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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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Effroyables Jardins, 2001

  작가 - 미셸 깽

 

 

 

 

  마지막 장면을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가끔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처음 읽을 때는 펑펑 울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이 찡해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년은 자신의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왜 걸핏하면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어린 그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창피한 존재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 소년은 삼촌에게서 2차 대전 때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소년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 아버지가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지, 삼촌 부부가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워하는지 알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레지스탕스였다.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아래에서 두 사람은 변압기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성공리에 폭파 임무를 완수한 두 사람은 다음 날, 독일군에게 체포당한다. 그 당시, 프랑스 비시 정부는 법률 하나를 통과시키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인질을 대신 처형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범인이 자수하지 않으면 대신 다른 사람들을 죽여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진범을 인질로 잡아놓고 범인보고 자수하라고 하다니……. 무고한 다른 두 명의 인질과 같이 잡힌 두 사람은 고민한다.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두 사람마저 희생시키는가.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진범이 자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을 한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삶이란 리셋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나중에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순수하게 나라를 구하고 침략자에게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폭파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결과 무고한 다른 두 사람마저 인질이 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 두 사람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니콜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죽게 해야 하나, 아니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를 살려야 하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굳이 자기가 나서서 총대를 멜 필요가 있을까?

 

  두 사람을 인질로 밀고한 사람은,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을 위해 상대팀의 주력 선수였던 둘을 신고한다. 같은 프랑스 사람끼리! 단지 자기 팀을 이긴 상대팀 선수라는 이유로!

 

  여러 사람의 선택이 맞물려지면서 소년의 아버지가 왜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받아 성인이 된 소년이 광대 복장을 하고 남긴 편지를 읽을 때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누구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 빚을 갚으려고 평생을 바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회피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걸까? 그리고 얼마나 불합리하면서 이성적인 걸까? 모순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은 또 얼마나 잔인하고 비극적인 걸까? 그러면서 곳곳에 처절할 정도로 아픈 희극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서 서로에게 남은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건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거짓을 제거하고 진실을 남기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상처는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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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리사 젠슨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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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alling in Love with English Boys, 2011

   작가 - 멜리사 젠슨

 

 

 

 

 

  원제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에서 붙인 제목을 보면 이 소설이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소설가이고, 블로그는 20세기에 발전해온 사이버 개인 공간이다. 흐음, 그러면 21세기에 사는 소녀가 제인 오스틴을 꿈꾸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내용일까? 아쉽게도 내 예상은 맞지 않았다.

 

  이 책은 영국에 잠시 오개 된 16살 된 미국 소녀 캐서린이 미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국의 문화에 익숙해가면서, 엄마의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윌과의 콩닥거리는 썸을 올린 블로그 글 모음이다. 미국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메일과 댓글로 소통하면서, 그녀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레짐작으로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오해가 밝혀지면서 해피해피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녀의 솔직하고 십 대 특유의 튀는 감성이 블로그 구절구절마다 잘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캐서린의 어머니가 연구하는 19세기에 살았던 캐서린 퍼시벌이라는 소녀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블로그와 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명의 십대 소녀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캐서린 퍼시벌의 이야기를 보면, 너무도 자연스레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813’이 떠오른다. 자신의 인연이라 믿었던 남자가 알고 보니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는 실속 없는 사람이었다거나,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하는 위기에 처한다거나, 언제나 자신에게 태클만 거는 얄미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남자가 사실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성격이 완전 다른 두 소녀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기까지 하면서도 윌 앞에서는 온갖 내숭을 떠는 21세기 캐서린. 사랑받고 싶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어떻게 보면 꿈꾸는 여린 소녀인 19세기 캐서린. 하지만 두 소녀 다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당당했다.

 

  특히 19세기 캐서린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난생처음으로 말대답을 한다. 사실 아버지가 선택한 남편감은 으……. 물론 19세기 캐서린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일기에서 접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영 아니었다. 작위가 있고 돈이 있고 성이 있다지만, 인품이라든지 성격이 완전 꽝이다. 어떻게 1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어떻게 해볼 생각을 했는지, 파렴치한이다. 결혼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 당시는 그 나이 대에 거의 다 했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어린 여자아이를 희롱하려고 하다니. 죽일 놈! 게다가 그 아빠라는 사람도 상당히 이상하다. 그가 자기 딸에게 그런 짓을 하려는 걸 몰랐을까? 그 야심한 밤에 둘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하다니! 그래서 자기 딸이 무슨 일을 당하면, 그걸 빌미로 결혼을 강요하려는 거였을까? 아무리 딸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다지만, 진짜 너무했다. 그런 주제에 그 결혼에 대해 딸과 부인이 반대하자 집을 나가버린다. 진짜 옹졸하고 편협하고 쪼잔하다.

 

  21세기 캐서린 역시 아버지와는 인연이 별로 없다. 이혼 이후, 그는 아버지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딸과 같이 보내기로 한 날에 나타나지 않거나, 딸에게 특별한 날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래놓고 나중에 돈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는 재혼 준비로 딸의 생일도 그냥 지나가버린다.

 

  아버지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한 두 캐서린은 대신에 막강한 아군으로 어머니를 갖고 있다. 19세기 캐서린의 엄마는 딸이 원하지 않는 결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남편과의 별거도 불사한다. 21세기 캐서린의 엄마 역시 자기 일 때문에 바쁘지만, 딸과의 대화 시간은 꼭 가지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낯선 타국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한다. 물론 딸의 연애를 은밀히 도와주기도 한다. 두 어머니 다 성격이 화끈하면서 다정했다.

 

  두 캐서린의 성격이 확연히 차이가 나서, 블로그와 일기가 번갈아 나오지만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성별과 이름 빼고 모든 것이 다른 두 소녀.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자. 우주가 도와준다고 나랏님도 말씀하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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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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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박범신

 

 

 

 

 

  책을 읽고 며칠 동안 텅 빈 한글창만 노려보았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얘기와 저 얘기는 모순되지 않을까, 그 부분을 넣으면 너무 생뚱맞지 않을까 등등.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감상문을 쓴 건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작가인 ‘나’이다.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삶과 글에 대한 철학 그리고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시절 제자인 ‘ㄱ’의 얘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꽤나 인상 깊은 단편 소설을 썼지만, 이후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남들과 다른 세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써보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혼자 사니 참 좋아’로, 자신이 살던 집 우물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바람에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ㄱ’의 과거 회상과 현재를 다루고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오빠와 부모님을 연달아 잃게 된 그녀. ‘남자 1’과 결혼을 했지만,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의 모든 행동들이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혼자 살던 중, 우연히 갈 곳이 없던 ‘ㄴ’과 ‘ㄷ’에게 잘 곳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둘이 사니 더 좋아’는 ‘ㄴ’의 이야기이다.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그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그는 아버지와 형을 잃고, 어머니마저 실어증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후 폭도 집안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유일한 위로는 기타였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가 되었던 밴드에서 불화가 생겨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중, ‘ㄱ’을 만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셋이 사니 진짜 좋아’는 예상대로 ‘ㄷ’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ㄱ’에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ㄱ’의 회상도 같이 들어있다. 탈북자였던 ‘ㄷ’은 다행히 조선족의 집에서 머물게 되지만, 그 대가로 그의 성폭력을 견뎌야했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그녀는 길을 떠돌다가 ‘ㄱ’과 ‘ㄴ’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오게 된다. ‘ㄴ’이 죽은 후, 그곳을 떠나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다.

 

  이후 ‘ㄱ’은 소설을 탈고하지만 스승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문장으로 그를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인터넷을 보니, 출판사에서 하는 책 광고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은교』에서 이루지 못한 새로운 사랑 이야기! 불가능한 가능한, 사랑. 한 남자와 두 여자,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광고만 보면 마치 남자 하나에 두 여자가 나오는 그런 AV 비디오가 연상된다. 어쩌면 내가 음란 마귀에 씌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이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데, 왜 그 부분만 부각시켰는지 알 수가 없다.

 

  세 사람은 각각 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ㄱ’은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환멸을 느끼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 마음에 있는 가시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가시에 찔리는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연이어 나타난 ‘ㄴ’과 ‘ㄷ’으로 인해,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둘, 셋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두 사람에게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묻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ㄴ’과 ‘ㄷ’ 역시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좋아하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하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의 배경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보이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나누고 보듬어주며,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외설스러운 부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표현했다. 아, 이게 예술과 외설의 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작가가 사용한 어휘와 표현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단어와 문장들은, 지금까지 내가 주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함축적이고 비유적이었으며 은유적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쩐지 글을 읽어주는 화자가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어투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남자인 ‘ㄴ’이 들려주는 형식인데, 그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성스러웠다. 혹시 세 이야기 다 ‘ㄱ’이 화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뺀 나머지는 ‘ㄱ’이 쓴 소설이 아닐까하는 추측까지 하게했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슬아슬함도 느껴졌다. 셋 다 애정에 목마르고 뭔가 한두 개 잃어버린 사람들이었기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빈자리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그게 100% 전부는 아니었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그 순간, 그들은 속으로 불안해했다. 언젠가는 이 편안함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ㄷ’이 가장 행복할 때 같이 죽어야한다고 울부짖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연장선으로 ‘ㄴ’은 그런 선택을 했던 걸지도…….

 

  편안한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울타리 밖으로 나가볼 것인가. 전자는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고, 후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다. ‘ㄷ’은 전자의 길을 택했고, ‘ㄱ’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들 셋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은 단순히 연인 같은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고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의미였던 것 같다. 작가의 표현대로 아픈 기억이 가시였다면, 셋이 나눈 사랑은 그 가시를 무디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더 이상 남을 아프게도 하지 않고, 자신을 찌르는 일이 없게 말이다.

 

  물론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서 셋은 여전히 가시를 품 안에 가득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그들은 추억, 그러니까 숨구멍을 찾았기 때문이다.

 

  문득 왜 하필이면 셋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아무래도 삼각형이 사각형보다 굴리기 쉽기 때문일까? 넷이면 둘씩 짝을 이루어 분리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삼위일체?

 

  하지만 난 책에 나온 세 사람처럼 사랑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애인님은 나 혼자 독점하고 싶으니까. 작가는 ‘고귀한 소유의 적합성을 결혼이 비천한 지배에의 욕망으로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p.53’고 했지만, 음란마귀에 쓰인 비천한 욕망덩어리가 나의 일부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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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별 2015-04-30 12:21   좋아요 0 | URL
전 나이가 들어도 독점할래요 ㅜㅜ
 
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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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임이슬

 

 

 

 

  조선 광해군 때 UFO와 비슷한 것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을 처음 접한 것은 ‘UFO가 날고 트랜스젠더 닭이 울었사옵니다’라는 책에서였다. 그 전까지는 서양에만 UFO가 나타난 줄 알았는데, 조선 시대에도 나왔었다니 놀랍고 신기했었다. 이후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만화도 등장했고, 얼마 전에는 드라마로도 나왔다. 이 책 역시, 그 사건을 기본 설정으로 하여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덧붙이고 연쇄 살인까지 양념으로 가미했다.

 

  임해군과 관련이 있다는 죄목으로 강원도 양양으로 귀양을 온 정 휘지는 눈 내리는 겨울 산에서 선녀, 아니 한 여인을 만난다. 우주선 고장으로 원래 도착하려고 했던 미래의 지구가 아닌, 과거의 지구로 오게 된 유리아 미르.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타고 내려온 그녀가 휘지의 눈에 선녀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주선을 고칠 때까지 휘지의 집에 머무르게 된 미르는 점차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휘지 역시 그녀에게 끌리지만, 어차피 그녀는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자신은 귀양 온 처지이기에 애써 그 마음을 억누르려 애쓴다.

 

  이런 두 남녀를 중심으로, 휘지를 짝사랑하는 안동부사의 딸 수연, 휘지와 우정을 나누는 그녀의 오빠인 수하, 새로 향교에 부임하여 미르를 마음에 둔 도명, 그리고 예전부터 수연을 좋아한 문혁까지 여러 청춘남녀가 등장하여 얽히고설킨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지만 확신이 없어 사소한 것에 오해하고 싸우다가 결국 사랑을 확인하는 두 주인공, 그들을 애끓는 마음으로 바라만 보거나 용기를 내 고백하지만 결국 차이고 마는 비련의 조연이나 두 사람을 끝까지 괴롭히는 조연까지, 로맨스 소설의 전형적인 인물 구성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있었다.

 

  거기에 조선 시대의 풍습이나 절기마다 있는 행사들이 적절하게 가미되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어휘 역시 가능하면 현대적인 것보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물론 ‘아빠 미소’라든지 ‘찌질하다’같은 단어들이 중간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니라 한두 번 정도여서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술술 쉽게 읽혔고, UFO가 나오는 장면도 그리 억지스럽지 않았다. 연쇄 살인과 반란의 연결이 자연스러웠고, 결말까지 가는 과정 역시 어디 하나 튀지 않았다. 꽤 재미있고 잘 짜인 구성이었다. 작년 말에 읽었던 네오픽션에서 나온 다른 로맨스 소설과 비교해보면, 이 책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여주인공인 미르의 갑작스런 변화였다. 처음 휘지를 만났을 때는 당돌하고 자기 할 말 다하면서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머무르면서는 약간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100% 바뀐 건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처음과 달라진 그녀의 말투와 태도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생면부지 사람의 집에 얹혀산다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걸까? 하긴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걸 거꾸로 하면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는 힘을 제대로 못쓴다는 뜻이겠지.

 

  아, 어쩌면 너무도 조선시대적인 미르의 말투는 그녀가 갖고 있는 번역기 탓인지도 모르겠다. 자동으로 말이 통하게 해주는 기계니까, 알아서 잘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르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별에 의문을 품었던 수연의 말과 행동이 더 현대적인 여성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쁘게 보면 여주인공의 성격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것이고, 좋게 보면 그녀의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리라.

 

  개를 이용한 연쇄 살인은 어쩐지 코난 도일 경의 ‘바스커빌의 개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1902년’를 떠올리게 했다. 단지 커다란 개가 나와서가 아니라, 투견을 훈련시켜 사람을 물어죽이게 하고 그 지역의 전설이나 미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미르를 곤경에 빠트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녀가 나타난 이후로 마을에 변고가 생겼다고, 다들 아우성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자신을 변호하는 휘지를 보며, 미르의 짝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전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나중에 선녀가 날개옷을 찾아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이후 어떤 이야기에서는 나무꾼 혼자 지상에 남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도 하고, 또 어디서는 나무꾼이 하늘로 그들을 찾아 가기도 한다. 또 다른 책을 보면 하늘에서 가족들과 잘 살던 나무꾼이 지상에 남아있는 노모를 보러왔다가 잘못해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결국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은 지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인간과 선녀는 많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끼리끼리 살아야한다……아니, 이게 아니라 외계인인 미르와 인간인 휘지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 자라온 시대가 다르고 생활 습관이나 풍습도 다르고, 외모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내부는 다를 테니까. 특히 미르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아, 그러면 휘지가 나이 들어 죽을 때마다 미르가 되살리는 건가?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두 사람이 비슷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400년 후에도 여전히 살고 있는 둘의 얘기가 후속편으로 이어지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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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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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한상운

 

 

 

 

 

 

  한 청년이 있다. 이름은 ‘성욱’.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몇 번의 낙방 끝에 꿈을 접고, 그냥 그런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대학 동창이자 7년 째 사귀고 있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 ‘인영’이 있다. 하지만 성욱은 인영에게 차인다. 어떻게 잡아볼 새도 없이.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렇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 날, 그의 앞에 시선을 잡아끄는 아가씨 ‘수정’이 나타난다. 척 보기에도 돈과 배경이 있어 보이는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갈 뻔한 그녀를 구한 성욱은 영웅이라도 된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있어 보이는 남자는 사채업계에서 큰 손이라 불리는 방 회장의 아들이었고, 수정은 그 남자의 약점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수정과 한패로 몰린 성욱. 거기다 해결사로 유명한 ‘일도’가 사건에 끼어들어 두 사람을 쫓으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가기만 한다.

 

  유쾌한 글이었다. 얼떨결에 폭력배에게 쫓기게 된 한 청년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냥 고생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전과 달리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성숙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여인과의 운명 같은 이끌림, 마약과 살인으로 점철된 조직의 비정함, 복수 등이 양념처럼 들어있었다. 그래서 첫 장을 펼치고 나서 마지막 장까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쫓기는 성욱과 쫓는 일도의 거리가 좁혀지면 ‘어떡하나’하고 조바심을 냈고, 거리가 멀어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정의 비밀과 거짓말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혹시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호구 같은 짓만 골라하는 성욱에게 ‘이 멍청아!’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일도가 진상을 알아차리고 상욱을 도와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수정이 예쁘지 않았다면, 상욱이 그렇게 목숨 걸고 도와주려고 나섰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역시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인가보다.

 

  책을 읽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성욱에 대한 묘사에서 받은 인상은 30대 초반에서 중반이었다. 왜냐하면 몇 번 사법고시를 낙방했고, 출판사에서 몇 년 근무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한두 번을 몇 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3번은 되어야 몇 번이라는 말을 쓰니까, 그런 걸 감안해서 성욱의 나이를 그렇게 보았다.

 

  그런데 인영과 7년을 사귀었단다. 확실히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대학 시절인 것 같다. 인영은 대학을 다닐 때 사법고시를 합격했다고 나온다. 인영이 합격한 다음에 사귀자고 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 전부터 사귀었다고 생각하면……. 음, 나이대가 맞지 않는다. 3학년 때부터 사귀었다고 해도, 두 사람의 나이는 30이 되지 않는다.

 

  30살도 되기 전에, 열정도 없고 꿈도 없고 의욕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는 남자라니……. 허황된 꿈을 가지고 늙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남자라면 차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도가 해결사 노릇을 하기 2년 전까지 경찰이었다고 나온다. 휴직계를 내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2년 전까지 경찰이던 사람을 어떻게 믿고 해결사 일을 맡기는 거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오는데, 진짜 모를 수 있나? 그냥 사무실에서 서류만 보던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뛴 것 같은데? 좀 이상했다.

 

  수정과 성욱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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