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7)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있다
1. 인간은 정확한 대답을 할 줄 모른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난 뒤에 그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져 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친구의 모임에 늦게 도착한 내게 친구가 왜 늦었냐고 물었던 날에 내가 한 대답이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차가 많이 밀렸어.”
그런데 실제로는 차는 조금만 밀렸고, 다른 이유로 늦었다. 전날 밤, 샤워를 하고 잤으므로 그 다음날 아침 외출준비를 할 땐 샤워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땀이 나서 샤워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머리를 말리고 손질하느라 늦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의 내 대답은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땀이 났고 시계를 보니깐 사워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서 샤워했는데, 머리 말리고 손질하느라 늦었어.”라고 해야 진실이며 정확한 대답이다. 그런데 난 차가 밀렸다는 핑계를 대어서 나의 잘못을 ‘차가 밀린 도로 사정’의 탓으로 돌린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차가 밀렸다고 말한 이유가 꼭 내게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길게 대답하기보다 짧게 편히 말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어느 날 고등어 두 마리를 사서 조림을 했다. 갈치를 좋아하는 아이가 식탁에 앉으면서, 왜 하필 고등어 반찬이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등 푸른 생선이 몸에 좋으니까 사 왔지.”였지만 사실은 고등어가 세일을 하고 있어서 사 왔던 것이다. 이것도 세일을 해서 사 왔다는 것보다 몸에 좋아서 사 왔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했다기보다 그냥 생각난 대로 편히 말한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 돌아보면 왜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는 게 어려운 걸까, 하고 의아해진다. 그래서 다음부턴 진실만을 말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데, 또 진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같은 실수를 하고 만다. 잘못 대답함으로써 어떤 때는 내게 이롭게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게 불리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통해 조금씩 ‘인간’을 알아가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인간은 정확한 대답을 할 줄 모른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을 왜 구입했냐는 물음에 대해 백 퍼센트의 진실로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왜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해 백 퍼센트의 진실로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까.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왜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해 백 퍼센트의 진실로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는 할 수가 없습니다.”이다. 물음에 꼭 알맞은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 그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 잘못 말했어.’라고. 이럴 때마다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필립 그레이브스 저, <소비자학?>에서 저자는 “설문조사처럼 경영자들과 마케터들이 의지하는 전통적인 시장조사 활동은 지난 50년간 산업 전반에 쓸데없는 혼란만 가져왔으며 쓸모없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조선일보, 2011. 7. 9-10.) 이에 따르면 “기업에서 실시하는 시장조사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의식적인 활동인 데 반해 소비자의 구매 행동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일 경우가 많다. 시장조사의 질문이 적절하고 소비자들도 성실히 이에 답한다 할지라도, 자신(소비자)이 미래에 행할 소비행위를 예언하듯 답할 재주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2.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책
생활 속에서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있다는 걸 자주 경험하게 되는데,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장하준 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에게 참된 희망을 주는 것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대다수가 탐욕스럽지도 않고 편협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할 때는, 그 일로 엄청난 물질적 이득을 얻는다거나, 그 일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순응주의자가 되는 편이 훨씬 쉽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잘못된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대부분의 정치가들과 신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될 텐데, 왜 굳이 먼 길을 돌아다니며 ‘불편한 진실’을 찾아다니겠는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부정부패와 게으름, 혹은 방탕함 탓으로 돌리면 쉬운데, 왜 굳이 가난한 나라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신경 쓰겠는가?”
장하준 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저자는 세계 경제의 재건을 위해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하려 할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면 우리의 객관적 사고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2008년 우리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것은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무한하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시스템이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하준 저자의 글을 읽으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통찰은 필수임을 인식하게 된다. 사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 그 어떠한 일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먼저 이해해야 함은 당연하다. 인간이 관계하지 않는 세상일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임어당도 경제학 분야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글을 썼다. “마르크스가 계산에서 빠뜨린 것은 영국인 및 미국인의 인간적 요인이었다. 또는 양국인의 일하는 방법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모든 미숙한 경제학의 커다란 맹점은 국민적 문제의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종의 불가능한 요인을 탐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생활의 발견>, 144쪽, 범우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감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가장 무관심한 게 ‘인간에 대한 이해’인 것 같다. 우리가 중요시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도 그 밑바탕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알고 인간의 공통된 심리와 각각의 특색을 아는 일에 공부가 필요하다. 혹시 우리는 자신이 바로 인간이기에 따로 인간에 대한 공부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지각’ 부족을 지적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할 때, 외적인 힘에 의해 확실하게 강제되지 않는 한, 그들의 결정은 그들 자신의 것이며, 무엇인가를 바랄 때 그렇게 바라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자기 자신에 대한 커다란 환상의 하나이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자유로부터의 도피>, 168쪽, 홍신문화사)
이 글을 읽으며 핸드폰을 떠올렸다. 핸드폰이 처음 출현할 때부터 난 구입하고 싶지 않았다. 불편한 족쇄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다. 또 친구의 모임에서도 수시로 울리는 누군가의 핸드폰도 싫었다. 얘기를 하는 중에 그 벨소리로 대화가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사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생겼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게 핸드폰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불평을 듣고서야 할 수 없이 뒤늦게 핸드폰을 구입하게 되었다. 내가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영향 때문에 산 셈이며,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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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필립 그레이브스 저, <소비자학?>
장하준 저,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