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니스엘보’라는 병으로 팔에 주사를 맞으러 다닌다. 오른팔이 다 나으니깐 왼팔이 아프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 내가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사가 아프면 어떡하지? 아플까 봐 두려워.’라고 생각하는 태도. 또 하나는 ‘주사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그래 막 찔러라. 막 아파라.’라고 생각하는 태도. 이상하게도 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프다고 느끼고 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프지 않다고 느낀다. 후자의 태도를 선호하게 된 이유다. 후자의 태도를 이젠 모든 일에 적용하기를 좋아한다.
2. 내가 어떤 일을 바라다가 실망하게 되었을 때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아!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반면에 ‘그래, 막 그래라.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3. 깊은 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걷게 되어 나쁜 사람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또는 깊은 밤 한적한 숲속을 걷게 되어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제발 아무것도 나타나지 마라. 무서워 죽겠다.’라고 생각하며 겁먹는 태도. ‘뭐든 나타나려면 나타나라. 나보고 뭐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며 배짱이 두둑한 태도.
4. 후자의 태도가 당연히 무섭지 않게 되어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나처럼 생각하는 이의 글을 읽고 반가웠다.
우리에겐 배짱의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내가 느끼는 열등한 부분에 대고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번 외쳐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험만 보면 긴장하고 떠는 나에게 “그래 나 좀 긴장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키가 좀 작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집 좀 가난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인정해버리고 나면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열등한 요소를 치고 올라가려는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열등한 부분을 숨기고 부끄러워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인정해버리고 “그래서 어쩌라고?” 해버리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나도 모르는 내면의 힘이 나옵니다.
- 혜민,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159쪽.
5. 어떤 평가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위권에 들면 어때서?’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편해진 경험이 있다. 모기가 방 안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잠자는 동안 모기에 물리면 어떡하지?’라고 불안해 하면 잠이 안 온다. 하지만 ‘어디선가 배부르게 피를 먹고 온 모기일지도 몰라. 소화불량에 걸려 식욕이 없을 수도 있잖아. 설사 내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도 그 작은 모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잠이 온다.
6. 모기가 방 안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 방문을 잠깐 열어 놓았다가 닫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방문을 잠깐 열어 놓은 동안 분명히 모기가 나갔을 거야.’라고. 이때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모기가 앵~ 하고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속이는 것, 성공이다.
7.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속임의 지혜가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