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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주나 지난 해 마음이 겪었던 것을
지금은 겪지 않으나
다음 주나 다음 해에 다시 겪을 것이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
하나의 원인에서 생긴 슬픔을
어제도 참지 못했고
내일도 참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원인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견딜 만하다.
심지어 해결되지 않은 무거운 근심조차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허락한다.
후회도 머물지 않는다.
되돌아온다.
즐거움은 불시에 우리를 찾아온다.
즐거움의 궤도를 눈여겨봤더라면
길목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발견하지 않고 예상했을 텐데.
아무도 그 길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 <천천히, 스미는>, 81쪽, 앨리스 메이넬이 쓴 ‘삶의 리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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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다르게 줄 바꾸기를 해서 옮겼다. 이렇게 옮기니 문장이 담고 있는 뜻뿐만 아니라 문장의 리듬도 함께 맛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리듬 있는 문장은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음을 감상하느라 여러 번 읽었다. 리듬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여러 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읽으면서도 리듬이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리듬이 느껴진다면 그 문장은 좋은 문장이라고 믿는다. 

 

 

 

 

 

 

 

 

 

 

 

 

 

 

 

 

<천천히, 스미는>은 영미 작가 25명의 에세이 32편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글 잘 쓰는 작가는 어떤 내용과 어떤 구성으로 에세이 한 편을 완결했는지 궁금해서 사 보게 됐다. 좋은 글을 감상하는 재미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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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4-1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목차를 보니 아주 반가운 사람도 있군요. 그 사람의 글이 <소나무의 죽음>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욱 반가워서, 제가 읽었던 ‘소나무의 죽음‘한 구절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 * *

한 소나무의 죽음

이제 나무가 쓰러진다.

쓰러지면서 언덕 비탈에 바람을 보내고는 계곡에 있는 자신의 잠자리,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잠자리에 눕는다. 전사처럼 자신의 녹색 망토로 몸을 감싸면서 깃털처럼 부드럽게 눕는다. 서 있는 것이 이제는 싫증이 난다는 듯 자신의 구성 분자들을 흙으로 돌려보내며 말 없는 기쁨으로 지구를 감싸안는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中에서

페크pek0501 2017-04-11 22:41   좋아요 1 | URL
오렌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옮겨 주신 <소나무의 죽음>, 찾아 읽으니 좋네요.

그런데 번역이 좀 다르군요. <천천히, 스미는>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리고 이제 나무는 산비탈에 퍼덕 바람을 일으키며 계곡의 안식처에, 결코 일어나지 않을 그곳에, 깃털처럼 부드럽게 드러눕는다. 전사처럼 초록 망토를 두르고서 마치 서 있는 일에 지쳤다는 듯 고요한 기쁨으로 땅을 끌어안고, 자신을 이루던 원소들을 흙으로 되돌려 보낸다.(111쪽)


번역이 다른 두 글을 비교해 읽으니 재밌습니다. 뜻은 큰 차이가 없지만.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어요.

왜 마을 종은 애도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는가?(112쪽)

- 이 문장이 가슴을 쾅, 하고 때리는 듯합니다.

님 덕분에 좋은 글 한 편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