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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평점 :
작가 - 배상민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경제난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한다. 그 전에 있었던 '88만원 세대'라는 말보다 더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단어다. 이 책은 그런 3포 세대의 애환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웃기게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유행어 중에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을 나타내는 가장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간혹 책 속에서 보여주는 상황은 웃음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게 재미있어서 웃는 건 아니었다. 어이없기도 하고 당황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퍼졌다. 그들이 겪는 모든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정규직을 얻는데 실패한 남자는 돌아온 연인과의 잠자리에서 예전처럼 자신 있는 섹스를 할 수 없다. 콘돔이 없다는 말에 그의 고개는 수그러질 수밖에 없다. (유글레나)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여자는 결국 낙태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남자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기다리지만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조공원정대)
조직 보스의 여자를 건드렸던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아이를 껴안기로 했다. 이 세상 어디선가 자신이 뿌린 씨가 자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미운 고릴라 새끼)
남자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사기를 당했을 때, 그녀는 충격으로 유산을 하고 말았다. (헤드기어 맨)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돈 벌기 쉽다는 말에 혹해서 건너온 외국인 피자배달부의 이야기는 한국의 피자배달부와 겹쳐 보이면서 웃픈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
종족 번식은 본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본능을 억눌러야했던 젊은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인은 무조건 남들이 하는 대로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부모의 과시욕 때문일 수도 있고, IMF나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거세시키고 만다. 남들보다 능력이 없다고 분류되었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청춘은 그냥 그렇게 시들어만 갔다.
생각하면 무척이나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저자는 더없이 유쾌한 어조로 읊어나간다. 그래서 더 슬프다. 게다가 몇몇 이야기는 안타까운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안녕 할리'와 '헤드기어 맨'이 그러하다. 읽다가 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이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원인을 미국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사랑 그녀를 데리고 간 자는 미국인 영어 강사, 공장이 망한 원인도 미국에서 생긴 모기지론 사태, 자기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태어나보니 백인과의 혼혈. 그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는, 별 의미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걸까?
마지막 두 편은 현대 한국 청년들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말하고자하는 바는 비슷했다. '악당의 탄생'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돈이 되는 일만 맡은 슈퍼맨과 부자가 되는 법에만 열광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담의 배꼽'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가진 자가 되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두 형제가 반목을 한 것이다. 비록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바꾸었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면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또한 돈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신문을 보면 과연 그럴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수단 때문에 인간으로 누려야할 행복을 꿈도 꿀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아, 그래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