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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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방현희




  요즘 들어 어머님이나 오라버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면 꼭 하는 말씀이 있다. “예전처럼 추리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니 보기 좋잖아.” 어찌어찌하다가 추리 소설이외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이 소설 역시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로 손에 잡지 않을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읽는 책인데, 꽤 재미있었다. 지루함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일곱 개의 단편들이 각각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른하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안타깝게. 글은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집착한다. 사랑을, 자유를, 꿈을, 그리고 완벽한 삶을 갖고자 노력하지만 손에 넣지 못한다.


  ‘로스트 인 서울’의 여주인공은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국인 우즈벡으로 돌아가 필요한 인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금발의 백인 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농간에 휘말려, 재력가의 첩이 되었다가 결국은 홈쇼핑 모델로 살아가게 된다.


  돈으로 한 사람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재력가의 행태에 분노했고,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에만 집착하고 책임을 회피한 또 다른 남자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묵직한 것이 무척이나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세컨드 라이프’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이야기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와보는 곳에서, 마치 진짜로 살았던 것처럼 과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부인이 있는 현재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형의 죽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그가, 마음 한구석에서 만들어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구별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탈옥’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SF 소설이 생각났다.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는 박사의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머리만 살아있지만,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아마도 이 글의 주인공이 다음에는 무엇을 빼낼까 생각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소설이 연상된 모양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는 가정 폭력을 겪는, 아버지를 절대로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다. 홍길동은 타의에 의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은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힘도 없던 소년. 결국 그는 나름의 복수를 계획한다.


  ‘후쿠오카 스토리-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국 그들의 예쁜 추억은 거짓으로 가득한 가식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평소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랬다면, 오래 전에 헤어졌겠지.


  ‘로라, 네 이름은 미조’는 마음이 아팠다.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고, 사랑을 꿈꾸던 여인. 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어렵고 힘들었다. 왜 그녀가 그런 습관을 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로 자신을 벌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상대의 일부를 취함으로 상대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원시시대의 풍습을 선택한 것일까? 하지만 원시인들은 사람을 먹었지, 물건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장애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녀의 그런 심리는 남에게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행복했을까?


  ‘퍼펙트 블루-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는 음,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나서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허무하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도 들고, 묵직한 것이 가슴의 일부분을 누르는 느낌에, 먹은 것이 얹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의미모를 한숨도 새나왔다.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고, 그냥 뒷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찜찜해서 다시는 안 볼 책 목록에 들어가진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중간 중간에 생소한 어휘들을 보게 되어 놀라웠다. ‘이런 단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난 얼마나 무지한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예를 들면 ‘톺다’, ‘착종’ 그리고 ‘짯짯하다’가 있었다. 사전을 뒤져보면서, 신기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음, 난 어휘를 잃어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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