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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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かわいそうだね?, 2011년

  작가 - 와타야 리사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불쌍하구나?’와 ‘아미는 미인’


  두 작품 다 20대 미혼 여성의 미묘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꼭 20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각각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대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다 해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각 사랑하는 남자 친구나 고등학교 절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냥 속마음을 감추고 이해심 많고 배려 잘하는, 착하고 좋은 여자로 남길 원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속병도 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표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들은 착한 여자라는 가면을 벗고 싶지 않았다. 그걸 벗어던지면, 자신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고 믿었으니까.


  ‘불쌍하구나?’의 주인공 쥬리에는 남자친구 류다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걸핏하면 서양 스타일을 외치는 그. 아무리 외국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 여자 친구 아키요와의 문제이다. 아무리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났다고 해도, 전 여자 친구를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고 하다니! 그는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쥬리에를 이해심도 없고 쿨하지 못하다고 나무란다. 살 곳이 없는 아키요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자기를 말리려면 차라리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사람의 동거를 받아들이기로 한 쥬리에.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책을 몇 장 읽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류다이, 너 이XX 좀 맞자.’ 딱 보니까 아키요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다시 해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은데, 이 남자는 그런 걸 전혀 모른다. 그리고 결국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이 남자, 겉으로는 불쌍하니까 도와야한다는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그러면서 여자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강한 여자가 좋다고 하지만, 약해보이는 여자에게 보호 본능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의 공주님들이 하릴없이 창가에서 왕자님 오기만을 기다린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쥬리에가 내 동생이라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설득했을 것이다. 저 놈은 이미 글렀어, 같이 사는 걸 용납 못하면 헤어지자고 하잖아. 양 손에 여자 하나씩 들고 간 보겠다는 거야. 너 그렇게 이해심 많은 여자 친구 역할만 하다가, 뺏긴다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잖아. 그거 거꾸로 하면 자주 보면 정든다는 말이야. 아아, 나라면 SNS에 류다이의 무신경함과 아키요의 후안무치한 뻔뻔스러움을 공개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쥬리에, 이 착해빠진 것. 아무리 착해도 네 밥그릇은 뺏기지 말아야지.


  이 이야기를 읽고 애인님에게 ‘자기 만약에 혹시라도 불쌍하다고 다른 여자 거둬주면 우린 끝이야! 친구라도 같이 사는 건 난 싫어!’라고 했다가 혼났다. 자기는 생각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상상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이상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책 아닌데, 흑흑. 이건 다 재수 없는 류다이 때문이다. 나쁜 XX!



  ‘아미는 미인’의 주인공 사카키는 너무도 예쁜 친구 아미가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언제나 자신은 그녀의 뒤에 머물러있는 존재감 없는 시녀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미의 결혼 상대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는 어딜 봐도 아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왜 하필이면 공주님인 아미가 저딴 남자와?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고이케의 심리 분석을 들으면서, 사카키는 자기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뜨끔했다. 혹시 내 과거를 작가가 엿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카키의 과거가 어쩐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고이케가 그녀의 심리를 나름 해석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나도 예전에 그런 심정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래서 내가 그 아이와 멀어지게 된 거구나. 만약에 그 때 주변에 고이케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책에서 읽고 느꼈던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신중하고 내 자신과 주변에 대해 냉철하게 파악을 했더라면, 지금도 그 아이와 연락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더 속으로 파고 들어갔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뭐라고 딱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후회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련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황당함과 분노는 사라지고, 내 어린 시절의 철없음에 대한 반성만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였던 것 같다.


  불쌍하구나? 내 어린 시절아. 하지만 내 미래는 불쌍한 삶이 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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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나서영 지음 / 젊은작가들의모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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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나서영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서로의 첫사랑이자 계속해서 그리워했던 두 꼬마가 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주인수에게 이아영은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 속에서 버틸 힘을 주는 한줄기 빛이었다. 아영이 입양되고 난 후, 그는 직업 학원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를 만난다. 친구의 이름은 나서영. 유명한 화가의 아들로, 그 또한 전도유망한 화가였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 도중, 그는 인수를 알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바다에서 만나 사랑을 느낀 여인이 있는데, 바로 아영이었다. 그는 아영에게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는 인수를 대신해, 자신이 인수인 척 나선다.


  한편 아영은 똑똑하고 아름답게 자라난다. 언젠가는 인수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지만, 그를 찾지 못하자 그만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러기를 몇 년. 결국 그녀의 친구인 김현숙이 주인수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다리도 못쓰고 별 볼일 없는 주인수의 정체에 실망하지만, 잘생기고 재능 있는 나서영이 진짜 주인수라고 나서자 친구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반긴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것처럼 나서영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추악한 음모를 꾸민다.


  아,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우울했다고 해야 할까? 모든 소설은 다 해피 엔드로 끝나야한다는 걸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너무 암울했다. 작중 화자는 너무도 부드럽고 나긋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내용은 어두웠다. 책의 목소리와 내용의 부조화가 더 그렇게 느껴졌다.


  또한 인간이란 얼마나 사악한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서영이 아영에게 몹쓸 짓을 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서 책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그 부분에서는 문득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동화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임신했다는 괴담 하나가 떠올랐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그러고 싶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나쁜 놈은 너무도 많다. 나서영이 이 소설에서 악역으로 그려진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 어쩌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보다 동화에서 악당은 못생기거나 흉측하게 생겼지만, 현실에서는 잘생기고 말 잘하는 인간이 너무도 많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흡사 예전 고전 소설 내지는 신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잘 나가던 진행이 급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뒤에 뭔가 더 있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추리 소설에 길들여져 범인은 반드시 잡혀야 하고, 트릭은 꼭 밝혀지는 그런 구성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은 너무 열린 결말이었다. 아영이가 제일 불쌍하다.


  아쉬운 부분을 들자면, 사건이 일어나는 동기 부분이 너무 약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아영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는 과정은 좀 뜬금없고,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당장 준수를 못 만나는 것이지 평생 못 만날 것도 아닌데 단지 그런 이유로 그렇게 되다니. 음, 평생의 희망을 잃으면 사람이 기운이 빠지고 의욕 상실에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증상이 나오겠지만……. 인간의 나약한 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려고 그런 걸까? 그래도 너무 뜬금포여서 당황했다.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너무도 약했다, 그녀는.


  그리고 또 하나 더 들자면, 처음 준수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이가 다섯 살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어휘나 표현 면에서 도저히 다섯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설마 나이가 들어서 과거를 회상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봐도 그건 아니었다. 다섯 살이 저런 말을? 이런 놀라움이 들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나이가 든 다음에야, 목소리와 표현이 어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음,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하나. 소설에서 나서영이라는 인물이 악역에 해당하는데, 왜 작가는 굳이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였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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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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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배상민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경제난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한다. 그 전에 있었던 '88만원 세대'라는 말보다 더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단어다. 이 책은 그런 3포 세대의 애환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웃기게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유행어 중에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을 나타내는 가장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간혹 책 속에서 보여주는 상황은 웃음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게 재미있어서 웃는 건 아니었다. 어이없기도 하고 당황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퍼졌다. 그들이 겪는 모든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정규직을 얻는데 실패한 남자는 돌아온 연인과의 잠자리에서 예전처럼 자신 있는 섹스를 할 수 없다. 콘돔이 없다는 말에 그의 고개는 수그러질 수밖에 없다. (유글레나)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여자는 결국 낙태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남자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기다리지만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조공원정대)

  조직 보스의 여자를 건드렸던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아이를 껴안기로 했다. 이 세상 어디선가 자신이 뿌린 씨가 자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미운 고릴라 새끼)

  남자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사기를 당했을 때, 그녀는 충격으로 유산을 하고 말았다. (헤드기어 맨)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돈 벌기 쉽다는 말에 혹해서 건너온 외국인 피자배달부의 이야기는 한국의 피자배달부와 겹쳐 보이면서 웃픈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


  종족 번식은 본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본능을 억눌러야했던 젊은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인은 무조건 남들이 하는 대로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부모의 과시욕 때문일 수도 있고, IMF나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거세시키고 만다. 남들보다 능력이 없다고 분류되었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청춘은 그냥 그렇게 시들어만 갔다.


  생각하면 무척이나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저자는 더없이 유쾌한 어조로 읊어나간다. 그래서 더 슬프다. 게다가 몇몇 이야기는 안타까운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안녕 할리'와 '헤드기어 맨'이 그러하다. 읽다가 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이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원인을 미국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사랑 그녀를 데리고 간 자는 미국인 영어 강사, 공장이 망한 원인도 미국에서 생긴 모기지론 사태, 자기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태어나보니 백인과의 혼혈. 그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는, 별 의미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걸까?


  마지막 두 편은 현대 한국 청년들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말하고자하는 바는 비슷했다. '악당의 탄생'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돈이 되는 일만 맡은 슈퍼맨과 부자가 되는 법에만 열광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담의 배꼽'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가진 자가 되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두 형제가 반목을 한 것이다. 비록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바꾸었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면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또한 돈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신문을 보면 과연 그럴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수단 때문에 인간으로 누려야할 행복을 꿈도 꿀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아, 그래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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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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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방현희




  요즘 들어 어머님이나 오라버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면 꼭 하는 말씀이 있다. “예전처럼 추리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니 보기 좋잖아.” 어찌어찌하다가 추리 소설이외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이 소설 역시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로 손에 잡지 않을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읽는 책인데, 꽤 재미있었다. 지루함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일곱 개의 단편들이 각각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른하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안타깝게. 글은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집착한다. 사랑을, 자유를, 꿈을, 그리고 완벽한 삶을 갖고자 노력하지만 손에 넣지 못한다.


  ‘로스트 인 서울’의 여주인공은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국인 우즈벡으로 돌아가 필요한 인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금발의 백인 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농간에 휘말려, 재력가의 첩이 되었다가 결국은 홈쇼핑 모델로 살아가게 된다.


  돈으로 한 사람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재력가의 행태에 분노했고,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에만 집착하고 책임을 회피한 또 다른 남자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묵직한 것이 무척이나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세컨드 라이프’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이야기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와보는 곳에서, 마치 진짜로 살았던 것처럼 과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부인이 있는 현재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형의 죽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그가, 마음 한구석에서 만들어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구별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탈옥’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SF 소설이 생각났다.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는 박사의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머리만 살아있지만,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아마도 이 글의 주인공이 다음에는 무엇을 빼낼까 생각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소설이 연상된 모양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는 가정 폭력을 겪는, 아버지를 절대로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다. 홍길동은 타의에 의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은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힘도 없던 소년. 결국 그는 나름의 복수를 계획한다.


  ‘후쿠오카 스토리-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국 그들의 예쁜 추억은 거짓으로 가득한 가식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평소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랬다면, 오래 전에 헤어졌겠지.


  ‘로라, 네 이름은 미조’는 마음이 아팠다.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고, 사랑을 꿈꾸던 여인. 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어렵고 힘들었다. 왜 그녀가 그런 습관을 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로 자신을 벌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상대의 일부를 취함으로 상대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원시시대의 풍습을 선택한 것일까? 하지만 원시인들은 사람을 먹었지, 물건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장애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녀의 그런 심리는 남에게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행복했을까?


  ‘퍼펙트 블루-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는 음,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나서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허무하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도 들고, 묵직한 것이 가슴의 일부분을 누르는 느낌에, 먹은 것이 얹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의미모를 한숨도 새나왔다.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고, 그냥 뒷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찜찜해서 다시는 안 볼 책 목록에 들어가진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중간 중간에 생소한 어휘들을 보게 되어 놀라웠다. ‘이런 단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난 얼마나 무지한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예를 들면 ‘톺다’, ‘착종’ 그리고 ‘짯짯하다’가 있었다. 사전을 뒤져보면서, 신기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음, 난 어휘를 잃어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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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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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배수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내용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영상화가 되어 재생되기도 하고, 내용이 차근차근 정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요리조리 뜯어보고 맞춰도, 어느 한 부분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 나 퍼즐 못 맞추지 참. 그제야 다른 집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는, 오백 조각이나 천 조각 맞춘 퍼즐이 우리 집에는 왜 없는지 기억이 났다. 퍼즐을 맞추다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짜증을 내면서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뜨개질이나 수를 못 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르면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추리 소설이나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하는 인문학 책을 주로 읽어왔다. 이런 스타일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낯설었다.


  한 번을 읽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뭐지? 두 번을 읽었다. 여전히 어딘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가? 세 번을 읽는다. 헷갈린다. 어, 잠깐만 이거 앞에서 나왔던 거 같은데. 아니다, 저번에 읽어서 기억하는 건가? 결국 이 책은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아직 독서 수준이 미흡해서…….


  이 소설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소제목도 없고, 그냥 1,2,3,4로 되어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중복되고 배경 설정도 비슷하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마다 조금씩, 미묘하게 배경이나 상황들이 달랐다.


  1에서 여자가 당한 일과 2에서 남자가 한 일이 배경적으로는 일치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에서 나온 상황과 3의 설정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 1을 읽으면서 인물에 대해 내렸던 정의가 2,3을 지나면서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내가 판단한 인물이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흰 버스, 동네 약사에 대한 소문, 맹인 소녀, 전화 상담 등등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도 많은 요소들이 겹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살짝 위치를 바꾼다거나 비틀리면서, 비슷하지만 앞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인물들도 조금씩 달라지고 말이다.


  어쩌면 인물에 대해서 특정한 어떤 인상을 받도록 작가가 판을 짠 다음, 조금씩 그것을 해체하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을 보며 작가는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넌 내 함정 카드에 걸려들었어.’라면서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얼마나 주관적이며 자의적인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나 인간은 타인에 대해 끝없이 평가를 하는데, 그것이 사소한 작은 것 하나로도 수시로 바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에 대해 그러하듯이 남도 나에 대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넌지시 일깨워주려는 걸까?


  아니면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우연히 상황과 이름이 비슷할 뿐, 같지가 않은 것이다. 평행 차원 이론을 따르면 가능하다. 작가는 같지만 다르다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가 아니니까, 이건 내 헛된 망상이다.


  나 참, 소설에 대한 감상을 하라니까 망상을 하고 앉아있다. 불성실한 독자다. 하지만 이건 불친절한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슬쩍 투덜거려본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감대 형성 실패다. 독자도 불성실하고 작가도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게 이 작가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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