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かわいそうだね?, 2011년

  작가 - 와타야 리사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불쌍하구나?’와 ‘아미는 미인’


  두 작품 다 20대 미혼 여성의 미묘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꼭 20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각각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대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다 해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각 사랑하는 남자 친구나 고등학교 절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냥 속마음을 감추고 이해심 많고 배려 잘하는, 착하고 좋은 여자로 남길 원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속병도 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표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들은 착한 여자라는 가면을 벗고 싶지 않았다. 그걸 벗어던지면, 자신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고 믿었으니까.


  ‘불쌍하구나?’의 주인공 쥬리에는 남자친구 류다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걸핏하면 서양 스타일을 외치는 그. 아무리 외국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 여자 친구 아키요와의 문제이다. 아무리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났다고 해도, 전 여자 친구를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고 하다니! 그는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쥬리에를 이해심도 없고 쿨하지 못하다고 나무란다. 살 곳이 없는 아키요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자기를 말리려면 차라리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사람의 동거를 받아들이기로 한 쥬리에.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책을 몇 장 읽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류다이, 너 이XX 좀 맞자.’ 딱 보니까 아키요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다시 해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은데, 이 남자는 그런 걸 전혀 모른다. 그리고 결국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이 남자, 겉으로는 불쌍하니까 도와야한다는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그러면서 여자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강한 여자가 좋다고 하지만, 약해보이는 여자에게 보호 본능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의 공주님들이 하릴없이 창가에서 왕자님 오기만을 기다린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쥬리에가 내 동생이라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설득했을 것이다. 저 놈은 이미 글렀어, 같이 사는 걸 용납 못하면 헤어지자고 하잖아. 양 손에 여자 하나씩 들고 간 보겠다는 거야. 너 그렇게 이해심 많은 여자 친구 역할만 하다가, 뺏긴다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잖아. 그거 거꾸로 하면 자주 보면 정든다는 말이야. 아아, 나라면 SNS에 류다이의 무신경함과 아키요의 후안무치한 뻔뻔스러움을 공개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쥬리에, 이 착해빠진 것. 아무리 착해도 네 밥그릇은 뺏기지 말아야지.


  이 이야기를 읽고 애인님에게 ‘자기 만약에 혹시라도 불쌍하다고 다른 여자 거둬주면 우린 끝이야! 친구라도 같이 사는 건 난 싫어!’라고 했다가 혼났다. 자기는 생각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상상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이상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책 아닌데, 흑흑. 이건 다 재수 없는 류다이 때문이다. 나쁜 XX!



  ‘아미는 미인’의 주인공 사카키는 너무도 예쁜 친구 아미가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언제나 자신은 그녀의 뒤에 머물러있는 존재감 없는 시녀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미의 결혼 상대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는 어딜 봐도 아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왜 하필이면 공주님인 아미가 저딴 남자와?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고이케의 심리 분석을 들으면서, 사카키는 자기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뜨끔했다. 혹시 내 과거를 작가가 엿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카키의 과거가 어쩐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고이케가 그녀의 심리를 나름 해석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나도 예전에 그런 심정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래서 내가 그 아이와 멀어지게 된 거구나. 만약에 그 때 주변에 고이케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책에서 읽고 느꼈던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신중하고 내 자신과 주변에 대해 냉철하게 파악을 했더라면, 지금도 그 아이와 연락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더 속으로 파고 들어갔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뭐라고 딱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후회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련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황당함과 분노는 사라지고, 내 어린 시절의 철없음에 대한 반성만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였던 것 같다.


  불쌍하구나? 내 어린 시절아. 하지만 내 미래는 불쌍한 삶이 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