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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고 놀랍도록 가까운 ㅣ 풀빛 청소년 문학 3
토릴 아이데 지음, 모명숙 옮김 / 풀빛 / 2007년 5월
평점 :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제 옷을 같이 입어도 될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자란 것은 비단 외적인 것만이 아니다. 툭 하면 화내고 어른들은 이해를 못한다는 둥 고지식하다는 둥 사춘기의 전조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것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더 심하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니 앞이 캄캄하다. 과연 잘 넘길 수 있으려나(아이가 아니고 내가)...
한창 사춘기인 주인공의 방황과 두려움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슬아슬한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엄마와 딸의 긴장된 대화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터질 듯 하다가도 끝내 제자리로 대신 조금 앞으로 나간 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책 속의 엄마는 딸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성적이 많이 떨어져도 그저 왜 그랬느냐는 간단한 추궁으로 끝나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끝난다. 이게 바로 문화적 차이겠지. 우리의 청소년기는 오로지 공부공부... 조금 시간이 남아서 친구들끼리 돌아다니면 또 다시 잔소리 비가 쏟아지는 우리의 현실과 참 많이 다르구나를 느꼈다.
문화적 차이를 느낀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글쎄, 아직 내 아이가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중학생이 된다해도 책을 권해주기가 조심스러울 것 같다. 괜히 호기심만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노파심에서 말이다. 평소에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줄 필요가 없고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자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왠지 성에 대한 것만은 자꾸 회피하게 된다. 그런 것을 청소년 문학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전부 성에 대한 고민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주인공 '나'가 서서히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기만의 비밀이 생기고 방황하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한때는 가장 가깝다고 느꼈던 엄마와의 갈등은 어쩌면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일이 아닐까. 하긴 나도 엄마와 비밀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비밀이 생기기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제목도 그런 것일 게다. 엄마와의 관계는 어찌 보면 아주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아주 가까우니까.
이 책은 한 소녀가 겪게 되는 모든 성장의 고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엄마에게서 서서히 떨어지는, 그러면서도 결국 엄마와 다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와 남자 친구로 인한 괴로움과 방황, 그리고 아빠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마 사랑만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성장소설이 아니라 연애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양념일 뿐 내면에 숨겨진 방황이 메인 메뉴다. 그것을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