓는 듯한 우주 이치나 무슨 시대 항아리의 아름다움이나 수학적 논리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범인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라 그나마 독자가 따라갈 여지가 있다. 심리수사도 과학수사의 일부가 된(프로파일링같은)지금의 독자로서 밴스의 이야기는 때로 고색창연하고 때로 말도 안 되지만(범죄 기질을 유전학을 빙자한 족보학, 말 할 가치도 없는 두상학, 사기에 가까운 사회학으로 예측하는 것이 그 시대의 최신의 과학적 유행이었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때로는 정곡을 찌르고 있다.

장광설을 빼자면, '벤슨 살인사건'은 사실 추리소설로서 그다지 흥미로운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린 살인사건'이나 잘 알려진 '비숍 살인사건'이 트릭도 잘 짜여진 편이고 반전의 묘미도 더 잘 된 편이다. 벤슨 살인사건은 마치 계속될 파일로 밴스의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서문격인 소설처럼, 사건이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고 파일로 밴스가 특별히 기가막힌 묘안을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덕분에 파일로 밴스의 성격이나, 특히 검사와의 관계가 읽는이에게 다른작품에 비하여 잘 드러나 있으니 일장 일단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솔직히, 읽으면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도 그렇고, 벤슨 살인사건도 그렇고 동 출판사에서 나온 추리소설들 중 기존에 잘 알려져있던  추리소설을 출간한 경우 번역에 차이를 두고 싶어서인지 간혹 익숙치 않은 번역투를 쓰곤 하는데 솔직히 난감할 때가 많다. 탐정의 이름도, 그리고 말투도 읽으면서 솔직히 근질거렸다. 이전의 번역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으나, 이름 같은 경우는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니고 이전의 번역에 큰 오류가 없고 새 번역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말투같은 경우도, 경어체로 표현되었던 밴스의 검사님 '슬슬 긁기'의 느낌이 더 실감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뭐 익숙해지기 나름이라면 할 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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