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Kvinden i buret, The Keeper of Lost Causes, 2013

  감독 - 미켈 노르가드

  출연 - 니콜라이 리 카스, 파레스 파레스, 쇠렌 필마르크, 미켈 폴스라르







  지원을 기다리자는 동료의 제안도 거절하고 무모하게 범죄 현장 진압하던 ‘칼’. 그는 손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지만, 동료는 반신불수가 되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만다. 덕분에 다른 경찰들 사이에서 은근히 외면을 당하고, 상부에서는 강력계대신 새롭게 신설된 미결수사반으로 그를 배치한다. 그리고 그냥 서류 작업이나 하라는 의미로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우편물 담당이었던 ‘아사드’를 파트너로 붙여준다. 그런 칼의 눈에 5년 전에 일어났던 정치인 ‘메레트 린가드’의 자살 사건이 들어온다. 탁월한 미모와 재능을 가진, 한창 떠오르는 신예 정치인이었던 린가드. 장애를 가진 동생과 페리호를 타고 가다 실종되었고, 경찰은 투신자살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데다가, 초기 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칼은 직접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예전 수사팀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찾아내는데…….



  이야기는 칼과 아사드가 수사하는 현재, 5년 전 린가드가 사라지기 며칠 전부터의 일상 그리고 그녀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렇다. 린가드는 5년 전 납치되어 감금상태였다. 두 경찰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누가 왜 그녀를 납치했는지 밝히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미 결론난 일을 왜 끄집어내냐는 상부의 질타와 자신이 마무리한 사건을 왜 다시 들추냐는 동료경찰의 반발은 빠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린가드가 감금되어있는 상황을 보았기에 둘을 징계하겠다는 상관의 말에 화도 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독단으로 행동해 동료를 불구로 만들고 좌천당해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있어야 할 사람이 설치고 다니면 화가 날 것 같다.



  초반에는 인물 소개로 진행이 그다지 빠르지 않다. 다소 느슨한 느낌?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고, 살아있는 메레트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미치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무척이나 감명 받았다. 강인한 사람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갇힌 공간에 불이 들어와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1년에 단 한 번, 매일 대소변을 받을 수 있는 통과 음식물이 담긴 통만이 쪽문을 통해 교체되고, 공기 압력을 평상시보다 높이 설치한 곳에서 5년을 버티다니……. 제일 압권이었던 부분은 이가 아프다는 그녀의 말에 범인이 뺀치를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고 말할 때였다. 고민하던 그녀는 그걸 들고……. 그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보다가 멈췄었다. 차라리 살인마가 칼이나 톱을 들고 설치는 장면이 더 나았다. 그건 과장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보겠는데, 이건 담담하니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거기다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마취가 덜 된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녀의 아픔이 더욱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좀 멍해졌다. 아,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결국 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런 게 좀 마음이 아팠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는데, 그 책 표지에 적힌 말이 바로 사건의 동기였다. ‘내가 고통받은 시간만큼 너도 고통 받아야 해!’ 음, 시간이 되면 책도 읽어봐야겠다.



  첫 이야기라서 그럴까?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진행 때문에 초반에 좀 헷갈리고, 인물 소개 때문에 흐름이 느슨했던 것 빼고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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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annys dommedag, Danny's Doomsday, 2014

  감독 - 마르틴 바른비츠

  출연 - 윌리암 요크 닐센, 토마스 가비, 피터 간츨러, 에밀리 베르너 셈멜로스






  ‘대니’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거나 보여주고, 그들에게 친동생이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런 대응을 못하는 무기력한 소년이다. 짝사랑하는 소녀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지만, 그녀에게서 호의적인 시선을 받지 못한다. 대니의 동생인 ‘윌리엄’은 그런 형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연일 36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개들이 일제히 짖다가 멈춘다. 그리고 뒤이어 집밖에 뭔가 거대한 것이 나타나는데…….



  미리 말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용 SF 영화다. 잔인한 장면도 없고, 선정적이지도 않다. 십대인 두 형제를 통해 갑작스런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가족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놀랍게도 괴생명체의 습격이었다.



  무능력한 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생은 처음에는 형은 의지할만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형이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는, 자기주장을 먼저 내세운다. 눈앞에서 아빠를 잃은 윌리엄은 마트에 간 엄마를 찾으러 가야한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대니는 지하창고에 숨어 있다가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자고 대답한다. 원칙적으로는 그의 의견이 제일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미 형을 신뢰하지 않는 윌리엄에게 먹힐 리가 없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동생이 괴롭힘 당할 때 외면하던 대니는 혼자 가버린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 동생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윌리엄 역시 처음에는 제멋대로 행동했지만, 형의 진심을 알고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성장 영화의 뻔한 공식이지만, 평소에 학교에서 으스대며 잘난 척하던 애들은 막상 일이 닥치면 회피하거나 자기보다 약자라 생각되는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반대로 그들에게 구박 당하던 주인공은 그런 상황에서 용기 있고 슬기롭게 대처해서 위기를 벗어난다. 이 작품도 그런 단계를 밟아가면서, 대니와 윌리엄의 화해와 용기를 보여줬다. 형제는 함께였기에 용감했고, 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괴생명체는 물고기의 외모를 하고 육지를 마구 걸어 다닌다. 어류가 진화를 해서 폐호흡을 하고 다리가 생긴 걸까? 비린내가 엄청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일이 잘 마무리된다면, 과연 대니와 윌리엄은 남은 생애 동안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졌다.



  막내 조카가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내 기준에는 별로였던 영화였다. 너무 건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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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ife, 2017

  감독 - 대니얼 에스피노사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레베카 퍼거슨, 라이언 레이놀즈, 사나다 히로유키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은 여섯 명의 우주인들! 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화성에서 찾은 단세포 생명체에게 ‘캘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사까지 벌인다.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우주 정거장에서 캘빈을 상대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인류 최초로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에 대해 파헤칠 수 있다는 기대로 잔뜩 들떠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진화하던 캘빈이 급기야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처음 캘빈이 발견되었을 때는 작은 유글레나 내지는 플라나리아 같았는데, 생명체를 흡수하고 커지면서는 문어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심해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물고기 같기도 하고, 레이스처럼 나풀거리는 것이 무척 신비로웠다. 그런 공격성만 아니었다면, 관상용으로 길러도 예쁠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캘빈에 대한 자세한 설정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탄소계 생명체로 산소와 물, 그리고 양분이 필요하다고만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우주 정거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단순한 생존에의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흡수한 생명체의 지식을 얻어서 움직이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야 후반부의 상황이 설명될 것 같다.



  영화는 그야말로 누가 누가 더 삶에 대한 집착과 의지가 더 강한지 대결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외계 생명체와 80억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인간 여섯의 싸움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진짜라면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제발제발을 외치며 봤겠지만, 영화니까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보았다.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캘빈의 몸부림도 안타까웠고, 놈을 절대로 지구로 보낼 수 없는 인간의 고군분투하 역시 안타깝고 화나고 그랬다. ‘캘빈, 이정도하면 좀 죽어주지 않으련?’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생존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한 편이 이기는 설정이었으니,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죽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애인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장면들이 더러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했는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과연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인지, 왜 갑자기 우주 정거장이 그렇게 되었는지 등등. 너무 많이 생략된 게 아니라, 몇몇 장면에서만 설명이 필요해서 의외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부분은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에 중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강약중간약으로 조였다가 풀었다가 살짝 긴장하게 했다가 아닌 척하는 리듬감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작품은 강과 약만 있었다. 몰아칠 때는 그냥 인정사정없이 우다다 밀려오다가, 갑자기 모든 줄을 놓아버린 듯이 축 늘어진다. 그 때문에 의외로 긴장하지 않는 역효과가 났다. 너무 후다닥 지나가는 그런 느낌? 그래서 ‘방금 뭐였지?’하는 그런 느낌? 그런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아, 그러고 보니 캘빈이 무성생식을 하는지 유성생식을 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거였는데…….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나저나 엔딩 크레딧에서 흐르는 노래가 ‘spirit in the sky’다. 그러니까 이승에서는 이미 글렀으니 빨리 교회 나가서 구원받아 내세를 기약하자는 의미일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 역시 그 분이 만드신 것이니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걸까?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자면, ‘비글호의 모험 The Voyage of Space Beagle, 1950’을 다시 출판하면 좋겠다. 이 작품을 처음 보면 떠오르는 건 영화 ‘에이리언 Alien, 1979’이지만, 중반과 후반에서는 ‘비글호의 모험’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 다시 읽고 싶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이 버전이 아니라 완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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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host In The Shell, 2017

  감독 - 루퍼트 샌더스

  출연 - 스칼렛 요한슨, 마이클 피트, 줄리엣 비노쉬, 마이클 윈콧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미래, ‘한카 로보틱스’ 사에서는 기계의 몸과 인간의 뇌를 결합하는 실험이 행해진다. 사이버 범죄와 테러 사건을 담당한 ‘섹션9’의 ‘메이저’는 그 실험으로 탄생한 최고의 요원이다. 한카의 임원들이 계속해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섹션9이 이를 담당하게 된다. 메이저는 파괴된 로봇으로 해킹을 시도하던 중, 테러 행위의 배후에 있는 ‘쿠제’라는 인물을 보게 된다. 그를 추적하던 메이저는 이상한 환각을 보게 되고,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을 만든 ‘오우레’ 박사와 한카의 대표인 ‘커터’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은 애인님이 꼭 같이 보자고 해서, 개봉하는 날 저녁때 후다닥 같이 본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 작품인 ‘공각 기동대 Ghost In The Shell, 攻殻機動隊, 1995’라고 하는데, 꽤 인기가 좋았나보다. 지인들 중에 명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이상한 반발심 때문에 안 보는 심리를 가진 인간이기에 말만 들었지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영화는 애인님 때문에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애인님은 화를 냈고, 원작을 모르는 난 그럭저럭 보았다. 우선 주연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이 무척 예뻤고, 영화의 CG가 꽤 멋졌다. 재미있는 건, 영화 초반에 합작한 회사 로고가 뜨는데 중국계 회사가 두 개나 있었다. 그런데 내용은 온통 일본 문화로 가득했을 뿐, 중국의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배경은 일본이고, 중국계 회사가 참여했는데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와, 뭔가 엄청나고 기괴한 혼합물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영화의 CG는 무척이나 환상적이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이런 점에서는 무척 마음에 든다. 보면서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화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는데, 현실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뭔가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할까?

 

 

  영화를 볼 때는 영상에 푹 빠져서 몰랐는데, 보고 나서 생각하니 스토리텔링 적으로 빠진 부분이 많았다. 왜 그는 로봇 탱크가 공격해오는데 반격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그의 능력으로 보면 충분히 제압하거나 반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팀원들이 꽤 많던데, 왜 공격은 한두 명만이 하는 걸까? 그 사람은 팀의 사무실에 도청까지 할 정도였는데, 왜 팀원들에게 미행은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메이저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고민이 무척이나 길어서, 영화는 조금 늘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세상에나, 상영시간이 1시간 47분정도인데 그런 기분이 들게 하다니……. 얼마 전에 본 ‘존 윅 리로드 John Wick: Chapter 2, 2017’은 이 작품보다 더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도 두 시간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게 속도감 있게 쭉쭉 뻗어갔었다.

 

 

  어쩌면 내가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기동대’라는 제목 때문에, 로봇과 인간이 합쳐진다는 설정 때문에, 그냥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영화라고 예상했던 건 아닐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디까지 인간으로 봐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또한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는 기억마저 조작할 수 있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를 끌어주고 밀어줬던 과거의 경험이나 시련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의 난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그런 고찰을 하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액션 장면이 예상보다 적고, 약간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고찰을 하는 장면조차 그리 확실히 보여주지 않아서, 꼭 그럴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냥 다 어정쩡한 가운데, CG만 확실히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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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3-31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인님께서 왜 화를 내셨을까요? 원작을 훼손했다는 건가요? 확실히 일본이 상상력에서 훨씬 앞서나가는 것 같아요. 중국은 자본과 물량에서 넘사벽이고 일본은 상상력에서 넘사벽이고 미국은 모든 점에서 넘사벽이고 한국은 그 존재의 유지조차 힘겨운 상황이죠.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를 끌어주고 밀어줬던 과거의 경험이나 시련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의 난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이런 존재론적 고민과 사유가 한국에선 여간해선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음주가무와 주색잡기, 권력놀음을 삶의 최고의 낙과 성취로 생각하는 족속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제작돼 왔던 한국 영화를 시대별로 죽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건 100% 이상 충분히 증명된다고 봐요. 우리 한국 영화에 《공각기동대》(원작)에 견줄 만한 영화가 있었던가요? 한국 영화에 SF 장르의 계보가 과연 존재하는가요? 한국 영화의 소재와 주제는 거의 모두 음주가무와 주색잡기, 권력놀음으로 수렴된다는 것이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원제 - Shin Godzilla, シン・ゴジラ, 2016

  감독 -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출연 - 하세가와 히로키, 다케노우치 유타카, 이시하라 사토미, 코라 켄고

 

 



 

 

 

  ‘고질라’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아! 예전에 미국 영화로 본 적이 있다. 미국을 침공한 거대 공룡 비스무레한 괴수로 기억한다. 치고받고 도망 다니고 부수고 무너지고 비명 지르는 내용으로, 그냥 액션 영화였던 것 같다. 그런데 고질라는 일본에서 처음 만든 캐릭터로, 이번 작품은 일본에서 제작했다. 이른바 원조의 자존심을 지킨다! 이런 느낌?

 

  어느 날, 괴생명체가 일본 해안 지역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기어 다니던 괴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급기야는 걸어 다니면서 입에서 광선까지 내뿜는 지경에 이르렀다. 놈을 막아내기 위해 일본 정부는 대책을 세우고, 예전에 그 괴생명체를 ‘고질라’라 부르며 탄생을 예견한 과학자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질라를 막아낼 방법을 찾아내는데…….

 

 

  영화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미국 괴수 영화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괴물이 나타나서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족애를 부각시키면서 가슴 훈훈한 마무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다. 괴수가 나타나서 도시를 부수는 것까지는 비슷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차분히 줄을 서서 대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어쩐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질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허구지만, 그 괴물이 바로 옆 골목에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더 허구 같았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차분하게 이동할 수 있지? 음, 대피의 정석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건가?

 

 

  대신 영화는 회의하는 정부 각료들의 모습만 계속해서 보여줬다. 처음에는 각료 회의를 하다가, 자리를 옮겨서 총리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그 다음에 또 회의실로 이동하고, 뒤이어 다른 곳으로 또 몰려가고……. 멤버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계속 회의를 해야 하는 지 의문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대 회의실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대책 회의라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실속 없는 내용만 얘기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각 부처별로 의견 조율이 되지 않거나 팀명을 뭐로 정하면 좋을지 얘기하는 부분 등을 보면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설마 이건 괴수의 공격을 받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인가? 탁상행정을 비꼬는?

 

 

  그러니까 미국처럼 가족애와 생존에의 갈망, 삶의 소중함 그리고 미국 군사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만 앞세우고 체면을 중시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는 걸지도 몰랐다. 아, 그래서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정부에서는 종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교통을 통제하고 대피를 돕겠다고 고위층에는 말했지만 정작 교통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면 역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의 압력 운운하는 대사는 그냥 웃기기만 했다.

 

 

  괴수가 나타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비명 지르는 사람 하나 없는 덕분에 영화는 심심했다. 대신 계속해서 회의하는 장면만 보여줘서, 지루하기까지 했다. 고질라의 첫 등장이 귀엽지 않았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그란 눈에 멍한 표정이 참으로 귀여웠는데, 진화하면서 덜 귀여워져서 아쉬웠다. 역시 어떤 동물이든지 새끼 때가 귀여운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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