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상집에 모인 손님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한다. 때로 손님들은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그처럼 글쓰기를 통해 각기 떨어져 있던 체험들은 한자리에 모이고 관계를 갖게 된다. 글 쓰는 사람은 고인故人일까, 상주喪主일까.(171쪽)

 

글에 하나의 주제와 관련한 체험들을 모이게 하라.

 

 

 

 

 

2.
이삿짐센터 직원이 혼자서 피아노를 들어 올리는 것은 피아노의 구조와 무게중심 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즉 그는 급소를 아는 것이다. 그 급소가 글쓰기에서는 ‘디테일’이다. 정확히 말해 글쓰기는 수많은 디테일 가운데 바로 급소가 되는 디테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어떤 디테일도 급소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175쪽)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디테일 묘사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디테일로 작품을 살려 내는 글을 써라.

 

 

 

 

 

3.
밭을 갈 때는 멀리 보이는 큰 나무를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 똑바로 갈기 위해 발밑을 살피다 보면 밭고랑은 삐뚤빼뚤해진다. 옷감을 끊을 때도 천은 보지 말고 맞은편에서 잡고 있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 글쓰기 또한 눈길을 멀리 두고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리멸렬해지기 십상이다.(172쪽)

 

어릴 때 하던 잡기 놀이. 반드시 한 발을 고정시켜야 하지, 두 발 다 떨어지면 무효가 된다.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침 끝이 움직이면 원은 망가지게 마련이다. 글쓰기 또한 아무리 먼 데로 나아가더라도 애초의 중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끝말잇기 놀이’ '수정 모드 타이핑‘ ’다른 샘 파기‘가 된다.(176쪽)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의 끈을 놓치지 말라.

 

 

 

 

 

4.
글쓰기의 마지막은 「따오기」 노래처럼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에 독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초콜릿을 선물할 때 껍질을 까서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아무도 이미 씹어 놓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선물은 포장을 벗기기 직전까지이다.(180쪽)

 

다 알려 주지 말고 의미가 감추어 있게 써라.

 

 

 

 

 

5.
스케이팅하는 동작은 글쓰기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 준다. 스케이트를 타고 나아갈 때는 한 다리를 삐딱하게 뻗고, 다음 다리도 삐딱하게 뻗어 주어야 한다. (바로 앞으로 내밀어서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멈추어야 할 때는 다리를 완전히 반대쪽으로 꺾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아름다운 글쓰기의 끝맺음 방식도 이와 같지 않을까.(180쪽)

 

예상 밖의 결말을 보여 줘라.

 

 

 

 

 

 

 

 

 

 

 

 

 

 

이성복 저, <고백의 형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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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1-06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자병법에서 장수의 자질로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 5가지를 듭니다. 언뜻 보기에 (저는 자세히 봐도) 인과 엄은 대립적/상보적이죠. pek0501 님의 글, 2번과 3번도 그런 관계처럼 보이네요. 어느 글에서는 명품은 기본에 충실한다고 어느 글에서는 디테일이 명품을 가른다고 합니다. 아마도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디테일에도 충실한 것이 명품이겠죠.

페크pek0501 2014-11-06 22:2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 ^^

oren 2014-11-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의 글을 읽으니 저는 몽테뉴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평가하면서, `이 두 부류의 중간 것들은(이것이 가장 보통이지만) 모든 것을 벌여 놓는다. 그들은 우리가 씹을 것을 대신 씹어 준다.`고 말했던 대목이 금방 떠오르네요. 밭을 갈 때 먼 곳을 응시하라는 말 또한 인상적인 표현인데, 몽테뉴도 그와 무척이나 쏙 빼닮은 문장을 남겨 놓았더라구요.(제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 읽었던 1983년에도 그 문장만큼은 독서노트에 옮겨 놓는 걸 잊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 * *

풋내기들

그것은 마치 무도회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귀족들의 점잖은 행세를 모방할 수 없으니까, 무도 학교를 세워 가면서 배운 위험한 뜀박질이나 익살스런 동작의 색다른 잡술을 가지고 장기를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정식 무도회에서 부인들이 천연스런 걸음으로 순진한 자세와 타고난 우아미를 보여 주기만 해도 되는 것을, 몸뚱이를 비꼬아 뒤흔드는 무도회에서는 그녀들의 자태를 값싸게 보여 준다. 나도 역시 본 일이지만, 탁월한 배우들은 일상적인 옷을 입고 화장기 없는 용모로도 그들이 예술이 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주는 데 반해서, 풋내기들은 공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므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옷을 괴상하게 입고는 우리를 웃기려고 동작을 거꾸로도 하고, 얼굴을 망측하게 찌푸리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관념은 《아에네이스》와 《광분하는 롤랑》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경우보다도 더 잘 이해가 된다. 전자는 확고하게 날개를 활짝 펴서 높게 날며, 늘 자기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후자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 앉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뛰어 돌아다니며, 자기 날개에 자신이 없어 짧은 거리밖에는 날지 못하고, 숨과 힘이 지탱 못할까 봐 밭이랑마다 내려서 쉰다.

그는 단거리 질주를 시도한다. (베르길리우스)


페크pek0501 2014-11-06 22:27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을 올려 주시는 님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됩니다.

저도 장거리 질주는 자신이 없어서 단거리 질주를 하고 있는데
그나마 이거라도 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반갑습니다. ^^

단발머리 2014-11-07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서재에서 항상 `글쓰기`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얻고 갑니다. 인용해주신 이성복님의 글도 너무 좋네요.

그처럼 처음에는 나의 의도 혹은 착상에서 글을 시작하지만, 이내 글이 가는 대로 내맡기고, 다만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막아 줄 뿐이다.(168쪽)

실제로 글을 쓰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많거든요. 원래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놀라곤 합니다. 나를 좀 더 내맡겨야겠군요.^^

페크pek0501 2014-11-07 14:54   좋아요 0 | URL
하하~~
일방적인 배움이란 없는 것 같아요. 서로 배우는 것이죠.
저도 님에게서 많이 배운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가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