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앞으로 친구 모임에 그만 나갈까?’ 하고 고민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가난하게 산 지 오래되다 보니 친구 모임에서 불쾌한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제 친구들 여섯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회비를 걷으면서 그녀에게 “너는 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거였다. 자신의 형편을 아니까 배려해 주겠다는 뜻인 줄은 알지만 그 배려가 고맙기보다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녀가 한 친구의 핸드백이 예뻐서 무심코 “그 핸드백 참 예쁘네.”라고 말했는데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거 비싼 백이야. 얘는 강남의 주부잖니.”
이 말을 듣자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강남의 주부가 아니라서 내 핸드백은 싸구려라는 말인가.’
그녀는 물론 알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심기가 언짢아지는 이유가 가난으로 인해 열등감이 생겨서 남의 말을 삐딱하게 받아들여서라는 것을.
서머싯 몸도 자신의 작품에서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 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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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아프거나 어려운 삶을 살게 될수록 오히려 마음이 삐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거나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수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친구 모임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녀는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