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 사회에선 소비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표현한다는 뜻에서 “나는 쇼핑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소비’가 중요한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하루도 ‘소비’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휴대전화가 수명이 다해 고장이 났거나 물에 빠져서 고장이 날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 명단이나 중요해서 메모해 둔 어떤 정보들을 재생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휴대전화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졌다. 만약 외국에서 살게 된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국내의 친구에게, “스마트폰끼리는 무료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으니까 너도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좋겠어.”라고 말해서, 또는 친구들이 “너만 카카오톡 사용자가 아니라서 불편하다. 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라.”라고 말해서,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런 말을 들어 봤다.) 이렇게 주위의 압력으로 인해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었다면 그건 자의적 결정이기보단 타인에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비의 사회기능과 조직 구조가 개인적 레벨을 훨씬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가 되어 개인에게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저, <소비의 사회>에서.)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비가 결국 인간의 자기 소외를 가져온다고 하였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소외되는 위험성이 생긴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상품이 필요해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의 고립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품을 구입하여 ‘소비’하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스마트폰, 컴퓨터, 내비게이션 등의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인간의 뇌를 편하게 해 주는 대신에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를 등장하게 했다. ‘디지털 치매’란 디지털 기기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뇌 기능이 손상되어 인지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다. ‘디지털 치매’라는 병을 조심해야 할 만큼 지금의 세상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는 디지털 치매가 야기할 문제를 요약해 제시한다. 머리를 쓰지 않고 디지털 기기에만 의존하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책이다. “우리의 뇌는 주요한 측면에서 볼 때 마치 근육과 같이 기능한다.”고 한다. 근육이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하듯이, 두뇌도 마찬가지로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두뇌를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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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나 친구,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휴대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다. 이들과의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공적, 사적 일정도 마찬가지로 휴대전화기나 PDA에 저장되어 있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된다. 그러면 사진이나 편지, 메일, 책, 음악 등 원하는 정보가 뜬다. 스스로 생각하고, 저장하고, 고민하는 것은 ‘오류’처럼 보인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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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류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저장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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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자신을 산 정상에 올려놔주는 것으로 등산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학생이 전문가의 생각을 묻는 것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어느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식의 본질을 자기 것으로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문을 제기하면서 파고들고, 퍼즐의 작은 조각들을 의미 있는 하나로 완성해 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해봐야만 한다. (…) 한마디로 요약해, 실상은 반드시 ‘꿰뚫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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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정리한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는 몇 가지 방법’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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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효과적인 두뇌 조깅은 그냥 조깅이다.

- 가끔씩 일부러라도 음악을 들어라. 단 다른 일을 하면서 듣지 마라

- 아무런 이유 없이 웃더라도 웃음은 좋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를 자극하게 된다.

- 친구 세 명과 함께하는 저녁은 페이스북에서 300명과 가상접촉을 하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행복하게 만든다.

- 아이들에게는 디지털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라. 이것만이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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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하철을 타면 예전엔 책을 읽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는데, 요즘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서든 친구와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기 일쑤이다. 고등학생인 내 딸은 나와 얘기할 때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서 내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자고 말할 정도다. 우리, 스마트폰으로 뭔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지 않을까.

 

 

휴대전화가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휴대전화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세상으로 휩쓸려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는 ‘시작하며(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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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휴대전화는 과연 무엇인가. 이 자그마한 물건이 불러일으키는 생활의 혁명과 마음의 신화는 무엇인가. 언제든 누구든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자의식과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 몸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거의 무한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은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빚어내고 있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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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마트폰이 상용하기 전인 2008년에 출간되어 스마트폰의 전 단계의 휴대전화(이땐 핸드폰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에 관한 책이지만 스마트폰에 관한 책으로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휴대전화 없이 산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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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하루를 매우 조용하게 보냅니다. 이런 말 하면 놀라겠지만 나는 휴대전화가 없어요.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어젠다(agenda, 화제)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죠. 내가 휴대전화가 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어젠다에 휘둘려야 하죠? 때로는 교통 체증으로 심심해서 걸어온 전화도 받아야 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노천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쓸데없는 전화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러다 보면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놓칠 수 있어요. 혼자 찬찬히 앉아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을 정해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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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사용이 대중화하면서 그 단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람과의 만남의 횟수를 줄어들게 한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휴대전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없게 한다. 아무 때나 전화나 문자가 수신되는 휴대전화의 특성으로 인해 조용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을 건성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의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은 휴대전화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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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꺼놓을 때

 

주소록을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친구의 번호쯤은 외울 수 있도록

카메라를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을 두 눈에 담도록

문자 기능을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긴 연애편지를 쓰도록

기술은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맙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어느 이동통신사 광고 문구)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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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준만 저자는 우리가 휴대전화에 애착을 갖는 건 이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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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휴대전화에 미치는 건 스스로 미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셀룰러 이코노미’라는 동력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자 ‘삶의 문법’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홀로 저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홀로 무인도에 남는 기분을 어찌 견뎌낼 수 있겠는가. (…) 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소통의 풍요를 만끽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도 우문임에 틀림없다. 휴대전화는 소통을 위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판타지를 공급하는 나의 주인이다.

- 강준만 저,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5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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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다른 책에서 우리의 삶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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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자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형태가 통합된 ‘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의 도래를 예측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나노 기술이 출현하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의 두뇌가 바로 아날로그 ’기술‘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디지털 기술만으론 파악할 수 없는 다른 큰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 일상적 삶에서 사고방식의 디지털화도 경계할 일이다. 우리의 삶엔 이거냐 저거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식 답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상이 아무리 단절적인 디지털 혁명으로 들끓어도 우리의 삶은 연속적인 아날로그라는 데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 강준만 저,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560쪽~5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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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는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지금 사용 중인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당장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새 상품의 소비가 빨라지고 있는 속도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일 수 있겠다. 유행에 꼭 따라가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 모르는데, 스마트폰을 작은 컴퓨터로 생각하여 들고 다니면서까지 컴퓨터를 사용해서 눈의 피로가 쌓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 역시 매일 휴대전화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책들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봤다. 우리가 옛 휴대전화를 사용하든 새 휴대전화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든, 휴대전화에 의존하며 사는 삶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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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4-0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기도 멀리, 놋북도 멀리, 아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요;;;;;;
그래도 노상 확인하고 들여다보던 페북이랑 트위터 스맛폰에서 어플 삭제하니까 마음이 화라락 편해지던걸요. 이참에 노상 들여다보는 알라딘 어플도 확 삭제할까 싶은 생각도 ^^;;;;

페크pek0501 2013-04-08 15:27   좋아요 0 | URL

어려운 일을 실천하셨네요.
어머, 그런데 알라딘 어플 삭제는 안 되지요. 책 이야기보다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다고요.
우리는 트위터, 페이스북, 알라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셋 다 기웃거릴 수는 있지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라는 거죠. 할 일은 많고 인생은 짧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빙카 2013-06-0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할수 없는세게 그레서 노아의 홍수가 필요 했을 까요??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홀로 꼬물 휴대폰을 가지고 견뎌보기가 ㅎ 친구가 하나도없습니다 그나마있는 친구들이 너무너무 저를한심 해 합니다 그들도떠날겁니다
그럼 나도 떠나고싶을 까요 ? 아니면 굴복 하고스마트폰을 사게될까요 ? 삐삐라는 호출기는 이제사라졌을까요? 참을 성이없어진 십대들
데이트 할때도 폰만 들여다본다는 이시대젋은이들
전자파에 두통에 시달려도 스마트폰 버리지못하게 된 세상 은 어떤 모습으로 병들어갈지 근심 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