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Life, 2017

  감독 - 대니얼 에스피노사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레베카 퍼거슨, 라이언 레이놀즈, 사나다 히로유키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은 여섯 명의 우주인들! 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화성에서 찾은 단세포 생명체에게 ‘캘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사까지 벌인다.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우주 정거장에서 캘빈을 상대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인류 최초로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에 대해 파헤칠 수 있다는 기대로 잔뜩 들떠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진화하던 캘빈이 급기야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처음 캘빈이 발견되었을 때는 작은 유글레나 내지는 플라나리아 같았는데, 생명체를 흡수하고 커지면서는 문어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심해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물고기 같기도 하고, 레이스처럼 나풀거리는 것이 무척 신비로웠다. 그런 공격성만 아니었다면, 관상용으로 길러도 예쁠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캘빈에 대한 자세한 설정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탄소계 생명체로 산소와 물, 그리고 양분이 필요하다고만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우주 정거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단순한 생존에의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흡수한 생명체의 지식을 얻어서 움직이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야 후반부의 상황이 설명될 것 같다.



  영화는 그야말로 누가 누가 더 삶에 대한 집착과 의지가 더 강한지 대결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외계 생명체와 80억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인간 여섯의 싸움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진짜라면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제발제발을 외치며 봤겠지만, 영화니까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보았다.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캘빈의 몸부림도 안타까웠고, 놈을 절대로 지구로 보낼 수 없는 인간의 고군분투하 역시 안타깝고 화나고 그랬다. ‘캘빈, 이정도하면 좀 죽어주지 않으련?’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생존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한 편이 이기는 설정이었으니,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죽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애인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장면들이 더러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했는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과연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인지, 왜 갑자기 우주 정거장이 그렇게 되었는지 등등. 너무 많이 생략된 게 아니라, 몇몇 장면에서만 설명이 필요해서 의외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부분은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에 중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강약중간약으로 조였다가 풀었다가 살짝 긴장하게 했다가 아닌 척하는 리듬감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작품은 강과 약만 있었다. 몰아칠 때는 그냥 인정사정없이 우다다 밀려오다가, 갑자기 모든 줄을 놓아버린 듯이 축 늘어진다. 그 때문에 의외로 긴장하지 않는 역효과가 났다. 너무 후다닥 지나가는 그런 느낌? 그래서 ‘방금 뭐였지?’하는 그런 느낌? 그런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아, 그러고 보니 캘빈이 무성생식을 하는지 유성생식을 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거였는데…….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나저나 엔딩 크레딧에서 흐르는 노래가 ‘spirit in the sky’다. 그러니까 이승에서는 이미 글렀으니 빨리 교회 나가서 구원받아 내세를 기약하자는 의미일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 역시 그 분이 만드신 것이니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걸까?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자면, ‘비글호의 모험 The Voyage of Space Beagle, 1950’을 다시 출판하면 좋겠다. 이 작품을 처음 보면 떠오르는 건 영화 ‘에이리언 Alien, 1979’이지만, 중반과 후반에서는 ‘비글호의 모험’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 다시 읽고 싶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이 버전이 아니라 완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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