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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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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배수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내용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영상화가 되어 재생되기도 하고, 내용이 차근차근 정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요리조리 뜯어보고 맞춰도, 어느 한 부분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 나 퍼즐 못 맞추지 참. 그제야 다른 집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는, 오백 조각이나 천 조각 맞춘 퍼즐이 우리 집에는 왜 없는지 기억이 났다. 퍼즐을 맞추다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짜증을 내면서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뜨개질이나 수를 못 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르면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추리 소설이나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하는 인문학 책을 주로 읽어왔다. 이런 스타일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낯설었다.


  한 번을 읽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뭐지? 두 번을 읽었다. 여전히 어딘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가? 세 번을 읽는다. 헷갈린다. 어, 잠깐만 이거 앞에서 나왔던 거 같은데. 아니다, 저번에 읽어서 기억하는 건가? 결국 이 책은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아직 독서 수준이 미흡해서…….


  이 소설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소제목도 없고, 그냥 1,2,3,4로 되어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중복되고 배경 설정도 비슷하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마다 조금씩, 미묘하게 배경이나 상황들이 달랐다.


  1에서 여자가 당한 일과 2에서 남자가 한 일이 배경적으로는 일치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에서 나온 상황과 3의 설정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 1을 읽으면서 인물에 대해 내렸던 정의가 2,3을 지나면서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내가 판단한 인물이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흰 버스, 동네 약사에 대한 소문, 맹인 소녀, 전화 상담 등등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도 많은 요소들이 겹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살짝 위치를 바꾼다거나 비틀리면서, 비슷하지만 앞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인물들도 조금씩 달라지고 말이다.


  어쩌면 인물에 대해서 특정한 어떤 인상을 받도록 작가가 판을 짠 다음, 조금씩 그것을 해체하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을 보며 작가는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넌 내 함정 카드에 걸려들었어.’라면서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얼마나 주관적이며 자의적인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나 인간은 타인에 대해 끝없이 평가를 하는데, 그것이 사소한 작은 것 하나로도 수시로 바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에 대해 그러하듯이 남도 나에 대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넌지시 일깨워주려는 걸까?


  아니면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우연히 상황과 이름이 비슷할 뿐, 같지가 않은 것이다. 평행 차원 이론을 따르면 가능하다. 작가는 같지만 다르다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가 아니니까, 이건 내 헛된 망상이다.


  나 참, 소설에 대한 감상을 하라니까 망상을 하고 앉아있다. 불성실한 독자다. 하지만 이건 불친절한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슬쩍 투덜거려본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감대 형성 실패다. 독자도 불성실하고 작가도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게 이 작가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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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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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堅硬如水 (2001년)

  작가 - 옌롄커 (閻連科)


  책을 처음 보고는 '두껍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650쪽에 달하는 소설이라니! 간만에 며칠 잡고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한 번 잡자,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중간에 긴장이 되거나 식사 시간이라 몇 번 눈을 뗀 적은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꼬박 앉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제목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물이 단단하던가? 단단한 건 금속이나 돌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품고 책을 펼쳤다.


  책은 주인공인 가오아이쥔이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일까? 어떤 부분에서는 표현이 반복되기도 하고, 같은 말을 다른 형식으로 되풀이하기도 한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얘기할 때나 그녀와 사랑을 속삭일 때는 더욱 더 심하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인 남자이고, 또 다르게 보면 상당히 말 많은 남자일 수도 있고 또는 표현력이 풍부한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청년일지도 모른다.


  야망 있는 남자인 가오아이쥔은 자신의 딸과 결혼하면 간부를 시켜주겠다는 지부 서기의 말에 혹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구이즈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군에 입대한다. 부부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그냥 필요에 의한 것일 뿐 애정 따위는 없었다.


  제대를 앞둔 그는 길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난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관계를 맺기 바로 직전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 서로에 대한 깊은 인상만 간직하고 이름도 모르고 헤어진다. 하지만 그에게 그 여인은 첫사랑과 같았다.


  제대 후, 고향 마을에 혁명 사상을 퍼트려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가오아이쥔. 하지만 장인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간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게다가 부인 구이즈는 그의 어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집안의 실권을 쥐고 흔든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두 아이는 그를 처음에는 무서워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더욱 더 혁명을 해서 간부를 해야겠다는 욕망을 불태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음에 간직했던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샤홍메이로, 그의 동창과 결혼한 몸이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그녀 역시 혁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혁명 동지로 몸과 마음을 합쳐, 마을을 개혁하기로 마음먹는다. 비록 그들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 장인이나 시아버지이지만, 거리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혁명으로 맺어진 동지였으니까.


  주인공의 부인이 목을 매어 자살한 이후, 둘의 사이는 갈수록 깊어진다. 그리고 마을을 바꾸려는 혁명에도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기는 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불륜의 미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마음에도 없는 결혼이었고, 서로를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그들도 떳떳하지 못한 것을 알기에 남몰래 만나지 않았던가. 지하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든 둘은, 그곳에서 마음껏 쾌락을 즐겼다. 밖에서는 혁명 동지였지만, 안에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이었다. 시련이 있어야 사랑이 더 빛난다고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이 두 사람은 현실 도피적인 관계라고도 보이니까. 어쩌면 그 당시는 이혼이라는 게 절대로 허용이 안 되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문득 두 사람이 혁명에 열성적으로 모든 것을 바쳤던 이유가 진짜로 혁명이 일생일대 최대의 목표여서였는지, 아니면 분위기에 들뜬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는 그녀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폼을 잡았고, 그녀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좋아 보이고 같이 있고 싶어서 동참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두 사람의 감정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강렬해지고 열성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혁명에 둘 다 관심은 있었다. 책을 보면 두 사람 다 혁명에 관한 책에 나오는 구절을 줄줄 외우면서 게임까지 할 정도니까. 그들에게 그것은 섹스를 하기 위한 전희와도 같았다. 마오 주석의 사진 앞에서 혁명가를 들으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들에게 혁명은 섹스와 비슷한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섹스 그 자체가 혁명일지도 몰랐다. 기존의 것을 뒤엎는 것을 혁명이라고 본다면, 강압에 의한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를 부정하는 두 사람의 관계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직 자손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성관계를 인정한 그 시대의 풍조를 거부하고,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즐기기 위한 성관계를 추구한 것도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말은 인과응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이 타인에게 했던 짓을 고스란히 되받았으니 말이다. 남에게 쳤던 올가미가 고스란히 자기들의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렇다면 혁명이란 얼마나 덧없는 열병과도 같고, 한번 잘못 디디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지옥 같은지…….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다. 물이라고 했지만, 단어의 뜻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개 물은 생명의 원천을 뜻한다. 또한 사람의 희망 내지는 꿈도 역시 살아갈 힘을 준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감정 역시 살아갈 계기를 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 혁명은 두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을 건설하는 목표였고,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은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 힘을 주었다.


  물은 그런 의미로 쓰였을지도 모르겠다. 물처럼 단단하게라는 말은, 사랑과 목표를 갖고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뜻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념과 꿈에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그런 인생.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륜은 불륜이다. 이건 어쩌면 숲을 보라고 했더니 손가락만 보는 격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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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33일 -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시간 33일
바오징징 지음, 홍민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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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失戀33天

  부제 -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시간 33일

  저자 - 바오징징((鮑鯨鯨)

 

 

  과연 33일 만에 지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표지에 적힌 부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나 경험에 비춰 봐도 한 달은 넘게 걸리던데, 어떻게 3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실연의 상처를 극복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쳤다.

 

  이야기는 주인공 황샤오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웨딩 플래너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백화점에서 자신의 남자친구와 자신의 가장 친한 죽마고우가 다정하게 데이트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배신감과 충격에 일상이 파괴될 지경에 처한 그녀. 급기야 회사 사장의 전화에 폭언을 퍼붓는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직장에서 잘릴까봐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그런 위험은 없었다. 그 와중에 평소에 게이 같다고 싫어하던 직장 동료 왕샤오졘과 한 커플의 결혼을 전담하게 되는데…….

 

  샤오셴은 씩씩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당찬 성격이다. 그렇지만 실연을 당하면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책하고 소심해진다. 과거 친구나 애인과 갔던 장소, 나눴던 대화, 비슷한 상황이 되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이제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없다는 슬픔과 상실감, 그들이 자신에게 가한 배신감, 좀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로 눈물을 흘린다.

 

  그런 그녀를 받쳐준 것은 사장과 팀을 이루게 된 왕샤오졘이었다.

 

  어떨 때는 다독여주기도 하고 다그치는 사장의 마음씀씀이는 그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이유를 알게 된다. 이혼 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딸. 그 애가 실연을 당했을 때 해주려던 말과 행동들이었다.

 

  “이걸 보렴, 네가 실연을 당해도 맛있는 음식이나 술이 이 세상에서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냐. 실연은 치통과 같은 거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 -p.56.

 

  사실 실연당한 사람에게 저런 말은 금방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면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샤오셴도 그랬다. 마음을 추스르고, 세상을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첼로를 배우고, 전에는 관심도 없던 직장 동료들을 다시 보게 되고.

 

  게이 같다고 싫어했던 왕샤오졘의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이 사실은 배려이자 유머 감각의 표현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다시 보게 된다. 그와 친구 결혼식에 가서 전 남자친구에게 창피를 주는 장면에서는 낄낄대면서 웃기도 하고, 잘못했다고 그와는 헤어졌으니 용서해달라는 친구에게 대응하는 부분에서는 ‘오-멋있는데!’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물론 일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배우고 성장한다.

 

  예를 들면, 첼로를 배우면서 사람사이의 관계에 힘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르고 베풀어달라고 요구했던 과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그녀를 보면서, 다음 사랑에서는 남을 좀 더 배려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또한 결혼을 앞둔 커플과 금혼식을 앞둔 부부와의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도 갖고 말이다.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된 마지막 장까지 읽고 생각했다.

 

  역시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둬야해. 애인에게만 올인해서 다른 사람들과 연을 끊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실연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야. 그냥 자연스런 성장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야.

 

  큰조카가 대학에 들어가더니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 때, 옆에서 힘이 되어줄 고모가 되어야겠다. 샤오셴이 33일이라는 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 때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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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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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요시모토 바나나


  처음 이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과일 이름이라니 참으로 특이하다고 넘겼다. 그리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다른 작가에게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나나 너무 좋아!’라고 종종 말을 해서, 과일이 좋다는 건지 작가가 좋다는 건지 나에게 고민의 시간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난생처음 읽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었다. 『유령의 집』, 『엄마!』, 『따뜻하지 않아』, 『도모 짱의 행복』 그리고 『막다른 골목의 추억』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떤 한 사건으로 자신과 주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깊은 사색의 시간을 통해 그녀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이 겪는 사건은 어찌 보면 극적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유령의 집』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미래를 갈 것 같은 둘. 하지만 여자는 그 길을 원했고, 남자는 변화를 원했다. 단순한 동류의 호감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 하지만 운명의 순간이 그들에게 찾아왔고, 둘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글은 차분한 어조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가 보는 ‘이와쿠라’와 내가 생각하는 ‘이와쿠라’ 그리고 내가 따뜻한 눈길을 보낸 ‘노부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확신에 찬 어조로 그와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둘을 맺어준 것은, 그들이 공양하고 배려해줬던 노부부의 유령일 수도 있다. 아니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을지도.


  『엄마!』는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의 무차별 테러로 약이 섞인 카레를 먹고 쓰러진 여직원이 주인공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충격이 컸던 그녀.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약혼자와 자신을 길러주신 조부모 그리고 아기였던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던 조부모와 엄마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양쪽을 다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녀는 엄마를 용서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갖는다. 일에 치어 사는 것도 좋지만, 나와 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주인공은 알려주고 있다. 꼭 독극물 테러를 당해야만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뜻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은 기억을 떠올리는 주인공이 나온다. 부잣집의 서자이지만, 누구보다 자신과 남을 사랑했던 천사 같은 친구. 그와의 짧았던 만남을 추억하며, 주인공은 가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코토의 대사였다.


  “그건 집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 빛이 밖으로 비치니까, 그래서 밝고 따뜻하게 느끼는 거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이 켜져 있어도 썰렁한 경우도 많은걸 뭐.”


  무슨 꼬맹이가 이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지. 하지만 그런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이었기에,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우리 집의 불빛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남들에게 따뜻하게 비춰지면 좋을 텐데.


  『도모 짱의 행복』은 아버지의 부정으로 감정이 메말라버린, 아니 내적으로는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남녀의 애정에 대해 한없는 회의와 불신을 가진 그녀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조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어쩐지 너무도 매사에 무덤덤한 그녀이기에,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너무도 편안한 솜털 안에서 생활하던 여주인공이 나온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고, 멋진 약혼자가 있는 그녀. 하지만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간 약혼자의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던 어느 날. 그를 찾아간 그녀는 예상은 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삼촌이 여행을 떠난 집에 머무르게 된다. 거기 아래층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상호명이 바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었다. 그 가게의 주인인 비슷한 또래의 ‘니시야마’를 통해 그녀는 조금씩 슬픔을 잊어간다.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조금씩 변해간다.


  그 과정이 조금은 눈물겹고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여 보상받으려는 연약한 여주인공이 아니어서 더 괜찮았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보내는 따스한 힐링 메시지’라고 책날개에 쓰여 있는데, 잘 모르겠다. 100% 완벽한 힐링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말이다. 완벽한 힐링이 없기에, 완벽한 방법도 없다고 본다.


  나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했을까?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써먹었던 같다. 온전하게 그 상처를 느끼고 모든 감정을 쏟아 부어 탈진 상태가 된 다음, 내 자신을 위한 변명도 만들어 보았고, 대응책도 연구해보고, 미화시키기도 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사건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과 주변과 사건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아픔을 이겨낼 힘을 가졌고 말이다.


  언젠가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지고 죽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전혀 변하지도 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어차피 지구는 돌고, 시간을 흘러가는 법이니까요.”


  그래, 지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생각해보자.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서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내가 최초도 아니고 유일무이도 아니고 최후도 아닐 거야.


  기지개를 켜고, 맛있는 걸 먹어보자. 그리고 이런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깊고 넓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읽으면 약발이 떨어지니까, 아주 가끔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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