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무더위를 피해 산이나 바다로 피서를 갈 계획을 세우는데, 난 인파가 많은 곳으로의 출발이 끔찍하다고 느낀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긴 여름날들 중에 겨우 삼박사일을 시원하게 보내자고 그 고생을 해야 하다니. 이런 생각에 이번 여름은 조용히 집에서 지내고 싶다. 그 대신 가을이나 겨울에 주말을 이용하여 일박이일로 여행을 가는 건 좋을 것 같다. 식구들에게 그렇게 말할 예정이다.

 

 

이번 여름엔 피서 계획이 없으니 집에서 책을 보며 무더위를 잊자고 마음을 먹고 책을 다섯 권 구입했다. 이 중에서 세 권을 골라 소개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고 대강 훑어본 책들이다. 다시 말해 맛보기만 한 책들이다.

 

 

 

 

 

 

1. 황현산 저, <밤이 선생이다>

 

 

칼럼을 잘 쓰고 싶다. 그래서 잘 쓴 칼럼집을 인터넷으로 찾던 중 내 눈에 띈 책이다. 내게 전범이 되어 줄 책으로 기대하며 구입했다. 맘에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 글의 형식에서도, 글의 내용에서도.

 

 

 

 

 

 

‘책을 펴내며’에 있는 글.

 

 

“지난 4년간 한겨레신문에, 그리고 2000년대 초엽에 국민일보에 실었던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지난 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에 썼던 글도 여러 편 들어 있다.”(4쪽)

 

 

 

 

 

 

훑어보다가 폭력에 대한 글 일부를 뽑았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115쪽)

 

 

 

 

 

 

2. 서민 저, <서민의 기생충 열전>

 

 

다락방 님의 서재에서 마태우스(본명은 서민) 님의 책이 출간된 걸 알았다. 작년에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재밌게 읽은 나로서는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구입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책이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보다 훨씬 나은 책 같다. 고급스러운 느낌에다 칼라 사진도 많이 들어 있어 정성을 들여 만든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설명이 자세하여 기생충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에게 꼼꼼한 안내자의 역할을 해 줄 것 같다.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저자 특유의 유머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아마 유머 때문에 끝까지 읽지 않는 독자가 없으리라.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하리라.

 

 

 

재미와 유익함을 주는 이런 글을 뽑았다.

 

 

“이 세상에 사랑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단어 ‘사랑’.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듯 진실한 사랑이 꼭 좋은 결말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전 세계 생물체 중 부부 간의 금실이 가장 좋다고 소문난 주혈흡충. 그들의 사랑 또한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286쪽)

 

 

 

 

그 다음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3. 무라카미 하루키 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은 왜 이렇게 긴가. 독자들을 위해 줄여 쓰면 안 되는 건가.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외울 수가 없도다.

 

 

 

 

 

 

신문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1, 2>와 정유정의 <28> 등 이 세 가지의 책이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걸 알았다. 이 세 가지를 다 사 볼 수는 없고 해서 한 권만 골라 사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다.

 

 

 

 

 

 

사실 하루키의 책을 다섯 권 읽어서 그만 읽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 책은 또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에 기록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다니 도대체 어떤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 궁금했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그래서 구입했다.

 

 

책을 훑어보다가 내 눈에 잡힌 것, 하루키가 질투에 대해 쓴 글을 뽑았다.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60쪽~61쪽)

 

 

재능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흠, 분명 재능이란 건 때때로 유쾌하기는 해. 폼도 나고 남의 눈을 끌기도 하고 잘만 하면 돈이 되기도 해. 여자도 붙어. 그야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하지만 재능이란 말이야, 하이다, 육체와 의식의 강인한 집중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나사가 하나만 빠지거나, 아니면 육체의 어딘가 연결선 하나만 툭 끊어지면, 집중 같은 건 새벽 안개처럼 사라져 버려. 예를 들어 어금니 하나가 욱신거리기만 해도, 어깨가 심하게 결리기만 해도, 피아노는 제대로 칠 수가 없어. (…)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허약한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재능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104쪽~105쪽)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에만 치중해서 읽는다면 그건 소설 재미의 반을 날려 버린 것과 같다. 이렇게 하나의 낱말에 대해 작가 방식대로 묘사한 문장을 읽는 재미를 놓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읽고 작가의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게 소설의 또 다른 재미라고 본다. 나는 줄거리보다 이런 게 더 재밌다고 느끼며 소설을 읽을 때가 많다.

 

 

내가 질투에 대해서 쓴다면, 또 재능에 대해서 쓴다면 뭐라고 쓸까. 이런 것 써 보고 싶어지네. 여러분도 써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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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2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7-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부지방은 폭염이에요. 주말에 비가 한차례 온다는데 그럼 좀 나으려나요. 전 오늘 간절곶에 가서 바닷바람 쐬고 한결 시원했어요. ^^ 하루키 신작은 읽고있는 중인데 진도가 안 나가네요. 이거저거 요즘 좀 신경 쓸 일이 있다보니 집중이 덜 돼요. 질투에 대한 저 글귀는 저도 눈여겨 보았어요. 스토리보다 저런 단상들 읽는 재미, 김훈의 소설에서도 좋지요. 기생충열전은 아무래도 구매해서 봐야겠어요. 페크님을 비롯해 호평이 많으니 믿고ㅎㅎ 한때 알라딘 대주주였던 마태님의 신작이기도 하니 ^^

페크pek0501 2013-07-23 13:04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 님, 오랜만의 방문인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의 삶은 한 가지에만 집중하게 내버려 두지 않죠. 신경 쓸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조금밖에 글을 못 올리고 있죠.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줄 서 있어요.

올 여름 덥죠? 지금 서울은 비가 오고 있어 시원하답니다. 그런데 나갈 일이 있을 땐 불편하죠. 비는 창밖으로 볼 때만 좋은 것 같아요.
뭐든지 쉬엄쉬엄 하세요. 빈둥거리는 시간을 가지시고요.

oren 2013-07-2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쯤 전에 '선물할 책'을 사기 위해 모처럼 서점에 들렀더니, 서점 여직원들끼리 '예약주문이 벌써 몇십 권이나' 된다면서 수근거리는 소릴 들었는데, 알고 봤더니 하루키의 신작 소설 얘기더군요. 저는 베스트셀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알라딘에 와서도 하루키를 검색해 본 적도 없고, 책 소개글 조차 읽어보지 못했네요. ㅎㅎ
아무튼 무더위는 잊으시고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3-07-24 13:47   좋아요 0 | URL
오렌 님, 아주 오랜만의 나들이이신 듯해요. 반갑습니다.
저도 한때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았어요. 주로 고전만 읽었죠. 그런데 요즘은 대중들에게 어떤 문체가, 어떤 내용이 인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졌어요. 저도 좀 배우려고요. 그러다 보니 그런 책들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게 돼요. ㅋㅋ
님도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

세실 2013-07-24 0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깨어 어제 읽다만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읽고 있습니다.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듯한.....
하루키 신간, 28 연달아 읽으니 오싹합니다. ㅎ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것! 아 무서라~~~~
마태우스님 책 읽으며 웃어야 겠어요. 기생충도 좀 무섭긴 하겠지만요^^

페크pek0501 2013-07-24 13:50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저는 오싹한 소설을 안 읽어요. 겁이 많아서요. 그런 건 영화도 안 봐요. ㅋㅋ
기생충은 읽다 보면 귀여워질 걸요. ㅋㅋ

어제 둘째애가 방학을 해서 제가 오늘 늦잠 잤어요. 새벽밥을 안 해도 되니까 좋은 하루네요.
남편은 국만 있으면 혼자서 아침 차려 먹는 스타일이라서 애가 방학만 하면 저도 방학이에요.
이 방학 동안 저는 또 얼마나 게을러질까요. 나이 들수록 게으름이 좋아지네요. 시간은 늘 아깝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