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 - 배수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내용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영상화가 되어 재생되기도 하고, 내용이 차근차근 정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요리조리 뜯어보고 맞춰도, 어느 한 부분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 나 퍼즐 못 맞추지 참. 그제야 다른 집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는, 오백 조각이나 천 조각 맞춘 퍼즐이 우리 집에는 왜 없는지 기억이 났다. 퍼즐을 맞추다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짜증을 내면서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뜨개질이나 수를 못 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르면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추리 소설이나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하는 인문학 책을 주로 읽어왔다. 이런 스타일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낯설었다.


  한 번을 읽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뭐지? 두 번을 읽었다. 여전히 어딘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가? 세 번을 읽는다. 헷갈린다. 어, 잠깐만 이거 앞에서 나왔던 거 같은데. 아니다, 저번에 읽어서 기억하는 건가? 결국 이 책은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아직 독서 수준이 미흡해서…….


  이 소설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소제목도 없고, 그냥 1,2,3,4로 되어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중복되고 배경 설정도 비슷하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마다 조금씩, 미묘하게 배경이나 상황들이 달랐다.


  1에서 여자가 당한 일과 2에서 남자가 한 일이 배경적으로는 일치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에서 나온 상황과 3의 설정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 1을 읽으면서 인물에 대해 내렸던 정의가 2,3을 지나면서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내가 판단한 인물이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흰 버스, 동네 약사에 대한 소문, 맹인 소녀, 전화 상담 등등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도 많은 요소들이 겹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살짝 위치를 바꾼다거나 비틀리면서, 비슷하지만 앞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인물들도 조금씩 달라지고 말이다.


  어쩌면 인물에 대해서 특정한 어떤 인상을 받도록 작가가 판을 짠 다음, 조금씩 그것을 해체하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을 보며 작가는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넌 내 함정 카드에 걸려들었어.’라면서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얼마나 주관적이며 자의적인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나 인간은 타인에 대해 끝없이 평가를 하는데, 그것이 사소한 작은 것 하나로도 수시로 바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에 대해 그러하듯이 남도 나에 대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넌지시 일깨워주려는 걸까?


  아니면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우연히 상황과 이름이 비슷할 뿐, 같지가 않은 것이다. 평행 차원 이론을 따르면 가능하다. 작가는 같지만 다르다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가 아니니까, 이건 내 헛된 망상이다.


  나 참, 소설에 대한 감상을 하라니까 망상을 하고 앉아있다. 불성실한 독자다. 하지만 이건 불친절한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슬쩍 투덜거려본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감대 형성 실패다. 독자도 불성실하고 작가도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게 이 작가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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