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라한 인간일 뿐
커트 보니것 저, <나라 없는 사람>을 다 읽은 줄 알았더니 뒷부분 20쪽쯤이 남아 있었다. 얼른 읽고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어야 되겠다 싶어 그 뒷부분을 읽었다. 이런 글에 밑줄을 그었다.
“솔, 나는 소설가이고 내 친구들 중에는 훌륭한 소설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그들이 아주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까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력에 우월감을 갖고 자기가 제일인 양 우쭐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인생 앞에선 그저 어리석은 실수나 하며 사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한 번쯤 비굴한 적이 있고, 한 번쯤 거짓말로 남을 속인 적이 있고, 한 번쯤 악의에 찬 행동으로 남에게 고통을 준 적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군가가 알까 봐 두려워하는 일, 싹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 그런 인간일 뿐이라는 것. 아무리 예술가로선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하면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예술가로서 작품의 역사가 화려하다고 우쭐대지 말고 초라한 인간일 뿐임을 알 것.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 것.’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도 마찬가지.
2. 위대함이란 한계를 극복하는 것
“솔, 당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나요?”
육 초가 흔른 후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없다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재능으로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 같네. 설령 재능을 타고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뜻 같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우리는 “당신은 재능을 타고났군요.”라고 말할 게 아니라 “당신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군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 단지 재능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라면 우리가 우러러볼 이유가 없긴 하겠다.
3.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에 대하여
다 읽은 책은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습관이 있다. 저자 이름, 책 제목, 간략한 내용, 읽은 날짜(월로 표시함.) 등을 쓰는 것이다. 최근에 읽기를 끝낸 책 다섯 권을 이 노트에 써넣으면서 뿌듯했다. 다섯 권이 추가되는 기쁨을 누린 것. 다섯 권을 한꺼번에 읽은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읽기 시작해서 반 이상 읽은 책들로 어떤 책은 끝부분 몇 십 쪽을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백 쪽가량을 읽지 못했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끝까지 다 읽고 노트에 쓴 것이다.
이렇게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의 형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꾸준히 독서하며 살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좌우할 때가 많다. 형식이 중요한 이유다.
4. 나의 엉터리 기억력
앞으로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로 하겠다. 커피 주전자가 뜨거운 걸 알고, 내 정신 좀 봐 커피를 안 마셨구나 생각하며 커피를 한 잔 탔는데 마시려고 보니 아까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 게 기억났다. 이미 커피를 탔으니 그냥 마셔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반 잔만 마시고 반 잔을 버렸다. 그래서 오늘 한 잔 반을 마신 게 되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며칠 전, 어느 님의 서재에서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글을 읽고 나도 그 단편을 읽었다고 댓글을 쓰고 나서 생각했다. ‘혹시 내가 그걸 읽지도 않고 읽었다고 착각한 건 아닌가?’ 그래서 확인 들어갔다. 이 소설은 ‘2006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있었고 내가 읽은 게 확실했다. 밑줄이 많이 쳐져 있고 뭔가를 써 놓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책을 잡은 김에 한 번 더 읽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5.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생각해 왔는데 착각이었어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는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서치료사’라는 직업이 나온다. ‘독서치료사’인 화자는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게 하는 사람이다.(세상에 맙소사. 이런 직업을 궁금해 했는데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나온 적이 있었다니...)
![](http://image.aladin.co.kr/product/61/69/cover150/8970127380_1.jpg)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한 것.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누구에겐 ‘유일한 긍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고통은 심리 치료의 시작이고 쾌감은 심리 치료의 끝이구나.
동일시는 자기 연민을 낳고 소외는 자기 부정을 불러오는구나.
독서하면서 자신을 읽어야 하는 거구나.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 독서를 통해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준다면 나는 당신이 품고 있는 지옥의 밑그림을 그려줄 수도 있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그래서였구나. 내가 책을 갖고 다닐 때 책 표지를 누군가가 볼까 봐 조심했던 게 그래서였구나. 지하철에서 사람 많을 땐 책을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게 그래서였구나.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게 될 어떤 것들에 대한 단서를 책이 제공하게 될까 봐 싫어서였구나.
그런데 알라딘 서재에서는 어떤가?
어머나, 이 서재에선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을 다 공개했으니 페크는 민낯을 공개한 셈이구나.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여겨 왔는데 착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