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서재의 ‘즐겨찾기등록’ 수가 202명이 되었다. 이 숫자에 황송하다.

 

 

그런데 저 숫자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이 있으리라. 세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도 있으리라.

 

 

늘 그런 것이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위에 나는 사람이 있는 게 인생인 것이렷다.

 

 

그러나 나, 202명에 대해 과분하게 생각한다. 올챙이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자신이 용케 모면한 불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할 일이다.(79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2.
내가 오래전에 모 문화센터에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그 문화센터가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를 가장 많이 배출시킨 곳이라고 공공연히 광고하는 걸 봤다.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마치 기계로 좋은 소설 작품을 제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쓰기에도 분명히 어떤 기술이 필요한 건 맞지만 무슨 제품 생산하는 듯한 시스템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틀렸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좋은 글을 쓸지 모르나,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좋은 글이란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술로만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의 관찰력, 통찰력, 지혜, 안목, 훌륭한 마음 등을 통틀어서 ‘고도로 발달한 정신’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정신의 세계 없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술만 가지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글이 있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글재주’가 있으면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어느 정도 잘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258~259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방법만 배운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사평론과 칼럼, 논술문과 생활 글은 더 그렇다.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260~261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3.
권력은 어느 세계에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신경숙 표절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문학 세계에서도 권력의 힘이 막강해서 작가들이 인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작가는 글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맥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자기의 길을 가고자 묵묵히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문단과의 교류도, 인터뷰도 사양하고 게다가 저명한 문학상까지 거부했던 에밀 시오랑 같은 수필가(철학자이기도 함.)가 있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헤르만 헤세가 쓴 글 중에 기억해 두고 싶은 글이 있다.

 

 

작가란 직업은 조용히 눈을 뜨고 기다리면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일은 땀과 불면의 밤을 요구할지라도 귀중한 것이며, 더 이상 ‘일’이 아닌 것이다.(95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긴 시간 동안 글을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새 좋은 작품이 탄생하여 명성을 얻게 되는 게 작가라는 직업이다. 명성은 작가의 고독한 노력 뒤에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인맥 관리나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4.
올해 만난 책 중에서 좋은 책 다섯 권을 뽑는다면 그중 하나로 에밀 시오랑의 책을 뽑겠다.

 

 

작가는 자기만이 아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책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에 따르면, 에밀 시오랑은 이런 진실을 말하고 있네. 

 

 

자살에 관한 진실.

 

 

내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면, 그렇다,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온 인류가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3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주체적이어야 한다. 나 때문에 죽을 수는 있어도 타인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는 것.

 

 

기대에 관한 진실.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46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기대할 게 없으면 실망도 불행도 없다. 실망도 불행도 따지고 보면 ‘기대’라는 놈 때문에 생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태어남을 하나의 파멸로 보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되리라.

 

 

희망에 관한 진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식하지 못하는 희망은 그가 내던져 버린 혹은 고갈시킨 다른 모든 명백한 희망을 보상해 주고 있다.(7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희망 없이 살겠다는 것도 알고 보면 ‘희망’일 테니까,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다.

 

 

성공에 관한 진실.

 

 

모든 성공은 치욕스러운 것이다. 그 치욕에서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242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직장에서 승진했다는 것은 과장해서 말하면, 경쟁자를 짓밟았다는 걸 의미한다. 경쟁자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의미한다. 성공이란 이렇게 영광스럽기보다 치사하고 치욕스러운 것이다. 성공의 자리는 누군가를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5.
남의 얘기에 공감해 주는 일은 왜 중요할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심하게 다툼을 한 부부가 랍비를 찾아왔다. 자기네 부부 중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 달라는 것이다. 랍비는 먼저 남편을 불러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겠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랍비는 남편의 말에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잠시 후, 랍비는 아내를 불러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맞습니다.”

 

 

이렇게 랍비는 아내의 말에도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는 아무 결론도 내려 주지 않고 부부를 돌려보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다.

 

 

“랍비 님, 서로의 주장이 다른데 왜 랍비 님께서는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맞장구쳐 주었습니까?”

 

 

그러자 랍비가 웃으며 말했다.

 

 

“부부가 싸울 때에는 누가 옳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돼요. 부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달아오른 감정을 식히는 것이랍니다. 제가 서로의 말이 옳다고 들어 주기만 하면 두 사람은 화가 식게 되지요. 제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그렇게 화해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랍니다.”

 

 

공감의 힘은 위대하구나.

 

 

 

 

 


6.
육아에 전념하던 옛날에 쓴 일기를 보니 깜짝 놀랄 만한 글이 있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 갈 것.’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생활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란 말이지?

 

 

일기 쓰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거지. 시간이 많은 흐른 뒤에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일기장이라는 것. 그래서 내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은 이가 있다면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수 있다는 것.

 

 

 

 


7.
어느 님이 댓글로 쓰셨다. 죽으면 ‘자기가 쓴 글’이 쓰레기가 되고 만다고.

 

 

그렇겠다. 그러니까 죽은 뒤에 ‘자기가 쓴 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거다.

 

 

내가 죽은 뒤에 내 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 내 개인용 넷북에 저장해 놓은 글, 유에스비에 저장해 놓은 글, 노트에 볼펜으로 쓴 글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가족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내 글은 모두 불태워 줘.”

 

 

(하하~~. 이렇게 쓰고 보니 웃음이 나오네. 설마 출판사에서 나온 누군가가 내 미발표 원고를 묶어서 책으로 내자고 할까 봐서?)

 

 

(하하~~. 그게 아니고요. 아파트 공동 ‘폐품 쓰레기통’에서 내가 쓴 일기장이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눈에 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싫잖아요. 싫은 정도가 아니라 끔찍하잖아요.)

 

 

그러니까 종이 일기장은 불태우고, 컴퓨터에서 내 글 전부 삭제하고, 내 유에스비도 부숴 버려야 한다고 유언을 해 놓아야 하는 거다. 이 알라딘 서재는 폐쇄하라고 해야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무섭네. 그리고 슬퍼지네. 하지만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니...

 

 

 

 


8.
오십 대의 직장 동료가 내게 말했다.

 

 

“요즘 책을 안 읽으니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덧붙인다.

 

 

“나이 드니까 순발력이 없어지고 판단이 느려져요.”

 

 

아, 그거였구나. 내가 독서를 하며 살아도 바보 같은 짓을 자꾸 한다고 느꼈는데 그게 나이 탓이었구나.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내가 푼수 병에 걸린 거였구나.

 

 

내가 요즘 푼수 짓을 해서 죽겠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나이 때문이라는 것. 이삼십 대에 잘 돌아가던 두뇌가 이젠 잘 안 돌아가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라는 것.  

 

 

내가 예전에도 어떤 글에 쓰지 않았던가. 독서를 해도 왜 똑똑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답을 동료가 가르쳐 주네.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지나 봐.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지. 

 

 

노인이 젊은이보다 못하지 않고 노자老子가 부처보다 못하지 않으며, 파랑이 빨강보다 못하지 않다. 노인이 젊은이처럼 굴려고 할 때만이 보잘것없어진다.(130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나이 듦은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는 말로 읽혀지네.  

 

 

 

 


9.
어느 님이 서재에 새 글을 올려놓고 가림막용으로 올린 글이라고 해서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이 창피해서 그걸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새 글을 올렸다는 말이다.

 

 

나랑 똑같잖아. 하하~~. 나도 그렇다. ‘저 글이 창피하니 빨리 새 글을 올려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서재에 들어와 (가장 최근에 올린) 내 글을 보면 마치 나의 발가벗은 몸을 공중에 높이 매달아 놓은 걸 보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런 걸 극복해야 할 텐데. 뻔뻔해져야 할 텐데. 뻔뻔해지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내 글을 읽은 분들 중 한 분이 내게 말한다.

 

 

“이봐, 뭐 이런 걸 글이라고 올려? 여기가 개인 낙서장인 줄 알아?˝

 

 

내가 답한다.

 

 

“예, 여기는 개인 낙서장이에요. 제게는...”

 

 

물론, 가상해 본 물음과 답이다. 이 서재를 나의 낙서장으로 알고 앞으로 뻔뻔하게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10.
이 글의 마지막은 에밀 시오랑의 글로 장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내 자신을 견딥니다.(5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나도 견디고 있다.

 

 

여러분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는 각자 생각해 보는 걸로... 

 

 

 

 

 

.............................................
(위 10번의 인용문에서 ‘내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써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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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6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08-16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거하신 모든 부분에 공감을 표시합니다! 고로 추천 10개 쾅!^^

페크pek0501 2015-08-16 13:50   좋아요 0 | URL
공감하신다니 안심이 됩니다.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어디쯤에 위치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추천 10개 잘 받았습니다...^^

순오기 2015-08-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요~~페크님!^^
공감으로 끄덕끄덕~ 인사 남겨요!♥

페크pek0501 2015-08-16 13:5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뵈네요, 순오기 님.
끄덕끄덕 해 주셔서 좋습니다.
저는 글을 올린 지가 오래되었네, 그러면서 땜질용으로 글을 올리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5-08-1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금창고 2015-08-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책 얼마전에 읽었어요
읽고 글잘쓰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5-08-19 14: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유시민 저자의 책이라면...
맞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져요.
그런 걸 느끼기 위해서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반가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세실 2015-08-1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아 둡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갈 것` 굿 입니다~~~ 저도^^

페크pek0501 2015-08-19 14:30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제가 읽은 책은 모조리 님이 읽으시고
저는 님이 읽으신 책을 읽지 않고...
이러면 제가 밀리잖아욧... 호호~~
그냥 밀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승부욕 없는 여자랍니다.
뒤따라가겠습니다.
월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라 좋지 않습니까?

좋은 하루 되세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