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다. 그런데 잠이 쏟아져서 또 잤다. 오늘은 밤잠으론 부족한 모양이다. 아, 그러게 아까 책을 읽는 대신에 잠을 잤어야 하는 거였다. 아침에 식구들 다 나가고 혼자 있게 될 때 바로 잤으면 좋았을 것을, 침대에 앉은 채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었던 것. 읽다가 잤던 것이다.

 

 

 

 

1.

이런 글을 읽었다.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거나 활기에 가득 찬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노역하러 가는 도중에 머릿속에서 좋은 시구를 반복해 읊거나 멋진 가락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죄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과 달콤한 매력들에 지겨워진 사람들보다 더 마음속 깊이 위안이 되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다.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56쪽~157쪽.

 

 

 

 

삶에서 권태를 느낄 뿐 무엇으로 즐길 줄 모르는 부유한 사람보다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작은 것으로 즐길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도 되겠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57쪽.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엄마의 등에 업혔던 일이 생각났다. 뿌연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어린 시절이건만 안개가 걷힌 어느 날의 풍경처럼 또렷이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아마 여섯 살쯤인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놀러간 어느 집에서 내가 잠이 들었던 것. 그래서 엄마가 나를 업고 집에까지 오게 된 것. 업히는 게 좋아서 자는 척을 했던 것까지 기억한다. 내가 업힐 나이가 아닌데도 업혔기에 좋았을 것이다. 또 엄마가 나를 업어 줄 리 없던 때에 업혔기에 좋았을 것이다. 업혀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아이였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귀하게 여겨서 업어 주었을 것이라고 느꼈을 테니까. 이런 행복한 경험이 그 뒤에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있을 때 엄마에 대해 섭섭하거나 미운 마음을 덜어 주었다.

 

 

 

좋은 추억을 많이 갖게 해 주는 게 어쩌면 부모로서 자식을 위하는 최고의 일일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하지만 가치가 있는 일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형제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늘 상대가 내게 잘 할 수는 없는 일, 섭섭하게 할 때도 있을 터. 하지만 내가 감동할 만큼 상대가 잘해 줬던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나는 상대에게 섭섭한 마음이 느껴질 때에 그것으로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난여름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문상을 온 친구들이 있었다. 대전에서 온 친구, 부산에서 온 친구, 두 번이나 와 준 친구 등 무척 고마운 친구들이 많았다. 아마 그들이 앞으로 내게 섭섭하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때 고마웠던 일을 기억하는 한, 상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무척 고마워할 만큼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만들어 주는 일은 뜻깊은 일이 될 수 있겠다.

 

 

 

 

 

 

2.

이런 글도 읽었다.

 

 

 

 

 

이사를 하는 일은 절대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불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물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집을 나가는 일은 확실히 기분 나쁜 일이지만,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멋지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67쪽.

 

 

 

 

‘사물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멋진 말이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말이지만 그래도 작가가 멋있는 말을 뽑아냈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알았을까. 자신이 쓴 평범한 문장(본인이 평범하리라고 여기는 문장)에도 감탄하는 나 같은 독자가 있다는 것을.

 

 

 

시간에도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어제와의 작별은 어제의 끝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과의 작별은 오늘의 끝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일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과의 작별은 여름의 끝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을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과의 작별은 가을의 끝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겨울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실패’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실패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담고 싶었나 보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실패에도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그 두 가지란 ‘실패’와 ‘교훈’이다. 실패엔 책으로 얻을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교훈이 생생하게 녹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으리라. ‘실패에도 교훈이 있다.’

 

 

 

내 나이가 그렇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읽고 그냥 지나치고 말 평범한 내용의 문장에 마음이 끌려 음미하게 되는 그런 나이에 진입한 것이다. 연륜이 주는 이득이다. 이것으로 나이 듦의 거부감을 덜 수 있을까.

 

 

 

 

 

 

3.

다음의 글에서 ‘그것들은’이란 무엇일까.

 

 

 

 

 

그것들은 내가 깨어 있을 때나 잠이 들었을 때. 식사할 때나 일할 때, 날이 좋거나 궂거나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친근한 얼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함께 있으면 마치 고향 집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27쪽.

 

 

 

 

이것의 맨 앞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리고 끝으로 가장 좋은 교제상대를 들자면 내 작은 아파트 방 벽 책꽂이를 가득 채운 많은 책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이란 ‘많은 책’을 말한다. 작가는 ‘책’이 친근한 얼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 대해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으리라. 나 역시 우리 집 거실의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는 내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위안거리로 느껴질 때가 있다.

 

 

 

 

 

 

4.

나는 작가를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한다. 예술적인 작가와 비예술적인 작가. 여기서 예술적인 작가는 ‘예술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가를 말한다. 헤르만 헤세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정원을 가꾸며 살았던 예술가였다.

 

 

 

내 주위에 헤세 같은 예술가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예술가가 가까이 있었다면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볼 때, 남편감으로는 예술가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좋은 남편감의 직업으로는 아침을 먹고 나면 출근하는 직장인이 최고지. 예술가는 흠모의 대상으로만 적합할 뿐이지. 왜냐하면 남편이 출근하는 곳이 없어서 부부가 매일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보단 서로 떨어져서 지내다가 저녁때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매달 고정 수입이 있는 남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뭐 작업실이 따로 있고 수입이 좋은 예술가라면 모르지만.ㅋ) 쓸데없는 얘기를 해 봤다.

 

 

 

 

 

 

5.

다음의 글을 음미한다.

 

 

 

우리는 파헤쳐진 땅을 다시 평평하게 고르고, 끈을 매 놓은 대로 예쁘장하고 반듯하게 줄을 긋는다. 화단에 어떤 색과 모양의 꽃들을 심을지 미리 나눠 놓았다가 씨앗을 뿌린다. 하늘색과 흰색을 여기저기에 심고, 미소 짓는 듯한 붉은색 꽃을 그 사이에 흩트려 심을 것이다. 이쪽은 물망초로, 저쪽은 레세다 꽃으로 화려하게 가장자리를 다듬는다. 햇빛이 반짝이는 여름이 되면 그곳에 탁자를 갖다 놓고 앉아 우유가 조금 들어 간 커피를 아끼지 않고 마셔야지. 또 가벼운 식사에 곁들여서 포도주를 마실 생각을 하며 저쪽 채소밭 한켠에 무를 심을 만한 곳을 눈여겨 둔다.

 

 

 

일이 진척되어감에 따라 처음에 어린아이처럼 마구 날뛰던 기쁨과 흥분은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조그맣고 아무런 힘도 없을 것 같은 정원이라는 존재가 다른 여운을 선사한다. 그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사실 정원을 가꾸면서 마치 자신이 창조자가 된 듯한 즐거움과 우월감이다. 사람들은 한 조각의 땅에 품어왔던 생각과 의지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6쪽~17쪽.

 

 

 

그리고 다시 한 번 읽는다.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거나 활기에 가득 찬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 헤르만 헤세 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56쪽.

 

 

 

나 오늘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일도 쳐다봐야지.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건 싫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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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1-1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도 쨍 소리 날 것 같이 청명한 하늘과 춤추듯 흐르는 구름 실컷 보고 왔어요. 그저 감사할 게 적지 않네요, ^^

페크pek0501 2013-11-13 13: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레이야 님...
감사할 게 많아요. 건강해서 병원 신세 지지 않는 것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배 고프지 않은 것도요.
지금은 커피 한 잔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마녀고양이 2013-11-1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읽으면서 창문 쳐다봤네요.. ^^
오늘 쨍해요, 물론 나가면 내가 언제 따스하다 그랬어? 하듯이 추운 날씨지만요.

페크pek0501 2013-11-13 13:26   좋아요 0 | URL
추운 날씨라 더 쨍하게 느껴지겠지요.
마고님이 다시 활동하셔서 얼마나 반갑고 좋은지...^^

노이에자이트 2013-11-1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 씨가 교사직을 때려치우고 전업작가가 되려고 했을 때 부인이 엄청나게 반대했다고 하죠.아무래도 일정한 수입이 끊기니까...

다른 분들 댓글과 비교해보면 제 댓글 내용은 정말 다르군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3-11-13 13:50   좋아요 0 | URL
저의 쓸데없는 얘기- 에 대한 댓글을 써 주셔서 고맙네요. ㅋㅋ
사실 아내들에겐 일정한 수입이란 게 중요하죠.
돈이 전부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돈이 하나도 없으면
한 끼의 식사조차 구걸을 해야 한다는 거죠.

한승원 님과 그의 딸 한강, 두 분은 어쩌면 그리 소설을 잘 쓰시는지... 둘 다 이상문학상 수상자이죠.

노이에자이트 2013-11-1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한강 말고 한승원 씨 아들도 소설가인데...사람들에게 안 알려졌죠.아버지 입장에선 정말 마음이 아플 거에요...사실 저도 그 소설가 아들 이름을 까먹었네요.한강 만큼 두각을 못나타내니까요.

한강 씨는 외모도 참 곱상하던데...제가 소설가 외모에도 관심이 많답니다.

페크pek0501 2013-11-13 14:0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글쓰는 재능을 물려받았나 봐요.
글을 잘 쓰면서 외모가 뛰어나면 더 멋있긴 하죠. ^^

yamoo 2013-11-1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덕분에 가을 하늘을 올려다 봤네요. ^^
감솨~~
인용한 부분들이 음미하기 그만인 내용들이에요~

페크pek0501 2013-11-15 07:44   좋아요 0 | URL
저도 감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