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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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조선희



  그는 마술사다. 그의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역시 뛰어난 마술사이다.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그는 낙엽을 돈으로 보이게도 하고, 부탁을 받고 남녀를 맺어주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이상한 문양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다시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에게는 포장마차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마차는 아무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허락받은 자만이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

  그는 아무에게나 다 '김서방'이라고 부른다.

  그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 도깨비다.


  21세기,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이 시대에 도깨비라니 낯설면서 한편으로는 근사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다.


  개발과 과학 그리고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도깨비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을지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예전 우리 조상님들은 같이 살다시피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사실은 일본의 오니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한다. 원래 우리 조상님들의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 책에서도 공윤후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온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얼굴과 진짜 얼굴이 다르다고 한다. 얼굴마저 일본에게 빼앗긴 불쌍한 존재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책은 공윤후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또한 그가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룸룸덕분에 우리는 그의 조부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다. 물론 룸룸의 자료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꾸 룸룸하니까, 예전에 보았던 만화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주문 '카피카피룸룸'이 떠오른다.) 거기에 공윤후와 그의 친구인 활의 대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두 사람의 과거가 어땠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들은 느슨하지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도, 나중에 다 연결이 된다.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어, 설마 얘가 그 아이?'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밑바닥에 흐르는 내용은 공윤후와 룸룸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밀접한 것 같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일방적인 스토커 행위의 피해자와 당사자인 것 같다. 혹시 이 소설의 숨겨진 부제가 '룸룸의 도깨비 스토커 기록'이 아닐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지만 진짜 허깨비인 너와 허깨비로 살지만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는 그놈. 둘 다 세상과 소통하는 자기만의 매개체가 있어. 너에겐 도개교가 있고 그놈에게는 네모난 컴퓨터의 모니터가 있지. -p.375


  왜 룸룸이 그렇게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 걸까? 어린 시절 가정의 불행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다.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데, 룸룸은 집착과 욕망의 덩어리를 자꾸만 키우고 있다. 나중에 그가 그 덩어리에게 잡아먹히면 어떤 존재가 될 지 상상하니, 싫어진다.


  만약에 룸룸이 여자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진부한 사랑 얘기가 되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공윤후는 누군가의 품에서 쉴 수 있을 테고, 룸룸 역시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가족의 과거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진부한 사랑놀이 얘기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뀌는 건 싫으니까…….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이기에, 이 책은 선택에 대한 대사가 자주 나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p.158

  무엇을 선택하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을 위해 계속 선택을 하지. 어떤 것을 갖고 어떤 것을 내놓느냐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모두가 그 선택을 어려워하지만 잘해나가고 있지. 그게 사람의 삶이니까. -p.227


  그런데 원하는 여자와 맺어달라는 남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여자도 마음에 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소원을 비는 남자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지 남자가 바란다는 이유로 맺어주다니, 여자의 마음은 상관이 없다는 걸까? 물론 책에서는 그 때문에 상대 여자에 대해 다른 설정을 만들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상대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만 밀어붙이는 남자의 무신경함에 아주 열불이 났다. 뭐, 이런 재수 없는 XX가! 그러니까 네놈이 그 나이 처먹도록 솔로인 것이다! 이런 분노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만약에 여자에 대한 부가적인 설정이 없었다면, 서평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작가가 세심하게 마음을 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무서울수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라. 본 것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머릿속에 넣어둬. 당장은 그 눈이 본 것을 잊고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훗날 그 기억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날이 온단다. 그때를 위해 잘 봐둬라.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보지 않은 건 기억나지 않으니까.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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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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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신아인



  나만 그럴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을 때 기본 설정이나 글의 구성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진도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뭔가 거슬리는 것이 마치 거스러미가 생긴 것 같다. 의식하건 안하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신경이 가는 그런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신우는 그의 두 동생인 이엘과 승윤과 같이 1918년 무오년에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의 영향으로 뱀파이어가 되었다. 그의 조카인 유민 역시 뱀파이어인데, 그녀는 아버지 준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그녀가 죽을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준수는 딸을 살리기 위해 뱀파이어인 형 신우의 피를 주입했다. 그 때문에 유민은 뱀파이어가 되었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를 증오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 형제와 한 명의 소녀는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과 죄책감 그리고 인간의 피를 먹자는 의견과 그러지 말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반목하고 동시에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한편 어릴 적 기억 없이 고아원에서 정체모를 사람의 후원으로 자란 수안. 그녀는 준수가 운영하는 거대 향수 회사 헤라에서 근무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산타라 이름붙인 자신의 후원자에게서 맡았던 향기를 향수로 만들기로 한다.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잊을 수 없는 그의 향. 그런데 우연히 신우와 스치듯 지나간 그녀는, 그에게서 산타의 향을 맡는다.


  신우 역시 수안의 피가 죽어가던 식물에게 생기를 주는 것을 보고, 혹시 그녀가 자신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심한다.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진짜 산타였던 이엘은 신우가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수안의 마음은 이미 그에게 향해있는데……. 게다가 준수마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변해간다.


  읽다가 ‘응?’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준수에 대한 설명 부분이었다.


  그는 뱀파이어가 아니라고 나온다. 그러면 그 당시 유민이라는 열 살 먹은 어린 딸이 있었으니, 아무리 어리게 잡아도 스물다섯 살은 넘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적어도 백 스물다섯 살. 그런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우와 이엘을 외부에는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아무리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고 해도, ‘그렇구나.’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승윤이 후반에 실험의 부작용으로 순식간에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상황을 보면, 의문은 계속된다. 승윤이 자기 관리를 안했다고 여기면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다.


  게다가 준수를 설명하면서 작가는 이런 표현을 한다. 똑같이 백년을 살았는데, 왜 그에게만?


  준수는 세월과 함께 연륜을 먹은 노인이었다. 같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에게 농익은 해안이 있었다. 젊은이의 몸에 여물지 않은 치기를 담아 살던 형들과 다른 대목이었다. -p.165

  한 세기를 묵은 노인의 처세라는 것은 악마의 술수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p.202


  그 다음으로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주인공의 감정선이었다.


  로맨스를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에 없을 멋진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상황에 빠져서, 같이 웃고 울고 마음 아파하고 설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수안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야, 왜 이래?’라는 생각만 들 뿐, ‘큰일이야, 어떡해…….’하는 마음이 들진 않았다.


  수안의 감정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널뛰는 느낌이었다. 산타라는 존재에 집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다 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우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이엘이 자신이 산타라고 밝히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젊어요. 황당하다. 그렇게 따지면 신우도 별로 차이가 안 나는 나이인데? 둘은 쌍둥이라고 나오는데, 누구는 너무 젊어서 산타가 아니고 누구는 산타다?


  그리고 신우가 자신을 이용하려 접근했다는 것을 안 이후에도, 그녀는 징징대면서 그에게 매달린다. 이건 좋아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남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스타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아기적인 사고방식이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다. 막말로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첫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이나 스토커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다가오면 다 받아줘야 할 테니까 말이다.


  수완은 자신의 감정을 방패로, 사랑한다는 말을 칼로 쥐고 극단의 행동까지 취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상대를 압박한다. 마치 네가 만나주지 않으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걸 보고 날 진짜 사랑하는 구나라고 느낄까 아니면 진상이라고 생각할까? 난 진상이라고 여길 것 같다. 


  거기다 그녀의 이 대사는 읽으면서 이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멍해졌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 건 당신이 인간이어서가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어서예요.” -p.360


  아가씨, 댁이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그 전에 이미 말했잖아요. 그런데 뱀파이어라는 거 알면서 저렇게 말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해요. 다른 남자와 헷갈리는 줄 안다고요.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에서처럼, ‘너 낯설다. 다른 남자들에게 그런 말 많이 해보셨나 봐요?’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고요.


  덕분에 어떻게 보면 신우의 감정은 앙탈부리는 어린 꼬마에게 휘둘리는 것 같지, 사랑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대사를 적었다고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어린애 달래느라 다 들어주겠노라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어린이가 사실 성인이어서 아청법에 상관없이 붕가붕가까지 할 수 있다면…….


   사건의 설정은 괜찮은데, 인물 설정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덕분에 사건까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소설이 즐거움보다는 황당함과 짜증으로 다가왔다. 자음과 모음 리뷰단 2013년 마지막 도서인데,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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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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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ベットの思惑 (2011년)

  작가 - 다나베 세이코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공감을 시작으로 ‘헐 대박’이라는 놀라움에다가, 질투에 이어지는 가슴 한편으로는 훈훈함, 거기에다가 ‘나쁜 개새X!’하는 욕도 튀어나왔다. 책을 읽는 약 두 시간 동안, 내 기분과 함께 얼굴 표정도 다양하게 변했다.


  서른한 살의 와다 아카리, 드디어 자기만의 작은 원룸을 하나 얻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남자들을 만나봤지만 신통치 않았던 그녀, 이번에야말로 괜찮은 남자를 만나보겠노라 결심한다. ‘남자를 잘 이해하고 내조 잘하는 여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충동적으로 침대 하나를 산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침대에서 마음이 맞는 남자와 함께 있는 꿈을 꾼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면, ‘정성 들인 침대에서는 정성 들인 정사를’ 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남자.


  몇 년 전에 만났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던 야마무라 후미오. 하지만 예전의 순진하고 풋풋한 모습이 아닌, 능글맞으면서 말 잘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와다는 어쩐지 섹스만 원하는 그에게 예전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한 살 어린 우메모토. 요리 잘하고 싹싹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에게서는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이 잘 맞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원룸 맞은편에 있는 학원의 강사인 요시자키 규타. 첫 만남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솔직하다 못해 돌직구를 날리는, 말주변이 없는 그가 밉지는 않다.


  책은 주인공과 그녀의 절친 요시코, 세 남자 그리고 다른 지인들과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빵 터질 정도로 솔직하고 재미난 표현도 있고, 우리와는 다른 문화라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그걸 말하면 후반부의 스포를 해버릴 것 같아서 패스하겠다. 말하자면 안알랴줌이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대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말 잘하고 분위기메이커면서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남자, 우직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남자, 말주변이 없다보니 사서 오해를 받는 남자, 그리고 틈만 나면 여자를 호텔로 데려가고 싶은 유부남.


  나쁜 개새X라는 말이 나온 부분은 유부남과 ‘결혼은 처녀랑, 연애는 말 통하는 여자랑’이라는 주의를 갖고 있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특히 유부남 새X는 ‘사랑이 있으니까 결혼을 안 하는 거지, 나처럼 부자도 아니고 젊지도 않은 남자랑 결혼 같은 걸 한다면 젊은 처자가 얼마나 가엽겠어, 그런 부분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일이 티끌만큼도 없을 때 끝내자는 거라고. 사랑이 없다면 그거야 당연히 결혼해야지-p.171’ 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와, 읽으면서 진짜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패주고 싶었다. 뭐, 이런 개 같은 논리가 있어?


  책의 표현들은 직설적이면서 상당히 감각적이고 참신했다. 작가가 1928년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감탄이 앞선다. 그러면 이 책을 82살 때 냈다는 말이잖아! 헐, 대박! 우리 엄마보다 훨씬 많아! 어쩌면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돌직구를 날릴 수 있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도 가끔 보면,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나이가 들면 그런 게 가능해지는 걸까?


  주인공은 꼭 남자를 잡아야한다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거나 남자나 섹스에 굶주린 사람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도하고 자존심만 세우는 것도 아니다. 적당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많은 생각과 느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내가 갖긴 아쉽고 남 주기는 아까운 마음을 절실히 느끼기도 하지만, 그걸 티내서 모든 걸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포기가 쉽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내 손을 떠난 것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드의 분위기로 흘러간다. 사실 남녀 사이는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른다고 하지만, 아마 그럴 거라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적어본다.


  ‘중년의 주장이 있는데다가 세상의 단맛 쓴맛을 아는 여자가 어쩌다 가여워 보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남자의 마음을 떨리게 해요…….’ -p.312

  ‘서로 웃을 수 있는 사이란 남녀 관계 중에서도 동그라미를 두 개 칠 만큼 좋은 사이가 아닐까. 최악의 사이는 물론 서로 우는 사이겠지. 그것보다 나은 것은 서로 화내는 사이다.’-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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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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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ast Genial, 2011

  작가 - 베네딕트 웰스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그것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살아가던 윌의 이야기였다. 우연히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교수와의 만남과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는 성장해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랬다.


  그리고 어릴 적에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원래 내 친부모는 아주 부자인데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부모 밑에서 살고 있는 거라고, 내 친부모는 딸을 혼내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개 엄마아빠에게 엄청 혼이 나고 방구석에 처박혀 훌쩍거릴 때 이런 상상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 상상했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 까라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할 흑역사가 떠올랐다.


  프랜시스는 친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들락거리는 엄마와 동네 변두리의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똑똑하고 운동도 제법 했지만, 이제 그는 뼛속까지 루저라는 생각에 그냥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엄마가 놀라운 비밀을 알려준다. 바로 그가 어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어난 시험관 아이였고, 천재인 남자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만약에 진짜 천재적인 과학자가 자신의 생부라면, 그가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준다면, 이 현실에서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프랜시스는 그로버, 엔메이와 함께 미국을 횡단하여 아버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버지를 만난다는 기대와 불안, 엔메이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 친구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찬 프랜시스.

  동생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며 자살을 꿈꾸는, 매력적이고 간혹 멋대로 행동하는 엔메이.

  부모의 기대대로 살아온,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친구들에게 매번 놀림을 받지만 반항하지 않고, 빨리 대학교로 진학해 마을을 떠나고 싶은, 이번 여행에서 일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그로버.


  소설의 대부분은 세 젊은이가 여행을 하면서 겪는 상실감, 두려움, 희망, 질투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비밀이라든지 그동안 말하지 못한 속마음, 술에 취해 내뱉은 실언과 무모한 행동들로 가득하다. 그랜드 캐넌에서 목숨을 걸고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그로버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또 누가 프랜시스가 술김에 그로버와 엔메이에게 온갖 화를 터트릴 거라 생각했을까? 그들의 여정 속에는 젊기에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서술되어있다.


  그 과정을 통해 세 명은 서서히 변해간다.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히 생각해보고,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된다.


  프랜시스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그로버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는 친구를 얻었으며 엔메이는 더 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여행의 끝에서 그들은 더 이상 작은 마을에서 살던 어린 꼬맹이가 아니었다. 외적으로는 변한 게 없지만, 내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관계 또한 미묘하게 변해버렸다. 그 부분이 다분히 현실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하긴 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니까.


  소설의 결말은 열려있다. 프랜시스는 일확천금을 따간 사내 아니면 그 바로 앞에서 좌절한 사내로 라스베이거스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결과에 따라 그의 미래는 확실히 바뀔 것이다. 만약에 일확천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독자라면 그런 결말을 상상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불쌍하니까 마지막은 동화 같은 결말이 좋겠다는 사람이면 그렇게 기억하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좌절된 꿈과 희망에 매달려 그걸 절대 놓아주지 않는 거야. 비명을 질러도 좋고 애원해도 좋아. 하지만 너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할 때조차 그것들을 놓아버려서는 안 돼. 만약 놓아버리면 그땐 모든 것이 끝장이야, 꼬마야 그 시점 이후로 너의 인생은 허깨비야. -p.285


  책을 읽는 내내, Evanescence의 'Bring Me To Life'라는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call my name and save me from the dark (중략) bring me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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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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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구병모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렸다. 상반신 탈의를 한 소녀의 뒷모습과 '파과'라는 제목에 야한 것을 상상한 난 음란마귀에 백일동안 푹 절여진 모양이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면서, 난감해졌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문체였다. 워낙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깔끔하고 간결한 문체로 된 글들을 많이 접해왔다. 그래서 이 책처럼 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육박하는 긴 호흡의 문체는 낯설었다.


  그렇지만 초반의 그런 당혹감을 극복하고 계속 읽다보면,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조금은 반영된 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노부인 살인 청부업자라니, 꽤나 매혹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킬러가 나오는 다른 소설과는 차이가 나는데, 이 책은 주인공이 대상을 살인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부인 살인청부업자를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은퇴를 하느냐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나이도 지긋하여 과거 옛 일을 회상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추억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도 아픈 과거가 있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은 조바심까지 갖고 있는 그런 주인공의 심경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런 부분은 그녀가 기르는 늙은 개와 부품도 없어서 수리가 불가한 냉장고, 그리고 사놓고 까맣게 잊어버려 상한 과일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면 굳이 살인청부업자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선배들은 쪼고,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의 심경은 복잡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함으로 '아, 그래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바로 그녀에게 보호해야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아주 오래 전 그녀는 스승이자 첫사랑인 류와 약속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였기에 그 옆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다른 조직에게 위협을 받아야했고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그녀에게 지킬 건 만들지 말자고 말한다. 그녀는 그것을 굳게 지켜왔다. 우연히 한 사람을, 그의 가족을, 그의 어린 딸과 부모를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갖지 못했던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대리 만족인지, 아니면 그의 친절한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이 이상한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녀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변덕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녀는 그와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격전을 벌이기로 한다. 그 대가로 다시는 살인청부업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방역업(그녀는 살인청부업을 이렇게 부른다)을 나가기 전에 늙은 개에게도 이렇게 일러둔다.


  "그러니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는 거다.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있는데, 처치곤란의 폐기물처럼 다는 쓰레기 안타는 쓰레기로 구분되기 전에." -p.137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보겠노라 생각한다. 빛나는 것뿐만 아니라 시들어가는 모든 시간까지 그녀는 받아들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p.333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문체였지만 읽으면서 그녀와 그에게 동화되기 쉬웠다. 하지만 싸우는 장면에서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명색이 두 킬러가 목숨 걸고 총과 칼을 들고 싸우는데, 긴장감이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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