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 그르니에 저, <섬>에 쓴 알베르 카뮈의 서문이 빼어난 문장이라고 알고 있어서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가 부럽다는 내용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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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장 그르니에, <섬>,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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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가 부러워지는 경험이 나도 있다.
2.
어떤 대상에 대해 관찰하여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을 우러러본다.
비행기 안에서 두 남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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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씨는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데이브는 식사 위에 얹어둔 포일을 열었다가 다시 덮었다.
“간단하게 표현해도 된다면,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관찰이요?”
“데이브, 당신은 가방이 하나뿐입니다. 기내용 슈트케이스도 없이 백팩 하나만 들고 탔다는 건 체류 일정이 짧은 여행이라는 얘기죠. 백팩이 아주 가볍게 보이지는 않으니까, 수화물로 부친 짐은 없을 거예요. 저게 짐의 전부겠죠. 여행은 아닐 것 같고, 간단하게 처리하고 곧장 돌아가야 하는 비즈니스 일정일 것 같습니다. 가방이 하나뿐이라면 의자 밑에 넣어두어도 될 텐데, 굳이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았어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품이 없다는 말일 겁니다. 여권이나 중요한 문서, 혹은 서류는 몸에 지니고 있을 테죠. 어떻습니까?”(김중혁, ‘스마일’에서)
- 2017 이상문학상 작품집, <풍경소리>, 168~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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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하고 분석적이다.
3.
낱말의 미묘한 차이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우러러 본다. ‘불안’과 ‘겁’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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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겁나나, 친구?”
“겁나는 게 아니라 불안한 거지.”
“불안과 겁이 어떻게 다른데?”
“글쎄, 불안은 비행기 좌석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성거리는 것이고, 겁은 비행기 좌석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얼어버리는 거겠지.”(김중혁, ‘스마일’에서)
- 2017 이상문학상 작품집, <풍경소리>,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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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쉬워 보이지만 불안과 겁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