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글 두 개
봄을 비롯한 계절의 변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일이 위험한가?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족쇄에 묶여 신음하거나, 어쨌든 신음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래하는 검은 새나 노랗게 물든 시월의 느릅나무처럼 돈 한 푼 들지 않을뿐더러 좌파 신문 편집장들이 계급 관점이라 부를 만한 게 없는 자연 현상 덕택에 삶이 종종 살 만하다고 말한다면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 <천천히, 스미는>, 97~98쪽, 조지 오웰이 쓴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에서.
처음에도 말했듯이 인간관계 속에서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해 버릇하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적이 일어난다.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인간을 하느님이 창조하셨을 리가 없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다.
- <노란집>, 67쪽.
2. 골라 읽는 재미
작가 25명이 쓴 산문이 실려 있는 책 <천천히, 스미는>을 하루에 한 편이나 두 편을 읽기로 했다. 소설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산문으로 읽기 좋은 박완서 저, <노란집>도 하루에 한 편이나 두 편을 읽기로 했다. 이 두 권을 가지고 차례대로 읽지 않고 목차에서 제목을 보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읽으니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차례대로 읽지 않는다면, 여러 산문 중에서 내가 읽은 글인지 읽지 않은 글인지 어떻게 아느냐. 하나라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면 그 글은 읽었다고 보는 것이다.
3. 적합한 지점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
토요일 아침에 발레를 배우러 가서 집에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나면 상쾌하다. 이게 바로 운동의 맛이다. 땀을 흘릴 정도로 발레를 열심히 했으니 건강에 좋겠지. 그러나 건강에 좋다고 해서 운동을 많이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살이 빠져 기운이 없게 된다. 친정어머니는 운동을 많이 해서 오히려 병을 얻은 사람의 예를 들면서 내가 살이 빠져 병을 얻을 수 있음을 걱정하신다.(실제로 나는 최근 체중 3키로가 줄었다.) 평소 ‘걷기’도 하니 그것으로 운동이 충분하다며 아예 발레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하신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고 그러나 살이 빠지지 않게 운동을 해야 하고. 어쩌란 말인가. 적합한 지점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
책을 읽으면 마음이 즐겁거나 어떤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아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책을 많이 읽은 날은 몸이 피로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몸 건강을 위해서는 책을 읽지 말아야 하고. 어쩌란 말인가. 적합한 지점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
알라딘에서의 블로거 활동도 그렇다. 열심히 하자니 다른 일을 못하겠고 열심히 안 하자니 사는 재미를 하나 잃는 것 같고. 어쩌란 말인가. 적합한 지점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
모든 게 다 그러한 것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적합한 지점을 찾는 일인 듯. 그런데 적합한 지점을 모르겠다는 것, 이게 문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4. 불공평한 게 아니다
살이 빠져 운동 시간을 줄여야겠다는 내 말에 살이 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누구는 살이 쪄서 고민인데 누구는 살이 빠지는 게 싫다니.” 이에 대해 내가 말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거야. 너는 쪄서 걱정이고 난 빠져서 걱정이고, 우리는 똑같은 무게로 걱정하고 있는 거야.” 덧붙이자면 자기 몸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사람들 대부분이 살이 쪘거나 말랐다.
5.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알라딘 ‘북플’에 들어가서 알았다. 내가 예전에 쓴 ‘단상(51) 해서는 안 될 말’이란 제목의 글에 지난 4월 14일에 어떤 알라디너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을. 내가 그 글을 올린 날짜를 보니 ‘2013년 1월 17일’이다. 그렇다면 4년 전에 올린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인데 요즘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4월 16일에도 작년에 내가 쓴 어떤 글에 비회원 님이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어떤 경로로 내 글을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과거에 쓴 글을 현재 유심히 읽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올리는 일에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쓴 글이라고 해서 수명이 다한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또 이런 시시한 생각 쪼가리를 써서 올린다. 왜냐하면 준비된 글은 없고 오늘 무슨 글이라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의 포로가 되었으므로.
이 자리를 빌어서
예전에 쓴 글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오늘 동네에서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